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청지기 (창24:1-9)
본문
성경에 보면 청지기에 관한 기록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창 26:25에 이삭에게 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창 39:4에 요셉이 보디발 집에 가정 청지기로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복음서에 보아도 예수님께서 청지지 비유로 들어 하신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눅 15:8에 지혜로운 청지기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마 20:8에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를 고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지기를 오이코노모스 “ Stewward ”라고 합니다.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관리하는 자, 즉 주인의 모든 소유물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자를 오이코노모스라 합니다. 그리고 청지기는 재산 뿐만 아니라 수하에 있는 종들을 맡아 주관하기도 합니다. 주인의 많은 종들을 자기의 임의로 주관할 수 있는 권위가 청지기에게 부여되어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재산이요, 이 지구는 아름답게 지은 저택입니다. 인간은 선한 청지기로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맡겨 주신 그 많은 재산을 잘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사명은 청지기직 수행입니다. 어느 의미에서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은 선한 청지기가 된다는 사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1.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청렴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창 24:2에 “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에 넣으라 ” 고 하였는데, 이 의식은 주인과 종의 신실한 약속을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이 청지기의 사명은 주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을 자부를 구하는 것과 주인이 맡긴 금은 보화를 적절하게 사용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청지기에게 선한 마음이 없다면 주인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얼마든지 자기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1) 낙타에 실은 금은 보화를 숨겨둔 후 주인에게 그것을 읽어버렸다고 허위 보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2) 금은 보화를 실은 낙타를 이끌고 멀리 타국으로 도망쳐 버려도 주인 아브라함은 너무 노쇠했기 때문에 그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3)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신부감이 없었으며, 그리고 금은 보화는 그동안 여비에 다 써버렸다고 해도 증인이 없는 이상 감히 문책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청지기는 선한 청지기였습니다. 나는 주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철저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과오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내 것으로 착각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에서 생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의 비극은 소유욕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싸움의 여신 에리스가 신들의 향연장에 황금 사과 한 개를 던졌습니다. 그 황금사과에는 “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 라는 글씨가 밝혀 있었습니다. 향연장에 모인 여신들은 모두가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나머지서로 그 황금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싸움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총명의 여신 아데나와 미의 여신 비너스와의 삼파전이 되었습니다. 해결이 나지 않자 제우스 신은 들에서 양치는 목동 파리스를 데려와서 그에게 선택권을 맡겼습니다. 헤라는 목동에게 황금 사과를 주면 권력을 주겠다고 했고, 총명의 여신 아데나는 지혜를 주겠다고 했으며, 미의 여신 비너스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녀를 주겠다고 했으며, 황금 사과는 결국 미녀를 주겠다고 제안한 비너스에게 돌아갔고 그 대가로 파리스는 그리이스의 왕비 헬레네를 얻게 되었습니다. 왕비를 빼앗긴 스팔타 왕 메제라 오스가 빼앗긴 왕후를 되찾기 위해서 10년간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었습니다. 소유에 대한 선한 마음이 없는 세계에는 언제나 그 소유 때문에 서로 물도 뜯고 하는 투쟁이 비극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노종처럼 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주인의 것은 주인의 것으로 생각하고 주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하는 종이 참된 청지기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2.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믿음과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함이 청지기는 사명 완수를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 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이것이 청지기가 지녀야 할 신앙적인 지혜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했으며,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지 말고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청지기의 기도는 철두철미 주인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콘은 인간생활의 지혜를 세 가지의 곤충의 지혜에 비교하여 말했습니다.
(1) 거미의 지혜-자기가 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는 지혜입니다.
(2) 개미의 지혜-자기 노력으로 살아가는 지혜
(3) 꿀벌의 지혜-이것은 자기도 살고 남도 살게 하는 지혜입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서 자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아낌없이 바치는 선한 지혜의 곤충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삭의 아내될 처녀, 나흘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만났을 때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 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성공했을 때 주께 영광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청지기의 지혜로움입니다.
