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기지 않도록 (잠5:7-14)
본문
1. 죄의 문 앞에도 가지 말라 7-8절에 “그런즉 나의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은 죄에 대해 아주 두려워하는 감정과 미워하는 감정을 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죄는 멀리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의 별미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간에 끊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주님께서는 마 5:28-30에서 “범죄하는 손이 있거든 찍어 버리라 두손으로 지옥가는 것보다 한 손으로 천국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2:22에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6:18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서 죄를 범하느니라”고 했으며, 요셉도 창 39장에서 음녀의 유혹을 피하였으므로 이겼습니다. 본문 잠 5:8에도 그 집문앞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동양 옛 글에도 “군자는 음란한 풍악과 사특한 예를 마음에 접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였으며, “예가 아니면 보질 말며, 듣지 말며, 말하지 말며, 동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유교에서는 아기 가진 임부들에게 보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눈으로 사특한 것을 보지 말며, 귀로 음란한 소리를 듣지 말며, 밤이면 눈을 감고 시를 외우며, 바른말을 말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임신부인만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살아야 될 것을 가르칩니다. 사람은 외부에서 보고나 듣거나 하는 것으로 그 인격에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문앞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 했습니다.
2. 빼앗기지 않도록 솔로몬은 죄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존영을 빼앗기지 않도록 9절 상단에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른바 존영이란 말은 명예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장려하는 명예는 물론 사람 앞에서 받는 칭찬이 아니고 하나님의 높여 주심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전 7:1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음이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롬 2:29에 말씀대로 진정한 칭찬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란함으로 받는 명예 손상은 직접 하나님의 벌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음란한 죄로 영구히 명예 손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죄를 감추기 위하여 왕권까지 동원하여 그 연인의 남편을 죽이기까지 하였으나 그 죄상은 백일천하에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유다도 자기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맺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는 기록이 창 38장과, 마1: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이것을 영원히 짊어져야 하기에 명예는 손상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존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존영을 지켜 범죄치 않으면 마나물이 그에게 순종하나 존영을 상실해 버리면 만물의 때만도 못하게 됩니다. 죄는 인간의 존영을 빼앗아 갑니다. 성병은 이목구비를 일그러지게 하여 인간 육체의 존영을 빼앗아 가고, 아편 중독은 파렴치하게 하여 인격적인 존영을 빼앗아 갑니다. 타락은 양심의화인과 같아서 영적인 종영을 빼앗아 갑니다. 청년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귀한 가능성의 존영을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빼앗기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죄를 멀리 해야만 합니다.
(2) 수한을 빼앗기지 않도록 9절 하단에 “네 수한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수한이란 말은 세월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청춘을 주신 목적은 전 12장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할 시간은 귀중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엡 5:15-17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천명을 다 못살고 죽으면 요사라고 하여 슬퍼하고, 비명에 죽으면 횡사라고 하여 꺼리며, 곱게 생을 마쳐야 곤존명예라 하여 천(수를 했다고 부러워합니다. 우리나라 옛 사람은 60을 환갑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60이 넘으면 장수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인생이 짧다고 한탄을 하면서 더 살고자 합니다. 기 대두라는 청년은 23세에 살인마로 많은 사람을 죽이더니 사형을 당해 생을 짧게 마감하였습니다. 이처럼 방종은 죽음을 초래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자라도 주색에 빠지면 죽음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공연히 포악하게 굴며 주색에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 자기 건강과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은 무가치한 죽음입니다. 잠 6:26에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하느니라”고 했습니다.
(3) 재물을 빼앗기지 않도록 10절에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유산을 받아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나 자기 노력으로 획득한 자들은 재산을 잘 관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하야여 합니다. 사회공동복리를 위해, 교육 사업을 위해, 자기 재산을 바치거나 또는 하나님 앞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 되나, 주색자기나 범죄함으로 인하여 귀한 재산을 낭비하는 것은 결코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잠 6:10에 “좀더 자라,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과욕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솝의 우화처럼, 외나무다리에서 뼈를 입에 문 개가 개울물을 보니 어떤 다른 개가 입에 뼈를 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개는 욕심이 나서 그 개의 입에 있는 뼈까지 빼앗아 먹으려고 소리지르다 자기가 물고 있던 뼈마져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과욕은 자기의 것까지 잃어버리게 합니다. 따라서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후일을 빼앗기지 않도록 11-14절에 “두렵건데 마지막에 이으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게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하게 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하고, 소년의 날보다 노후가 영화로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빼앗긴 청춘을 한스러워할 줄은 알면서도 후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할 줄은 모릅니다. 청춘을 헛되어 보낸 것을 후회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을 잘 활용하여 후일을 보람있게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후에는 세 가지 낙이 있다고 합니다.
(1) 자식의 낙,
(2) 사업의 낙,
(3) 천국의 낙이 바로 그것이라 합니다. 젊은 시절 주색에 빠져 살림을 탕진하면 자식의 낯을 볼 면목이 없고, 적선이 없으면 친구 낙이 없고, 병들고 가산 없는 노후가 되면 오는 친구와 자식이 없는 비참한 생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은 노후의 후일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11-14절에 경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좋은 것들을 빼앗기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식들에게 세상 교육에 앞서 신앙 지도를 잘 하여 주의 법도 안에서 자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주 안에서, 진리 안에서 지혜의 말씀대로 생활하여 축복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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