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의 유다 침입 (왕하18:9-16)
본문
북조 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이제 남조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있었는데 유다는 죄값으로 앗수르의 침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 나라 제 12대 왕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림이 유다글 침공해 왔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 성을 제외한 모든 성읍들을 거의 다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침공하기 위해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 왕은 두 가지 기로에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버티다가 죽음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항복하고 살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처참하게 예루살렘이 불타고, 원수들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릎을 꿇고 항복하므로써 죽음을 면해야 되겠다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왔 산혜립에게 무릎을 꿇었던 굴욕적인 일에 대해선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현대적 계시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1.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13절에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모든 성읍을 쳐서 취하매”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림이 이스라엘에 침공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탈칠하고(9-10절), 그 백성을 포로로 끌고가는 거사를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왜 이러한 심판을 하셨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12절에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였고(겔 28:31)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마자 개혁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토록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사는 민족에게 위선의 껍질을 벗겨 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낮추십니다. 또 죄 때문에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그 죄의 성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굴욕적인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무릎을 꿇고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맹종할 터이니 군대를 철수해 달라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나라의 상당한 지역을 왔게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요새화되어 있는 거의 모든 성읍, 곧 변경 지역과 주둔지를 점령했습니다. 이 침입으로 인하여 그 나라가 당한 혼란상태는 예언자 이사야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습니다(사 10:28-32). 그는 평화를 위하여 너무나 값비싼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자체에 원수의 손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자 예루살렘의 안전을 얻고자 댓가를 치르기에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1) 비열한 굴복을 하였습니다. 14절에 “평소의 조공을 거부했으므로 나는 범죄하였나이다 이제 나는 요구되는 비를 기꺼이 배상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마치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고백하듯 용서를 빌게 되었습니다. “그의 지혜, 용기는 다 사라지고 무엇을 원하시든지 그대로 순종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는 이 어려운 시편에서 신앙을 버리고 산헤립의 협공과 위협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누구 앞에 무릎을 꿇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2) 이사야 선지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사야라는 선지자, 즉 하나님의 종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왕궁과 민족을 향하여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며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대언하는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곧 그는 영적 지도자였으며, 국정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소리를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에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이사야 선지자와 의논을 하고 그의 지도를 받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사야와 의논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으로 산혜립에게 항복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 까닭은 이사야 보다는 자신이 더 지혜롭고 현명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대언자이므로 그와 의논하는 것은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에게 물으면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고, 이사야와 의논하면 하나님의 뜻을 받게 되는데 히스기야는 그것을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앗수르에게 침입받아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굴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3. 엄청난 돈을 지달해야 되었습니다 막대한 액수의 돈을 지불했는데,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였습니다. 그것도 연차적으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야하는 배상금이었습니다. 이 금액을 조달하기 위하여 그는 할 수 없이 국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1절), 성전문과 그 기둥에서 금조각을 벗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6절). 그가 바친 “금은 성전이 성별시켰지만”필요성이 절박해지자 자기도 다윗처럼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노련한 정치가요, 침략가였습니다. 그래서 이 엄청난 돈을 히스기야에게 요구하여 자신의 탐욕을 다 채웠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한 번 금을 바치면 그것은 그 날로부터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손댈 수도 없고 되돌려 가져갈 수도 없었습니다. 한 번 성전에 드린 금은 거룩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성전에 있는 금과, 성전에 문과 기둥에 입힌금까지 벗겨 산헤립에게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대제국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에서 사용하던 성전 기명들을 함께 가져갔습니다. 벨사살 왕이 한 번은 대연회를 베풀면서 성전 그릇으로 술상을 삼아 건배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써 내려갔습니다. 아무도 읽을 수도, 해석 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글씨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글씨를 해석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하나님이 너희 나라를 세어 보고 달아보니 모자란다 네 나라야말로 사분 오열되어 멸망할 것이라”는 그런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요구대로 다 들어서 많은 돈을 지불해 주었습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다시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많은 금을 가지고 갔는데 산헤립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철수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돈만 가지고 간 것입니다. 왕하 18:17 이하를 보면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라는 세 장군으로 하여금 대군을 인솔해서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하고 히스기야를 쳐서 없애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산헤림은 히스기야를 속였습니다. 