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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생활 (요이1:1-3)

본문

본문에는 진리라는 말이 네 번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시 31:5에는 여호와는 진리라고 말합니다. 요 14:6에 주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 17:17에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란 영원불변하며 거짓이 없는 것이며 언제나 옳은 것입니다. 중세에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때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하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법정에 끌려가 사람들을 미혹하고 인심을 소란케 한 죄로 기소되었습니다. 지동설을 부정하면 방면해 준다고 하여 입으로 부정하고 법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습니다. 진리는 부정한다 해도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를 구속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세상은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고 다 이루어져 갑니다. 교회도 진리의 터인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은 다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자는 누구인가요? 진리 안에 거하는 자는 먼저 진리를 알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또한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전하는 자입니다. 또 본문 9절에 보면 진리 안에 거하는 자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거하는 자보다 진리를 파는 자가 더 많이 있습니다. 정치나 권력에, 명예나 돈에 의해 진리를 팔아 버립니다. 가룟 유다도 주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렸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세상의 음욕에 진리를 버리고 딤후 4장에서 전도자 데마는 세상을 진리보다 더 사랑하여 진리를 버립니다. 진리를 모르고 파는 자는 영원히 후회하게 됩니다. 가룟 유다도 진리이신 예수를 판 것이 후회되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무지한 소치인 것입니다. 소련은 미국의 제 26대 대통령인 루즈벨트에게 알라스카 반도를 500만불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쓸모없는 땅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많은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라스카 반도의 귀중함을 아는 대통령은 그 곳을 개발하려고 연구가들을 보내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알라스카에서 백금 광맥을 발견하였고 석유 유전을 개발하였으며 수백만톤의 석탄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미국의 군사적 요충지로 미국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곳이 되었습니다. 소련은 얼음에 쌓여 있는 알라스카를 다만 표면적으로 보고 그 속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참된 보화는 그 보화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진리도 이와 같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되지만 모르는 자에게는 평생 후회하게 만듭니다. 1946년 사해 근처에서 목동이 양을 찾다가 굴속에 있는 항아리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항아리 속에는 히브리어 원문 성경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치는 목동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골동품 장사에게 팔았습니다. 그 값은 대단히 헐하였습니다. 그러나 골동품 상인도 무엇인지 모르는 관계로 헐값으로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성서학자에게 이 두루마리들이 오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이 두루 마리의 진가는 드러나게 되어 그 값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아는 진리도 그 진리를 체험하고 아는 자만이 그 진리가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고 그 진리 안에 거하며 진리가 간직한 보물을 캐어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 안에 거하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제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진리를 행하게 됩니다. 진리를 행하는 것은 참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한없는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약 2:17에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요 또한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행하여 죽은 자가 되지 말고 산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 약 1:22에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하여 진리를 듣기만 하거나 알고서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합니다. 진리란 행동력 있고 실천적인 것입니다. 다만 허구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것으로 살아 약동하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가정학과를 나와서 시집을 가 살림을 하는데 밥을 제대로 짓지 못하고 반찬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녀는 비록 배우기는 잘 배웠으나 생활화하지 못하였기에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진리도 배우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하면서 체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진리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기도와 봉사의 생활을 열심히 하면 자연적으로 진리를 행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정작 열매가 없어 저주 받아 마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먼저 알고 그 다음 진리를 깨달아 그 안에 거하면서 삶에 적용하여 행하여야 합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케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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