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5:6-6)
본문
오늘 저녁 생각할 말씀은 팔복의 네째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회가 배부를 것임이요”입니다. 첫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축복,
둘째는 애통하는 자의 축복, 세째는 온유한 자의 축복입니다. 이상 세 가지는 소극적 성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구도하는 자의 태도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제 네번째의 축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라 하였으니, 이것은 적극적인 성품이라 하겠습니다. 즉 축복받을 자의 생활방향을 강조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전에는 사욕과 불의에 허덕이며 은혜의 구원을 구하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이제 그 열심으로 의를 향해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팔복에서 산하에서 산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처럼 점차적으로 향상되어 가는 복의 진도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천국 문전에 설 때는 심령이 가난해야하고 그 후 천국문이 열리면 그 일보로 애통하며 회개함이 있고 그 다음에 오는 결과로는 마음이 온유해야 되고 그 후 방향을 의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의란 무엇입니까 의는 먼저 실제적인 뜻으로 보면 옳은 것, 올바른 것, 옳은 사람, 올바른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서 옳은 생활, 사람에 대하여서 옳은 생활, 사회에서도 옳은 생활을 하는 것이 의의 참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의는 그런 정치인이 외치는 의, 철인이 정의하는 의가 아닙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의도 아니고 오직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사실 인생들에게 의를 안겨주지 못하는 종교는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지 못하고서는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가납될 수도 없습니다. 마 5:20에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거룩의 표준에 달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인생은 인간 스스로 의를 행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탁을 잘 했어도 흰 눈에 비춰보면 깨끗치 못함같이 사람의 의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고 썩은 잎사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 낙제생입니다. 의는 여기 있습니다. 고전 1:30에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로움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값을 지불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공로를 믿는 성도들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의의 옷을 입혀 준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밝히 가르친 이신득의 교리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철저히 내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담대하여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의를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의를 추구하며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에게 의를 주시는 것입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리는 생활이라 했습니다. 주리는 생활은 얼마나 힘겨운 생활입니까 굶주려 본 사람이 아니면 주린 자의 안타까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사람은 먹지 않고는 육신을 가진 이상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린 일은 급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급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마름입니다. 목마름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이틀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루 마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없다면 얼마나 급하고 갈급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인간 심령의 가장 강력한 욕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욕망이 있습니다. 가령, 지적 욕망이 있어서 무엇인가 알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합니다. 혹은 사교적 욕망이 있어서 누구나 사귀고 싶어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또 물질의 욕망이 있어서 좀 더 갖기를 원합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사랑의 욕망이 있어서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권세욕이 있습니다. 남을 지배하고 싶어합니다. 그밖에도 명예 욕망, 영광의 욕망, 창조의 욕망 등이 사람에겐 누구나 다 있습니다. 이 모든 욕망 외에 또한 가지 욕망이 있는데 그것은 의에 대한 욕망입니다. “옳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로운 생활을 하면 좋겠다” 하는 욕망이 사람에 따라서 어떤 이는 자주 일어나고 어떤 이는 이따금씩 일어납니다. 이것은 영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악하기로 유명한 로마 네로 황제도 사형 허락에 대한 첫번 싸인을 할 때에 “차라리 글을 안 배웠더라면”하고 탄식했습니다. 독재자 나치스 히틀러도 때때로 “나는 이 정치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한가한 그림이나 그리며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악한 사람들에게도 의에 대한 욕망은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에 대한 욕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욕망이 얼마나 강렬하고, 얼마나 계속되느냐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42:1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 시냇물은 히브리어로 “아피게마임”인데 마르지 않는 물의 근원을 가리킵니다. 영적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찾기에 갈급하다”함은 그냥 사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헐떡거리며 소리내어 찾음을 말합니다. 갈급하여 찾는 그 자체가 벌써 은혜요, 축복입니다. 가난할찌라도 돈을 벌어 잘 살아보겠다는 욕망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잘 살아보려는 욕망마저 상실한 사람입니다. 욕구를 상실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또한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물에 빠졌을찌라도 손을 뻗칠 용기만은 있어야 건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께서는 우리에게 의를 위해 불타는 욕구를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구하는 일은 우리의 할 일이요, 구하는 것의 응답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의에 대한 바른 선택을 할 줄 아는 자입니다. 언제까지나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할 수 없습니다. “바알신이 참 신이면 그리로 갈 것이요, 여호와가 참 신이면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엘리야가 외친 것처럼 두 가지 가운데서 한 가지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이게 될 때 의에 주리고 목마름같이 하는 사람은 언제나 바른 선택을 합니다. 모세는 그런 자리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히 11:24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선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같인 애굽의 향락보다 양심의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며 새 생명의 증거가 됩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의를 위하여 계속 달려 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 3:12-16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고 권면했습니다. 좇아가는 자의 사명은 전진입니다. 머물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합니다. 달리는 자에게는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든, 누가 무슨짓을 하든, 달리는 자는 달리는 것에만 열중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계속 전진하는 자입니다. 의에 주린 자는 구주 예수가 절대로 필요하고,
그러므로 자기의 전 존재를 쏟아 바치고 충심으로 구주를 추구합니다. 하루 세끼를 먹지 않으면 육신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는 죽는 줄을 아는 자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받는 복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니라”
(1)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의의 양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요 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7:37-38에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의를 사모하는 자에게는 의의 양식이 있습니다.
