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위해서 쉬지않고 역사하시는 그리스도 (사62:1-5)
본문
사 62장에는 제 2 이사야서 40-55장과 60-61장에 나타난 공통된 제목을 반복하고 있는데 시온성 예루살렘이 예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이 제1인칭으로 말씀하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새 예루살렘의 주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은 온 세계의 종교적인 수도를 뜻하며 다시는 “버림받는 도시”가 되지 아니하며, 마치 결혼 못한 처녀처럼 이제까지 버림을 당한 그녀 시온은 이제 결혼하는 경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1. 선지자가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절에 “나는 시온의 공기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역사하실 때 잠잠하거나 쉬지 아니하시고 역사하십니다.
(1) 공의가 빛같이 나타내셨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때때로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유린도 당하고, 박해도 받고, 자유를 빼앗기고, 순교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 본문의 예루살렘은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성도를 가리킵니다. “공의” 라는 말은 유대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실 주님의 의로우신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 교회가 받을 공의로운 구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 값으로 속죄의 구원을 받은 것은 공의로운 것입니다(롬 3:26). 하나님께서 속죄의 구원을 독생자 예수의 피 값으로 확증하신 성도들이 억울함을 당할 때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의 마음에는 천국을 이루어 주시고 육신도 만민에게 칭찬받게 되는 날을 반드시 주십니다.
(2) 구원이 성취되도록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구원을 세 단계로 베풀어 주십니다.
1) 지난 날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2) 계속 구원해 주십니다. 현재에 어떤 유혹과 핍박을 만나도 넘어가지 않도록, 환란날에 핍박을 만나도 능히 이기도록 세상 끝날까지 계속하여 구원해 주십니다.
3) 구원을 완성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 떠나는 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영접하시사 하나님 나라에 안내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주님은 이 구원의 완성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의 고초를 당하시고 보혈로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나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해 역사하시며 우리를 위해 도고의 기도를 해 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의 능력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일하십니다.
(3) 잠잠하지 아니하시며 복음 증거를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 완성을 위하여 잠잠하지 않으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심장이 쉬지 않고 뛰듯이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결심하기를 잠잠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신실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우선 그 교훈과 약속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는 반복하여 가르칠 것이며 기도를 계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우리 성직자들의 업무는 하나님께로서 받은 말씀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하며 자기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직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심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시온을 위해서,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해서 입니다. 선지자 자신의 어떤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 끈질긴 요구를 교회의 의와 구원의 약속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것입니다. 시대마다 남은 자가 있어 이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잠잠하지 않고 하나님의 예언이 계속 말해질 것이며 그 예언이 성취될 때까지 그의 후속자로서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 때 교회의 공의는 빛같이, 교회의 구원은 횃불같이 나타날 것이며 그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하여 그 증거를 휴대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영광과 위로를 가져올 것이며, 교회는 그것으로 인해 기쁘게 보이며 훌률하게 보일 것 입니다.
2.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1) 교회는 열방 앞에서 찬양받게 될 것입니다. 2절에 “열방이 네 공의를, 열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1) 교회는 열방 앞에서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장차 올 신약시대의 교회가 얼마나 눈부시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인지에 대하여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체험하므로 이 세상의 권세있는 왕들도 양심적으로는 그것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역사상에 많은 군왕들이 복음을 믿은 것이 이 말씀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도 주님의 재림시에 받을 영광에 대하여는 그 해의 세상 왕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알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칭찬받게 하시며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교인으로 하여금 육신의 생활도 윤택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육신에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진실로 찬양을 받으며, 세상 사람들에게도 크게 존경 받게 됩니다.
2) 교회에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새 이름이라는 것은 유대의 무너진 성읍들을 바벨론에서 돌아올 유대인들이 재건하고 부르게 될 이름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한 옛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인 만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인격이 날마다 새로워진 자들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처럼, 요셉을 종이라는 이름에서 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셨고, 다윗에게는 목동이라는 이름에서 대왕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계 3:12에 “나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이름은 무엇입니까
1) 교회는 하나님의 면류관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3절에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와 신자들을 하나님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또는 “왕관”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들을 높이는 칭호입니다. 왕관은 왕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는 것인데 교회와 신자들이 하나님의 왕관이라면 그 책임은 중대한 것입니다. 교회 신자는 하나님의 왕관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하여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면류관과 왕관이 된 것은 자격이 있어서나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면류관으로 영광을 주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와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2) 하나님은 교회에 하나님의 신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4-5절에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발라” 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이 비유에 의하여 참다운 기독교회의 복된 처지를 보여줍니다. 교회를 가리켜 “헵시바” 라고 하셨다는 것은 곧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뜻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하여 되는 것이고 사람의 공로나 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또 네 땅을 “쁄라” 라고 하신 것은 곧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교회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교회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한 것은 신·구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된 목적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가장 사랑하시고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하나님과 교회는 연합하여 교회는 하나님의 기업을 누린다는 것으로 교회는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을 위하여 순결하게 정절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 섬기는 것을 생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만 믿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믿음의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환란과 핍박 중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선지자가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절에 “나는 시온의 공기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역사하실 때 잠잠하거나 쉬지 아니하시고 역사하십니다.
