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바깥 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 (겔40:1-27)
본문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루살렘 성의 북쪽에 있는 높은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 꼭대기에서 그는 지도와 같이 펼쳐있는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에스겔이 본 광경을 기록한 것이 40장부터 48장까지 입니다. 먼저 40장에서 48장까지는 다음의 6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겔 40:1-27에서 성전의 큰 동문과 성벽을 따라서 서있는 여러 가 지 건물 및 뜰과 아울러 성전의 바깥뜰에 대한 광경.
(2) 겔 40:28-47에서 성전의 바깥뜰로부터 안뜰로 들어가는 길과 안 뜰에 있는 방들과 안뜰 자체에 대한 광경.
(3) 겔 40:48-41:26에서 성전의 중심이 되는 성전의 성소 건물에 대한 설명.
(4) 겔42:1-20에서 안뜰에 있는 여러 가지 건물과 성전 전체의 척수.
(5) 겔 43:1-12에서 여호와께서 영원히 사시도록 준비되어 있는 성전 안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나심.
(6) 겔 43:13-27에서 안뜰에 있는 번제드리는 단과 성전 전체의 헌당 식 입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전의 주요 건물은 성전의 그것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뜰들은 전혀 달랐었습니다.
1. 에스겔의 본 이상 1-4 1-2절에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된 지 14년이라고, 시드기야 구년에 포위되어 11년에 함락 된 바입니다(렘 39:1-9). 포로된 지 25년이라고 여호야긴이 포로되고 시드기야를 세워 11년에 함락되었으니, 25년에서 일 년을 제하니 11년에 함락된 것이 드러납니다. 정월 십일이니 BC 573년 4월 25일에 해당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에게 인도함을 받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니 장차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메시야 도래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3절에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놋 같이 빛난 사람이 있더라, 즉 계 1:15에 “그의 말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심판주를 가리킵니다. 단 10:5-6은 그는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띠를 띠였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 슥2:1-2에 “척량줄을 손에 잡은 자가 가로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곧 심판주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이시며 생명의 주이시며 교회의 머리 시며 교회 기초(고전 3:11)이시며 교회 머리돌(엡 2:20)이십니다. 예수는 교회 자신이십니다(계 21:22-23).
(2)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건축자이십니다. 3절에 “손에 삼줄과 척량 하는 장대를 가지고” 라고 했습니다. 건축 도구를 손에 쥐고 있는 건축자라는 뜻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문이십니다. 3절에 “문에 서서 있더니” 라고 했습니다. 요 10:7-9에 “예수는 교회의 문이시오”, 요1:51에 “예수는 천국의 문이십니다.” 예수는 지금도 이 문에 서서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 십니다.
(4) 교회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4절에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은 네게 보이려 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은 보고 들은 말씀이며 마음으로 그 내용을 생각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받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2. 성전 바깥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5-27절)
(1) 동향한 문(5-16절) 5절에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라고 했습니다. 겔 43:10에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겔 42:20에 “그가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척량의 의의를 말했습니다. 6절에 “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라고 했습니다. 이 동문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43:1-2) 집 마당 담 있어 그 두께가 한 장대나 되는 두터운 담을 둘러 성 (q)과 속(을 구별하는 바인데, 동 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 문턱을 척량하니 한 장대라고 했으니 속된 것을 든든히 막을만한 두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편문의 층계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오는 층계를 오릅니다. 7-9절에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 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안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척이요 그 문 벽은 이척이라”고 했습니다. 문간에 문지기 방이 있습니다. 시 84:10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방의 장과 광이 한 장대라 했던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라 했고 방은 정방형이니 신앙의 자세가 정방하여 만족합니다. 이는 치우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한 문틀이 한 장대 그 앞에 현관이니 그 출입의 정중함을 알만 합니다. 10-13절 에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척이요 장이 십 삼척 이며 방 앞에 퇴가 있는데 방 이편 퇴도 육척이요 저편 퇴도 육척이여 문간 은 광이 이십오척이라”고 했습니다. 문지기의 방이 좌우로 셋씩이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수 1:7) 또 양편으로 셋씩이나 든든하게 지킵니다. 11절에 문통을 이미 말한 대로 문턱이라면 문의 광을 말함이니 그 치수가 십척이고 그 장이란 복도를 말함인 듯합니다. 양쪽 방에 퇴가 한 자씩 나왔고 양쪽이 같이 육척씩입니다. 주의 전을 봉사하는데 각각 임무는 다르나 주 앞에서는 다 고전 4:2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입니다. 14-16절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 이며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고 했습니다. 시 65:에 “주의 뜰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집 현관에 드나드는 사람은 복이 있는 자입니다. 바깥 문통에서 현관까지 오십 척이라 하였으니 입구의 길이가 오십 척이라 할 것입니다.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습니다. 이는 빛만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개폐가 안 되는 창입니다. 이 창은 오직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의 통로이기도 하거니와 각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그렸다고 했는데 종려가지는 승리의 상징인 것입니다.
