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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 (눅3:7-14)

본문

7-9절에 “요한이 세례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및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백성들에 대한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 사이의 차이점이 이처럼 뚜렷하게 두드러진 곳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메시지는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공포의 소식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사람이었고,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나무의 그루터기와 꺾인 잡목의 싸리가지가 말라 뒤덮여 있었고, 작은 바위 틈바구니 사이에서 독사와 뱀들이 나와 다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곳에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진노를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은 심판하실 것이지만 자기들은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심판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민족적 특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심판이 눈 앞에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광야의 사람, 낙타 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세례 요한의 청천벽력같은 외침소리에 양심의 자극을 받은 무리들은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진노를 면할 수 있으리까?” 하고 모두 물어보았습니다. 이 물음에 세례 요한은 거침없이 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대답해 주었습니다.
1.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10-11절에 “무리들이 물어 가로되 그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978년도 보건사회부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무당, 점장이. 관상쟁이 등 소위 역술인들이 약 5만명이고, 그 중에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는 점장이는 월 수입이 80만원에서 120만원 정도이고, 특히 이름있는 점장이는 200만원에서 25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처음에 길바닥에 앉아서 생계를 위해 사람을 속이면서 신수, 작명, 재수 등을 봐주다가 지금은 좋은 집, 자가용에 좋은 정자를 지어놓고 의젓하게 찾아오는 귀부인들, 부동산 투자업자들, 정치인들만 상대하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나라가 근대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미신도 그와 비례하여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이 사회에는 무엇인가, 어디엔가 무시할 수 없는 부조리,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본문 말씀은 경제사회와 경제생활 윤리에 대한 부조리와 악을 시정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여 있는 자는 배가 터져 물건이 썩어가는데 가난한 사람은 배가 고파 죽어가는 이 사회는 분명히 병든 사회요, 심판받을 사회요, 파멸할 사회입니다. 본래 공산당은 그런 사회에서 생긴 것입니다. 모든 공산당은 모든 사람의 소유권을 박탈하며 똑같이 나눠 먹자고 하는 명목을 내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농부와 노동자들이 이에 호응하여 혁명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 뿐이요, 모든 사람이 공산당원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한대로 공산당 세계의 당원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지만 그 백성은 자유진영보다 더 못살고 지독한 고생과 학대와 구박을 받고 자유없는 한숨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있는 자를 향해서 외친 “나누어 주어라”는 호소는 공산당들이 외치는 “빼앗아 먹자”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말은 하나님의 공의와 인류애에 입각하여 사회 정의를 구현하자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주어진 자유의 혜택을 악용하여 수단껏 벌어서 썩도록 물건을 쌓아두고 다른 사람들을 굶긴다면 이는 오히려 공산주의보다 더 악한 사회일 것입니다.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이론과 이념만으로는 안될 것입니다. 다만 부한 자, 자본가들이 언제나 경제적 잇권을 근로자에게 주며 일거리가 너무 많아 일하는 일꾼이 귀한 사회가 되고, 다같이 잘 사는 사회가 될 때 자본주의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런 잘 사는 사회 건설을 위한 자본주의의 사회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와 국민은 지금 국민총화를 이루고, 인류의 적인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때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켜 혼자만 잘 살겠다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공산당 못지 않은 악인입니다. 이 사회를 공산당식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실업인, 경제인, 자본인들이 책임지고 국가 산업의 모든 살림을 맡아서 다들 잘 살고 풍요로운 사회로 만드는 일이 옳은 경제관인 줄 믿습니다.
2.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이는 세리들의 물음이었습니다. 12-13절에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며 가로되 정한 세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공무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뇌물을 먹지 말라는 말이 되며, 세무 행정에 부정이 있어서는 안되고, 탐관오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입니다. 지금우리 나라는 부과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부과세만 실시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수증을 발급한다고 하나 손님에 따라서 가짜 영수증, 진짜 영수증을 발행합니다. 진짜 영수증을 내면 부과세가 되고, 가짜 영수증을 내면 탈세가 된다고 합니다. 상품에는 모두 세금이 붙어 있습니다. 탈세하여 국고에 들어가야 할 돈이 삼분지 일 이상이나 개인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하니 부정과 거짓없는 사회로 건전하게 발전될 리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 대신에 그 차액을 가난한 백성들이 감당해 나가고 있으며, 세금에 대한 국가의 보호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유대 나라에서 세리는 국민들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들에서는 이리떼가 무섭고 시내에서는 세리가 무섭다”고 하였습니다. 세무 행정을 쇄신하지 못한 사회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세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일반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무원은 일을 신속·정확히 처리하며, 공정무사하며, 뇌물을 받지 말고 일하여야 할 것입니다. 뇌물을 받아 인사처리에도 공정치 못하고 사무처리에도 신속치 못하고 불친절하다면 백성에게 국가에 대한 공신력을 잃어 백성들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법관이 빌라도 법정에서처럼 죽을 사람을 살리곤 살릴 사람을 죽인다면 그 사회는 곧 망하고 말 것입니다. 경찰들은 백성과 제일 접촉이 많은 질서를 담당하는 공무원입니다. 시간에 과중한 일, 박봉에 허덕이며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과대 과격한 행정력을 발동하여 애매한 백성들을 억울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세례 요한에게 이런 등등의 공무원들이 나아와서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공정한 세무행정을 하라고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군인들이 와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본래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국토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민의 재산을 지킵니다. 국민은 군대를 믿고 생활합니다. 군대는 국민을 위해 그 무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장으로 국민에게 강포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손상시킨다면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국군이 국민의 다리와 지팡이 노릇을 하고, 나라를 지켜 국토의 한치의 땅이라도 양보하지 않을만큼 강한 군대가 된 것을 보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만일에 나라를 지키는 국군이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면 안되는 일이므로 가장 우선적으로 생활 안정이 되도록 군대 생활을 보장하여야하는 것이 국가 시책인 것입니다. 또한 상관은 자기의 부하를 아끼고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부하는 상관의 명령을 귀하게 여겨 복종할 때에 강한 군대가 될 것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군인들에게 14절에 “군병들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들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며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하였습니다. 군정 시대가 될 때에 양민을 무소하여 죄명을 뒤집어 씌워 죽이지 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간악한 꾀를 내어 무소하여 양민을 학살하면 그 사람은 죽고마는 것이지만 그 피는 호소합니다.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하듯이 무고히 죽은 사람의 피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피의 호소를 들어 처리하는 분이십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더니 오늘날 히틀러는 어디있습니까? 뭇솔리니가 에디오피아를 점령하고 양민을 학살하더니 그 뭇솔리니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본의 도죠 수상은 전쟁 후 그 죄가를 어떻게 받았습니까? 다 사형을 받고 말았습니다. 피의 호소는 공정하게 처리될 것입니다. 1945년 중국 장 개석 군대들은 너무 박봉을 받아 생활이 어려워 무기를 다 팔아먹고 도망가더니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닙니까? 군인들의 생활이 안정됨은 동시에 군인들이 국가에서 주는 요에 만족한 줄 알고 횡포하지 말며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았습니다. 여러분도 “무엇을 하리이까?”하고 반문하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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