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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족보 (눅3:23-38)

본문

23절에 “예수께서 가르침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라 하였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들에게 예수가 선교사업을 시작하신 것이 그의 나이 30세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세주로 오셔야 할 예수가 어찌하여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30년 동안을 보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요셉이 상당히 젊었을 때에 세상을 떠나서, 예수는 마리아와 나이어린 형제와 자매들을 부양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들이 자라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각기 자기의 일을 충분히 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간에 다음 세 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1) 예수가 세계를 구원한다고 하는 보편적인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전에 가족을 부양한다고 하는, 보다 한정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함은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는 가정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임무를 성실함과 진정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을 통하여 앞으로 수행해야 할 위대한 사명에 자신을 적용시켰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예수님 자신이 달란트 비유를 이야기했을 때 충성스러운 종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라고 하심은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 스스로가 이 말씀과 더불어 자기 자신의 경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가장 작은 임무까지도 충실하게 완수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2) 예수님이 당초부터 가정도 없고, 남들과의 인간적인 유대나 의무도 없이 방랑하는 교사에 불과했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당신 스스로가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인간의 의무와 인간 관계에 대해서 말할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말한대로 행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한대로 행하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3)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예수는 먼저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30년간을 나사렛에서 생활하신 그는 생활의 제반 문제, 노동자들에게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생계에 대한 어려움, 세상 삶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생문제 가운데 예수가 직면하지 아니한 문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오신 큰 의미인 것입니다. 23-38절까지의 구절은 예수의 족보이지만 마리아의 조상들의 계통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마 1:1-17에 있는 예수의 족보와는 다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가 마리아의 조상의 계통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본 장의 2-3절 말씀에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셀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라는 곳에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께서 법률상으로는 요셉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요셉의 아들로 세상에 알려지셨으나, 사실상 요셉의 아들이 아니고 요셉의 이상 헬리라 하여 헬리의 자손이란 뜻인데, 헬리는 요셉의 장인인 마리아의 아버지입니다. 히브리의 풍속은 외손자와 손자를 구분없이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세계만민에게 보편적으로 관계된 구주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족보에도 마태와는 달리 전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까지 소급하여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강조하지 않고 족보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 1:1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여 예수는 유대인의 구주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누가와 마태와의 엄격한 차이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족보를 논했다는 점은 유대인의 풍습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름이 있는 사람들의 족보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뼈대를 찾는다는 말이 있는데, 유대 나라에서는 특별히 제사장들이 족보가 없으면 제사장직을 상실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가'만왕의 왕, 왕적인 메시야'이심에 강조를 두고, 다윗의 자손인 왕손임에 강조를 두어 요셉의 아들임을 밝혔으나, 누가복음은 예수가 왕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제사장적인 메시야이심을 강조하여 마리아의 조상임을 밝혔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 (세례 요한의 어머니)는 모두 제사장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제사장적인 메시야이심을 밝혀두기 위해서 마리아의 족보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족보의 문제점은 마 1:1-17에 있는 족보와의 관계에 있습니다. 누가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정함은 예수가 세계적 메시야임을 강조한 것이고, 마태가 아브라함부터 기록한 것은 예수가 선민 아브라함의 자손인 메시야임을 강조한 것인데. 따라서 아브라함부터 다윗왕까지의 족보는 두 복음서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부터 요셉까지의 구분은 전부가 다릅니다. 마태는 예수가 왕손이며, 왕족의 혈통임을 강조하였고, 누가는 예수가 제사장의 혈통을 가졌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마 1:16에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이었는데, 눅 3:23에는 요셉의 아버지가 헬리로 기록되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요, 요셉의 장인이었습니다. 유대에는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아들이 되는 법이 있는데, 요셉은 마리아의 집에 데릴사위로 가서 법적인 견지에서 볼 때 헬리의 자식으로서 두 아버지를 모신 셈이 된 것입니다. 친아버지인 야곱은 다윗의 자손으로 왕손이었고, 장인 아버지인 헬리는 다윗으로부터 나단을 통한 제사장의 후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누가가 기록한 예수의 족보에는 주목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예수의 참다운 인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가 인간 중의 인간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참된 의미에서 인간이 된 것입니다.
(2)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끝내고 있으나 누가는 아담까지 곧장 소급해 올라갔습니다. 마태에게 있어서 예수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유대인들의 소유이지만, 누가에게 있어서 예수는 모든 인류의 소유였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예수의 족보는 유대 민족의 창시자인 아브라함이 아니라 전 인류의 창시자에까지 소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누가는 예수의 족보에서부터 민족적, 종족적인 테두리를 제거해 버리고 있는데, 이것은 누가의 위대한 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담의 아버지가 하나님인듯이 여기에 표현된 것은 실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낳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만 그가 아담을 권능으로 창조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아담은 자연적인 부모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인하여 성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인류의 존재는 초자연에서 기인한 동시에 그 구원도 초자연적인 것에 기인하며, 예수님도 초자연적으로 동정녀에게서 나심을 강조하여 어디까지나 제사장적인 메시야로서의 족보를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경륜을 생각하시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역사를 늘 체험하는 능력이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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