(2) 바깥 뜰(17-19절) 17-19절에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그 박석 깔린 땅의 각 문간 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안내받아 전의 여러 부분을 보게 됩니다. 바깥뜰로 안내 받았는데 이 뜰에 박석이 깔렸는데 거기 삼십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안과 밖 형식과 내용이 병존해야 합니다. 19절에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문간 앞까지 재어 보니 백척이라고, 규모를 다시 생각합니다. 15절의 오십 척의 갑절의 됩니다. 척량 안에 들어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의 일체가 다 그 척량 안에 들어야 만족합니다.
(3) 북문과 남문(20-27절) 20-23절에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장이 오십척이요 광이 이십 오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척이더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규모를 이런 기록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살후 3:7에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없이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북향한 문간의 장 오십 척, 광 이십 오척 정방형으로 되어 있음이 보이며 좌우에 문지기 방이 셋 씩이라고 40:10에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요 우편에 셋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향만 다를 뿐 그 양상이 같은 셋 씩의 문지가 방이 있음이 보여집니다. 그 창 현관 장광, 종려가 동향한 문간과 같습니다. 그리고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다고, 층계로 오르는데 밖으로 되어 있습니다. 23절의 안뜰, 19절의 안뜰 2제도가 이렇게 균형들이 잡혀있고 이 문간에서 저 문까지 백척이 되고 이도 19절의 말씀과 같습니다. 24-27절에 “그가 나를 끌고 남으로 간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척이요 광이 이십 오척이며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 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다”라고 했습니다. 본절에서는 “이끌고”라고 했습니다. 6절에 “동향한 문에 이르러”, 20절에 “북 향한 문간”, 24절에 “남향한 문간”, 19절에 “동편과북편이 일반이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남향한 문도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습니다. 장관도 오십 척, 이십 오척, 일곱 층계도 같습니다(21-22절). 문벽에는 종려가 새겨져 있습니다(16절). 이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백척의 척량도 23절과 같습니다.
(1) 겔 40:1-27에서 성전의 큰 동문과 성벽을 따라서 서있는 여러 가 지 건물 및 뜰과 아울러 성전의 바깥뜰에 대한 광경.
(2) 겔 40:28-47에서 성전의 바깥뜰로부터 안뜰로 들어가는 길과 안 뜰에 있는 방들과 안뜰 자체에 대한 광경.
(3) 겔 40:48-41:26에서 성전의 중심이 되는 성전의 성소 건물에 대한 설명.
(4) 겔42:1-20에서 안뜰에 있는 여러 가지 건물과 성전 전체의 척수.
(5) 겔 43:1-12에서 여호와께서 영원히 사시도록 준비되어 있는 성전 안으로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나심.
(6) 겔 43:13-27에서 안뜰에 있는 번제드리는 단과 성전 전체의 헌당 식 입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전의 주요 건물은 성전의 그것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뜰들은 전혀 달랐었습니다.
1. 에스겔의 본 이상 1-4 1-2절에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된 지 14년이라고, 시드기야 구년에 포위되어 11년에 함락 된 바입니다(렘 39:1-9). 포로된 지 25년이라고 여호야긴이 포로되고 시드기야를 세워 11년에 함락되었으니, 25년에서 일 년을 제하니 11년에 함락된 것이 드러납니다. 정월 십일이니 BC 573년 4월 25일에 해당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에게 인도함을 받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니 장차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메시야 도래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3절에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 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놋 같이 빛난 사람이 있더라, 즉 계 1:15에 “그의 말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심판주를 가리킵니다. 단 10:5-6은 그는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띠를 띠였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 슥2:1-2에 “척량줄을 손에 잡은 자가 가로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곧 심판주이시며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이시며 생명의 주이시며 교회의 머리 시며 교회 기초(고전 3:11)이시며 교회 머리돌(엡 2:20)이십니다. 예수는 교회 자신이십니다(계 21:22-23).
(2)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건축자이십니다. 3절에 “손에 삼줄과 척량 하는 장대를 가지고” 라고 했습니다. 건축 도구를 손에 쥐고 있는 건축자라는 뜻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문이십니다. 3절에 “문에 서서 있더니” 라고 했습니다. 요 10:7-9에 “예수는 교회의 문이시오”, 요1:51에 “예수는 천국의 문이십니다.” 예수는 지금도 이 문에 서서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 십니다.
