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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못한 소유 (왕상22:3-4)

본문

아람 왕 벤하닷은 일찍이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당하였을 때에 전에 빼앗은 도시들을 모두 다 반환할 조건으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일이 있었습니다(왕상 20:34).
그런데 아람이 그 조약과 관련된 “길르앗 라못”이라는 땅을 이스라엘에 반환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 왕은 아람과 전쟁할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유다 왕 여호사밧 이 이스라엘을 방문 중에 있었는데 그는 아합과 사돈 관계로 그의 아들이 아합의 딸을 취한 것입니다(왕하 8:18, 대하 18:1). 여호사밧은 아합의 청원을 듣고 그 전쟁에 참가하여 이스라엘을 돕기로 승낙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아합 왕은 아람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계획을 알리는데, 그 이유는 아람의 왕이 그를 격분시킨 것입니다(삼하 20:34). 즉 벤하닷이 아합에게 그의 성읍들을 되돌려 주기로 약속하여 풀어주었는데 그것은 믿은 아합이 어리석었습니다. 그 성읍들을 도로 찾기까지는 벤하닷을 풀어 주지 말아야 되는 일이었는데, 그의 말만 듣고 놓아 주었던 것입니다. 벤하닷은 자기들이 언약한 바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그 언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왕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레위 지파의 도성인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땅이요, 갓 지파의 도성으로 가장 큰 도성이요, 또 도피성 중의 하나인 성읍입니다. 아합은 일찍이 길르앗 라못 성읍을 아람 사람에게서 빼앗아 오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점과, 벤하닷이 자기와 맺은 약속을 파기한 것을 징책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감사할 줄 모르는 벤하닷에게 평화를 주었듯이, 이제자기는 고통도 줄 수 있다는 것을 벤하닷에게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합 왕은 이제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려고 여호사밧을 불러 자기와 합류하자고 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아합의 관심사에 쌍수를 들고 말하기를 “나는 그대와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삼하 15:19-2) 자신의 아버지가 아람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을 친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서 이번에 이스라엘과 합세하여 아람과 싸우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신령한 뜻에 대해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우리의 것과 남의 것
(1) 몇 가지 소유하지 못한 소유
1) 조용한 평안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이에는 누구에게나 평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평안이 없는 것 같지만, 마음 속 깊이에는 고요함과 평안함이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우리의 것입니다.
2) 완전한 복종 우리가 매일 매일 생활에 나가면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잘 될 것입니다.
3) 능력의 충만 기독교 공동체와 개인에게 주시는 신적 은사는 맡겨주신 모든 일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능력의 충만함 이었습니다.
(2)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세 가지 주제와 특권
1)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엡 3:19)과 “영광 가운데 있는 그의 풍성하심을 따라”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빌 4:19).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소유물 두 번째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의 효력과 그의 승리생활의 능력은 신적 은사가 충만한 그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해 줍니다.
3) 성령의 영향 우리의
셋째 주장과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자녀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성령의 영향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완전히 순결하고, 완전히 축복받고, 끊임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의 충만” 으로 즐거워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2. 완전한 소유물로 만족하는 만족
(1)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을 하는 이유 아합은 그의 신복들에게 자신의 나라 중 조그마한 땅을 외국인이 다스리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묵인하는 두 가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합의 신복들은 길르앗 라못이 자기들의 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또 너무나 게으르기 때문에 용감하게 싸워서 도로 찾아오지도 못한 것입니다.
1) 기독교 신자의 생활에서 도달할 수 없는 가능성이란 없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들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2) 안일을 바라는 마음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가 사용하는 것 사이에 있는 큰 불균형을 이루는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과 같은 안일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성읍을 빼앗기 위하여 전쟁을 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보다 가정에서 평안히 있거나, 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것이 보다 안일한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땅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노력
(1) 기독교 신자는 그리스도의 소유물을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찌 아람 왕의 손에서 처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나님의 선물로, 그리스도의 사심으로 성령의 영향으로 우리의 것이 된 것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영적인 신령한 은사도 우리에게 주시고 그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가 주신 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보존해야 합니다.
1)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 기독교 신자는 이것을 자기의 것으로 보존해야 합니다.
(2) 도달할 수 없는 소유의 가능성에 관한 정통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1) 이것은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됩니다. 우리가 감히 받을 수도 없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 전체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완전을 깨닫고 우리 앞에 놓인 영광과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 인생의 청량제가 되는 것입니다
2) 이 결과에 실패한다는 것은 성장하는데 실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가장 좋은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줄 아는 사람은 이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이 노력이 계속될 때 우리에게는 성장이 계속되며, 종말에 가서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밝고 맑은 축복의 세계로 인도될 것입니다.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소유에 대한 게으른 무관심을 버리십니다. “너희는 길르앗 라못이 우리의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더 이상 잠잠히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세계와 생명과 죽음과 현재에 속한 이 모든 것은 우리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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