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서론 (출20:18-21)
본문
모세의 법률이야말로 저 바벨론 왕이었던 하므라비의 법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보건데 이스라엘 백성은 일찍부터 법률을 가진 민족이며 법치국가로버 우수한 민족임을 알게 됩니다.
1. 율법의 요약과 정신 출 20:18-24까지는 율법에 관한 여러 가지 원칙과 세칙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것을 요약한 것이 곧 10계명입니다. 10계명을 세 구분하는 학자도 있으나 크게 나누면 2계명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며, 5-10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이를 각각 두개의 돌비에 새겨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수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0계명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특히 5-10계명까지 인륜에 관한 계율을 보면 언어, 의사, 행위 등으로지. 정. 의의 온갖 기능을 다 발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사랑이 없기에 하나님께 범죄하고 사랑 없음으로 사람에게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마 22:37-4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더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그 성격상 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u)에 속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율법을 주신 이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러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사랑하고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게 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본장에서 여호와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를 이상과 같이 설명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사막의 왕국인 애굽에서 성장하여 산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저들은 이 적갈색의 시내산을 바라만 보아도 경외감을 느끼는 데다가 검은 구름이 감돌며 연기가 치솟는 장관과 아울러 뇌성벽력의 섬광과 우렁찬 나팔 소리와 함께 선포되는 율법이야말로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과 함께 주어진 제사 제도에서 역시 번제단에 타오르는 연기와 절기를 알리는 나팔 소리 등에서 언제나 시내산의 장관을 회상하며 경외감에 사로잡혔고 이런 장관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악을 자각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율법이란 사람을 시험하고 여호와를 경외케 하며 범죄치 않게 하려고 주어진 것입니다. 가령 인간의 마음 속에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면 율법을 통한 규제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칼을 가지고 자리를 상할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는 칼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내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범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이를 견제하여 범죄를 미연에 방지케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고전 15:56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3. 강림 목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면 그들은 감당 못하여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대신 전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직접 거룩하시고 엄위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모양을 보거나 그 말씀을 듣고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기타 여러 가지 율법을 받아서 이것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선지자의 일을 수행하였는데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을 전하고 가르치고 강론하는 것은 다선지자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 말씀을 강론하는 모든 사람은 다 선지자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20절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것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범죄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강림 목적은
(1) 너희를 시험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나 아니하나를 알아 보시려고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존경하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태평하제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는 멸망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땅에 강림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던 것입니다.
(3) 범죄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나 안하나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범죄치 아니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범죄하지 아니하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입니다.
4. 율법과 복음의 차이
(1) 율법의 엄격성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롬 7:13에 “율법은 죄로 죄 되게 하려고 들어왔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엄격한 것입니다.
1) 율법은 거울과 같습니다. 인간의 도덕적인 상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거울이 바로율법이란 것입니다. 만일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우리의 흠을 더 있게 하거나 있는 흉을 없애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줄 따름입니다.
2) 등불과도 같습니다. 어두운 밤에 우리 앞에 장애물을 보여주지만 제거시키지는 않습니다. 이같이 율법은 죄를 짓게 하거나 또는 없이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죄를 죄로 지적해 줄 뿐입니다. 마치 어두운 방안에 있는 사람이 방안 공기가 얼마나 혼탁한 것인가를 잘 감지 못하다가도 아침에 밝은 태양 광선이 그 방을 비치면 그 더럽고 혼탁한 공기를 알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엄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순수성, 위엄성, 그리고 완고성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율법은 그 자체의 표준 이상도, 이하로도 변개치는 않습니다.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율법의 권위입니다.
