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이민 (골1:13-14)
본문
인류 역사는 이민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요셉 때에 애굽에 이민하였다가 모세 때에 다시 가나안에 이민하였고 느브갓네살 왕 때에 바벨론으로 이민 갔다가 70년을 지나 스룹바벨 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그 후 다시 세계에 흩어졌다가 1948년 이후 또 다시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여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한 가나안 땅으로 모여 들고 있으니 이스라엘의 전 역사는 이민으로 점철된 역사인 것입니다. 현재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민족은 멀리 북방으로부터 남방변으로 이동한 민족들이었고 아메리카 주민은 모두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요, 우리 한국도 5000여 년 전에 송화강 연안에서부터 태백산을 중심하여 남하하였던 민족입니다. 이민은 결국 본국을 떠나 타지방으로 이주하는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을 분류해 보면 자유 이민과 계약 이민, 영주 이민과 임시 이민, 기업 이민과 노동 이민, 농업 이민과 공업 이민, 가족 이민과 단독 이민, 계획 이민과 고용 이민 등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한 이민이 나타나는데 이 이민은 종교 이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1. 흑암의 권세로부터의 이민입니다 흑암의 권세로부터의 이민이라 함은 흑암의 권세가 지옥의 권세요 마귀의 권세이므로 이 지옥의 권세, 마귀의 권세로부터의 이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음행, 우상, 원수 맺음, 쟁투, 시기, 분노, 작당, 이단, 질투, 술 취함, 방탕 등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흑암의 권세 하에 지배되는 사람의 마음과 가정과 그 사회에는 암흑이 들어와서 진리와 의와 사랑 등의 광명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과 가정, 사회는 죽음의 대합소요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때에 종살이를 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이곳이 흑암의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인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암흑 권세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 땅에 인도한 것입니다. 악마의 권세 하에 있는 人生의 고통은 바로의 권세 하에서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의 고통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마의 세력이 크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십니다.
2.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이민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요 아버지의 본질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들이요 천국의 왕도 되십니다. 그 천국은 성부가 성자를 사랑하고 성자가 성부를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즉,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성부, 성자, 성령, 사람이 모두 사랑으로 한 덩어리 된 나라요, 神神愛, 神人愛, 人人愛의 사랑의 나라가 천국입니다. 계 21:11에 금강석으로 쌓은 성, 열두 보석으로 터 닦는 성, 열두 진주 문을 열어 놓은 성, 하나님 영광의 빛에 해와 달도 그 빛이 감취어지는 영광의 천성이 바로 천국입니다. 또 계 22장에 생명수 강이 넘쳐흐르고 생명수 강 좌우에 사시사철 열두 종류의 생명과를 맺는 생명 낙원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요 천국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거기는 성도들만 있는 곳입니다. 천사가 시중듭니다. 죄가 없는 곳입니다. 새 찬송이 충만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 그를 섬기며 교제하는 곳입니다. 다시는 주림이나 갈함이 없는 곳입니다. 눈물과 이별이 없는 곳입니다. 옛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70년 기간을 지나고 고레스 왕에게 해방 얻어 고국 땅 유대에 돌아올 때에 요단강의 물소리를 다시 듣고 헤르몬 산을 바라보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70년간 못 부르던 시온 노래를 높이었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환국의 기쁨도 이처럼 클진대 우리의 아름다운 천국 이민의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3. 속죄함을 얻은 자가 천국 이민 갈 수 있습니다 14절에 “그 이름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천국 이민 외에 또 다른 이민이 있으니 그것은 지옥 이민입니다, 이세상은 천국 이민과 지옥 이민의 두 대합실입니다. 교회는 천국 이민의 대합실이요 죄악 된 세상은 지옥 이민의 대합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입을 때 우리는 천국으로 이민을 갈 수 있습니다. 1898년 3월의 일입니다. 당시 이태리와 터키군은 이디오피아를 침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디오피아 황제 멜릭 2세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연합 침략군을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태리 연합군은 7천명이 전사당하고 4천명이 포로가 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패전한 이태리는 이디오피아의 독립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황제는 포로 된 자기 백성 4천명을 찾기 위해 포로의 몸값으로 40만 시라를 지불하고 그 백성을 찾아내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바로 구속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종이 되어서(요 8:34) 사망과 감옥에 포로가 되었던(롬 3:23) 우리를 해방하기 위하여 대속의 값으로 그 몸을 십자가에 지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 44:22에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라고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낮은 몸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를 받아(빌 3:21) 하늘을 오가는 신비의 생명을 받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땅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차 올 것을 찾아 순례자의 자세를 가다듬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며 위엣 것이 나타나기를 대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하는 주님의 나라로 옮겨가는 천국 이민인 것입니다.
