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지키다가 옥에 갇힌 미가야 (왕상22:7-9)
본문
유다의 선한 왕 여호사밧은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방문하려고 내려갔습니다. 아합 왕은 유다 왕을 접대하여 잔치를 배설하고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위하여 양과 소를 잡았습니다. 이 잔치 자리에서 아합 왕이 여호사밧에게 제의하기를 우리 둘이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아직도 그들의 숙적인 수리아인이 점령하고 있는 길르앗 라못의 요새를 공격하자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뜻을 따라 사는 왕이었지만 몇번이나 동맹하였던 사이이고, 또 아합 왕에게 우대를 받은 터이라 그는 아합에게 길르앗 라못 원정에 동행하겠노라고 승락하고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과 수리아를 대항하여 싸울 전쟁에 자기 왕국의 모든 자원을 제공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이었던 여호사밧은 이러한 원정에 대하여 먼저 여호와께 여쭈어 보지 않고는 출발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말하기를 “청컨데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이스라엘 왕은 응답하는 뜻으로 400명의 선지자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직업적인 선지자들로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아합 왕이 원하는 일을 대변하는 자들에 불과하였습니다. 어쨌든 이 400명의 선지자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 왕의 화려한 궁전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왕은 400명의 선지자들에게 묻기를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소위 선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고 말하였습니다. 이들이이구동성으로 왕의 말이 떨어지자 옳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기를 “이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아합이 대답하기를 “이몰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불러들이자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미가야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이 때 거짓 선지자 중의 하나인 시드기야가 아합 왕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철로 뿔들을 만들어 머리에 붙이고 두 왕이 앉은 보좌 앞에 나타나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랍 사람을 찔러 전멸하리라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선지자도 다 함께 말하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고 하였습니다. 그때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미가야의 집에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는 왕에게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소서 반드시 승리하시리이다고 하였으니 그런즉 친구인 나로서 당신에게 충고하니 당신도 왕의 앞에 나아가거든 그들과 같이 예언을 하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자는 미가야가 어떤 사람인줄을 모르고 한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가야는 즉시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미가야는 아합과 여호사밧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400 대1의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 아합 왕은 대담한 자세로 서 있는 선지자 미가야에게 “미가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고 물었습니다. 미가야는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고 비웃는 태도로 말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미가야가 대답하는 태도를 보고 곧 마음으로 여호와께서는 자기들이 길르앗 라못으로 원정함을 옳게 여기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합 왕은 자기를 조롱하는 태도로 답변하는 미가야의 말을 듣고 노하여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미가야 선지는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그는 환상의 형식으로 말하기를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 환상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싸울 전쟁에 패하여 멸망할 것과 이스라엘은 장차 지도자와 왕이 없으므로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아합은 분이 나고 울화가 치밀어 여호사밧에게 부르짖기를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흥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미가야는 계속하여 다른 환상 하나를 말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이 말하기를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다를 말씀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가야가 400대 1로 양심과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취했던 비장한 태도였습니다. 미가야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자 거짓선지자들의 지도자격인 시드기야는 분이 나서 미가야의 뺨을 치고, 이스라엘 왕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옥사장에게 말하기를 “미가야에게 고생의 떡과 고생의 풀로 먹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가야의 이름은 천추에 남게 되었으니 이는 그가 양심과 여호와의 말씀에 충실하였기 때문입니다.
1. 양심에 대한 두 가지 진리 우리는 양심에 대한 두 가지의 큰 진리를 알게 됩니다.
