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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의 몸과 신령한 몸 (고전15:42-49)

본문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체념했긴 때문에 이 문제보다 사람이 왜 죽느냐 또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인생의 고금을 통해서 크나큰 과제였습니다. 이것은 인생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왜 죽느냐,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노력했으나 해답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생명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만고의 의문이요 수수께끼였던 부활의 문제가 비로소 해결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인류의 죄와 사망의 문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데 대한하나님의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죽음은 죄의 값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값인 죽음도 십자가로 해결되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열매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지체가 됩니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신비스러운 결합이 있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에덴 동산에서 주신 법은 무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사랑이요 베들레헴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신 사랑의 표현이요, 장사지낸 지 사흘 만에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악 세상에서 사망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사랑의 최후 수단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멸망할 세계를 영생의 세계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최후의 역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베들레헴 탄생은 땅 위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승리의 노래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건설의 성취이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죽은 후에는 죄의 값인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죽음의 문제와 죄의 문제를 경시하는 범신론적 사상이나 이념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입느냐가 아니고 근본적인 죽음에 대한 문제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은 세상은 인간에게 참 평안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육체는 썩을 몸입니다. 이 썩을 육체로 주 예수를 믿어 썩지 아니할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산다는 약속입니다. 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이 뜻은 우리의 욕된 몸은 비천한 몸이나 이 비천한 몸으로 예수를 믿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흙으로 지음받아 병들기 쉽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룻 같은 약한 육체입니다. 이 육체를 믿어 강한 몸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시는 죽음이나 질병이나 고통의 지배를 받지 앉는 영생의 몸으로 살고 신령한 몸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은 혈기의 몸이요 정욕의 몸입니다. 그러나 이 몸으로 예수를 믿어 변화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또 계속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혈과 육은 육신의 육체를 말합니다. 부활의 영광스러운 변화는 마지막 재림의 날, 나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삼키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너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고자 함에는 한 가지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부활한다는 사실을 말함에 있어서 그러면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1) 씨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씨는 한번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새 싹이 나옵니다. 새로운 형체입니다. 씨의 형체가 아닌 다른 형체입니다 이같이 우리 몸은 땅에 묻혀 죽지만 새로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2) 생명에는 발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흙으로 지음받았습니다(창 2:7). 그러나 제 2아담인 예수는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을 훨씬 초월한 존재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성령이 육신을 입은 존재입니다. 주를 믿는 자는 이 예수와 한 몸이 되고 그의 생명과 그의 존재를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이 논의는 우리가 비록 육의 몸으로 사는 것이 사실이지만 언제인가 신령한 몸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임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3) 현재의 몸은 썩을 것이고 장래의 몸은 썩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쇠퇴하고 변합니다. “청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장년의 영광도 시든다”고 헬라의 시인 소포클리스는 노래하였습니다.
(4) 현재의 몸은 욕된 것이나 장래의 몸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즉 이 세상 삶은 육체적인 감정이나 정열이나 본능 때문에 자칫하면 욕된 것이 되기 쉬우나 장래의 세상에서 우리의 몸은 더 이상 정열이나 충동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봉사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5) 현재의 몸은 약하나 장래의 몸은 강할 것입니다. 인간은 온 힘을(지, 무력, 건강, 권세, 재부) 자랑하나 사실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한 방울의 물이 인간을 능히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의 몸은 장차 신령한 몸이 되어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지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때 완전한 예배, 완전한 봉사, 완전한 사랑이 가능케 될 것입니다. 이 날을 기쁜 마음으로 깨어 준비하면서 기다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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