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되는 복음 (아2:16-17)
본문
16절에 기록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네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라는 말씀은 단순히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이름입니다. 즉 “서로 속하며 떠날 수 없는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겠습니까
1. 서로 같은 이름들임을 보아서 이름은 품격과 인격들의 총칭이라 할 것입니다.
(1) 남자와 여자 아담이 신부 하와를 가리켜서 “이는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창 2:23)고 했습니다. 어원을 볼 때 남자는“이쉬”, 여자는 “잇쇠”라고 부릅니다. 이는 “한 몸에서 나왔고 한 몸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2) 솔로몬과 술람미 평화라는 뜻으로 솔로몬과 술람미는 어근이 같습니다.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요, 술람미는 평화를 구하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짝이 되는 것은 서로 이름도 소속이 같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같은 어근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는 남성어, 그리스도인은 여성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신랑과 신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부라는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생활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서로 주객임을 보아서 주님은 우리의 조인이 되사 우리를 주장하시고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는 신부로 주님을 반가이 영접합니다. 주객이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솜을 물 속에 넣으면 물을 빨아들이고 물이 솜에 들어가서 피차 하나가 되는 그런 일체를 말합니다. 이는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4-7)는 말씀은 일체된 신앙이 주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서로 양식이 됨을 보아서 계 3:3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서로 교통하며 서로 교제하며 피차의 양식이 되어 자기희생으로 하나가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식은 생물체에 가장 긴요한 필수품입니다. 주님과 신자 사이에 생명과 양식 같 은 친밀한 관계를 서로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주님은 우리의 양식입니다. 요 6:48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했고, 요 6:51에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요”라고 했으며, 요 8:55에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라고 말씀하였으니 주님은 곧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와 마시던 샘물과 달라서 영생을 주시는 양식인 것입니다. 요 11:25-26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시면서 부활의 약속과 같이 생명의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양식입니다. 요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신자는 서로 양식이 되어 서로 연결되는 것이니 우리를 통하여서 주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그 분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4. 서로 성전 됨을 보아서
(1) 주님은 우리의 성전이 되십니다. 요 2:19에 “이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가 십자가에 고난 후 사흘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참 성전은 주 예수시니 곧 생명의 빛과 떡이 있는 곳이요 영원히 교통할 수 있는 지성소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고전 6:19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고 하셨고, 고후 6:16에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 말씀은 신자는 주님의 성소이며 성소가 된다는 황송한 복음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주의 성전 이라면 속죄의 보혈이 있어야 하며 영생의 만나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향기에는 늘 불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의 생명의 빛과 떡이 우리를 통해서 늘 보여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봉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신랑 신부의 관계됨을 보아서 고전 7:4에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가장 긴밀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1) 주님은 교회의 신랑이 되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그리스도와 우리 관계를 부부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깊은 밤중에 신랑을 맞이하는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살전 3:17에 공중 혼인잔치를 약속하신 우리 신랑은 반드시 오실터이니 우리는 신부로서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부의 예복입기에, 밥을 짓고,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일에 하나라도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2) 교회는 주의 신부가 됩니다. 타락되었던 우리 인간이 주님의 신부가 되고 주님과 한 몸이 된다는 사실, 이 은혜야말로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깨닫고 이 축복을 체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의 사랑의 면류관을 얻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서로 같은 이름들임을 보아서 이름은 품격과 인격들의 총칭이라 할 것입니다.
(1) 남자와 여자 아담이 신부 하와를 가리켜서 “이는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창 2:23)고 했습니다. 어원을 볼 때 남자는“이쉬”, 여자는 “잇쇠”라고 부릅니다. 이는 “한 몸에서 나왔고 한 몸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2) 솔로몬과 술람미 평화라는 뜻으로 솔로몬과 술람미는 어근이 같습니다. 솔로몬은 평화의 왕이요, 술람미는 평화를 구하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짝이 되는 것은 서로 이름도 소속이 같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같은 어근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는 남성어, 그리스도인은 여성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신랑과 신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부라는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생활하여야 할 것입니다.
2. 서로 주객임을 보아서 주님은 우리의 조인이 되사 우리를 주장하시고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는 신부로 주님을 반가이 영접합니다. 주객이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솜을 물 속에 넣으면 물을 빨아들이고 물이 솜에 들어가서 피차 하나가 되는 그런 일체를 말합니다. 이는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4-7)는 말씀은 일체된 신앙이 주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3. 서로 양식이 됨을 보아서 계 3:3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서로 교통하며 서로 교제하며 피차의 양식이 되어 자기희생으로 하나가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식은 생물체에 가장 긴요한 필수품입니다. 주님과 신자 사이에 생명과 양식 같 은 친밀한 관계를 서로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1) 주님은 우리의 양식입니다. 요 6:48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고 했고, 요 6:51에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요”라고 했으며, 요 8:55에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라고 말씀하였으니 주님은 곧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던 만나와 마시던 샘물과 달라서 영생을 주시는 양식인 것입니다. 요 11:25-26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시면서 부활의 약속과 같이 생명의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양식입니다. 요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과 신자는 서로 양식이 되어 서로 연결되는 것이니 우리를 통하여서 주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그 분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4. 서로 성전 됨을 보아서
(1) 주님은 우리의 성전이 되십니다. 요 2:19에 “이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께서 성전된 자기 육체가 십자가에 고난 후 사흘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참 성전은 주 예수시니 곧 생명의 빛과 떡이 있는 곳이요 영원히 교통할 수 있는 지성소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고전 6:19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고 하셨고, 고후 6:16에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 말씀은 신자는 주님의 성소이며 성소가 된다는 황송한 복음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주의 성전 이라면 속죄의 보혈이 있어야 하며 영생의 만나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기도의 향기에는 늘 불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의 생명의 빛과 떡이 우리를 통해서 늘 보여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봉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5. 신랑 신부의 관계됨을 보아서 고전 7:4에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가장 긴밀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1) 주님은 교회의 신랑이 되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그리스도와 우리 관계를 부부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깊은 밤중에 신랑을 맞이하는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살전 3:17에 공중 혼인잔치를 약속하신 우리 신랑은 반드시 오실터이니 우리는 신부로서 신랑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신부의 예복입기에, 밥을 짓고,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일에 하나라도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2) 교회는 주의 신부가 됩니다. 타락되었던 우리 인간이 주님의 신부가 되고 주님과 한 몸이 된다는 사실, 이 은혜야말로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깨닫고 이 축복을 체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의 사랑의 면류관을 얻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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