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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윤리적 6대 이상 (사9:10)

본문

본문은 이사야의 외침입니다. 인간이 만든 “벽돌이 무너진다” 고 하는 것은 이 세계의 총명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며 오늘 우리들도 이 사실을 절실히 느낍니다. 금세기 초기부터 우리들은 벌써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으며 그 밖에도 많은 크고 작은 전쟁을 우리들은 겪어왔습니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벽들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그 무너지는 벽들에 대해서만 자기들의 주의의 초점을 향하고, 다시 다듬은 돌을 가지고 이것을 재건하는데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장차 건설하려고 하는 사회의 기초가 될만한 다듬은 돌을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 중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기초가 될만한 다듬은 돌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윤리적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의 새 날을 재건하기 위 해 초석이 되어야 할 여섯 가지와 예수님의 윤리적인 사회적인 이상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 인격은 사회 이상의 제일 원칙 예수님은 사회적 생활의 최상의 이상은 인격이라고 믿는 사상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물건 위에다 사람을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모든 물건을 다 멸시한 것은 아닙니다. 물건은 물건으로써 가치를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순서가 있는데 인간과 물건들을 놓고 볼 때 어느 것을 먼저 놓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시에 인간은 떡 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앞에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이상에 있어서 물건보다는 인간이 먼저라는 것이 우리의 원친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은 누구나 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존재라고 보셨으며, 또한 모든 인간은 누구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각자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영원한 가치를 가진 존재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인격자이며, 도덕적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또한 개개인은 다 영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믿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인간의 자유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사실로부터 온다는 것 입니다. 크리스챤은 세상에서 자유의 근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자유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 크리스챤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능력을 다해서 전제주의적인 사상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회적 생활의 목적은 물질이 아니라 인간이며, 이 인간은 과연 우리의 사회적인 이상의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2. 인류 사회의 연대성 예수님제서는 이와 같이 물건이 아닌 인간이 사회 이상의 원칙에
첫째 가 된다고만 믿으신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인류 사회의 연대성을 믿으셨습니다. 전도자등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하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윤리적 생활을 실제에 적응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 라고 외치는 순간은 바로 우리가 인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과 전 인류는 다 한 형제라는 것을 시인하는 순간입니다.그러나 우리가 한 번 구체적인 사건에 부딪치면 그 때는 곤란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한다면 인종차별을 없애고, 혈통, 언어, 문화, 국경을 초월해서 사랑하고 연대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매 세기마다 거의 전쟁이 없었던 때가 별로 없었습니다. 만일 온 세계에 있는 기독인들이 다 연합하여 과거의 정부가 할 수 없었던 전쟁의 종식을 가져오게 하고, 만인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법 과 질서의 세계를 우리 그리스도인의 힘으로써 건설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3. 인류의 공동 선(善)의 우월성 예수님은 인류의 공동선의 우월성을 믿으셨습니다. 사회 이상은 개인주의의 고수입니다. 그러나 공동선의 우월성에 있어서 개인이라는 것은 전체 의 행복과 목적을 위하여 바칠 것을 의미했습니다. 각 나라별 GNP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국민 개개인 평균 수입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활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가장 근본되는 문제의 하나는 정의의 실현입니다. 정의는 민주주의적민 방향으로 수립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권력이란 것은 어느 종류의 권력이전 간에 민주주의 통제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권력의 참다운 통제를 하려면 온 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지양해야 합니다. 온 인류가 다 잘 살 고 온 세계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높으면, 비로소 높고 낮은 차별이 전파 되는 세계가 도래될 것입니다.
4. 인류의 공동 권리 예수님의 윤리적인 사회성은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믿으신 것입니다. 출생의 권리, 가정 소유의 권리, 노동의 권리, 교육의 권리 등이 만인 에게 동등하게 있음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수반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세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문제는 세계 어느 곳에 있어서나 크리스챤의 깊은 왔심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의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마음껏 자라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5. 경쟁보다 협동 새 사회의 건설의 초석은 경쟁이 아니고 협동입니다. 우리들은 협동함 으로써 진보를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의 교회는 이와 같은 협동외 사실을 잘 증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이 거대 한 물질주의의 세력과의 대결에 있어서 영적 세력이 분열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서로 협동하여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6. 사회 이상의 원칙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회적 이상의 원칙은 폭력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오늘날 현대 국가에서는 법률적 재가 밑에서 폭력도 정당한 자기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폭력이나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질서가 있는 교회나 국가를 건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포용할 수있는 보다 더 큰 것 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야말로 사회를 결속하는 유일의 힘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벽돌은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듬은 돌을 가지고 다시 집을 지을 것입니다. 뽕나무는 다 뽑힘을 당할 것이나 우리는 그 자리에 백향목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힘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이 새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화할 때까지 하나님의 일 을 하기 위해서 결심해야 되3a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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