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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스의 선한 싸움 (왕하12:1-16)

본문

요아스는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자신의 아들인 아하시야가 죽자 아달랴 자신이 유다를 통치하기 위하여 왕의 씨를 진멸하였던 것입니댜. 아달랴는 폭군 아합과 바알 우상 숭배자인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녀 역시 바알 숭배자였습니다. 아달랴는 자신의 남편 여호람과 아들 아하시야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뒤에서 이들을 조종하면서 유다에 우상 숭배를 하도록 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권이 탐이 난다고 하여도 자신의 친손자들까지 죽였으니 우리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잔인한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옇튼 아달랴가 왕의 씨를 진멸하려고 할 때 요람 왕의 딸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그 유모와 함께 숨겨 주어서 요아스만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는데 그때 요아스의 나이는 한 살이었습니다. 요아스가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죄가 관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약속을 이행하신 것입니다. 요아스가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에 그 나이는 칠세였으므로 아달랴는 6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2절에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요아스에게는 깊은 신앙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가르침이 있을 때에는 옳게 행하였지만 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오직”이란 말은 “다만”이라는 뜻으로 산당을 제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산당은 언덕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이 없던 시대에는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산당은 우상과 타협되기 쉬운 곳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또한 요아스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산당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성전의 퇴락한 부분들을 수리하도록 제사장에게 지시하였는데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하기 위해서 민간에서 거두도록 한 것은 세 가지 종류였습니다.
1.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 하는 은(4절 중간) 이것은 인구조사를 한 후에 20세가 넘는 장정에게서 받는 것으로써 성소를 위하여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은의 수량은 반 세겔이었습니다.
2. 각사람의 몸 값으로 드리는 은(4절 하반) 이것은 하나님께 바치기로 한 장자의 몸 값이나 몸을 바치기로 서원한 사람 즉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가 드리는 은을 말합니다(레 27:2-8).
3. 자원하여 드리는 은(4절 끝) 이것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것으로써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요아스 왕은 이것 뿐 아니라 제사장들에게 5절에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아는 자는 본래 성전에 바치는 예물의 값을 매기는 레위인들이나 혹은 돈 바꾸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헌금은 별로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일을 맡은 레위인들이 게을러서 임무를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성전을 수리해야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때는 성전이 건축된지 13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는 파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훼파된 주 원인은 아달랴의 고의적인 파괴였으며 성전의 성물들을 바알 우상에게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성전 수리를 위한 헌금이 잘 모아지지 않자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 헌금궤를 눈에 잘 띄는 장소, 곧 성전 마당 번제단 옆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헌금, 즉 은은 성전 수리가 끝나기 전에는 성전 안에서 사용하는 기물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고, 성전 수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기물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16절에 보면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속건제의 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에 대하여 지은 죄나, 남의 물건을 부당하게 취하였을 때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속죄제의 은은 율법에는 속죄제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없었지만 속죄제를 드리는 사람이 제사장의 수고를 생각해서 드리는 선물을 받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을 민수기 5:10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건제의 제물 중 많은 부분이 제사장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제사장들을 타락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문에 나타나 있는 요아스 왕의 통치기간 중에 성전 수리를 할 때 어떤 방법으로 하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요아스 왕은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여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하지 못하면 책망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들이 성전을 수리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맡은 성전 수리에 관한 책임에서 해임시켰습니다. 왜 제사장들이 성전 수리에 등한히 했는가 하는 것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주어진 일에 나태하고 게을러서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불신자를 시켜서라도 신자들을 책망하십니다.
(2)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일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만약 성전 수리를 하는데 있어서 먼저 성전의 수리를 끝내지 않고 그 안에서 필요한 기물들을 먼저 만들었다면 그 일은 별 진전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3-14절에 보면 “여호와의 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그릇이나 은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그것으로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일을 하는데 있어서 원칙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먼저 해야 할 것은 뒤로 미루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은 먼저 하는 등 원칙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책망 받고 그 일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해야 되겠으며, 어떤 일이 먼저 해야 할 일이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인지 확실하게 분간할 줄 아는 일군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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