(4) 교회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4절에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은 네게 보이려 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은 보고 들은 말씀이며 마음으로 그 내용을 생각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받아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2. 성전 바깥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5-27절)
(1) 동향한 문(5-16절) 5절에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라고 했습니다. 겔 43:10에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겔 42:20에 “그가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척량의 의의를 말했습니다. 6절에 “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라고 했습니다. 이 동문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43:1-2) 집 마당 담 있어 그 두께가 한 장대나 되는 두터운 담을 둘러 성 (q)과 속(을 구별하는 바인데, 동 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 문턱을 척량하니 한 장대라고 했으니 속된 것을 든든히 막을만한 두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편문의 층계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오는 층계를 오릅니다. 7-9절에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 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안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척이요 그 문 벽은 이척이라”고 했습니다. 문간에 문지기 방이 있습니다. 시 84:10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방의 장과 광이 한 장대라 했던 매방 사이 벽이 오척이라 했고 방은 정방형이니 신앙의 자세가 정방하여 만족합니다. 이는 치우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한 문틀이 한 장대 그 앞에 현관이니 그 출입의 정중함을 알만 합니다. 10-13절 에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척이요 장이 십 삼척 이며 방 앞에 퇴가 있는데 방 이편 퇴도 육척이요 저편 퇴도 육척이여 문간 은 광이 이십오척이라”고 했습니다. 문지기의 방이 좌우로 셋씩이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수 1:7) 또 양편으로 셋씩이나 든든하게 지킵니다. 11절에 문통을 이미 말한 대로 문턱이라면 문의 광을 말함이니 그 치수가 십척이고 그 장이란 복도를 말함인 듯합니다. 양쪽 방에 퇴가 한 자씩 나왔고 양쪽이 같이 육척씩입니다. 주의 전을 봉사하는데 각각 임무는 다르나 주 앞에서는 다 고전 4:2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입니다. 14-16절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 이며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있으며 각 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고 했습니다. 시 65:에 “주의 뜰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집 현관에 드나드는 사람은 복이 있는 자입니다. 바깥 문통에서 현관까지 오십 척이라 하였으니 입구의 길이가 오십 척이라 할 것입니다.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습니다. 이는 빛만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개폐가 안 되는 창입니다. 이 창은 오직 하나님과 통하는 기도의 통로이기도 하거니와 각문 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그렸다고 했는데 종려가지는 승리의 상징인 것입니다.
(2) 바깥 뜰(17-19절) 17-19절에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그 박석 깔린 땅의 각 문간 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안내받아 전의 여러 부분을 보게 됩니다. 바깥뜰로 안내 받았는데 이 뜰에 박석이 깔렸는데 거기 삼십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안과 밖 형식과 내용이 병존해야 합니다. 19절에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문간 앞까지 재어 보니 백척이라고, 규모를 다시 생각합니다. 15절의 오십 척의 갑절의 됩니다. 척량 안에 들어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의 일체가 다 그 척량 안에 들어야 만족합니다.
(3) 북문과 남문(20-27절) 20-23절에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장이 오십척이요 광이 이십 오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척이더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규모를 이런 기록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살후 3:7에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없이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북향한 문간의 장 오십 척, 광 이십 오척 정방형으로 되어 있음이 보이며 좌우에 문지기 방이 셋 씩이라고 40:10에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요 우편에 셋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향만 다를 뿐 그 양상이 같은 셋 씩의 문지가 방이 있음이 보여집니다. 그 창 현관 장광, 종려가 동향한 문간과 같습니다. 그리고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다고, 층계로 오르는데 밖으로 되어 있습니다. 23절의 안뜰, 19절의 안뜰 2제도가 이렇게 균형들이 잡혀있고 이 문간에서 저 문까지 백척이 되고 이도 19절의 말씀과 같습니다. 24-27절에 “그가 나를 끌고 남으로 간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척이요 광이 이십 오척이며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 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다”라고 했습니다. 본절에서는 “이끌고”라고 했습니다. 6절에 “동향한 문에 이르러”, 20절에 “북 향한 문간”, 24절에 “남향한 문간”, 19절에 “동편과북편이 일반이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남향한 문도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습니다. 장관도 오십 척, 이십 오척, 일곱 층계도 같습니다(21-22절). 문벽에는 종려가 새겨져 있습니다(16절). 이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백척의 척량도 23절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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