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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막15:29-41)

본문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직후에 가룟 유다를 선봉으로 내습하는 로마 군대에게 잡혀서 제사장 가야바의 재판을 거쳐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헤롯의 재판이 있은 후 다시 빌라도의 법정에서 최후의 심판, 즉 십자가에 달도록 판결을 받아 무리들에게 무수한 욕을 받으시며 형틀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환호하던 군중들은 어느 사랑에 의미와 이유도 없는 발악적인 저주와 노성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병정이 우리 주님을 십자 형틀에 못 받는 소리가 적막한 산천을 울린 후에 주님은 두 강도 사이에 끼어 골고다 언덕 위에 높이 세워졌습니다. 주님은 아홉 시에 못 박히시고 그로부터 세 시간 후인 열두 시에 이르렀습니다. 일부 맹목적인 군중 심리는 주님의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냉소적으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봉사하는 제사장, 성경을 가르치는 율법사, 그리고 정치를 담당하고 재판하는 장로들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주님의 모친과 제자 요한은 무슨 이적이라도 일어났으면 하고 기대와 더불어 공포에 싸여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늘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온 누리는 흑암으로 덮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태양이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후 세 시가 되었을 때에 주님은 큰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학자들은 말 4:5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엘리야 선지자가 내려와서 구원하나 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해융을 초에 적셔 갈대에 꿰어 예수님의 입에 바치는 자도 있었습니다. 주님은 다시 큰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주님의 운명하심을 보고 두 가지 변론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죽음은 한갖 죄인의 죽음이고 그가 소리 지른 것은 죽음의 고통에 대한 비명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당시 백부장과 수직하던 사람들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하는 말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본 것입니다. 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었던 것은 결단코 비명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주님의 구속의 사랑과 의미를 깊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의 죽음은 후자였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부르짖음 속에서 크나큰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우주가 어두워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더불어 큰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실 때 천지는 흑암에 덮이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예수에게서 돌리신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리아 산상에 있었던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하여 제단 위에 이삭을 결박하여 뉘어 놓고 칼을 들었으나 어떻게 자기의 아들을 바로보고 찌를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아브라함은 얼굴을 돌이키고 칼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의인 예수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의인 예수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가 죄인의 화신이 되신 것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천지의 주제이신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이키시니 전 우주는 흑암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얼굴을 예수에게서 돌이키심은 예수님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던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 16:32에 “너희가 다 제 곳으로 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나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얼굴을 돌리셨으니 예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우리 생활에서 고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떠나가심이 아닙니까? 과연 모든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을 떠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속죄물이 되신 증거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사 죄인의 몸으로 속죄물로 십자가에 지신 까닭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이에 대해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었도다”(사 53:5-6)고 했습니다. 요 3:14-15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려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3:23-26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힘차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이 부르짖음은 주님의 약한 비명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죄와 고통을 한 몸에 짊어지시고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역사적 사실을 더욱 잘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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