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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윤리 (벧전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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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가정이 모여 성립되고 가정은 부부가 결합하여 시작됩니다. 부부가 화평하면 가정이 화평하고 가정이 화평하면 교회도 역시 화평합니다.
1. 아내가 가질 윤리 1-2절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은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는 전 가족이 다 믿는 가정도 있고 부인만 믿는 가정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온 가족이 믿는 가정은 더 깊은 은혜에 들어가기를 바라야 할 것이고 동시에 남편이 안 믿는 가정의 믿는 부인은 좋은 행실로 남편에게 본을 보이어 예수를 믿게 하여 함께 찬송 부르며 함께 기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즐거움은 다시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교훈은 아내들에게 중점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아내들에게는 순종의 미를 요구하고 남편에게는 아내를 귀하게 대우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들의 본으로서 사라를 들고 있습니다.
(1) 순종함으로 순복하고 순종하는 것은 남편에 대한 미덕이요 자녀가 부모에게 대한 충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부인들에게 엡 5:21-22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자가 출가할 때에 가지고 갈 선물은 금도 아니요 재산도 아니요 어떠한 귀한 보배도 아니요 오직 남편에게 순종하는 순종뿐입니다. 6절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자기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과 같이 복종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불신자인 남편이라도 아내의 정결한 행위에 감화를 받아 예수를 믿을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이렇게 존대하고 경외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부녀자의 덕입니다.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즉 신앙 문제로 인하여 불신 가족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에 두려워하며 놀라기 쉽습니다. 그때 주님만 신뢰하고 신앙으로 안정한 태도를 지켜 나가면 사라의 신앙 계통에 속하는 믿음의 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아내는 남편의 큰 보배인 것입니다. 고요하고 침묵을 지키는 여자는 주님의 선물이요 가정의 보배인 것입니다.
(2) 단장을 잘 함으로 3-5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단장을 하는 것은 남녀에게 다 필요하나 더욱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단장은 외모에 하는 것과 마음에 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오늘 읽은 말씀에는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은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외모나 또는 마음도 썩지 아니할 것인 온유, 반항 없고 투쟁 없는 안정과 정숙, 그리고 평화의 마음으로 단장할 때 이 부인이야말로 어진 아내인 것입니다.
2. 남편의 도리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l) 동거할 것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 하심은 학력과 지식을 따라 배우자를 택하라는 말이 아니고 남자들은 여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동거하라는 말입니다. 여성은 몸도 남성보다 약하기에 가정생활을 할 때 여성은 지나치게 노역을 시키지 말고 공동생활에 남성으로서 할 책임을 다하고 가정생활에서 아내를 포용력으로 대하고 애정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어머니인 여성들은 남자와 달리 생리적으로 몸이 피곤합니다. 이러한 여성의 신체나 성격을 잘 알고서 이해하는 지식을 가지고 동거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기질은 약합니다. 힘으로도 약하고 중량으로도 약합니다. 또 마음이 약하여 늘 요동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힘이 되어주도록 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약하다고 하여 인권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권은 동등하기에 더 잘 보살피고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로 지었습니다. 아담의 머리뼈로 지었다면 하와가 남자를 지배해야 할 것이요 아담의 발뼈로 하와를 지었다면 남자가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갈비로 지었다 함은 아담 하와는 동등이요 남자는 아내의 그 인격을 존중히 여겨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갈비로 하와를 창조했으니 아담은 갈비뼈가 없는 병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인 남자는 속이 없습니다. 털털하며 깊은 속이 없습니다. 또 여자는 남자의 갈비로 지어졌기 때문에 무엇인가 부족합니다. 이와 같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자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속이 없는 남자와 부족해서 말이 많은 여자가 함께 살 때 완전한 가정이 됩니다. 부족한 사람끼리 서로 도울 때 완전한 사람, 완전한 가정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가 좀 부족하다 하더라도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서로 아끼고 최대의 존중으로 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 귀히 여겨라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은 남자도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즉 남자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는다고 하는 말은 부부가 같이 육신의 생활함과 같이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또한 영생도 같이 누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성도의 최고의 기업입니다. 영생은 돈으로 살 수 없고 믿음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부부가 함께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아끼고 존경하고 함께 영생 얻는 자로서 대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만 얼굴을 대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있을 은혜를 생각하면서 부부는 서로 더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내를 업신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의 태를 막아 기도의 은혜를 막히게 하십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부부의 신성함을 다시 생각하여 화평한 가정을 이루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 되는 예수의 사랑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의 신부로서 단장하되 오직 썩지 아니하는 온유하고 단정한 것으로 단장하여 신랑 예수의 어진 아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부부는 한 몸이니 예수와 우리는 분리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시는 곳에 같이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이 서시는 곳에 같이 서고, 주님이 앉으시는 곳에 같이 앉고,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면 지상에서도 하늘에서도 영원히 같이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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