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시46:1-11)
본문
이는 보통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시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시입니다. 주석가 킷텔은 이 시는 신앙시 중에서 으뜸가는 신앙의 노래라고 감격하였습니다. 루터와 그의 뒤'를 따른 용감한 개혁자들은 이 시를 노래한 찬송을 장엄한 전투 행진곡으로 부르며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였습니다. 이제는 이 시는 온 세계 그리스도인들과 정의의 싸움을 싸우는 정의의 투사들의 공감을 얻는 시가 되고 노래로 읊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를 분류하면 세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 1부 1-3절, 제 2부 4-7절, 제 3부 8-11절로 나눠지며 각 부의 사이마다 세 번 셀라가 있습니다. “셀라”라는 말은 사상이 최고 수준에 달해졌을 때 가수가 감흥에 젖어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 반주자가 간주곡을 연주하는 때의 부호입니다. 먼저 제 1부는 적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신앙의 용사가 의연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확신에 굳게 서 있는 자세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 2부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눈을 돌려 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 초연하게 굳게 선 있는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찬미이며, 제 3부는 모든 것을 정복한 후 모든 국민에게 숭앙되고 모든 땅에 숭앙되는 하나님 자신의 현현인 것입니다.
1. 제 1부(1-8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고 하는 것이
첫째 부분의 주제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땅 위에서 육체가 피곤할 때 육체의 쉴 것을 찾을 수 있으나 마음의 피곤을 느낄 때는 이 땅 위에서 인간의 참된 안식처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안식처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가정도, 국가도 우리의 진정한 안식처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태산 같은 무기와 탄약이 우리의 방어처가 되지 못하고 수백만의 군사가 우리를 완전히 방어하여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진실로 우리의 완전무결한 피난처이십니다. 인간에게는 절망으로 보일 때에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품에 뛰어들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세상의 반석 되시는 여호와의 품안에 숨은 자를 누가 공격할 수 있을 것입니까? 만약 그를 넘어뜨리려면 먼저 하나님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의 무리인 기독교회가 이리 가운데 보내졌어도 오늘까지 지켜 주신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여호와의 품 안에 두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또한 힘인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들이지만 의연하게 세워 주시는 힘이며 어떠한 대적도 완전히 물리쳐 주시는 힘입니다. 정말 심각한 번뇌일 때는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부모도 몰라주고 친구도 몰라주는 그 상처를 주께서는 치료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바다 가운데 던져지든가 병고에서 신음할 때도 주의 성명(q?을 부를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더욱 죄를 범한 우리들에게 피난처는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장자를 죽이는 재앙에서 살 길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길 외는 없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속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를 믿는 자 안에 계시며, 그 안에서 역사하시며, 죄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시련을 이기고, 이 세상 권세를 이기는 힘으로 준엄한 인생행로에서 개가를 부르면서 전진케 하는 동력인 것입니다.
2. 제 2부(4-7절)
첫째 부분은 격동하는 상태였으나, 이
둘째 부분은 실로 태풍 후에 오는 정숙과 평온이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이고이 흘러가는 평화의 리듬이 끝없이 진행되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의 그 실존을 보호하는 피난처일 뿐 아니라 시온의 수호자로서 그의 세계와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 바로 거기가 시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낙토, 아름다운 꿈의 동산, 평화와 기쁨만이 충만한 그 곳, 그곳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곳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된 곳, 거기는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는 등 뒤죽박죽인 혼란과 파멸의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이 중심이 된 성은 아름답고 맑은 강물이 있어 오직 기름처럼 흐르며, 억겁을 거듭하여도 움직임이 없는 평화와 기쁨의 동산인 것입니다. 인간이 주인이 된 곳은 싸움과 죽음만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인이 된 곳은 평화와 기쁨이 있어 영원히 즐거운 것입니다. 제 1부는 폭풍에 휘날리고 휘둘러지고 정신을 차릴 겨를 없이 된 상태 속에서 닻을 내리고 노도와 싸우고 있는 작은 배의 모습을 상상케 하지만, 제 2부는 맑은 시냇물 가로 우리를 인도하여 평화와 평안감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시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제 3부(8-11절) 이 마지막 부분에는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의 세계, 인간의 세계에 대립하여 자기의 세계를 따로 세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탕한 역사를 정복하시고 섭리하셔서 자기의 창조로서의 절대한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는 결코 이원론적인 세계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본준의와 유물주의는 세계를 투쟁하는 역사로서만 보았기 때문에 가장된 선, 가장된 정의, 가장된 진리를 표방하여 싸움과 싸움을 연속시키고 파멸을 초래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요, 섭리자 이심을 믿는 까닭에 우주 역사에 대한 그의 절대주권을 의심할 수 없으며, 오직 그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요, 진리이며, 인간의 최대의 삶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면 인간은 파멸과 부도덕과 모든 질서 파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그 역사 위에 등장된 모든 인물, 모든 국가, 모든 문화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역사와 우주를 섭리하시며 자기의 선하신 뜻대로 이끌고 가시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스스로 멸망케 하시며, 그의 절대 주권을 강력하게 행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호언을 했으나 니체가 죽었다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의 소리는 온 천지에 진동하고 하나님만이 생명이요 진리라는 확신이 날로 더 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 주권자의 눈, 심판자의 음성을 만지고 보고 듣지 못하여 인간은 타락하고 강팍하고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까? 칼 바르트는 모든 인간적인 죄는 원리적 결함이나 도덕적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항 즉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항이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인간의 모든 죄악과 모든 불행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항이요, 주권에 대한 무시인 것입니다.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가정을 내 맘대로, 이 나라를 내 맘대로 할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인 것입니다. 주권과 주권의 대립, 이것이 가장 파멸을 가져오는 투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위에 게시며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절대적인 통치자이시며 승리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이 시인의 확신이요 모든 신자들의 공통된 신앙입니다.
