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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왕가의 말로 (겔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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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장에는 18장에서 교훈하신 것에 대한 실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방백들은 하나씩 둘씩 여호와께로부터 떠났습니다. 딘하고 자비스럽던 요시야 왕의 자손들까지도 여호와께로부터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참한 운명을 탄식하고 슬퍼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에스겔 선지자는 이미 이스라엘을 한 마리의 암사자로 묘사하였습니다.
1. 암사자의 비유 1절에 “너는 이스라엘 방백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기를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애가를 지었듯이(삼하 1:19-27) 여기도 선지자로 애가를 지어 유대 왕가의 말로를 위하여 부르라는 것입니다.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라고 사자들이라고 한 것은 열국의 왕들을 뜻하고, 암사자는 단수이니 혹 여호아하스 왕의 어머니 하무달(왕하 23:31)이라고 했습니다. 실로 1절부터 문제성을 가짐은 ‘너는’은 단수요, ‘백성들’은 복수입니다. 그래 ‘너’는 단수라 방백도 단수로 하면 그 누구일까 그러나 마지막 왕을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을 든다면 복수가 됩니다. 왕이었으나 여기 방백으로 격하시킨 것은 타의에 의해 세워진 왕들인지라 그렇게 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어미 사자라 해서 황모를 지칭합니다. 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시어법(時語法)으로 이렇게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방사자는 왕을 낳고 기른 황후일 수도 있으나 왕을 낳은 유대나라 또 그 백성으로 보아도 될 것이기도 합니다. 민 23:24에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숫사자 같이 일어나서”, 창 49:9에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이 말씀들을 보아 사자라고 비유함이 어떠함을 알만합니다. “네 어미는 무엇이냐 암사자” 여기 이른 바 ‘어미’는 왕의 모친 하무달을 가리키며 혹은 유대 혹은 유대민족을 가리킵니다. “그가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젊은 사자 중에서”라고 했습니다. 젊은 사자는 유대 이웃 나라들을 비유합니다. 암사자의 첫새끼, 즉 여호아하스가 커서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니 그를 함정에 빠뜨려 잡아가지고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잡아갔다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볼 때 요시야 왕(주전 609년)의 후계자인 여호아하스는 등극후 석달만에 망하고 포로가 된 것이고 그 후 여호야김이 대를 이었습니다(주전 609-598). 그 다음 암사자 유대는 또 다른 새끼를 낳아서 “여호야긴”을 키운즉 식물 움키기를 배우고 사람을 삼키었는데 이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이 새끼 사자 역시 다시는 이스라엘 산에서 그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치워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슬픈 일들을 다 역사의 세 부분에 적용시키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꼭 그런 목적으로 쓰여진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런 비극적 사건과 부합되는 것입니다. 이
첫째 사자는 아마도 선한 왕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가리킨 것이 분명하리라(왕하 23:31). 그에 대한 기록은 오직 한 구절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는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니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그 후에 그는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어미 이스라엘인 암사자는 다음의
둘째 새끼를 키워서 젊은 사자 여호야김을 만듭니다. 여호아하스는 석 달밖에 다스리지 못한 곳을 그의 아우 여호야김은 11년 동안이나 다스렸지만 에스겔은 이 여호야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바로 그의 아들인 여호야긴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에스겔이 여호야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어미 이스라엘은
둘째 새끼를 키워서 한 마리의 사자를 만들어 놓으니 이것이 역시 나아가서 성읍을 무너뜨리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함정에 빠져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그 우는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서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2. 포도나무 비유(10-14절) 10절에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라고 했습니다. “피의 어미”란 말은 피묻은 어린 아기처럼, 그 역사의 초창기를 당했을 때의 유대 민족을 가리킵니다.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라는 말은 유대 민족이 가나안 땅에 입주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신 8:7-9). 시 80:8에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이다.” 13-14절에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뭄이 든 땅에 심긴 바 되고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서 그 실과를 태우니 권세잡은 자의 홀이 될만한 견강한 가지가 없도다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물가에 심기웠더니 이제는 메마른 광야에 심기웠다는 것입니다. 겔 20:35에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너희를 대면하여 국문하되”라고 했습니다. 홀될만한 가지가 없고란 유대 왕통의 종말을 고함 입니다. 겔 20:47에 “너희 가운데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멸하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사 1:8에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 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10절로 부터는 어미 이스라엘이 포도 넝쿨로 나타납니다. 한 무성한 포도나무는 유대를 의미하는데, 그 나무에서 큰 가지가 자라 “권세잡은 자의 홀이 될만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시드기야를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포도나무 ‘유대’는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고 동풍에 말라 불에 태워졌습니다. 여기서 요긴한 것은 자기들이 꺾이고 열매가 매말라 땔나무감이 된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이상 더 통치자를 배출시켜 그를 지지하고 받들만한 힘도 박력도 없게 된 것입니다. 이 포도나무는 실과도 많고 가지가 무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이르러서는 불이 두 가지 중의 하나에서 나와서 그 실과를 태워버렸습니다. 두 가지는 의심없이 언약과 맹세를 깨뜨린 시드기야 왕을 가르친 것으로서 그는 이스라엘 땅의 최후의 멸망에 대한 큰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기회를 가졌던 것을 모든 백성들이 어리석게도 그 영광에서 떠난 것을 생각할 때에 에스겔 선지자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탄식은 단지 이스라엘들이 처음부터 멸망을 자처한 일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쌍한 어미 이스라엘과 떠나버린 영광에 대하여 더욱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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