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을 회복하라! (계3:14-22)
본문
기업들이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적극성과 열정을 봅니다. 먼저 걸음걸이를 보는데 자신감을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가 아니면 어절절 하는가를 순간에 포착한답니다. 두 번째는 인사성을 본답니다. 회사는 서로의 존경과 팀웤을 중시하는 사람을 찾는데 인사하는 모습에서 검증합니다. 어떤 때는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점검하는데 탕안에 발을 넣자마자 "앗, 뜨거워!"하고 얼른 발을 빼면 감점을, 좀 뜨거워도 꾹 참는 사람은 후한 점수를 준답니다.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잘 견딜까를 보는 겁니다.재미있는 것은 노래방에 가서 테스트하는데 노래를 잘하나, 못하나를 보는게 아니라, 어떤 노래를 부르나를 본답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해는 저어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미아리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런 노래를 부르면 감점을, "가자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희망의 나라로)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은 노래 정든 그 얼굴(서울의 찬가)힘차게 나가서 굳세게 일하자" 등 희망, 패기와 용기의 노래를 부르면 후한 점수를 받는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술자리로 데리고 가기도 하는데 술을 자꾸 권한다고 주는 대로 다 마시는 사람은 감점을 받는답니다. "더 이상은 못합니다. 이젠 못마십니다" 하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뽑는답니다. 이 모두는 적극성과 열성의 태도를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고후9:2)고 칭찬한 일이 있습니다.(your enthusiasm has stirred most of them to action). (your zeal has stirred up the majority). 우리교회 성도들의 열심히 소문나고, 많은 사람들을 격동케 하기를 축원합니다.
열심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열심인 성도 옆에 앉아 있으면 나도 열심입니다.사람은 누구나 가난할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 부요해지면 게을러집니다. 영적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I am rich and well off; I have all I need)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미지근(lukewarm)해서 곤고함(miserable)과 가련함(pitiful)과 가난함(poor)과 눈멀고 벌거벗은 채(naked, and blind) 부끄럽고 파리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열심을 회복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성자, 율리우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한 사람을 만나 '자기는 열심히 대단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율리우스에게 "열심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율리우스는 당당하게 자신의 가슴을 열어 열심덩어리를 꺼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 덩어리를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더니 '100 드라크마 군요'합니다. 율리우스는 '100 드라크마'라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율리우스의 열심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넣다 뺏다 하면서 녹였다 굳혔다 하더니 그 열심성분의 구성요소를 밝혀내더니 "율리우스 씨, 당신의 열심 성분은 야심이 25 드라크마, 의심이 19 드라크마, 명예심이 30 드라크마 군요.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 의한 열심은 5 드라크마도 채 안됩니다." 율리우스는 너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열심은 몇 드라크마 이며, 예수의 사랑에 의한 열심은 얼마나 되겠습니까?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에" 순수 100%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열심을 내라"(So be earnest/be zealous)는 말씀은 오늘 우리교회에,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요 뜨거운 권면입니다.
열심을 회복하려면 1. 예수님을 본받으려 해야 합니다. 요2:17 제자들이 주님을 향하여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Zeal for Your house has eaten Me up/will consume me)하신 말씀을 응하는 분이라 했습니다. "열심이 삼키웠다"는 말은 "혼신을 다한 몰두나, 자신을 불태움"을 말합니다.하나님은 열심의 겉옷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은 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5:17). '열심'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퀸아'인데 '질투'(민5:14)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jealous) 속에는 사랑과 질투(jealous)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우상을 섬길 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예수님을 닮아 열심히 일하려는 믿음의 사람들을 쓰셨습니다.엘리야(왕상19:10), 야곱(창31:40), 예후(왕하10:16), 바울(행22:3) 모두 예수님을 닮아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죤 웨슬리(John Wesley)는 54년 동안에 44,000번 설교했으니 하루에 세 번 꼴로 설교한 셈입니다. 말을 타고 1년에 5,000마일 이상을 다니며 전도하고, 시간을 내서 주석을 섰고, 히브리 라틴어 헬라어 불어 영어문법책을 쓰고 많은 설교집을 저술한 열심가였습니다. 미국 보스턴 상류계급의 어느 부인이 하루는 웬 낯선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전도를 받았습니다. 전도자가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지 그 부인이 몹시 불쾌했습니다.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자 아내에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 얼빠진 친구야 빨리 가서 네 할 일이나 하라'고 말했을 건데…"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대답하기를 "그렇지만 당신이 그 사람을 보았더라면 아마 그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하신 예수님처럼 전도를 자기 일처럼 했던 것입니다.
