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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 대한 축복 (창49:8-12)

본문

이 세상을 떠나게 된 하나님의 사람 야곱은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영의 눈이 밝아 열 두 아들을 신적 조명하에서 축복할 때 유다 지파를 통하여 예수님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1)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니 유다의 자손 중에서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2) 사자와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강한 민족을 이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원수의 목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즉 승리를 가르칩니다.
(4) 홀이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왕권이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오시리라는 것입니다.
(5) 실로 오기까지는 평화를 상징한 것입니다.
(6) 나귀를 포도나무에 멜 것이라고 했습니다.
(7) 옷을 포도주로 빤다는 것은 물질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으로 말미암아 열 두 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가 제일 큰 축복을 받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다는 물질로 축복받고, 왕권으로 축복을 받고, 평화의 축복을 받고, 승리의 축복을 받았읍닏. 이 시간 우리는 야곱이
넷째 아들 유다에게 어떻게 축복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8절)
8절에 “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히브리어로 찬송한다 라는 뜻입니다(창 29:25). 그는 형제들의 칭찬과 찬송의 대상이 되고 절받을 대상이 되겠다고 축복했습니다. 그가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려 할 때 “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그를 아버지께 데려 오지 못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으리이다 ” (창43:9) 라고 했던 말은 유다의 간곡한 결심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희생을 자처한 일은 바로 장자의 기풍입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지상에서 강력한 국가가 세워지고 주권이 그들에게서 나며 하늘나라의 권세를 잡은 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즉 세상 권력을 가진 다윗과 솔로몬 왕가 메시야가 유다의 계보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 3:15에 “ 여자의 후손은 뱅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여인의 원수도 뱀이요, 유다의 원수도 뱀입니다. 유다 자손 중 다윗이 원수를 정복할 것이요, 유다 자손인 예수님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시 18:40, 골 2:15). 유다는 과연 형제들의 칭찬과 찬송과 절을 받을만 합니다. 그러나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다윗은 시 109:1에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 나의 찬송이신 하나님이여 ” 라고 하였고, 바울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광경을 표시하였습니다(빌 2:10-11). 야곱은 임종시에 유다를 앞에 놓고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태어나실 예수님이 온 인류 형제들의 찬양을 받으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2. 위엄은 사자같도다(8절)
9절에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숫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고 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운명을 짐승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잇사갈은 나귀, 단은뱀, 납달리는 사삼, 베냐민은 이리, 유다는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자는 짐승들 가운데 왕입니다. 사자가 밀림에서 부르짖으면 온 짇승들은 공포에 떨며 그가 먹이를 잡아도 대항할 수 없으며 그가 먹이를 움켜가도 추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자 새끼와 숫사자와 암사자로 구별하여 표현한 것은 유대 민족의 신앙의 태도가 때로는 사자 새끼처럼 움킨 것을 찢고, 때로는 숫사자처럼 움킨 것으로 만족하고, 때로는 조용하고 웅크리고, 때로는 암사자처럼 유순하게 새끼를 젖먹이고 잘 기른다는 뜻입니다. 항상 으흐렁거리고 물어 뜯는 노한 사자와 같이 남을 침략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되, 전쟁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합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사자와 같습니다. 유다 백성을 상대로 복음을 기록한 마태복음을 사자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지옥의 사자와 싸우기 위해서 나온 힘센 사자로서 지옥의 사자를 갈기갈기 찢는 힘센 능력의 사자로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감히 맞서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양과 같고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시지만 그가 노를 발하시면 숲 속에서 나온 사자같아서 자신을 적대하는 자를 전부 멸하실 것입니다 4, 000년 전 야곱을 통하여 승리의 모습을 보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최후 재림시 승리의 결과를 주실 것을 믿고 싸워 나가십시다.
3. 실로(메시야)간 오시리라
10절에 “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라고 했습니다. 홀은 옛날에 왕이 길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공식상에서 연설을 했고 왕좌에 앉을 때에는 양다리 사이에 세웠다고 합니다. 홀은 결국 왕위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치리자의 지팡이는 통치권과 법을 주는 자, 법을 세우는자의 상징입니다. 유다 지파는 구약 시대에 지배층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다른 칭호는 유대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 유대인의 왕 ” 이라 했습니다.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 예언의 절정은10절 말씀입니다. 메시야의 칭호를 실로라 한 것은 이곳에서만 표현된 것입니다. 실로라는 뜻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신임장을 친히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이 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실로라는 말은 살렘, 즉 평화를 가진 자, 평화를 주는 자로 번역됩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평화의 왕으로 오시어 평화를 주십니다.
4. 기상은 나귀 새끼 같도다
11절에 “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메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멜 것이며…… ” 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야에 대한 구체적 표현은 11-12절 말씀에 평화의 상징인 나귀를 포도나무에 메고 그 옷을 포도주로 빨리니 그 눈은 포도주보다 더 붉겠고 그 이는 우유보다 더 희로다 하여 평화를 상징합니다. 여기 보통 포도나무에 메여 있는 나귀와, 특별히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메여 있는 새끼 나귀가 구별되어 있습니다. 요 15:11에 “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 포도나무와 보통 포도나무가 있는데 여기 참 포도나무는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보통 나귀와 새끼 나귀가 있는데 새끼 나귀가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여 있는 것은 택함 받은 성도는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매여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 21:1-11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에 두 제자를 보내시며 “ 앞에 보이는 마음에 가서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 끌어 오라 ” 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끌고와서 의복을 그 위에 얹고 예수님을 태우신 다음에 앞과 뒤를 따르면서 “ 다윗 자손이여 호산나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가 복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도 호산나 하리로다 ” 라고 환영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 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새끼 나귀되는 교회와 더불어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여 가실 것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나귀처럼 순결한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 포도원이 풍성하리라(11-12절)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은 포도를 재배하기에 비옥하고 목축하기에 가장 적합하여 포도주와 우유가 풍부하다는 뜻입니다. 또 어떤 성경에는 번역하기를 창 49:12에 “ 그 눈이 포도주보다 빛나며 그 이가 우유보다 희리로다 ” 라고 했습니다. 그의 건강한 용모를 묘사한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포도주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옷을 씻어 구속받은 교회, 우유같은 신령한 말씀의 젖을 잘 받아 먹고 성장하며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로 단정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성도의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앞날을 기다리며 성결한 믿음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유다와 같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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