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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고전15:50-58)

본문

신자는 구원받은 자리에 머물러만 있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행동지침이 필요하다. 그 첫번째 행동지침은 ‘승리’이다. 우리는 곧잘 승리라는 말을 오해한다. 이것은 상대방보다 더 큰 힘과 더 지혜로운 전략과 더 새로운 병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앙생활에서의 ‘승리’는 결단코 내가 싸워야 할 적군보다 더 큰 힘을 가짐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 이런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지 모른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 대표적인 말씀이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유한이 무한을 담을 수 없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을 담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것이고 썩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유업으로 받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어떻게 변하여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 변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우리도 다 죽어서 썩을 것이다.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는데 우리는 썩을 것이다. ‘우리가 썩지 않을 것을 받고 혈과 육이 신령한 것’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변화하기 위하여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변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도 없다. 왜 그런가 우리가 그때는 썩어서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흙이고 무엇이 뼈인지 모를 단계에 내가 들어가서 변화를 내가 기다리고 있고 또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야만 변화된다는 것을 알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4)”
우리가 사망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누구에겐가’에 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진흙 속에 붙잡고 있던 사망이 그의 권세를 놓쳐서 우리가 부활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부활되는 순간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썩어 있고 누워 있을 뿐이다. ‘변화될 것’에 관하여 어떤 징조든지 나타나지 않고 다만 썩어 문드러져 누워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우리가 이기지 않고 이김을 주심으로 이길 뿐이다. 신앙생활의 ‘전투’란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이길 싸움’을 해야될 뿐이다. 신자들의 가장 큰 ‘미련함’은 ‘전투’ 자체가 하나님이 요구하신 ‘전투’ 아닌 것을 하고 있으면서 승리를 달라고 하는 데 있다. 그 ‘전투’가 승리할 ‘전투’여야 한다.
우리 전 인생의 가장 큰 병은 원줄기와 원뿌리가 아닌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하는 ‘전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 부분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 구절이 가장 재미있는 것은 “공중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오늘 있다 아궁이에 던지울 들풀을 보라” 이 이야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것들을 위하여 ‘네 인생을 목표 삼지 말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위하여 네 인생을 목표 삼아라’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혜로와야 할 때에는 뱀 처럼 지혜로와도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 원래의 목표를 자기 인생으로 살 것을 목표로 해 놓고서 거기에다 성경책으로 치장한다. 성경은 말씀을 읽어서 여기에 나오는 뜻대로 살라고 주신 것이지 어려울 때 도용하라고 주신 것은 아니다. 자존심의 싸움, 세상의 권세와 우월감을 누리고 싶은 싸움을 걸어놓고 하나님 보고 도와달라고, 제가 내 이웃을 사랑했노라고, 양보했노라고 우기고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싸움이기에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25-33)”
이들이 그 전쟁을 회피한 이유는 전쟁에 이길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리고성은 어떻게 정복하였는가 화살 하나 쏘지않고 일곱바퀴 돌아서 ‘무너진 성’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믿음으로 이겨라’라는 말씀은 싸움의 과정이 아니다. 그 싸움의 방법도 아니다. ‘무슨 싸움을 할 것인가’에서 믿음은 언제나 동원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싸우라 하신 그 싸움을 싸울 것인가, 다시 말하면 인생을 먹고 마시는 것을 목표로 하지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 것인가에서 우리의 싸움이 어떤 싸움인가가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과 그것이 못표가 돠는 것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해서 자기 생명이 자기 손에 달린 줄 알고 목표삼을 것인가가 그 전투의 갈림길이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쪽 길에 들어선 자, 먹고 사는 것이 목표이어서 자기 인생을 자기 손에 의해서만 확인하고 안심하며 걸어가는 신자에게는 승리가 없다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한 싸움을 싸우는 자에게는 기가막힌 승리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 인생을 선언하고 그렇게 살기로 작정하지 않는 그런 인생에 ‘순교’라는 것이 쓰여질 대목이 없는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분명코 하나님이 요구하는 길을 걷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은 대강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지고 있다. 정당하게 사는 길이 외로운 일이 되어 버렸다.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찌니라(신 12:7)”
예수 믿는 삶은 재미있는 것이요, 풍성한 삶이다. 기적의 연속이요, 차고 넘치는 삶이다. 믿는다는 것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고 지금 천국가는 표를 받았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생활을 말한다.
하나님이 싸우라고 명하신 싸움이 있을 뿐이다. 그 싸움은 오직 하나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렇게 살면 실패란 없다. 지지 않는다. 승리만 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요단강을 건너고 홍해를 가르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이 오늘날 나의 경험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인생을 복됨, 그 승리, 실패할 수 없는 생애, 이것이다.
우리는 이 자리까지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믿고 살겠다고 여기와 앉아 있다. 우리의 인생이 방향을 잡고 못잡은 것이 무엇인가를 지금 이 시간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앞에 인생을 맡기고 살지 않는데도 하나님이 축복하는 인생은 없다. 두가지 의 경우에서는 그렇다. 하나는 어릴 때 그렇다. 신앙적으로 어릴 때는 천하만물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축복을 허락하신다. 처음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이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그 외에 자녀들에게는 이런 식의 축복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맡기지 않았는데 부수적인 ‘때움’으로 요구한 문제에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축복받는 사람은 버린 자식이다.
모든 그의 자녀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부름받고 있고 그의 생명이 맡겨져 있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성경의 고백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 뜻이 갖는 무서운 경고성, 그리고 이 놀라운 축복성을 우리의 마음에 동시에 기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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