3.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성실과 겸손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 문제는 선한 청지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노소득의 치부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불노소득을 바라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삶을 가리켜 “ 악하고 게으른 종 ” 이라 했습니다. 이 나라의 외채 채결의 길은 증산과 수출에 앞서 한국의 실업인들이 선한 청지기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이 없을 때 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합니다. 포항 S병원장 장로님은 6,25때 월남하여 해병대 군의관으로 군무하다가 퇴역 후 조그마한 병원을 인수하여 소아과 의원을 개설했습니다. 이 장로님의 신념은 “ 자기 직책에 충실한 삶 ” 에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와 병원에서 자기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을 생활의 신조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평생을 통하여 자리를 비운 날은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그 장로님이 가장 아픈 일은 단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이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다가 약물중독으로 죽은 일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장로님은 해외여행이나 서울 여행도 단념하고 오직 자기 일에 충실하는 것만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은퇴가 가까워지자 시가 50억 상당의 종합 병원을 노희재단에 헌납하고 그의 소유는 교회 건축에 전부 헌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누가 찬사를 보내면 “ 신자로서 장로로서 의사로서 내가 응당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 하면서 겸손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 상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ale음과 지혜로 처리하며 끝까지 성실과 겸손의 자세로 충성하는 그 사람이 진정한 선한 청지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청지기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1.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청렴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창 24:2에 “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에 넣으라 ” 고 하였는데, 이 의식은 주인과 종의 신실한 약속을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이 청지기의 사명은 주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을 자부를 구하는 것과 주인이 맡긴 금은 보화를 적절하게 사용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청지기에게 선한 마음이 없다면 주인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얼마든지 자기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1) 낙타에 실은 금은 보화를 숨겨둔 후 주인에게 그것을 읽어버렸다고 허위 보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2) 금은 보화를 실은 낙타를 이끌고 멀리 타국으로 도망쳐 버려도 주인 아브라함은 너무 노쇠했기 때문에 그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3) 아무리 찾아도 적당한 신부감이 없었으며, 그리고 금은 보화는 그동안 여비에 다 써버렸다고 해도 증인이 없는 이상 감히 문책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청지기는 선한 청지기였습니다. 나는 주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철저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과오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내 것으로 착각하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에서 생의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의 비극은 소유욕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싸움의 여신 에리스가 신들의 향연장에 황금 사과 한 개를 던졌습니다. 그 황금사과에는 “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 라는 글씨가 밝혀 있었습니다. 향연장에 모인 여신들은 모두가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나머지서로 그 황금 사과는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싸움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와 총명의 여신 아데나와 미의 여신 비너스와의 삼파전이 되었습니다. 해결이 나지 않자 제우스 신은 들에서 양치는 목동 파리스를 데려와서 그에게 선택권을 맡겼습니다. 헤라는 목동에게 황금 사과를 주면 권력을 주겠다고 했고, 총명의 여신 아데나는 지혜를 주겠다고 했으며, 미의 여신 비너스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녀를 주겠다고 했으며, 황금 사과는 결국 미녀를 주겠다고 제안한 비너스에게 돌아갔고 그 대가로 파리스는 그리이스의 왕비 헬레네를 얻게 되었습니다. 왕비를 빼앗긴 스팔타 왕 메제라 오스가 빼앗긴 왕후를 되찾기 위해서 10년간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었습니다. 소유에 대한 선한 마음이 없는 세계에는 언제나 그 소유 때문에 서로 물도 뜯고 하는 투쟁이 비극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아브라함의 노종처럼 선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주인의 것은 주인의 것으로 생각하고 주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하는 종이 참된 청지기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2.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믿음과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람함이 청지기는 사명 완수를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 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이것이 청지기가 지녀야 할 신앙적인 지혜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했으며,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지 말고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청지기의 기도는 철두철미 주인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콘은 인간생활의 지혜를 세 가지의 곤충의 지혜에 비교하여 말했습니다.
(1) 거미의 지혜-자기가 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는 지혜입니다.
(2) 개미의 지혜-자기 노력으로 살아가는 지혜
(3) 꿀벌의 지혜-이것은 자기도 살고 남도 살게 하는 지혜입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서 자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아낌없이 바치는 선한 지혜의 곤충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삭의 아내될 처녀, 나흘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만났을 때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 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성공했을 때 주께 영광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청지기의 지혜로움입니다.
3.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 성실과 겸손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 문제는 선한 청지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노소득의 치부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불노소득을 바라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삶을 가리켜 “ 악하고 게으른 종 ” 이라 했습니다. 이 나라의 외채 채결의 길은 증산과 수출에 앞서 한국의 실업인들이 선한 청지기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이 없을 때 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합니다. 포항 S병원장 장로님은 6,25때 월남하여 해병대 군의관으로 군무하다가 퇴역 후 조그마한 병원을 인수하여 소아과 의원을 개설했습니다. 이 장로님의 신념은 “ 자기 직책에 충실한 삶 ” 에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와 병원에서 자기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을 생활의 신조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평생을 통하여 자리를 비운 날은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그 장로님이 가장 아픈 일은 단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이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하다가 약물중독으로 죽은 일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장로님은 해외여행이나 서울 여행도 단념하고 오직 자기 일에 충실하는 것만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은퇴가 가까워지자 시가 50억 상당의 종합 병원을 노희재단에 헌납하고 그의 소유는 교회 건축에 전부 헌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누가 찬사를 보내면 “ 신자로서 장로로서 의사로서 내가 응당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 하면서 겸손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 상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ale음과 지혜로 처리하며 끝까지 성실과 겸손의 자세로 충성하는 그 사람이 진정한 선한 청지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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