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와 찬송 (대하29:20-30)
본문
오늘 본문 말씀 중에 27절에 보면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순간은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에 기념할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죽고 이제 히스기야 왕이 즉위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말할 수 없는 악습과 폐풍에 젖어 있는 그 땅을 청결케 하고 그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진실되고 참된 예배를 다시 드리라고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이렇게 저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재물을 제단에 드리고 경배하는 말하자면 예배의 가장 절정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이제 제단 위에는 제물이 놓여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단에서 수종듭니다. 레위 사람들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섰으며 성습의 귀인들과 회중들은 왕과 한 가지로 성전 뜰에 섰습니다. 저들은 제단 위에 놓여 있는 번제 제물 위에 불이 사르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단 위의 제물들은 자기들을 대신하는 것임을 저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버렸던 하나님께 이제 저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저들 자신을 드리는 것으로 보았던 만큼 그 재물이 완전히 불사름을 입어 여호와 하나님의 받으시는 제사가 되기를 갈망하면서 제단을 주시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이 제물에 붙어서 불타는 가운데 그 불꽃과 한 가지로 저들 자신도 완전히 주께 바치는 바 되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극적 순간에 침묵은 깨뜨려지고 모인 군중 가운데서는 기쁨의 음악이 터져 나왔습니다.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었던 것입니다. 번제라는 것은 우리의 뜻을 보다 높고 완전하신 자의 뜻에 쳐 복종시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꿈과 욕망을 주되신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종교에다 우리 생명을 바치는 것이 곧 번제입니다. 거기에는 참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가시밭길이요 십자가의 길이라 하더라도 참된 평화와 기쁨은 주의 뜻을 순종할 때에만 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교훈과 명령을 완전히 순종하고 실천할 때 마음의 평화가 있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반역할 때에는 아버지의 심판의 채찍이 내리기 전이라도 책망의 소리를 듣기 전이라도 아담과 하와가 동산나무 그늘에 숨던 것 같이 평화가 없고 두려움과 불안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의 길이지만 주의 뜻에 따라 행할 때 평화와 기쁨은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내어주고 경건한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의 못박히신 흔적을 그 몸에 받았다는 성자프랜시스코의 일을 생각하여 봅시다. 자기의 뜻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가시밭길을 걸어서 번제를 통한 경배로서 얻은 바 저의 기황의 찬송이 무엇이었든지 기억하십니까? "온 천하만물 우러러 내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참 빛의 근원되시며 저 밝은 해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 손에는 못자국이요 마음에는 할렐루야가 있었습니다. 번제와 찬양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일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십자가와 찬미가 따라 다녔습니다. 그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 보십시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의 땀방울은 핏방울과 같이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이다" 하실 때 그는 개선장군처럼 머리를 들었고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의 환영의 노래가 높이 불리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아니 하십니다. 우리들이 주의 뜻을 완전히 복종하지 아니할 때는 우리에게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제단 위의 번제물로서 자기 뜻을 완전히 부정할 때 그때에만 기쁨과 평화가 용솟음치게 되는 것입니다. 경배와 찬송은 비로소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제단 위에 번제물은 이렇게 될 때 신자들에게 찬미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본문의 장면은 아름답고 시사적입니다. 옛 생활은 청산되고 새로운 형태의 예배가 복귀되고 깨끗한 희생제물이 드려지고 백성들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함께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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