(1) 공의가 빛같이 나타내셨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때때로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어떤 때는 유린도 당하고, 박해도 받고, 자유를 빼앗기고, 순교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 본문의 예루살렘은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성도를 가리킵니다. “공의” 라는 말은 유대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실 주님의 의로우신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 교회가 받을 공의로운 구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피 값으로 속죄의 구원을 받은 것은 공의로운 것입니다(롬 3:26). 하나님께서 속죄의 구원을 독생자 예수의 피 값으로 확증하신 성도들이 억울함을 당할 때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의 마음에는 천국을 이루어 주시고 육신도 만민에게 칭찬받게 되는 날을 반드시 주십니다.
(2) 구원이 성취되도록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구원을 세 단계로 베풀어 주십니다.
1) 지난 날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2) 계속 구원해 주십니다. 현재에 어떤 유혹과 핍박을 만나도 넘어가지 않도록, 환란날에 핍박을 만나도 능히 이기도록 세상 끝날까지 계속하여 구원해 주십니다.
3) 구원을 완성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 떠나는 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영접하시사 하나님 나라에 안내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주님은 이 구원의 완성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십자가의 고초를 당하시고 보혈로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나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해 역사하시며 우리를 위해 도고의 기도를 해 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의 능력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일하십니다.
(3) 잠잠하지 아니하시며 복음 증거를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 완성을 위하여 잠잠하지 않으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심장이 쉬지 않고 뛰듯이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결심하기를 잠잠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신실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우선 그 교훈과 약속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는 반복하여 가르칠 것이며 기도를 계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우리 성직자들의 업무는 하나님께로서 받은 말씀을 자기 백성들에게 전하며 자기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직고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심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시온을 위해서,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해서 입니다. 선지자 자신의 어떤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 끈질긴 요구를 교회의 의와 구원의 약속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것입니다. 시대마다 남은 자가 있어 이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잠잠하지 않고 하나님의 예언이 계속 말해질 것이며 그 예언이 성취될 때까지 그의 후속자로서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 때 교회의 공의는 빛같이, 교회의 구원은 횃불같이 나타날 것이며 그것은 너무나 명명백백하여 그 증거를 휴대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영광과 위로를 가져올 것이며, 교회는 그것으로 인해 기쁘게 보이며 훌률하게 보일 것 입니다.
2.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1) 교회는 열방 앞에서 찬양받게 될 것입니다. 2절에 “열방이 네 공의를, 열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1) 교회는 열방 앞에서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장차 올 신약시대의 교회가 얼마나 눈부시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인지에 대하여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체험하므로 이 세상의 권세있는 왕들도 양심적으로는 그것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역사상에 많은 군왕들이 복음을 믿은 것이 이 말씀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도 주님의 재림시에 받을 영광에 대하여는 그 해의 세상 왕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지 알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칭찬받게 하시며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교인으로 하여금 육신의 생활도 윤택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육신에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진실로 찬양을 받으며, 세상 사람들에게도 크게 존경 받게 됩니다.
2) 교회에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새 이름이라는 것은 유대의 무너진 성읍들을 바벨론에서 돌아올 유대인들이 재건하고 부르게 될 이름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한 옛 사람이 아니고 새 사람인 만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인격이 날마다 새로워진 자들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처럼, 요셉을 종이라는 이름에서 장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셨고, 다윗에게는 목동이라는 이름에서 대왕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계 3:12에 “나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이름은 무엇입니까
1) 교회는 하나님의 면류관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3절에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와 신자들을 하나님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또는 “왕관”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들을 높이는 칭호입니다. 왕관은 왕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는 것인데 교회와 신자들이 하나님의 왕관이라면 그 책임은 중대한 것입니다. 교회 신자는 하나님의 왕관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기 위하여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면류관과 왕관이 된 것은 자격이 있어서나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면류관으로 영광을 주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와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2) 하나님은 교회에 하나님의 신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4-5절에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발라” 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이 비유에 의하여 참다운 기독교회의 복된 처지를 보여줍니다. 교회를 가리켜 “헵시바” 라고 하셨다는 것은 곧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는 뜻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하여 되는 것이고 사람의 공로나 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또 네 땅을 “쁄라” 라고 하신 것은 곧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교회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교회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한 것은 신·구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비유된 목적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가장 사랑하시고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며 하나님과 교회는 연합하여 교회는 하나님의 기업을 누린다는 것으로 교회는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을 위하여 순결하게 정절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 섬기는 것을 생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만 믿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헌신해야 합니다. 믿음의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환란과 핍박 중에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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