마귀도 역시 성도들을 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림에게 속기는 하였으나 그가 최선을 다하였던 점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히스기야를 책하지 않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신앙으로 대비하면서도(7-8절), 인간 편에서 노력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신앙은 노력을 초월하지만 노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1.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13절에 “히스기야 왕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모든 성읍을 쳐서 취하매”라고 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림이 이스라엘에 침공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탈칠하고(9-10절), 그 백성을 포로로 끌고가는 거사를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왜 이러한 심판을 하셨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12절에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였고(겔 28:31)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마자 개혁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토록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사는 민족에게 위선의 껍질을 벗겨 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낮추십니다. 또 죄 때문에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그 죄의 성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굴욕적인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무릎을 꿇고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맹종할 터이니 군대를 철수해 달라고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나라의 상당한 지역을 왔게 되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요새화되어 있는 거의 모든 성읍, 곧 변경 지역과 주둔지를 점령했습니다. 이 침입으로 인하여 그 나라가 당한 혼란상태는 예언자 이사야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습니다(사 10:28-32). 그는 평화를 위하여 너무나 값비싼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자체에 원수의 손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자 예루살렘의 안전을 얻고자 댓가를 치르기에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1) 비열한 굴복을 하였습니다. 14절에 “평소의 조공을 거부했으므로 나는 범죄하였나이다 이제 나는 요구되는 비를 기꺼이 배상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왕에게 마치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고백하듯 용서를 빌게 되었습니다. “그의 지혜, 용기는 다 사라지고 무엇을 원하시든지 그대로 순종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는 이 어려운 시편에서 신앙을 버리고 산헤립의 협공과 위협 때문에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누구 앞에 무릎을 꿇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2) 이사야 선지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사야라는 선지자, 즉 하나님의 종이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왕궁과 민족을 향하여 무엇을 원하시고 계시며 뭐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대언하는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곧 그는 영적 지도자였으며, 국정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소리를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대언자였습니다. 그래서 나라에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이사야 선지자와 의논을 하고 그의 지도를 받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이사야와 의논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으로 산혜립에게 항복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 까닭은 이사야 보다는 자신이 더 지혜롭고 현명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대언자이므로 그와 의논하는 것은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에게 물으면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수 있고, 이사야와 의논하면 하나님의 뜻을 받게 되는데 히스기야는 그것을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앗수르에게 침입받아 히스기야는 앗수르에게 굴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3. 엄청난 돈을 지달해야 되었습니다 막대한 액수의 돈을 지불했는데,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였습니다. 그것도 연차적으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야하는 배상금이었습니다. 이 금액을 조달하기 위하여 그는 할 수 없이 국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1절), 성전문과 그 기둥에서 금조각을 벗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6절). 그가 바친 “금은 성전이 성별시켰지만”필요성이 절박해지자 자기도 다윗처럼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노련한 정치가요, 침략가였습니다. 그래서 이 엄청난 돈을 히스기야에게 요구하여 자신의 탐욕을 다 채웠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한 번 금을 바치면 그것은 그 날로부터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손댈 수도 없고 되돌려 가져갈 수도 없었습니다. 한 번 성전에 드린 금은 거룩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성전에 있는 금과, 성전에 문과 기둥에 입힌금까지 벗겨 산헤립에게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한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대제국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에서 사용하던 성전 기명들을 함께 가져갔습니다. 벨사살 왕이 한 번은 대연회를 베풀면서 성전 그릇으로 술상을 삼아 건배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진노의 손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써 내려갔습니다. 아무도 읽을 수도, 해석 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글씨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글씨를 해석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하나님이 너희 나라를 세어 보고 달아보니 모자란다 네 나라야말로 사분 오열되어 멸망할 것이라”는 그런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요구대로 다 들어서 많은 돈을 지불해 주었습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다시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많은 금을 가지고 갔는데 산헤립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철수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돈만 가지고 간 것입니다. 왕하 18:17 이하를 보면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라는 세 장군으로 하여금 대군을 인솔해서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하고 히스기야를 쳐서 없애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산헤림은 히스기야를 속였습니다. 마귀도 역시 성도들을 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림에게 속기는 하였으나 그가 최선을 다하였던 점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히스기야를 책하지 않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신앙으로 대비하면서도(7-8절), 인간 편에서 노력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신앙은 노력을 초월하지만 노력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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