(2)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충분한 은혜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요 1:16,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 의에 대하여 무관심한 자는 주님 앞에 나아오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이 없지만 의에 주리고 갈급한 자는 은혜 위에 더욱 풍성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일 것입니다. 시 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였습니다.
(3) 주리고 목마른 자는 풍성한 믿음이 허락되며,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나와 그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의 배부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를 간절히 사모하던 바울이 주께 나아와서 의를 얻은 것을 우리는 다 잘 압니다. 빌 3:9,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마틴 루터도 주께 나와서 그를 옷입듯 하여 의의 배부름을 얻은 것입니다. 이같이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만이 우리가 점점 의로운 데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갈급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로 나옵니다. 그러면 의의 배부름을 얻을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가정, 목말라하는 사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국가는 복이 있습니다.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는 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의를 사모함으로
1) 의의 양식을 충족히 받고
2) 넘치는 은혜를 받으며
3)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심령의 배부름을 얻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애통하는 자의 축복, 세째는 온유한 자의 축복입니다. 이상 세 가지는 소극적 성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구도하는 자의 태도에 중점을 두었으나 이제 네번째의 축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라 하였으니, 이것은 적극적인 성품이라 하겠습니다. 즉 축복받을 자의 생활방향을 강조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전에는 사욕과 불의에 허덕이며 은혜의 구원을 구하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이제 그 열심으로 의를 향해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팔복에서 산하에서 산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처럼 점차적으로 향상되어 가는 복의 진도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천국 문전에 설 때는 심령이 가난해야하고 그 후 천국문이 열리면 그 일보로 애통하며 회개함이 있고 그 다음에 오는 결과로는 마음이 온유해야 되고 그 후 방향을 의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의란 무엇입니까 의는 먼저 실제적인 뜻으로 보면 옳은 것, 올바른 것, 옳은 사람, 올바른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서 옳은 생활, 사람에 대하여서 옳은 생활, 사회에서도 옳은 생활을 하는 것이 의의 참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의는 그런 정치인이 외치는 의, 철인이 정의하는 의가 아닙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의도 아니고 오직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사실 인생들에게 의를 안겨주지 못하는 종교는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지 못하고서는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가납될 수도 없습니다. 마 5:20에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거룩의 표준에 달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인생은 인간 스스로 의를 행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탁을 잘 했어도 흰 눈에 비춰보면 깨끗치 못함같이 사람의 의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고 썩은 잎사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 낙제생입니다. 의는 여기 있습니다. 고전 1:30에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로움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값을 지불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공로를 믿는 성도들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의의 옷을 입혀 준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밝히 가르친 이신득의 교리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를 철저히 내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담대하여 당당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의를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의를 추구하며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에게 의를 주시는 것입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리는 생활이라 했습니다. 주리는 생활은 얼마나 힘겨운 생활입니까 굶주려 본 사람이 아니면 주린 자의 안타까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사람은 먹지 않고는 육신을 가진 이상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린 일은 급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급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마름입니다. 목마름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 이틀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루 마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없다면 얼마나 급하고 갈급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인간 심령의 가장 강력한 욕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욕망이 있습니다. 가령, 지적 욕망이 있어서 무엇인가 알고 싶어하고 배우고 싶어합니다. 혹은 사교적 욕망이 있어서 누구나 사귀고 싶어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또 물질의 욕망이 있어서 좀 더 갖기를 원합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사랑의 욕망이 있어서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권세욕이 있습니다. 