첫째는 바로 마틴 루터가 웖스 회의에서 말한 그대로 입니다. 그는 언제나 그의 양심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또한 언제나 그의 양심은 그를 억눌렀습니다. 아합이 너무 악행을 하므로 이스라엘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외치기를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고 하였습니다. 양심의 화신으로서 엘리야는 아합을 찾았던 것입니다. 본문에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이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냐?” 고 할 때 아합은 대답하기를 “한 사람이 있기는 하나‥‥‥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양심은 환경대로 적응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합에게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참 선지자인 미가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짓 선지자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아합의 마음과 부합되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전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대승리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때 여호사밧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아합과 함께 전쟁터에 임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은 벌어졌습니다. 아합이 적군인 수리아 군대의 나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들의 투구와 방패와 또한 병거가 햇빛에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보고 겁이 나자 미가야 선지의 예언이 생각이 나서 아합은 보통 군인처럼 변장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왕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리아 왕은 병거와 장관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왕과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죽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합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수리아 장군들은 왕복 입고 있는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인줄 알고 쫓았으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알고서 그에게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군사가 우연히 이스라엘의 졸병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그 화살과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 화살은 아합 왕의 갑옷 솔기 사이를 뚫고 아합 왕 가슴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은 해가 질 때까지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습니다. 그가 타고 있던 병거는 사마리아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아람 왕의 부하 몇 사람이 병거에 묻은 피를 씻는데 개들이 와서 그 피를 핥아먹었습니다. 이 장소와 이 개들이 바로 아합 왕이 나봇을 죽였을 때, 나봇의 피를 빨아 먹던 그 개와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선지자 엘리야가 예언한 바 있듯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곳에서 개들이 네 피를 핥으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양심을 어기는 일은 언제나 심판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양심의 순종함의 위대성 아합의 생애와 죽음이 양심에 불순종하고 그릇 행동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준다면, 미가야의 생애는 양심에 순종함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하여 보여줍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증언함에 있어서 다수 곧 400명의 의견에 좇지 않고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여 거짓 선지자들과는 반대되는 말로 아합 왕에게 충고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모욕적인 말과 조롱함에도 불구하고 양심대로만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아합에게 유리한 말을 하면 조정에 귀하게 쓰일 줄을 알면서도 양심대로만 말하였으며, 바른 말을 하면 옥에 갇히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양심대로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어두운 감옥 속에서라도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선한 양심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미가야는 그처럼 영웅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 사람의 아내가 유혹할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라고 말한 요셉과 같은 사람이며, 사자 굴에 던지어질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헤롯과 헤로디아의 죄를 책망하던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양심을 지키는 사람은 처음에는 의로운 소수에 불과한 것 같으나 결국은 언제나 다수로 되는 것입니다. 미가야가 하지 말라고 경고하던 싸움에서 아합이 죽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목자도 없이 산에 흩어져 있을 때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있을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오늘날의 인간의 도덕생활은 날로 퇴폐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대로 이 세상은 도덕을 잃어버렸고, 완전히 더러운 것으로 덮이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교적 양심의 부활이며 이 패역한 세대에서 그리스도교의 생활 표준을 증거 할 수 있는 용기 입니다. 윌리암 패리는 런던탑에 유폐되려고 할 때에 말하기를 “내가 갇혀있는 감옥은 내가 조금 움직이기 전에만 나의 무덤이 되리라
왜냐하면 나의 양심은 어떠한 인간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존 번연은 베드로도 감옥에 있을 때에 만일 전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용서하여 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의 눈동자에 이끼가 끼기 전에는 나의 주장을 버린다든지 양심을 어길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이처럼 충성스럽게 양심을 따른 번연은 그의 위대한 작품인 천로역정에서 정직과 양심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정직이 세상을 떠날 날이 닥쳐왔을 때에 그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강물이 많아 어떤 곳은 넘쳐흐르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양심과 그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바 있으니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양심은 어느 사이엔가 와서 손을 내밀어 정직을 도와 강을 건너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언제나 이처럼 최후의 승리와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가야는 즉시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미가야는 아합과 여호사밧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400 대1의 대결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 아합 왕은 대담한 자세로 서 있는 선지자 미가야에게 “미가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고 물었습니다. 미가야는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고 비웃는 태도로 말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미가야가 대답하는 태도를 보고 곧 마음으로 여호와께서는 자기들이 길르앗 라못으로 원정함을 옳게 여기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합 왕은 자기를 조롱하는 태도로 답변하는 미가야의 말을 듣고 노하여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 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미가야 선지는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그는 환상의 형식으로 말하기를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이 환상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싸울 전쟁에 패하여 멸망할 것과 이스라엘은 장차 지도자와 왕이 없으므로 재난을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아합은 분이 나고 울화가 치밀어 여호사밧에게 부르짖기를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아니하고 흥한 것을 예언하겠다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미가야는 계속하여 다른 환상 하나를 말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이 말하기를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다를 말씀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가야가 400대 1로 양심과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취했던 비장한 태도였습니다. 미가야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자 거짓선지자들의 지도자격인 시드기야는 분이 나서 미가야의 뺨을 치고, 이스라엘 왕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옥사장에게 말하기를 “미가야에게 고생의 떡과 고생의 풀로 먹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가야의 이름은 천추에 남게 되었으니 이는 그가 양심과 여호와의 말씀에 충실하였기 때문입니다.
