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종 (창24:28-67)
본문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세상에 태어났다가 출세를 하고 이름을 떨쳐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이든 자기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명보다는 기명을 더 좋아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름을 밝히는 기명의 때가 훨씬 성과가 있는 것을 보아 현저한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아브라함의 종은 전혀 자기의 이름이나 명성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익명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아브라함가의 일등 비서실장인데도 불구하고 장장 창세기 24장 전장에 걸쳐서 그의 이름이 크게 소개되어 있지 않음을 봅니다. 그는 그저 종이라는 대명사만 무려 열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아브라함 가에서 태어나서 양육함을 다메섹 족속인 늙은 엘리에셀이란 것을 창 15:2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이 이름은 언제나 숨겨져 있고 다만 종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다만 주인되는 아브라함의 이름 아래 숨겨져 있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종으로 택함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숨겨져 있어야 하고 또한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죄인된 나의 존재는 벌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그 안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 나 아무개 ”, “ 내가 ” 라고 튀여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 황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종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만을 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주인 아브라함만을 생각하고, 주인만을 높이고, 주인만을 자랑하고 위하여 살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 우리 주인 ” 이라는 말과 “ 내 주인 ”, “ 나의 주인 ” 이 라는 말씀이 무려 여덟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종은 자기의 속 중심이나 겉이나 생각이 다 주인 중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먹는 데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입으로 먹은 것은 소화되어 변으로 나오기 마련이요,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사상과 생각은 맑로 쏟아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의 마음 속에는 항상 내 주인으로만 가득 차 있었기에 입으로 나오는 말도 주인 밖에 없었습니다. 이 종은 모든 일에 주인만 자랑했습니다. 12절에 “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 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 종은 그만큼 주인 아브라함만을 생각하고 자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으로 세움받았으니, 우리는 예수만을 생각하고 예수만을 자랑하고 전하면서 살아야 될 줄 압니다.l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말하길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줄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런고로 사난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라고 했으며, “ 살던지 죽던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노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 ” 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들로서 주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사람을 높이고 인간 육신의 생각만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하게 여기시며 마음아파 하실런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 나의 평생 자랑은 십자가 뿐이로다 ” 이렇게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신임을 받은 종입니다.
종으로서 주인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주인은 또한 언제나 신임할만한 종을 두기란 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한 가지로부터 열 가지를 모두 맡길만한 신실한 종을 만날 수 있다면 주인도 복되고 또한 그 종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모든 소유를 맡길 수 있으리만큼 주인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만큼 일에 신실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무슨 일에나 거짓되고 흐리터분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유에 대한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종인지라 소유를 맡길 뿐만 아니라 독자 이삭의 처를 중매하는 중임까지 맡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부를 맞읻,f이는 일은 그 가정의 장래가 결정되는 중한 일인줄로 믿습니다. 그런 중임을 맡겼다는 것은 벌써 그 종에 대한 신임도가 얼마나 두터웠던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오늘 우리는 주의 종들이라 할진데 우리가 사람에게 신임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주님 앞에 신임받고 인정받는 종들이 되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옳다고 인정하시면 만사가 형통이요 그런 종이 있는 교회는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는 종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분부를 받고 출발부터 기도함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하루 생활의 첫시간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슨 일에나 기도없이 시작하신 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일에나 기도없는 생활은 비없는 구름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없고 주의 도움도 없이 살아보겠다는 인본주의요 인간 만능을 외치는 어리석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 주를 따르는 자의 생활이란 주께 모든 것을 아뢰고 또 주께서 받은 힘으로 사는 것인데 기도없이 어떻게 주의 뜻을 알 것이며, 기도없이 어떻게 그의 뜻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마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메소포타미아 우물에서 리브가를 만나 한 두 마다의 대화가 있자 곧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이고 여호와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그 다음 리브가의 부모들로부터 허락을 받고서도 즉시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진실로 이 종은 기도로 일관한 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곧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중지됐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없는 성도, 기도없는 종은 죽은 성도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기도는 성령받는 지름길이며 기도는 부흥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부흥사인 스펄존 목사는 찾아온 목회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 목사님의 목회 성공 비결을 듣고 싶다 ”는 것입니다. 스펄존 목사님은 찾아온 목사님들을 안내했습니다. “ 따라 오시오. ” 따라가는데 교회 지하실에 안내합니다. 문을 열어보니 기도하는 성도들이 조를 짜서 교대로 기도하는데 기도 소리가 끊어지지 아니했다 합니다. 스펄존 목사는 말하기를 “ 이것이 곧 나의 목회 성공의 비결이요 이것이 교회 부흥의 저력입니다 ” 라고 했다 합니다. 옳습니다. 기도는 곧 주의 종을 신령하게 만드는 고구요, 기도는 곧 힘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며, 기도는 곧 하나님의 눈에 들게 하여 교회는 부흥되고 본인은 능력생활ㅇㄹ 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교회는 목사, 장로, 권사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기도없는 목사, 기도없는 부흥사, 기도없는 신학자, 기도없는 장로, 기도없는 권사, 기도없는 성도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무쪼록 말세에 사명받은 여러분은 기도의 종들이 다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는 종으로서 맡은 직무와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주인의 소유물에 대한 관리의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아브라함의 자부를 맞아들이는 중대한 사명까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완성할 수가 있었으니 그는 진실로 종으로서 받을 상금과 칭찬만이 기다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장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주 앞에 서게 되면 “ 오 충성된 종이여 작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이제 더 큰 일을 맡기리니 네 주인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라며 충성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주인된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되어 큰 능력과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무명보다는 기명을 더 좋아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름을 밝히는 기명의 때가 훨씬 성과가 있는 것을 보아 현저한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아브라함의 종은 전혀 자기의 이름이나 명성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익명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중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아브라함가의 일등 비서실장인데도 불구하고 장장 창세기 24장 전장에 걸쳐서 그의 이름이 크게 소개되어 있지 않음을 봅니다. 