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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 않은 신앙 (엡4:13-14)

본문

본문에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요동치 않은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말씀이 모순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예수님은 표현의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순진성, 신뢰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고 여기 본문에 말씀한 사도 바울은 지혜, 지식, 힘의 면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어리지 말고 성장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신문에 보면 어린아이는 힘이 없기 때문에 유괴 사건이 맡이 일어납니다. 사실 신령한 안목으로 볼 때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리다는 이유로 신앙의 유괴 사건이 종종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철없는 교인이 사탕을 발라 먹이는 거짓말을 듣고 여기은혜가 있다, 저기 은혜가 있다 하는 말을 듣고 따라갔다가 가산을 다 탕진하고 심지어 가정이 파탄되어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세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일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다는 말을 우리는 기억해 야 합니다. 왜 아이들이 집을 잃습니까? 그것은 성숙되어 자신을 판단하는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도 미아 사건이 맡습니다. 즉 미귀에게 삼켜버리는 그런 자가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벧후 3:18에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로 했습니다. 오래 믿었다고 반드시 신앙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믿었지만 신앙은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신앙이 자라려면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운동을 하여야 합L다. 건강의 법칙을 배워 바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먼저 지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믿으면 왜 믿으며,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알아야 합니다. 유물론적 사관, 무신론, 불가사의론적 사상,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팽창한 이 시대의 내 신앙에 지식을 더하여 자신을 지키고서 사람들에게 이 귀한 진리를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종교 서적을 탐독해야 합니다.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예배시간만 참석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체험해야 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로만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 심령으로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내 마음 속에 영해야 합니다. 주님과 신령한 가운데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내 신앙에는 실제면이 있어야 합니다. 즉 신앙에는 윤리적인 면도 있어야 도덕적인 교훈을 실제로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내 생활이 날마다 거룩해지고 진실해지고 기독교인의 품격으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또한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맡은 신앙인들이 절제의 도리를 쉽게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절제하는 신앙은 감정적 신앙에 매지 않습니다. 미신적인 신앙과도 결별합니다. 아이들은 조금만 좋으면 소리 내어 웃고 조금만 기분이 언짢으면 웁니다. 종교적 감정 표현도 어른이 되면 어른스러워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았다고 춤추고, 기도하다가도 떤다든가 진동한다든지, 입신한다고 넘어지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어떤 분은 성령 충만, 충만, 충만 받았다고 떱니다. 이를 나뭇가지 성령을 받았다고 기뻐합니다. 어떤 분은 토끼처럼 뜁니다. 그런 현상은 기독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교도에도 있고 원시 종교에 다 있습니다. 사실 성령의 역사는 떠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당도 북 치면 넘어집니다. 이것은 변태심리입니다. 북을 열심히 치면서 넘어지면 나중에는 북만 쳐도 자연히 넘어집니다. 신이 왔다고 떠듭니다. 다 변태심리에서 일어납니다. 찬송을 부를 때도 성령이 왔다며 자빠지고 춤추고 뛰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미혹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살피면서 하나님과 통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분은 계시 받았다고 떠듭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속키 위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보이십니다.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입니다. 성경은 특별 계시입니다. 성령으로 계시는 완성했습니다. 교회 역사에 보면 성경에 없는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자,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자, 모두 그 말로는 거짓선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계시를 알기 원하면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신유은사로도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신유은사를 특권 받은 것처럼 떠돌아다니는 자 많습니다. 혼자 성령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병 고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人間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약물치료, 수술치료, 정신요법, 심리요법, 최면술 등으로 우리에게 방법을 이미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에 걸리면 기도하면서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치료요법을 거부하고 신유은사를 받았다는 성령 받은 자에게 안수기도 함으로만 낫겠다는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 치료요법을 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지 아니하고 기도하여 신유로만 병 고치겠다는 심리는 건전한 상태가 아닙니다. 알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병이 낫습니다. 기도에도 믿음이 없으면 낫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안수기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믿음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치료하고 믿음대고 기도해야 대체로 병이 낫습니다. 고러나 낫지 않는 병도 있습니다.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이 귀합니다. 그러나 육신보다 더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육신은 언제인가 죽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힘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버릴 것이 있습니다. 모든 미신을 버려야 합니다. 미신을 믿고 우상 섬기는 생활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패역한 시대처럼 너무 이적을 구하지 맙시다. 계시를 구하려고 애Tm지 맙시다.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맙시다. 교회 외에 다른 집단을 따라가지 맙시다. 사실 이런 곳에 신앙의 병들이 생깁니다. 언제나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합시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나와서 영적인 능력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윤리적 생활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품격이 양성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요구는 하나로 집결됩니다. 그것이 바로 절제라는 것입니다. 절제는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또한 자기 책임을 감당하십시다. 주부는 가정에서, 직공은 직장에서, 무슨 책임이든지 객임을 감당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신앙에 지식을 보충하고 적당히 절제할 줄 알고 주어진 책임을 감당한다는 것은 바로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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