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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목양법 (겔34:7-16)

본문

우리는 본문에서 양을 치시는 하나님의 일의 자세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양의 생명을 건사하시되 이렇게 주의 깊게 하십니다.
1. 주님은 우리를 신분에 따라 구별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눅 19:1-10에 삭개오를 향하여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 겠다”라고 하시면서 그의 안내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셨을 때 예수님을 에 워싸고 따라왔던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려 들어갔도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비교적 간단히 적혀있지만 실제 로 예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일은 사회적 측면에서나 신앙적인 측 면에서 다같이 큰 스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자로 추앙받는 이가 창녀 의 집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괴이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 관습이나 종교적 관습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삭 개오는 착취자의 대명사인 세리장이었으며, 그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아무도 그를 상종해 주는 자 없으므로 내적인 갈등에 관심두는 자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구원받지 못할 인간으로 낙인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를 더 따뜻이 대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판단하시거나 대하 신 것이 아니고 오직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중심을 보시면서 사람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도 신분을 구별하지 않으심으로 사마리아 여인을 변화시켰고 때로는 신분이 높은 니고데모 같은 사람을 만나주셔서 대화하시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시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중에서도 그를 못박고 조롱하는 무리를 향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바를 알지 못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인간의 신분과 그 지위를 따라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2. 누워있게 하십니다 양들이 누어있는 자리는 중요합니다. 그것은 양의 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소는 신자들의 모임에 필요합니다. 양이 누울 자리는 푸른 초장과 같아야 합니다. 푸른 초장은 양이 먹을 꼴이 많은 곳입니다(요 10:9). 영혼의 목자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도록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3. 찾으시는 사역 우리는 갈급한 심령을 찾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봅니다. 눅 19장에 여리 고에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멸시와 지탄을 받는 세리장 삭개오를 찾으시고 그 집에 유하셨을까요 그 까닭은 삭개오가 간절히 예수님을 찾고 계심 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간구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뽕나 무 위에 올라가 주님보기 원했습니다. 주님보기 위해 체면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토록 예수님을 보기 원했습니까 그는 현재 삶에 갈둥을 느꼈습니다. 고급 주택, 많은 보장된 수입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정 은 허전했고 이 죄악의 갈등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그 자리에서 삶의 길을 나섰습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결 코 놓치지 않기 위해 결사적인 노력을 다 기울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삭개오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부르셨고 찾으셨습니다. “삭개오야 뽕나무 에서 내려오라 오늘밤 내가 너의 집에서 유하여야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길 잃어버린 자라는 사실을 아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자 기의 위기를 깨닫는 자, 공허한 마음에 진리로 채우기를 원하는 자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하여 힘을 씁니다.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고 눅 15:7에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는 목회에 있어서 교회의 현상유지에 힘쓰는 것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 일에 더욱 마음을 써야 됩니다.
4. 치료하는 일 목자는 양의 병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의 병을 고쳐 주시는데 주력하였습니다(사61:1).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 9:13-13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리라”고 했습니다. 목자는 의사와 같습니다. 의사는 병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의사는 병 을 바로 진단하고 진실하게 그것을 고쳐줍니다. 목자는 부드러워야 하겠지만 사람의 죄를 바로 지적하고 그리하여 주님만 의지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죄인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허물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감이 허물도 고치고 생명도 얻는 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자신에 대하여서는 절망한 심리상태가 되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게 하려면 죄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거짓 목자는 죄를 지적하지 못하고 죄인도 잘한다고 칭찬해 줍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는 양떼들의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렘 8:11에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5. 징계합니다 16절에 “살진 가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잘 다스리는 목자의 일을 보여줍니다. “살진 자와 강한 자”는 교만하고 회개치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남들에게는 해롭게 합니다(겔 34:20-21). 권징의 원리는 멸하는 것과 먹이는 것 두 가지를 겸하는 것입니다. 죄는 멸하고 영혼은 먹어야 됩니다. 곧 목자가 어떤 사람의 죄를 치리할 때에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목적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대 한 확실한 사랑을 가지고 그 사람을 치리하여야 합니다(딤전 1:6). 그 삶 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시고,
둘째는 다스리려고 하지 말고 진실한 사랑으로 피차 돕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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