(2) 복음의 관대성 율법과 달리 복음은 관대성을 지녔습니다. 이는 곧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야말로 죄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그리스도께서 다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형수가 사형을 구형받고도 법관 앞에서 태연자약 하였습니다. 검사의 논고가 다 끝나자, 그는 포켓에서 무슨 글이 적혀 있는 서류를 꺼내어 재판장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은 그 선조 중 국가에 큰 공로를 세운 공신의 후예이니 만큼 여하한 죄상이라도 무죄 사면하라”는 왕의 특사장이었습니다. 이 죄수야말로 자신의 죄를 능히 담당할만한 공로를 세운 조상의 덕으로 형벌에서 면제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롬 8:1-2에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복음은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가장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율법의 요약과 정신 출 20:18-24까지는 율법에 관한 여러 가지 원칙과 세칙들이 수록되어 있지만 이것을 요약한 것이 곧 10계명입니다. 10계명을 세 구분하는 학자도 있으나 크게 나누면 2계명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며, 5-10계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이를 각각 두개의 돌비에 새겨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수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10계명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특히 5-10계명까지 인륜에 관한 계율을 보면 언어, 의사, 행위 등으로지. 정. 의의 온갖 기능을 다 발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사랑이 없기에 하나님께 범죄하고 사랑 없음으로 사람에게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마 22:37-4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더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그 성격상 정(적인 것이 아니라 의(u)에 속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율법을 주신 이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러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사랑하고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게 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본장에서 여호와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를 이상과 같이 설명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사막의 왕국인 애굽에서 성장하여 산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저들은 이 적갈색의 시내산을 바라만 보아도 경외감을 느끼는 데다가 검은 구름이 감돌며 연기가 치솟는 장관과 아울러 뇌성벽력의 섬광과 우렁찬 나팔 소리와 함께 선포되는 율법이야말로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과 함께 주어진 제사 제도에서 역시 번제단에 타오르는 연기와 절기를 알리는 나팔 소리 등에서 언제나 시내산의 장관을 회상하며 경외감에 사로잡혔고 이런 장관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악을 자각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율법이란 사람을 시험하고 여호와를 경외케 하며 범죄치 않게 하려고 주어진 것입니다. 가령 인간의 마음 속에 범죄의 가능성이 없다면 율법을 통한 규제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칼을 가지고 자리를 상할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는 칼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내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범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이를 견제하여 범죄를 미연에 방지케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고전 15:56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선언했습니다.
3. 강림 목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면 그들은 감당 못하여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대신 전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직접 거룩하시고 엄위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모양을 보거나 그 말씀을 듣고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기타 여러 가지 율법을 받아서 이것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선지자의 일을 수행하였는데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선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을 전하고 가르치고 강론하는 것은 다선지자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 말씀을 강론하는 모든 사람은 다 선지자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20절에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것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범죄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강림 목적은
(1) 너희를 시험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나 아니하나를 알아 보시려고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존경하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태평하제 죄를 짓고도 회개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는 멸망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땅에 강림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던 것입니다.
(3) 범죄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나 안하나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범죄치 아니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범죄하지 아니하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입니다.
4. 율법과 복음의 차이
(1) 율법의 엄격성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롬 7:13에 “율법은 죄로 죄 되게 하려고 들어왔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율법은 엄격한 것입니다.
1) 율법은 거울과 같습니다. 인간의 도덕적인 상태를 보여주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거울이 바로율법이란 것입니다. 만일 거울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우리의 흠을 더 있게 하거나 있는 흉을 없애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줄 따름입니다.
2) 등불과도 같습니다. 어두운 밤에 우리 앞에 장애물을 보여주지만 제거시키지는 않습니다. 이같이 율법은 죄를 짓게 하거나 또는 없이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죄를 죄로 지적해 줄 뿐입니다. 마치 어두운 방안에 있는 사람이 방안 공기가 얼마나 혼탁한 것인가를 잘 감지 못하다가도 아침에 밝은 태양 광선이 그 방을 비치면 그 더럽고 혼탁한 공기를 알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엄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순수성, 위엄성, 그리고 완고성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율법은 그 자체의 표준 이상도, 이하로도 변개치는 않습니다.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율법의 권위입니다.
(2) 복음의 관대성 율법과 달리 복음은 관대성을 지녔습니다. 이는 곧 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야말로 죄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그리스도께서 다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형수가 사형을 구형받고도 법관 앞에서 태연자약 하였습니다. 검사의 논고가 다 끝나자, 그는 포켓에서 무슨 글이 적혀 있는 서류를 꺼내어 재판장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은 그 선조 중 국가에 큰 공로를 세운 공신의 후예이니 만큼 여하한 죄상이라도 무죄 사면하라”는 왕의 특사장이었습니다. 이 죄수야말로 자신의 죄를 능히 담당할만한 공로를 세운 조상의 덕으로 형벌에서 면제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롬 8:1-2에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복음은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가장 귀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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