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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사람들 (히11:32-37)

본문

성경은 때로 승자들과 패자들의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전쟁하는 병사로서 인생은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달리는 경기자로서 인생은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농부로서 인생은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히 11장에는 역전의 용사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장편의 전승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쾌한 승자들의 드라마입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이겼습니까?
1. 믿을 때 이겼습니다
(1) 믿을 때 나라들을 이겼습니다(33절). 믿을 때 기드온이 300명의 소수로 미디안과 아말렉의 중다한 연합군을 진멸시켰습니다(삿 7:22). 믿을 때 바락은 적장 시스라의 나라를 진멸하였습니다(삿 4:15). 믿을 때 삼손은 혼자의 힘으로 블레셋의 침략에 통쾌한 응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삿 15:15). 믿을 때 다윗은 적장 골리앗을 쳐 죽임으로 승리의 꽃다발을 한 몸에 누릴 수 있었습니다(삼상 17:4
5). 믿을 때 사무엘은 미스바의 부흥운동의 승리로 점화시켜 그 힘으로 블레셋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믿을 때 여호수아는 요단강 도하에 성공했고, 여리고성 함락작전에 개가를 불렀습니다(히 11:30).
(2) 믿을 때 의를 행할 수 있었습니다. “의를 행한다”는 말은 개인적인 의보다 사회정의의 실현을 두고 쓴 말입니다. 이런 의를 행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며” 그를 통하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또 사무엘은 온 백성이 그에게 말하기를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삼상 12:4)고 할 정도로 공의로웠기 때문에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믿을 때 사사로운 사리를 돌보지 아니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행동이나 처세에서 멀리 떠났습니다.
(3) 믿을 때에 약속을 받았습니다(33절). 노아는 방주공사의 약속을 받아 그 홍수 심판에서 자기와 자기 집을 구원했습니다(히 11:7). 아브라함은 믿을 때에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무수한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을 때에 이삭을 약속받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을 받고 출애굽 기사에 뛰어든 결과 성공했습니다. 믿을 때에 마노아 부부는 삼손의 생산을 약속받았습니다. 야곱은 여행을 떠날 때에 확실한 하나님의 보증인 약속을 받았습니다(창 28:1). 다윗은 믿을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될 약속의 보증을 받았습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을 받았고, 모든 대적자 앞에서 승리를 약속받았습니다. 또한 성전 건축도 약속받았습니다. 믿을 때에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의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왕상 3:12).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믿을 때에 세례 요한의 출생을 약속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믿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를 약속받았습니다(눅 1:31). 성경에 출현하는 많은 사람들은 믿을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저들의 승리의 비결이요 밑천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승리의 싸인이요, 승리의 보장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4) 믿을 때에 칼날을 피했습니다(히 11:34). 다윗은 믿을 때에 사울 왕 창 끝에서 여러 번 피할 수 있었습니다(삼상 18장). 엘리야는 아합의 칼날에서 피할 수 있었습니다(왕상 19장). 엘리사는 아람왕의 칼날에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왕하 6:18).
(5) 믿을 때에 연약한 중에서 강했습니다(34절). 히스기야는 병들어 약하여 죽음의 선고까지 받았으나 주님께 기도할 때에 그 병에서 놓여 다시 강건하게 되어 국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왕상 20장).
(6) 믿을 때에 여자들은 부활을 체험했습니다(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아들을 부활로 받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죽은 아들을 엘리야를 통하여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왕상 17장). 수렘 여인도 죽은 아들을 엘리사를 통하여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왕하 4:36).
(7) 믿을 때에 모든 핍박들을 이겼습니다(36-37절). 순교까지 감수한 믿음의 사람들은 희롱과 채찍들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과 악형을 다 감수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까지 불사했습니다. 진리의 종 사가랴는 성전 뜰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대 24:20-21, 마 23:35). 나봇은 조상 전래의 유업을 지키다가 동족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왕상 21:1). 예레미야도 애굽 피난지에서 동족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이사야는 므낫세 왕의 우상숭배 강요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 벌로써 나무 톱으로 그 육체를 켜서 산산조각이 나버리도록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이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래 것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삶은 항상 내일을 향하여 춤추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믿음에는 목적지와 결승점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구경하고 숙소로 되돌아오는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였습니다. 저들의 믿음은 독보적이면서도 수다한 역사의 증인들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2. 이긴 자들의 승리의 생활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1) 믿을 때에 이겼습니다.
(2) 적을 때에 이겼습니다.
1) 숫자적으로 적을 때에 이겼습니다. 신 7:7절에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 적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힘의 열세를 뜻합니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으로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입니다. 삼상 14:6절에 요나단은 말하기를 “나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850대 1의 항쟁을 하였으나 승리의 점화를 하였습니다. 미가야도 400대 1의 증언자로 아합에게 나타났으나 결국 승리는 미가야에게 돌아왔습니다. 가나안 정복지로 보냄 받은 정탐꾼들의 보고는 10대 2의 비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가 여리고 작전에 사용되었습니다. 전 바벨론 제국의 세력이 동원된 두라 평지의 황금 우상 앞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소수는 결국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서도 여유 있는 승리를 가져오게 하므로 다수의 권력이 무릎을 꿇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못 생각합니다. 이 역사 세계를 주장하는 주동이 항상 다수 세력인 줄 알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질적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하여 운행되어 왔음이 사실입니다. 애굽의 바로와 모세, 바벨론과 앗수르, 미디안세력과 이스라엘, 저 로마제국과 기독교, 나치주의와 기독교, 소위 일본천조에 신의 세력과 기독교 지금 공산주의 박해와 지하 교회에 숨어 예배드리는 소수 신자, 로마 가토릭과 위텐벩의 개혁자 마틴 루터, 제네바 시의회와 존 칼빈, 츄리히시와 멜랑히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질적 소수의 신앙의 엘리트들에게 항상 승리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소수보다 다수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다수보다 진리의 소수를 더 원하십니다. 이유는 역사상에 나타난 다수는 항상 다수라고 하는 수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난 부패한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눅 12:32절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는 말씀을 하셨고, 마 7:14절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2) 내용적으로 적을 때 이겼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 왕으로 소명 받았을 때에 답하기를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적은 지파, 베냐민 지파민이요 내 가정은 내 지파 중에서 가장 미약한 가정인 줄 잘 알지 않습니까?” 이같이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승리케 했습니다. 그래서 삼상 15:17에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 하였나이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이 크고, 강하고, 비대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였을 때는 넘어졌습니다. 자기가 강하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가로채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아이라고 하며 말할 줄도 모른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유용한 말을 그에게 주어 크게 쓰셨습니다. 이사야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한다”고 자기를 작게 보았을 때 하나님은 그의 입술을 숯불로 지져서 성결케 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승리의 길을 걷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나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작다고 할 때에 이깁니다. 작다고 할 때에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게 됩니다. 작다고 할 때에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멀리 하고 잊어버립니다. 외면합니다. 멸시합니다. 천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작다고 하는 자를 찾아 크게 임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권능이 더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가난한 자를 들어 부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 한 것이 바로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작은 충성이 이겼습니다. 작은 보리떡 5개, 생선 2마리가 주님의 손에 바쳐질 때에 5,000명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마 25:45-46 “지극히 작은 종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냉수 한 그릇의 사랑도 주님께 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적은 것이 많게 되는 진리, 작은 것이 크게 되는 진리, 작은 충성이 큰 충성으로 인정받는 진리, 실로 기독교만의 것입니다. 손 바닥만한 작은 구름으로 온 하늘을 덮어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 실롤 승리의 신비이며 실로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작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작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때가 당신이 이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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