2. 큰 비전을 갖어야 합니다.열심은 비전만큼 뻗어 갑니다. 잠19:18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했습니다. 요엘 선지의 말씀처럼 "우리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행2:17).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했고, 로마에 가게 되니까 "서바나도 가기를 원한다"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이며 무엇을 위해 뛸 것인가?" 고상한 목표와 이상을 품어야 합니다. 한국 축구의 목표는 16강에 오르는 것입니다. 감독과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의 공통목표는 성전을 채우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주차장을 확보하고, 영성관 지으려는 것입니다.이 목표에 이를 때까지 우리 일 천여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열심히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성화교회 모든 성도들은 수원을 품고 전도도하고, 기도도해야 합니다. 존 낙스(John Knox)는 조국을 품고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하며 기도했고,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는 "나에게 영혼을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을 가져 가시옵소서!"하며 온 인류의 영혼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몇 년 전 탈옥수 신창원을 체포를 위해 2년 6개월 동안 엄청난 경찰과 수사비를 쏟았습니다. 경찰들은 그를 신출귀몰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논 세 마지기를 부치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어려서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어머니 조차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그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학교생활은 전혀 취미가 없었고, 동네에서 닭서리, 수박 서리하다가 14살 때부터 경찰서에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7살 때부터는 거리의 건달이 되었고, 골목길에서 행인을 때려눕히고, 죽이고 하다가 어느덧 대담한 범행을 저질러 마침내 수감되어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탈주에 성공했으나 마침내 시민의 신고로 체포되었습니다.도피생활 2년 6개월 동안 16번 검거위기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다고 술회했습니다. 변호사가 "살아오면서 가장 아쉬운 게 있었다면 뭐였느냐?"고 물었더니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릴 때 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안았을지 몰라요." 어린 시절 학교의 선생님이나, 집에서의 아버지나, 동네 어른들로부터 진정 따스한 한 모금의 사랑이라도 받아보았다면 그는 불행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만일 여인이 선하고 부지런하면 그들이 사는 나라는 절반 이상이 행복하게 된다."(아리스토텔레스)
3. 끝까지 달려갈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의 사람이 되려면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인내와 더불어 자라갑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기도하다가 낙망하지 말고의를 행하다가 포기하지 말고"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우리를 해하리요?"인내를 견고히 잡아야 천국까지 갈수 있습니다.잠언의 최대 죄는 게으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살후 3:10 "…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열심'은 성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을 가속시키고, 지속시키는 힘은 믿음과 인내입니다. 뉴욕에 가면 브루클린 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브루클린에서 맨하탄 섬을 연결하는 공중에 달려 있는 다리입니다. 공중에 다리를 가설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했지만 한 사람의 건축가는 그 계획을 세웠고 아주 열심으로 그 일을 추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가는 공사를 진행하다가 사고를 당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단하지 않고 자기 아들에게 모든 공사를 계속하게 했고, 자기는 집에서 망원경으로 다리 공사를 지켜보면서, 일일이 지시를 하고 감독하며 일을 끝내게 했습니다.드디어 14년 지난 뒤 1883년에 아름다운 다리가 완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심, 한 사람의 인내력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세상의 여러가지 불행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이다." (영국의 문호 카일라일)우리 모두 길을 걸어갈 때 위풍당당하게 걸읍시다.운동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공부하거나, 사업하거나, 청소하거나, 남을 돕고 섬기는 일에도 열심히 합시다. 성도가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 부르거나, 기도하거나, 헌금하거나, 전도할 때도 열심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입니다. 운동선수들이, 노동자들이, 학생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때 기적이 나타나고, 성공에 이릅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은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주님이 가지신 열심을 흠모하며, 주의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비전을 갖고 십자가 지고가듯 더 인내하면서 열심을 증폭시켜 나갑시다. 이 열심의 불꽃이 성령안에서 성도들 가슴에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열심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열심인 성도 옆에 앉아 있으면 나도 열심입니다.사람은 누구나 가난할 때는 열심히 일하다가 부요해지면 게을러집니다. 영적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I am rich and well off; I have all I need)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미지근(lukewarm)해서 곤고함(miserable)과 가련함(pitiful)과 가난함(poor)과 눈멀고 벌거벗은 채(naked, and blind) 부끄럽고 파리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열심을 회복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성자, 율리우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한 사람을 만나 '자기는 열심히 대단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율리우스에게 "열심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율리우스는 당당하게 자신의 가슴을 열어 열심덩어리를 꺼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열심 덩어리를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더니 '100 드라크마 군요'합니다. 율리우스는 '100 드라크마'라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율리우스의 열심덩어리를 뜨거운 물에 넣다 뺏다 하면서 녹였다 굳혔다 하더니 그 열심성분의 구성요소를 밝혀내더니 "율리우스 씨, 당신의 열심 성분은 야심이 25 드라크마, 의심이 19 드라크마, 명예심이 30 드라크마 군요.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 의한 열심은 5 드라크마도 채 안됩니다." 율리우스는 너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열심은 몇 드라크마 이며, 예수의 사랑에 의한 열심은 얼마나 되겠습니까?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기에" 순수 100%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열심을 내라"(So be earnest/be zealous)는 말씀은 오늘 우리교회에,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요 뜨거운 권면입니다.
