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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 (대하10:1-5)

본문

아무리 지혜롭고 선한 자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나라를 부요하게 하고 발전시켰으며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금과 사역을 부가시키므로써 그들의 부담을 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여성들을 좋아하고 사랑하였기에 많은 보화를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 여인들의 자만, 사치 그리고 그들의 우상숭배 뒷바라지에 주력하는 비용들을 모든 백성들이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잘못이 없는 정부를 헐뜯는 무리는 항상 있기 마련인데 그들은 솔로몬의 태평성대를 원망하여 반역하였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에게 솔로몬이 백성들의 멍에를 무겁게 했다고 백성들을 선동하고 솔로몬 왕권을 불평하고 도전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나라와 백성들의 유익을 파멸한 무리들이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역모를 꾸며 애굽으로 망명간 무리들이었습니다. 이제 솔로몬은 죽고 새 왕 르호보암이 즉위하자 역모의 무리들 그리고 온 백성들이 르호보암에게 새정치, 참신한 정치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겜에 모였습니다 르호보암이 "세겜"을 회의 장소로 택한 것은 현명한 처사로 불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현명한 노대신들의 충고를 따른 것입니다. 이 세겜은 예부터 회의로 유명한(수 24:1) 그리고 충성으로 유명한(삿 9장)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대화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모였으며 그들의 결정사항은 하나님의 뜻과 같이 여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결정된 사항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을 행 할때 불협화음이 없어지고 인간적인 목소리가 낮아져야 합니다.
2. 세겜에 이스라엘이 모인 목적
(1)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아 미래 정부 수립을 위해 이스라엘 초기에 있어서 왕이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는 절대적인 조건으로서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한다는 것이고(삼상 10:1, 16:1) 또 하나는 상대적인 조건으로서 백성들의 지지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삼하5:1-3). 이런 조건으로 살펴볼 때 르호보암은 우선 다윗과 솔로몬을 이은 왕손으로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따라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두번째 조건에 있습니다. 그것은 12지파의 모든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나민 지파에게는 지지를 받고 있으나 자기를 반대하는 10지파에게 지지를 받아야 하겠기에 이스라엘은 12지파들을 세겜에 모이게 하고 르호보암은 행차한 것입니다. 사실상 지금 세겜에서는 반역의 기미가 보였습니다. 그래도 르호보암은 세겜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대신들과 행차하여 세겜에 이르니 환호성이 울리지 않고 정숙만이 온 백성 가슴에 지배했습니다.
(2) 도전적인 백성들의 요구 조건이 제시됩니다. 4절에 "왕은‥‥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였습니다. 이는 예기치 않은 것으로 르호보암을 놀라고 괴롭게 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온 목적도 그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과감하게 거절할 용기도 없었고 승인할만큼 관대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요구사항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왕은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지 못했습니다. 귀라고 모두 같은 귀는 아닙니다. 정상적인 귀가 있는가 하면 비정상적인 귀가 있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가 하면 들어도 알지 못하는 귀가 있습니다. 르호보암은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귀를 소유했습니다.
1) 백성들이 왕에게 대한 요구사항 백성들의 대변자로 여로보암이 활약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시 반역자로 애굽에 쫓겨났던 자로 솔로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에 다시 돌아와서 이스라엘 왕에게 불평하는 자들과 합세하였고 그 세력이 점차 증강하여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10지파가 합류하여 르호보암 왕에게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왕으로 섬기겠나이다"였습니다.
2) 솔로몬 왕의 통치 시절에 한이 맺힌 백성들의 요구였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을 왕이라 부르지 않고 다만 "왕의 부친"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또한 솔로몬 왕의 통치를 전면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제는 과거 부친의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백성을 고역과 과세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건을 수락하면 왕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르호보암은 선택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3) 자식은 부모의 영향을 받습니다. 르호보암 입장에서 볼 때 이 얼마나 무례한 도전입니까? 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당연한 입장입니까? 아버지가 심은 것을 아들이 걷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분명한 결과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걷습니다.
3. 르호보암의 대답 르호보암은 대답을 3일 후로 미루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뒤로 미룸은 가하나 사람과 의논하기 위해서 뒤로 미룸은 온당치 못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해야 합니다. 5절에 "3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들과 자기 젊은 동료들에게 신중히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로 지혜를 나타냈습니다. 장 29:1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르호보암의 자제력을 봅니다. 성급하지 않고 자기마음을 지키는 것을 봅니다(잠 4:23). 이것이 도전받는 선택의 위기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성경적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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