1. 양심에 대한 두 가지 진리 우리는 양심에 대한 두 가지의 큰 진리를 알게 됩니다.
첫째는 바로 마틴 루터가 웖스 회의에서 말한 그대로 입니다. 그는 언제나 그의 양심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또한 언제나 그의 양심은 그를 억눌렀습니다. 아합이 너무 악행을 하므로 이스라엘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외치기를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고 하였습니다. 양심의 화신으로서 엘리야는 아합을 찾았던 것입니다. 본문에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이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냐?” 고 할 때 아합은 대답하기를 “한 사람이 있기는 하나‥‥‥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양심은 환경대로 적응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합에게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참 선지자인 미가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짓 선지자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아합의 마음과 부합되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전쟁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대승리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때 여호사밧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아합과 함께 전쟁터에 임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은 벌어졌습니다. 아합이 적군인 수리아 군대의 나팔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들의 투구와 방패와 또한 병거가 햇빛에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보고 겁이 나자 미가야 선지의 예언이 생각이 나서 아합은 보통 군인처럼 변장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왕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리아 왕은 병거와 장관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왕과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죽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합이었던 것입니다. 처음 수리아 장군들은 왕복 입고 있는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인줄 알고 쫓았으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알고서 그에게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군사가 우연히 이스라엘의 졸병에게 활을 쏘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그 화살과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 화살은 아합 왕의 갑옷 솔기 사이를 뚫고 아합 왕 가슴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은 해가 질 때까지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습니다. 그가 타고 있던 병거는 사마리아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아람 왕의 부하 몇 사람이 병거에 묻은 피를 씻는데 개들이 와서 그 피를 핥아먹었습니다. 이 장소와 이 개들이 바로 아합 왕이 나봇을 죽였을 때, 나봇의 피를 빨아 먹던 그 개와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선지자 엘리야가 예언한 바 있듯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곳에서 개들이 네 피를 핥으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양심을 어기는 일은 언제나 심판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양심의 순종함의 위대성 아합의 생애와 죽음이 양심에 불순종하고 그릇 행동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준다면, 미가야의 생애는 양심에 순종함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하여 보여줍니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증언함에 있어서 다수 곧 400명의 의견에 좇지 않고 양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여 거짓 선지자들과는 반대되는 말로 아합 왕에게 충고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모욕적인 말과 조롱함에도 불구하고 양심대로만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아합에게 유리한 말을 하면 조정에 귀하게 쓰일 줄을 알면서도 양심대로만 말하였으며, 바른 말을 하면 옥에 갇히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양심대로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어두운 감옥 속에서라도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선한 양심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미가야는 그처럼 영웅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 사람의 아내가 유혹할 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라고 말한 요셉과 같은 사람이며, 사자 굴에 던지어질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헤롯과 헤로디아의 죄를 책망하던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양심을 지키는 사람은 처음에는 의로운 소수에 불과한 것 같으나 결국은 언제나 다수로 되는 것입니다. 미가야가 하지 말라고 경고하던 싸움에서 아합이 죽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목자도 없이 산에 흩어져 있을 때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있을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오늘날의 인간의 도덕생활은 날로 퇴폐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대로 이 세상은 도덕을 잃어버렸고, 완전히 더러운 것으로 덮이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교적 양심의 부활이며 이 패역한 세대에서 그리스도교의 생활 표준을 증거 할 수 있는 용기 입니다. 윌리암 패리는 런던탑에 유폐되려고 할 때에 말하기를 “내가 갇혀있는 감옥은 내가 조금 움직이기 전에만 나의 무덤이 되리라
왜냐하면 나의 양심은 어떠한 인간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존 번연은 베드로도 감옥에 있을 때에 만일 전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용서하여 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의 눈동자에 이끼가 끼기 전에는 나의 주장을 버린다든지 양심을 어길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이처럼 충성스럽게 양심을 따른 번연은 그의 위대한 작품인 천로역정에서 정직과 양심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정직이 세상을 떠날 날이 닥쳐왔을 때에 그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강물이 많아 어떤 곳은 넘쳐흐르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양심과 그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바 있으니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양심은 어느 사이엔가 와서 손을 내밀어 정직을 도와 강을 건너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양심은 언제나 이처럼 최후의 승리와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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