1. 제 1부(1-8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고 하는 것이
첫째 부분의 주제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땅 위에서 육체가 피곤할 때 육체의 쉴 것을 찾을 수 있으나 마음의 피곤을 느낄 때는 이 땅 위에서 인간의 참된 안식처를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안식처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가정도, 국가도 우리의 진정한 안식처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태산 같은 무기와 탄약이 우리의 방어처가 되지 못하고 수백만의 군사가 우리를 완전히 방어하여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진실로 우리의 완전무결한 피난처이십니다. 인간에게는 절망으로 보일 때에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품에 뛰어들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세상의 반석 되시는 여호와의 품안에 숨은 자를 누가 공격할 수 있을 것입니까? 만약 그를 넘어뜨리려면 먼저 하나님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의 무리인 기독교회가 이리 가운데 보내졌어도 오늘까지 지켜 주신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여호와의 품 안에 두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또한 힘인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들이지만 의연하게 세워 주시는 힘이며 어떠한 대적도 완전히 물리쳐 주시는 힘입니다. 정말 심각한 번뇌일 때는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부모도 몰라주고 친구도 몰라주는 그 상처를 주께서는 치료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바다 가운데 던져지든가 병고에서 신음할 때도 주의 성명(q?을 부를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더욱 죄를 범한 우리들에게 피난처는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장자를 죽이는 재앙에서 살 길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길 외는 없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속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를 믿는 자 안에 계시며, 그 안에서 역사하시며, 죄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시련을 이기고, 이 세상 권세를 이기는 힘으로 준엄한 인생행로에서 개가를 부르면서 전진케 하는 동력인 것입니다.
2. 제 2부(4-7절)
첫째 부분은 격동하는 상태였으나, 이
둘째 부분은 실로 태풍 후에 오는 정숙과 평온이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이고이 흘러가는 평화의 리듬이 끝없이 진행되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의 그 실존을 보호하는 피난처일 뿐 아니라 시온의 수호자로서 그의 세계와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 바로 거기가 시온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낙토, 아름다운 꿈의 동산, 평화와 기쁨만이 충만한 그 곳, 그곳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신 곳입니다. 인간이 중심이 된 곳, 거기는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는 등 뒤죽박죽인 혼란과 파멸의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이 중심이 된 성은 아름답고 맑은 강물이 있어 오직 기름처럼 흐르며, 억겁을 거듭하여도 움직임이 없는 평화와 기쁨의 동산인 것입니다. 인간이 주인이 된 곳은 싸움과 죽음만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인이 된 곳은 평화와 기쁨이 있어 영원히 즐거운 것입니다. 제 1부는 폭풍에 휘날리고 휘둘러지고 정신을 차릴 겨를 없이 된 상태 속에서 닻을 내리고 노도와 싸우고 있는 작은 배의 모습을 상상케 하지만, 제 2부는 맑은 시냇물 가로 우리를 인도하여 평화와 평안감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시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제 3부(8-11절) 이 마지막 부분에는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의 세계, 인간의 세계에 대립하여 자기의 세계를 따로 세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방탕한 역사를 정복하시고 섭리하셔서 자기의 창조로서의 절대한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는 결코 이원론적인 세계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본준의와 유물주의는 세계를 투쟁하는 역사로서만 보았기 때문에 가장된 선, 가장된 정의, 가장된 진리를 표방하여 싸움과 싸움을 연속시키고 파멸을 초래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요, 섭리자 이심을 믿는 까닭에 우주 역사에 대한 그의 절대주권을 의심할 수 없으며, 오직 그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요, 진리이며, 인간의 최대의 삶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면 인간은 파멸과 부도덕과 모든 질서 파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그 역사 위에 등장된 모든 인물, 모든 국가, 모든 문화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역사와 우주를 섭리하시며 자기의 선하신 뜻대로 이끌고 가시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스스로 멸망케 하시며, 그의 절대 주권을 강력하게 행사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호언을 했으나 니체가 죽었다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의 소리는 온 천지에 진동하고 하나님만이 생명이요 진리라는 확신이 날로 더 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 주권자의 눈, 심판자의 음성을 만지고 보고 듣지 못하여 인간은 타락하고 강팍하고 더러워지는 것이 아닙니까? 칼 바르트는 모든 인간적인 죄는 원리적 결함이나 도덕적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항 즉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항이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인간의 모든 죄악과 모든 불행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반항이요, 주권에 대한 무시인 것입니다.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가정을 내 맘대로, 이 나라를 내 맘대로 할 때 그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인 것입니다. 주권과 주권의 대립, 이것이 가장 파멸을 가져오는 투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위에 게시며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절대적인 통치자이시며 승리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이 시인의 확신이요 모든 신자들의 공통된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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