1. 흑암의 권세로부터의 이민입니다 흑암의 권세로부터의 이민이라 함은 흑암의 권세가 지옥의 권세요 마귀의 권세이므로 이 지옥의 권세, 마귀의 권세로부터의 이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음행, 우상, 원수 맺음, 쟁투, 시기, 분노, 작당, 이단, 질투, 술 취함, 방탕 등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흑암의 권세 하에 지배되는 사람의 마음과 가정과 그 사회에는 암흑이 들어와서 진리와 의와 사랑 등의 광명이 없습니다. 이런 마음과 가정, 사회는 죽음의 대합소요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때에 종살이를 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민족에게는 이곳이 흑암의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인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암흑 권세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 땅에 인도한 것입니다. 악마의 권세 하에 있는 人生의 고통은 바로의 권세 하에서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의 고통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마의 세력이 크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십니다.
2.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이민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시요 아버지의 본질인 사랑을 나타내는 아들이요 천국의 왕도 되십니다. 그 천국은 성부가 성자를 사랑하고 성자가 성부를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즉,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성부, 성자, 성령, 사람이 모두 사랑으로 한 덩어리 된 나라요, 神神愛, 神人愛, 人人愛의 사랑의 나라가 천국입니다. 계 21:11에 금강석으로 쌓은 성, 열두 보석으로 터 닦는 성, 열두 진주 문을 열어 놓은 성, 하나님 영광의 빛에 해와 달도 그 빛이 감취어지는 영광의 천성이 바로 천국입니다. 또 계 22장에 생명수 강이 넘쳐흐르고 생명수 강 좌우에 사시사철 열두 종류의 생명과를 맺는 생명 낙원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요 천국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거기는 성도들만 있는 곳입니다. 천사가 시중듭니다. 죄가 없는 곳입니다. 새 찬송이 충만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 그를 섬기며 교제하는 곳입니다. 다시는 주림이나 갈함이 없는 곳입니다. 눈물과 이별이 없는 곳입니다. 옛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70년 기간을 지나고 고레스 왕에게 해방 얻어 고국 땅 유대에 돌아올 때에 요단강의 물소리를 다시 듣고 헤르몬 산을 바라보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70년간 못 부르던 시온 노래를 높이었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환국의 기쁨도 이처럼 클진대 우리의 아름다운 천국 이민의 기쁨은 어떻겠습니까
3. 속죄함을 얻은 자가 천국 이민 갈 수 있습니다 14절에 “그 이름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천국 이민 외에 또 다른 이민이 있으니 그것은 지옥 이민입니다, 이세상은 천국 이민과 지옥 이민의 두 대합실입니다. 교회는 천국 이민의 대합실이요 죄악 된 세상은 지옥 이민의 대합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입을 때 우리는 천국으로 이민을 갈 수 있습니다. 1898년 3월의 일입니다. 당시 이태리와 터키군은 이디오피아를 침략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디오피아 황제 멜릭 2세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연합 침략군을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태리 연합군은 7천명이 전사당하고 4천명이 포로가 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패전한 이태리는 이디오피아의 독립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황제는 포로 된 자기 백성 4천명을 찾기 위해 포로의 몸값으로 40만 시라를 지불하고 그 백성을 찾아내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바로 구속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종이 되어서(요 8:34) 사망과 감옥에 포로가 되었던(롬 3:23) 우리를 해방하기 위하여 대속의 값으로 그 몸을 십자가에 지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 44:22에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라고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낮은 몸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를 받아(빌 3:21) 하늘을 오가는 신비의 생명을 받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 땅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차 올 것을 찾아 순례자의 자세를 가다듬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며 위엣 것이 나타나기를 대망합니다. 그것이 바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하는 주님의 나라로 옮겨가는 천국 이민인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