그는 그저 종이라는 대명사만 무려 열 두 번이나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아브라함 가에서 태어나서 양육함을 다메섹 족속인 늙은 엘리에셀이란 것을 창 15:2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이 이름은 언제나 숨겨져 있고 다만 종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다만 주인되는 아브라함의 이름 아래 숨겨져 있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종으로 택함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숨겨져 있어야 하고 또한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죄인된 나의 존재는 벌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그 안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 나 아무개 ”, “ 내가 ” 라고 튀여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 황송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종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만을 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주인 아브라함만을 생각하고, 주인만을 높이고, 주인만을 자랑하고 위하여 살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 우리 주인 ” 이라는 말과 “ 내 주인 ”, “ 나의 주인 ” 이 라는 말씀이 무려 여덟 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종은 자기의 속 중심이나 겉이나 생각이 다 주인 중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먹는 데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입으로 먹은 것은 소화되어 변으로 나오기 마련이요,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사상과 생각은 맑로 쏟아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의 마음 속에는 항상 내 주인으로만 가득 차 있었기에 입으로 나오는 말도 주인 밖에 없었습니다. 이 종은 모든 일에 주인만 자랑했습니다. 12절에 “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 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 종은 그만큼 주인 아브라함만을 생각하고 자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으로 세움받았으니, 우리는 예수만을 생각하고 예수만을 자랑하고 전하면서 살아야 될 줄 압니다.l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말하길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줄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런고로 사난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라고 했으며, “ 살던지 죽던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노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 ” 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들로서 주님만을 사랑하고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사람을 높이고 인간 육신의 생각만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하게 여기시며 마음아파 하실런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 나의 평생 자랑은 십자가 뿐이로다 ” 이렇게 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신임을 받은 종입니다.
종으로서 주인의 신임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주인은 또한 언제나 신임할만한 종을 두기란 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한 가지로부터 열 가지를 모두 맡길만한 신실한 종을 만날 수 있다면 주인도 복되고 또한 그 종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종은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모든 소유를 맡길 수 있으리만큼 주인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만큼 일에 신실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무슨 일에나 거짓되고 흐리터분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유에 대한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종인지라 소유를 맡길 뿐만 아니라 독자 이삭의 처를 중매하는 중임까지 맡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부를 맞읻,f이는 일은 그 가정의 장래가 결정되는 중한 일인줄로 믿습니다. 그런 중임을 맡겼다는 것은 벌써 그 종에 대한 신임도가 얼마나 두터웠던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오늘 우리는 주의 종들이라 할진데 우리가 사람에게 신임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주님 앞에 신임받고 인정받는 종들이 되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옳다고 인정하시면 만사가 형통이요 그런 종이 있는 교회는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는 종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분부를 받고 출발부터 기도함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하루 생활의 첫시간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슨 일에나 기도없이 시작하신 바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일에나 기도없는 생활은 비없는 구름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없고 주의 도움도 없이 살아보겠다는 인본주의요 인간 만능을 외치는 어리석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 주를 따르는 자의 생활이란 주께 모든 것을 아뢰고 또 주께서 받은 힘으로 사는 것인데 기도없이 어떻게 주의 뜻을 알 것이며, 기도없이 어떻게 그의 뜻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마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종은 메소포타미아 우물에서 리브가를 만나 한 두 마다의 대화가 있자 곧 그 자리에서 머리를 숙이고 여호와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그 다음 리브가의 부모들로부터 허락을 받고서도 즉시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진실로 이 종은 기도로 일관한 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곧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호흡이 중지됐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없는 성도, 기도없는 종은 죽은 성도인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기도는 성령받는 지름길이며 기도는 부흥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부흥사인 스펄존 목사는 찾아온 목회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 목사님의 목회 성공 비결을 듣고 싶다 ”는 것입니다. 스펄존 목사님은 찾아온 목사님들을 안내했습니다. “ 따라 오시오. ” 따라가는데 교회 지하실에 안내합니다. 문을 열어보니 기도하는 성도들이 조를 짜서 교대로 기도하는데 기도 소리가 끊어지지 아니했다 합니다. 스펄존 목사는 말하기를 “ 이것이 곧 나의 목회 성공의 비결이요 이것이 교회 부흥의 저력입니다 ” 라고 했다 합니다. 옳습니다. 기도는 곧 주의 종을 신령하게 만드는 고구요, 기도는 곧 힘있는 설교를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며, 기도는 곧 하나님의 눈에 들게 하여 교회는 부흥되고 본인은 능력생활ㅇㄹ 하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교회는 목사, 장로, 권사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기도없는 목사, 기도없는 부흥사, 기도없는 신학자, 기도없는 장로, 기도없는 권사, 기도없는 성도들 때문에 문제입니다. 아무쪼록 말세에 사명받은 여러분은 기도의 종들이 다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는 종으로서 맡은 직무와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주인의 소유물에 대한 관리의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아브라함의 자부를 맞아들이는 중대한 사명까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완성할 수가 있었으니 그는 진실로 종으로서 받을 상금과 칭찬만이 기다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장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주 앞에 서게 되면 “ 오 충성된 종이여 작은 일에 충성하였음에 이제 더 큰 일을 맡기리니 네 주인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라며 충성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의 종과 같이 주인된 하나님께 인정받는 종이 되어 큰 능력과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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