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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된 산헤립 몰락 (왕하19:20-34)

본문

이사야는 자기의 자유의사로 긴 격려의 말씀을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은 앗수르 왕에 대해서 조소적인 도전을 던지는 예루살렘 극적인 그림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21절). 그것은 앗수르 왕에게 그의 편지가 경멸하며 말하는 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의 개념은 그가 접근할 수 없는 위엄과 이해할 수 없는 능력에 대한 어떤 의식을 전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언자는 조소적으로 거기에서 왕들이 승리한 것을 자랑한 앗수르에 빈정대는 말씨를 반영했습니다. 산헤립은 자신의 서쪽의 적수들을 위협하고 애굽에까지도 진격하려는 그의 계획을 선포하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말씨를 사용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사야는 계속하여 앗수르 사람들이 과거에 얻은 승리는 다만 하나님의 능력과 허락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들이 우주적 제국의 대결에 의하여 여호와의 우주적 능력을 알게 된 그 방식의 한 훌륭한 예증이 있습니다. 즉 승리는 가장 힘이 있는 신들을 가지고 있는 민족의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호와의 백성이 앗수르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한다면 이것은 앗수르 사람들이 그보다 더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결론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예언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백성들 전래의 기초 위에 있는 여호와의 능력은 정복하기 어렵다는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앗수르가 승리한 것을 전 능하신 여호와가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앗수르 사람들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의 죄를 처벌하기 위하여 앗수르 군 유다의 땅으로 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가 참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유대 사람들의 하나님이며 또한 앗수르 사람들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앗수르 사람들의 우주적인 제국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우주적인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앗수르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의 힘에 돌렸고 작은 나라의 무력한 작은 신을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들의 교만과 잔혹을 오래 허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이 제목에 고전적 해설을 포함합니다. 하나님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여 준 은혜롭고 풍부한 답변이 나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산헤립에 대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그에게 확인하셨습니다(20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고소하는 기도의 대상자들은 비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압박당하는 자들이 압제자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실”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들으십니다. 이사야는 두 가지 사실을 예언했습니다.
1. 산헤립와 그의 군사는 혼란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산헤립이 낮아지고 꺾어지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산헤립의 말씨처럼 그에게 말합니다. “오 앗수르인이여 나의 진노의 막대기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이 그를 경멸할 것이다(21절).
(2) 하나님의 원수라고 했습니다.
(3) 거만하고 자만심 강한 바보라고 표현되었습니다.
1) 산혜립은 자기의 공적을 분수 이상으로, 실제 이상으로 과장했습니다(23-24절).
2) 그는 그 위대한 일을 한 영광을 자신에게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여호와께서 하신 일” 이었습니다(25-26절). 산헤립은 그의 편지에서 히스기야도 그 사실을 들었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11절). 산헤립의 허풍은 이사야 10장 13-4절에 상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나의 손의 힘으로 내가 그것을 행했다 그리고 나의 지혜로‥‥‥”라고 했는데,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느냐”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대답입니다.
(4) 그가 망령되이 말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전제와 견책을 받고 있습니다.
1) 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인지 아래 있었습니다(27절). “나는 너의 주거를 안다”, “네가 비밀히 계획하고 도모하는 것은 들어오고 나가는 것, 전진과 후퇴, 나와 나의 백성에게 대한 나의 분노, 너의 열정의 동요, 네가 일으키는 잡음과 소요 이 모든 것을 내가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적의 동태를 알기 원했던 히스기야가 알고 있는 사항의 이상인 것입니다.
2) 그의 모든 동작은 하나님의 관할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원수의 코에다 갈고리를 베고, 그 입에 자갈을 먹이고, 그것을 기억치 못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2.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에게 구원과 기쁨이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하셨다는 표시입니다. 또 그의 노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눈에 놀라움이요, 선의 표지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간직하셨던 보다 큰 자비의 보증이며, 모든 면에서 그들의 고통이 좋은 결말을 가져오리라는 증거였습니다.
(1) 식량은 귀해지고 비싸질 것이며, 식량 조달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이레 되시는 여호와께서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씨와 노동을 절약할 것이며, 그 해에는 또 땅이 절로 내는 소출이 그들을 부양하며, 기경하는 사람이 있기 전에 땅이 소출을 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창 1:11).
(2) 그 나라는 황폐해지고, 가정은 붕괴되어 산산이 흩어졌고, 그리고 모든 것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런 군대의 침략이 전국에 밀어닥쳤을 때에는 달리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에 대하여 “유다의 집을 피한 남은 자는 다시 자기의 집에 즉 본토에서 정착되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고 번영하리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들의 번성함이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뿌리를 내리고, 과실을 맺고 정주하여 자신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며, 그리고 손님을 대절한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번성함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됩니다.
(3) 성읍이 폐쇄되고 아무도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시온과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이 자유로이 나다닐 것이며 그들을 막거나 위협할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31절). 도시나 시골어디에서나 큰 파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도피한 남은 자들이 있으며, 그들이 이스라엘 성들의 구원받은 남은 자를 대표할 것입니다.
(4) 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은 잠간 사이에 포위되어 그들의 수중에 떨어질 초미지급의 위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했던 그 포위에서 보호되리라고 약속되었습니다.
(5) 하나님의 명예와 진리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는데 개입됩니다. 이것은 과연 위대한 일들이지만 어떻게 실행될 수 있겠습니까 31절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것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그는 모든 피조물을 그의 손짓으로 좌우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슥 1:14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신다”고 했습니다.
1) 그의 열심은 자기 명예를 위한 것입니다(34절).
2) 그의 열심은 자기의 진리를 위해서입니다. “나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그 일을 행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와 맺은 약속과 그의 맺은 계약 즉 다윗에게 보장한 자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구원은 다윗의 자손, 즉 그리스도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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