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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눅11:4)

본문

오늘 새벽의 설교 제목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입니다.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에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마지막 간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시험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은 시험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세상에는 너무 죄가 많고 시험이 많아서 조용한 곳에 가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기도 하고, 혹은 산 속에 깊이 들어가서 인간세계와 접촉을 끊고 혼자 지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할만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 간다고, 산 속으로 들어간다고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이 세상은 험악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이러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근신하라”, “깨어 있으라”,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스스로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여기 시험이라는 말의 뜻은 여러 간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선한 의미로 시련이란 뜻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시험을 칩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학생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나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그첫째 목적이고, 또 하나는 이런 시험을 통해서 학생으로 하여금 공부를 더하게 하여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그둘째 목적입니다. 시험을 보지 않고는 그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험 기간에는 더욱 더 공부를 하여 실력을 최대한도로 향상시킵니다. 창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산,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대한 신앙의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은 선한 의미인 것입니다. 약 1:2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하였고, 약 1:12에는 “그러므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 선한 의미의 시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과 같은 사람은 이런 의미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의미의 시험으로 파괴적인 의미의 시험입니다. 우리 인간을 넘어뜨리고 망하게 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유혹의 뜻이 있는 시험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당한 시험,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기도하신 후 당하신 세 가지 시험, 예수님이 전도사업을 하실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사두개인들의 시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당한 시험, 이런 모든 것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시험입니다. 혹 어떤 사람은 예수를 잘 믿으면 시험이라는 것도 없고, 타락할 가능성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까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까지 계속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도 사탄의 유혹을 계속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은 시험을 아주 없게 해달라는 뜻이 아닌 줄 압니다. 시험을 아주 없게 해달라는 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시험에 들지 않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곧 시험을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게 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기 위함이니이다” (요 17:15)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시험을 당하기를 원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은 우리에게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 시험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문에는'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하고서는 다음에'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에서 이기면 악에서 구원함을 받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근신하고 깨어서 조심성있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마치 수백 척 되는 위험한 낭떠러지로 구경하기 위해 가까이 가면서 여기는 위험한 곳이니 들어가지 않게 나를 붙드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오는 세 가지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이룬다고 합니다. 그것은 돈, 정욕, 명예입니다.
(1)
첫째로 마귀는 물질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경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롯은 물질만 알고 의리를 모르기에 아브라함과 갈라져 살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보면 아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는 금은이 탐나서 하나님 앞에 바칠 것을 바치지 못하고 도둑질하다가 큰 참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황금은 혹사심이란 옛글이 있습니다. 돈은 신비의 흰 마음을 검게 합니다.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경제를 떠나 살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물질을 어떻게 얻으며,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벌고,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2) 두번째로 남녀관계를 바로 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고 맙니다. 남녀의 관계가 죄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정욕을 채우다가 마지막에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어떻습니까? 정욕대로 살다가 마지막에 두 눈이 뽑히고, 머리카락이 잘리우고 비참한 모양으로 망하고 만 것이 아닙니까? 정욕을 통한 시험으로 말미암아 쓰러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3) 세번째로 세상의 명예, 영광, 권세, 지위 때문에 시험에 빠진 자가 있습니다. 이런 시험들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은 언제 온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분주한 때보다 한가한 때 시험을 더 많이 받습니다. 다윗도 분주할 때는 성군이었으나 한가할 때 그 부하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여 천추에 씻지 못할 죄인이 된 것입니다. 집에 있을 때보다 집밖에 외출했을 때 더 많이 시험받습니다. 고향보다 객지에 나갈 때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일생에 보면 무엇보다 청년시절에 유혹이 많습니다. 일년 계절 중 봄. 가을에 제일 시험이 많습니다. 배가 고파도 유혹이 많지만 배가 부를 때 유혹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마다 다 약점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정욕에 약했고, 에서는 먹는 것에 약했고, 아간은 물질욕에 약했습니다. 그 약한 부분에 주의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멸망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손길을 의지하며 다음과 같이 항상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악에서 구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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