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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6:9-15)

본문

이 시간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읽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기도를 하는데 주의를 주심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는 외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대로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이방인의 기도처럼 중언부언 하지 말고 중심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같이 기도의 장소와 말에 대한 교훈을 주시고 그 교훈들을 종합해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외우는 주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이렇게”라는 말씀은 문구적인 “이렇게” 보다는 주기도문에 실려 있는 내용과 그 내용이 주는 정신적인 요소를 갖추어서 기도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위에 말한 바 유대교나 이교도의 오류를 시정하시고 기독교의 기도의 표준을 세우신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이 유대교의 기도문을 계승한 것이냐, 또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것이냐는 것은 계속적으로 논의가 되어온 것입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이 기도문이 유대교의 기도문의 단편을 엮어 모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독일의 신학자 드베테는 이를 배격하고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의 독창이었다고 단언했습니다. 이 주기도문이 유대교의 영향을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 기독교 자체가 구약이란 흙 위에서 발아되고 성장하면서 서 있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입각하면서 그리스도의 독특한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오한 교훈과 체계로써 구약을 완성하신 사실과 원리를 그대로 주기도문에 적용시키면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묵상하게 되면 주님의 심오하고 조직있는 교훈에 새삼스럽게 감흥을 느낍니다. 부르스는 주기도문의 특색을 기도의 자유성, 심령의 신뢰성, 태도의 단순성의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주기도문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1. 하늘에 계신 주님의 기도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간구가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나님 이름) 나라이 임하옵시며(하나님 나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나님의 뜻)가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이 살필 필요한 세 가지 간구가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현재 그리고 경제문제를 하나님에게 간구)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과거 그리고 속죄문제를 성자 예수에게 간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미래의 유혹에서 건짐을 성령께 간구)하는 기도로 현재, 과거, 미래, 육신의 문제, 심령의 문제, 성부 성자 성령께 간구하는 모든 간구의 내용이 포괄된 기도입니다. 먼저 기도의 대상을 찾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이 기도 중에 부르는 보통의 문구입니다(왕상 18:36, 느 2:20). 하나님은 다윗의 찬양처럼(시편 139편) 하늘이나 바다나 음부나 우리 마음 속에도 계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주를 찾는 우리의 심령을 높은 곳으로 향상시키는 교훈이 있는 줄 압니다. 하늘은 인간계에서 높이 초월하여 있고 하늘이 하는 일은 불가항력적이며 하늘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기도는 무능력하고 제한된 인간의 세계를 무제한하고 전능한 세계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한과 무능의 탈을 깨뜨리고 무제한으로 전능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즉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것입니다.
2. “아버지여”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보편적인 넓은 뜻이 있습니다. 사 64:8에 “하나님은 우리아버지라”고 하였고 말 2:10에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은 중생함을 받은 자들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그의 백성은 자녀가 된다는 사상은 구약에서부터 충분히 반영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자녀(출 4:22)라 칭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아들(삼하 7:14),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욥1:6)에 적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체적으로 하나님과의 부자관계 원칙에서 변동이 없었습니다. 이런 구약의 배경하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 것을 명백히 계시하신 분이 실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주님의 교훈만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으며 십자가상에서 그의 최후 기도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기르고 그가 과오를 범했을 때 징계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심판의 권한을 일시에 표시하는 명사로써 아버지 이상으로 적격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러한 탁월한 능력과 엄위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랑과 아들에게는 신뢰의 대상인 것을 표시하여 줍니다. 뿐만 아니라 부자의 관계는 불가불의 관계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공의의 품성으로 지으신 것은 (창 1:27) 인간과의 교제를 가지고자 하셔서입니다. 그러나 이 교제는 인간의 범죄로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육체로 세상에 보내시어 (요 1:14) 영적 중생인 제 2의 창조의 과업을 성취하시고 깨어진 신과 인간과의 교제를 회복시켰습니다. 회복된 교제는 처음정도가 아니라 처음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회복된 관계는 다시 깨어지지 않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공통의 심령의 깊은 갈망을 표시하고 하나님이 우리 공동의 아버지시며
그러므로 독선적, 독단적이 되기 쉬운 종교인의 단처(短處)를 경계하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또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입니다. 이것은 세계 온 민족이 우주의 혈통을 통하여 새로 태어난 형제자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국경과 혈통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형제이며, 피부와 문화가 다르고, 교파가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다 자매입니다. 이 우주는 아버지의 우주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우주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고 아버지 없는 고아가 되지나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라 했습니다. 이 주님을 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탕자처럼 하나님 품을 떠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고백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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