열심을 회복하려면 1. 예수님을 본받으려 해야 합니다. 요2:17 제자들이 주님을 향하여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Zeal for Your house has eaten Me up/will consume me)하신 말씀을 응하는 분이라 했습니다. "열심이 삼키웠다"는 말은 "혼신을 다한 몰두나, 자신을 불태움"을 말합니다.하나님은 열심의 겉옷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은 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5:17). '열심'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퀸아'인데 '질투'(민5:14)라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jealous) 속에는 사랑과 질투(jealous)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우상을 섬길 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예수님을 닮아 열심히 일하려는 믿음의 사람들을 쓰셨습니다.엘리야(왕상19:10), 야곱(창31:40), 예후(왕하10:16), 바울(행22:3) 모두 예수님을 닮아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죤 웨슬리(John Wesley)는 54년 동안에 44,000번 설교했으니 하루에 세 번 꼴로 설교한 셈입니다. 말을 타고 1년에 5,000마일 이상을 다니며 전도하고, 시간을 내서 주석을 섰고, 히브리 라틴어 헬라어 불어 영어문법책을 쓰고 많은 설교집을 저술한 열심가였습니다. 미국 보스턴 상류계급의 어느 부인이 하루는 웬 낯선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전도를 받았습니다. 전도자가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지 그 부인이 몹시 불쾌했습니다.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자 아내에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이 얼빠진 친구야 빨리 가서 네 할 일이나 하라'고 말했을 건데…" 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대답하기를 "그렇지만 당신이 그 사람을 보았더라면 아마 그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하신 예수님처럼 전도를 자기 일처럼 했던 것입니다.
2. 큰 비전을 갖어야 합니다.열심은 비전만큼 뻗어 갑니다. 잠19:18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했습니다. 요엘 선지의 말씀처럼 "우리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행2:17).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했고, 로마에 가게 되니까 "서바나도 가기를 원한다"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갈 것이며 무엇을 위해 뛸 것인가?" 고상한 목표와 이상을 품어야 합니다. 한국 축구의 목표는 16강에 오르는 것입니다. 감독과 선수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의 공통목표는 성전을 채우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주차장을 확보하고, 영성관 지으려는 것입니다.이 목표에 이를 때까지 우리 일 천여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열심히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성화교회 모든 성도들은 수원을 품고 전도도하고, 기도도해야 합니다. 존 낙스(John Knox)는 조국을 품고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옵소서!"하며 기도했고,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는 "나에게 영혼을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영혼을 가져 가시옵소서!"하며 온 인류의 영혼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몇 년 전 탈옥수 신창원을 체포를 위해 2년 6개월 동안 엄청난 경찰과 수사비를 쏟았습니다. 경찰들은 그를 신출귀몰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논 세 마지기를 부치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 어려서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어머니 조차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그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학교생활은 전혀 취미가 없었고, 동네에서 닭서리, 수박 서리하다가 14살 때부터 경찰서에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7살 때부터는 거리의 건달이 되었고, 골목길에서 행인을 때려눕히고, 죽이고 하다가 어느덧 대담한 범행을 저질러 마침내 수감되어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탈주에 성공했으나 마침내 시민의 신고로 체포되었습니다.도피생활 2년 6개월 동안 16번 검거위기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다고 술회했습니다. 변호사가 "살아오면서 가장 아쉬운 게 있었다면 뭐였느냐?"고 물었더니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릴 때 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안았을지 몰라요." 어린 시절 학교의 선생님이나, 집에서의 아버지나, 동네 어른들로부터 진정 따스한 한 모금의 사랑이라도 받아보았다면 그는 불행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만일 여인이 선하고 부지런하면 그들이 사는 나라는 절반 이상이 행복하게 된다."(아리스토텔레스)
3. 끝까지 달려갈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의 사람이 되려면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인내와 더불어 자라갑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기도하다가 낙망하지 말고의를 행하다가 포기하지 말고"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우리를 해하리요?"인내를 견고히 잡아야 천국까지 갈수 있습니다.잠언의 최대 죄는 게으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살후 3:10 "…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열심'은 성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을 가속시키고, 지속시키는 힘은 믿음과 인내입니다. 뉴욕에 가면 브루클린 다리를 볼 수 있습니다. 브루클린에서 맨하탄 섬을 연결하는 공중에 달려 있는 다리입니다. 공중에 다리를 가설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했지만 한 사람의 건축가는 그 계획을 세웠고 아주 열심으로 그 일을 추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건축가는 공사를 진행하다가 사고를 당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단하지 않고 자기 아들에게 모든 공사를 계속하게 했고, 자기는 집에서 망원경으로 다리 공사를 지켜보면서, 일일이 지시를 하고 감독하며 일을 끝내게 했습니다.드디어 14년 지난 뒤 1883년에 아름다운 다리가 완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심, 한 사람의 인내력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세상의 여러가지 불행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이다." (영국의 문호 카일라일)우리 모두 길을 걸어갈 때 위풍당당하게 걸읍시다.운동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공부하거나, 사업하거나, 청소하거나, 남을 돕고 섬기는 일에도 열심히 합시다. 성도가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 부르거나, 기도하거나, 헌금하거나, 전도할 때도 열심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입니다. 운동선수들이, 노동자들이, 학생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때 기적이 나타나고, 성공에 이릅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은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주님이 가지신 열심을 흠모하며, 주의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비전을 갖고 십자가 지고가듯 더 인내하면서 열심을 증폭시켜 나갑시다. 이 열심의 불꽃이 성령안에서 성도들 가슴에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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