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자 (롬8:12-17)
본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치고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큰 바위나 모래알이나 물에 가라앉은 것은 마찬가지인 것처럼 큰 죄나 작은 죄나 그 간은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갈등이 있고 모순이 있고 고민이 있고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힘쓰면 오히려 원하는 선을 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라보고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치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오는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입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를 정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오데란 학자가 말하기를 “성령의 지배로 한번 결정된 죄와 죽음 위의 승리는 정죄가 제거된 것뿐만이 아니라 전적인 축복으로 바뀌어 집니다. 현재는 양자로 아들이 된 것이요 미래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다시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의 가르침, 즉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 해 주시고 아들 된 자기의식은,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영광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12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롬 1:14에는 “또한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적인 의무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빚진 사람의 심정으로 일했습니다. 본문 13절에 “너희는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 육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가 없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영과 성령이 같은 헬라어 원어 「푸뉴마 라는 단어로 쓰여집니다. 영어에서는 성령에 대해서는 관사와 대문자를 써서 the Spirit라 했고 사람의 영을 소문자 spirit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후의 내용을 보아 분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점령하시고 역사하시는 곳이 바로 사람의 영이므로 이 두 가지가 흔돈 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면”이란 말은 꼭 외형적인 금욕 생활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심적인 생활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마음을 억제하고 성령의 뜻을 따르려고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상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느냐 성령을 따르느냐 하는 결단은 순간순간 사사건건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성경귀절을 읽다가 너무 감격해서 “이 본문은 황금문자로 쓰여 졌으면 좋겠다. 극히 찬양할만 하며 위로에 넘쳐 있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씀은 성령이 우리 심령 안에 거하여 우리 삶을 주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요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민의 자유권은 아브라함의 혈통에 있다는 유대적인 관념과는 달리 믿음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요 1:13에는 또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갈 3:26에서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인도함 받는다」 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인도자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무조건 따라갑니다. 성령의 인도함은 바로 그렇습니다. 무조건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은 자신까지라도 경멸차여 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루터는 그것을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움으로 가리워진 이 세상의 향락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15절에서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했습니다. 여기서는 종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대조됩니다.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종의 영의 인도함 받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삽니다. 미신에 매어 사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으려 하는 것보다 화를 피하려는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히 2:15에서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양자가 되면 자기를 낳은 부모와는 관계가 완전히 없어지고 완전히 양부의 가정에 속하게 됩니다. 로마의 법대로 하면 양자는 양부의 가산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모든 지위까지 상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여간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구할 때 한번도 실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본문에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기쁨을 나타내는 부르짖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너무 기뻐 감격함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쳤다 할지 모르나 실상 누가 미쳤는지 모릅니다. 또 16절에는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이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 이십니다. 또한 요 5:24에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옳겼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의 축복을 얻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활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너무 열심히 하여 금욕주의가 하나님의 자녀 된 생활로 오해하는 자 있습니다. 부부 싸움은 제일 맡이 하고 가사도 돌보지 않고 부흥회만 찾아다니며 매일 산 기도에 여념 없는 자 있습니다. 열심은 좋으나 그의 집안은 너무 쓸쓸합니다. 조화 있는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족함이 없는 향기가 발하는 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 다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치고 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큰 바위나 모래알이나 물에 가라앉은 것은 마찬가지인 것처럼 큰 죄나 작은 죄나 그 간은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갈등이 있고 모순이 있고 고민이 있고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힘쓰면 오히려 원하는 선을 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라보고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치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오는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입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를 정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오데란 학자가 말하기를 “성령의 지배로 한번 결정된 죄와 죽음 위의 승리는 정죄가 제거된 것뿐만이 아니라 전적인 축복으로 바뀌어 집니다. 현재는 양자로 아들이 된 것이요 미래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다시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의 가르침, 즉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 해 주시고 아들 된 자기의식은,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영광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12절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롬 1:14에는 “또한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적인 의무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빚진 사람의 심정으로 일했습니다. 본문 13절에 “너희는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 육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가 없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영과 성령이 같은 헬라어 원어 「푸뉴마 라는 단어로 쓰여집니다. 영어에서는 성령에 대해서는 관사와 대문자를 써서 the Spirit라 했고 사람의 영을 소문자 spirit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후의 내용을 보아 분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점령하시고 역사하시는 곳이 바로 사람의 영이므로 이 두 가지가 흔돈 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지 모릅니다. “몸의 행실을 죽이면”이란 말은 꼭 외형적인 금욕 생활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심적인 생활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마음을 억제하고 성령의 뜻을 따르려고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상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따르느냐 성령을 따르느냐 하는 결단은 순간순간 사사건건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성경귀절을 읽다가 너무 감격해서 “이 본문은 황금문자로 쓰여 졌으면 좋겠다. 극히 찬양할만 하며 위로에 넘쳐 있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말씀은 성령이 우리 심령 안에 거하여 우리 삶을 주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요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민의 자유권은 아브라함의 혈통에 있다는 유대적인 관념과는 달리 믿음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밝히 말하고 있습니다. 요 1:13에는 또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갈 3:26에서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인도함 받는다」 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인도자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무조건 따라갑니다. 성령의 인도함은 바로 그렇습니다. 무조건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 아닌 것은 자신까지라도 경멸차여 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루터는 그것을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움으로 가리워진 이 세상의 향락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15절에서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했습니다. 여기서는 종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대조됩니다.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종의 영의 인도함 받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삽니다. 미신에 매어 사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으려 하는 것보다 화를 피하려는 공포에 싸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히 2:15에서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양자가 되면 자기를 낳은 부모와는 관계가 완전히 없어지고 완전히 양부의 가정에 속하게 됩니다. 로마의 법대로 하면 양자는 양부의 가산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모든 지위까지 상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하여간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구할 때 한번도 실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본문에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기쁨을 나타내는 부르짖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너무 기뻐 감격함은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미쳤다 할지 모르나 실상 누가 미쳤는지 모릅니다. 또 16절에는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이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 이십니다. 또한 요 5:24에서는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옳겼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의 축복을 얻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활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너무 열심히 하여 금욕주의가 하나님의 자녀 된 생활로 오해하는 자 있습니다. 부부 싸움은 제일 맡이 하고 가사도 돌보지 않고 부흥회만 찾아다니며 매일 산 기도에 여념 없는 자 있습니다. 열심은 좋으나 그의 집안은 너무 쓸쓸합니다. 조화 있는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족함이 없는 향기가 발하는 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 다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