남을 지배하고 싶어합니다. 그밖에도 명예 욕망, 영광의 욕망, 창조의 욕망 등이 사람에겐 누구나 다 있습니다. 이 모든 욕망 외에 또한 가지 욕망이 있는데 그것은 의에 대한 욕망입니다. “옳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로운 생활을 하면 좋겠다” 하는 욕망이 사람에 따라서 어떤 이는 자주 일어나고 어떤 이는 이따금씩 일어납니다. 이것은 영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악하기로 유명한 로마 네로 황제도 사형 허락에 대한 첫번 싸인을 할 때에 “차라리 글을 안 배웠더라면”하고 탄식했습니다. 독재자 나치스 히틀러도 때때로 “나는 이 정치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한가한 그림이나 그리며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악한 사람들에게도 의에 대한 욕망은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에 대한 욕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욕망이 얼마나 강렬하고, 얼마나 계속되느냐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42:1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 시냇물은 히브리어로 “아피게마임”인데 마르지 않는 물의 근원을 가리킵니다. 영적 생명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찾기에 갈급하다”함은 그냥 사모하는 정도가 아니라 헐떡거리며 소리내어 찾음을 말합니다. 갈급하여 찾는 그 자체가 벌써 은혜요, 축복입니다. 가난할찌라도 돈을 벌어 잘 살아보겠다는 욕망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잘 살아보려는 욕망마저 상실한 사람입니다. 욕구를 상실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또한 구제할 길이 없습니다. 물에 빠졌을찌라도 손을 뻗칠 용기만은 있어야 건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께서는 우리에게 의를 위해 불타는 욕구를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구하는 일은 우리의 할 일이요, 구하는 것의 응답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의에 대한 바른 선택을 할 줄 아는 자입니다. 언제까지나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할 수 없습니다. “바알신이 참 신이면 그리로 갈 것이요, 여호와가 참 신이면 하나님께로 나오라”고 엘리야가 외친 것처럼 두 가지 가운데서 한 가지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이게 될 때 의에 주리고 목마름같이 하는 사람은 언제나 바른 선택을 합니다. 모세는 그런 자리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히 11:24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선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같인 애굽의 향락보다 양심의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며 새 생명의 증거가 됩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의를 위하여 계속 달려 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 3:12-16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고 권면했습니다. 좇아가는 자의 사명은 전진입니다. 머물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합니다. 달리는 자에게는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든, 누가 무슨짓을 하든, 달리는 자는 달리는 것에만 열중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계속 전진하는 자입니다. 의에 주린 자는 구주 예수가 절대로 필요하고,
그러므로 자기의 전 존재를 쏟아 바치고 충심으로 구주를 추구합니다. 하루 세끼를 먹지 않으면 육신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먹지 않고는 죽는 줄을 아는 자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받는 복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니라”
(1)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의의 양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요 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7:37-38에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의를 사모하는 자에게는 의의 양식이 있습니다.
(2)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충분한 은혜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요 1:16, “우리가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 의에 대하여 무관심한 자는 주님 앞에 나아오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이 없지만 의에 주리고 갈급한 자는 은혜 위에 더욱 풍성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 6:10)일 것입니다. 시 81:10,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였습니다.
(3) 주리고 목마른 자는 풍성한 믿음이 허락되며,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나와 그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의 배부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를 간절히 사모하던 바울이 주께 나아와서 의를 얻은 것을 우리는 다 잘 압니다. 빌 3:9,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성 어거스틴도, 마틴 루터도 주께 나와서 그를 옷입듯 하여 의의 배부름을 얻은 것입니다. 이같이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만이 우리가 점점 의로운 데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갈급한 심령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로 나옵니다. 그러면 의의 배부름을 얻을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가정, 목말라하는 사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국가는 복이 있습니다.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는 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의를 사모함으로
1) 의의 양식을 충족히 받고
2) 넘치는 은혜를 받으며
3)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심령의 배부름을 얻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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