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견을 용납하라 (롬14:1-12)
본문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말이 많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큰 사건에서 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서 말이 많다가 나중에 큰일로 번져가기도 합니다. 교회가 이런 사소한 말 때문에 의견 충돌이나 분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교회부흥의 비결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화합 ·사랑 ·이해와 함께 성령이 충만해 더욱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부흥해 왔었습니다. 훌륭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육신의 병을 치료할 때 그 몸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상한 심령도 하나님의 처방을 받을 때 고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개인의 병이든 사회의 병이든, 육신의 병이든, 영혼의 병이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침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서로 비판하는 일입니다. 1절에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입교하는 형제 중에서 연약하고 편협한 시야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라도 교회는 그들을 형제적 동정으로 영접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편협한 시야를 가진 사람들의 주장과 부딪힐 때 해야 할 세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1 적극적인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그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결론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우선,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설득하려는 자세보다는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조롱하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롱을 받을 때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념을 조소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남이 존중하는 것을 업신여길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3 멸시하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진지한 존중심 없이는 어떤 사람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논쟁을 위한 논쟁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3절에 보면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13-17절에서는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느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서로 비난하고 경멸하기 때문에 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교제 시에도 서로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일이 없어야할 것입니다. 남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동정과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5-6절에서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자유파와 편협파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편협파에서는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식과 절기에 관한 것은 그것이 일부 사람들의 습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음식과 절기문제 같은 것은 무시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갈 4:10-11에는 “너희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 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절대시 했습니다. 기독교도 이날에 대해서 지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저명한 선교사 Mary Slesson 여사가 3년간 숲 속에서 홀로 지냈을 때 달력이 없었기 때문에 간혹 요일을 잘못 알아 월요일에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주일에 월요일인 줄 알고 지붕에 올라가 망치질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쓸레소 선교사의 예배가 월요일에 드려졌기 때문에 효험이 적다고 하거나 혹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녀가 일요일에 노동을 했기 때문에 주일을 범했다고 하는 자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주일이 귀한 날이라는 것과, 이날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결코 주일이 폭군이 되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우상화 하여서는 안 되며 우리가 마땅히 섬겨야 할 것은 그날이 아니라 모든 날의 주인이신 그분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파와 편협파와의 서로 동정하기를 호소했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다르다 해도 결국 그들의 목적은 같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한쪽은 고기를 먹으며 한쪽은 먹지 아니하나 양쪽이 다 하나님께 감사를 합니다. 바울의 호소는 우리는 공동 목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고 다른 관습이 우리를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떤 길을 택하던지 간에 자유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행위는 세상의 관습에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우기 미신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전적으로 확신에 의해 좌우되어야 합니다. 4절에 보면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은 약하든 강하든 우리의 형제이지 우리의 하인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판단하려 하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그들의 생각과 의중을 판단하고 그들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이니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사실상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와 다르며 그분만이 그들의 주인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서로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롭고 틀림없는 판단에 따라서고 넘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판단이야말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7절에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로 일치되는 점입니다. 1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판단하지 맙시다. 그리고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1 적극적인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그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결론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우선,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설득하려는 자세보다는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조롱하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롱을 받을 때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념을 조소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남이 존중하는 것을 업신여길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3 멸시하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진지한 존중심 없이는 어떤 사람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일 수 없습니다. 이 시대는 논쟁을 위한 논쟁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3절에 보면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13-17절에서는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느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서로 비난하고 경멸하기 때문에 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교제 시에도 서로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일이 없어야할 것입니다. 남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동정과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5-6절에서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자유파와 편협파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편협파에서는 특정한 날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음식과 절기에 관한 것은 그것이 일부 사람들의 습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음식과 절기문제 같은 것은 무시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갈 4:10-11에는 “너희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 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절대시 했습니다. 기독교도 이날에 대해서 지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저명한 선교사 Mary Slesson 여사가 3년간 숲 속에서 홀로 지냈을 때 달력이 없었기 때문에 간혹 요일을 잘못 알아 월요일에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주일에 월요일인 줄 알고 지붕에 올라가 망치질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쓸레소 선교사의 예배가 월요일에 드려졌기 때문에 효험이 적다고 하거나 혹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녀가 일요일에 노동을 했기 때문에 주일을 범했다고 하는 자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주일이 귀한 날이라는 것과, 이날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결코 주일이 폭군이 되어서는 안 되고 더욱이 우상화 하여서는 안 되며 우리가 마땅히 섬겨야 할 것은 그날이 아니라 모든 날의 주인이신 그분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파와 편협파와의 서로 동정하기를 호소했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다르다 해도 결국 그들의 목적은 같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한쪽은 고기를 먹으며 한쪽은 먹지 아니하나 양쪽이 다 하나님께 감사를 합니다. 바울의 호소는 우리는 공동 목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고 다른 관습이 우리를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떤 길을 택하던지 간에 자유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행위는 세상의 관습에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우기 미신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전적으로 확신에 의해 좌우되어야 합니다. 4절에 보면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은 약하든 강하든 우리의 형제이지 우리의 하인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판단하려 하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그들의 생각과 의중을 판단하고 그들의 인격을 판단하는 것이니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사실상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와 다르며 그분만이 그들의 주인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서로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롭고 틀림없는 판단에 따라서고 넘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 판단이야말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7절에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로 일치되는 점입니다. 1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판단하지 맙시다. 그리고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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