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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예배 (롬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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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직무 중 가장 중대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교훈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요 4:24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배할 것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예배하셨습니다. 당시의 예배는 형식과 의식의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혁신하여 참 예배를 드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장로교 헌법 예배모범 제 1장 1절에 “주일을 기억하는 것은 인류의 당연한 의무니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 조속히 준비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그날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로써 주의 날에 교회당에 모여 예배드림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특권인 동시에 의무인 것입니다. 고대 희랍의 학자 프르닥크는 말하기를 “성문 없는 성읍, 극장 없는 도시, 궁전 없는 수도는 목격할 수 있을 것이나 성전 없는 도시를 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고 없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교회 없는 도시 없고 전국 방방곡곡 골짜기 마을마다 다 십자가의 교회 가서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도 종교적인 나라요, 기독교화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무신론 유물사관 또 성경을 고등비평하는 등 정 당한예배를 방해하는 무리도 있는 것입니다. 유물주의 사상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현대는 인간 중심 시대가 되어있고 하나님을 등지고 있습니다. 현대만큼 인간의 요구, 인간의 행복에 치중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인간지상주의의 폐해로 오락에 빠져 헤매게 되었습니다. 산업시대에 6일만을 노동하고 주일을 향락에 할애하여 직업적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나님을 등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성경의 말씀을 오류 없는 말씀으로 받는 것이 전통적 교회 입장입니다. 그러나 고등비판 한다 하고 성경에 대한 경건하고 신성한 태도는 없어지고 성경을 사람의 작품이요 오류가 많은 것으로 인식하도록 해석하고 있습니다. 무신론, 사신론으로 화하고 전지전능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정신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지 못하고 사회개량, 단체, 윤리도덕의 강연장으로 인식되게 되었으니 주일을 경건하게 예배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배드리는 일로 순교하여 죽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초대교인들의 예배는 그야말로 참 예배요, 산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카타콤 지하에서 예배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런 순결성과 생명성을 결단코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예배를 중요시 하여야 할 이유
(1) 하나님의 존재 우리 예배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데 그 당위성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근본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 참 예배드리지 못합니다. 무신론자에게는 예배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생명력 관계입니다. 희랍정교회의 예배에는 온 교우들이 기립하여 부동의 엄숙한 자세로 예배드립니다.
(2) 인간의 종교성 인간이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종교적 성질이 있는 까닭입니다. 우리 인간은 우주의 신비에 접촉하거나 또는 어떤 큰 사건에 봉착할 때 경이의 눈으로 보고 공포에 떨게 됩니다. 이 같은 감각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숭배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자기보다 위대한 힘과 인격 앞에 겸손과 신뢰와 복종으로 예배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승경하고 숭배하는 하나의 이유입니다.
(3) 인간의 사교성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고독을 싫어합니다. 자기의 어떤 상대를 발견하여 그와 교제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사귀며 자기의 존재를 외식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2. 예배는 어떻게 드릴 것입니까?
(1) 찬송과 기도 예배순서 중에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활동하는 순서가 찬송과 기도입니다. 이들은 서로 다를 것 같으나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 찬송은 공동으로 드리는 기도요 공기도는 대표로 드리는 기도일 뿐입니다. 찬송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 하나님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우리의 소원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한자의 통회자복, 하나님의 고덕에 대한 인간의 흠모의 표현입니다. 예배찬송은 종교적 요구, 동경, 만족을 가지게 하며 신령한 은혜의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찬송은 너무 감상적이거나 천박해서도 안 되고 번잡해서도 안 됩니다. 음악회와 같은 분위기도 안 되고 그저 감격과 감사로 부르면 족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행한 활동의 하나입니다. 인간의 활동 가운데 기도만큼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숭고한 활동은 없습니다. 예배 중 강단에서 드리는 공중예배는 개인기도와 달라서 특히 어렵습니다. 예배기도는 대표적 기도입니다. 기도 전에 미리 깊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경건과 엄숙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추한 모습, 죄인의 모습을 발견하여 참회, 죄 고백, 사죄의 기도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기도에는 개인, 가정, 제단, 이웃 사회, 국가, 온인류, 천국건설을 위한 탄원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성경봉독 하나님께서 직접 예배자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보통 서적 읽는 것과 달라서 장중하고 엄숙하게 또한 선명하게 봉독하여야 합니다. 성경봉독은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하는 자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는 일이기에 그 중대성을 깊이 마음에 새겨서 성경을 읽으며 또한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3) 설교 우리 개신교 교도들이 전 정력을 경주하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설교입니다. 신교에서는 예배의 중심을 설교에 두고 있습니다. 설교는 목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배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표자입니다.
그러므로 권위가 있습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 개성, 취미, 경험, 언어들을 통하여 발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기의 말이나 사상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함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설교 중 설교자의 영광은 크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이 적게 나타난다면 그 설교는 올바른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자요 칙사인 것입니다. 이 직분, 이 위치를 망각할 때 그 설교의 내용이 아무리 풍부하고 화술이 우수하다 해도 설교라 할 수 없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 감추어 두신 진리를 현재 이곳에서 재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설교자의 독창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독창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성경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설교는 설교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는 이들이 설교자로 하여금 설교하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교는 강연이나 연설이 아닙니다. 말이 궁색하고 내용이 풍부하지 못하고 힘 있게 외치지 못해도 궁극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예언자와 사도들의 증언이 오늘의 말로 다시 증언된다면 훌륭한 설교인 것입니다.
(4) 헌금 예배의 중요한 요소 중 나머지 하나는 헌금입니다. 우리는 헌금이라고 하면 우선 돈이라는 관념이 먼저 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악한 습관입니다. 헌금은 돈이라기보다 신앙입니다. 헌금도 역시 돈이 아니라 영적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교회 재정 때문에 또는 예배 부속적인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받은 성경 말씀과 설교와 은혜에 감격하여 자기의 전심전력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곧 “감격합니다” 하는 표명인 동시에 “아멘” 하는 신앙의 구체적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우리 수입의 일부나 월급의 얼마를 바침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명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구체적인 신앙고백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교회재정에 보탬이 된다는 의미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멘과 감사로 내 몸 전체를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것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드리는 것은 물질입니다. 그러나 그 물질에 신앙을 채워서 드릴 때 비로소 그 물질이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 물질의 필요한 사람을 돕고 교회의 복음전도 전선을 도우므로 활발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집회에 참석함은 시간을 드림이요, 봉사함은 몸을 드림이요, 헌금하는 것은 물질에 신앙을 담아서 주의 산심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예배입니다. 이 영적 예배가 기독교인의 생애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린다면 10 년이면 520번, 20년 더 살면
1,040번입니다. 우리의 인생 모두 예배입니다. 바라건데 경건하게 엄숙하게 예배함으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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