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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자 하나님 (시48: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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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스나이더가 쓴 '21 세기 교회의 전망'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50 여명의 지식인들-교회지도자, 역사가, 신학자, 복음전도자들의 견해를 담았는데 그들의 견해란 교회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만한 여러가지 동향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향이란 일종의 방향이나 움직임 흐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향을 연구한다고 해서 진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그러나 동향을 연구한다는 것은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잡고 고민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스나이더가 정리한 10 가지 주요한 동향들은 다음과 같다.
1. 지역교회에서 세계교회로 !
피터 와그너는 현재 매일 적어도 78,000 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전 세계에 새로 생기고 있다. 세계 인구 중 그리스도인 비율은 30 % 로 매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만 어림잡아 약
1,000 개의 교회들이 새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20 세기 초의 기독교는 주로 북반구의 종교였다. 4억 6,200만:9,600만명(83%) 그러나 이제 80 년대는 남반구의 그리스도인들이 북반구를 능가하고 있다. (7억) 지금 여러 면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는 서구 유럽의 몰락을 보충하는 정도를 넘어서 활력과 추진력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가 아니다. 백인의 비율이 80% 이상에서 40 %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교회가 이미 국제화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한다.
2. 부분적인 성장에서 전반적인 부흥으로
그동안 교회 안에서의 부흥운동은 오순절계 교회가 주류를 이루었다. 피터 와그너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표적과 기사를 동반한 강력한 복음주의가 가장 중요한 동향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World Christian의 발행자 에스클리먼은 부흥의 열기가 모든 교파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 역사 서적들은 1980-1995 년에 가장 빨리 성장한 교회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교회'들이었다고 기록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북아메리카에서는 개신교회와 천주교회들이 대화와 교제와 연합의 움직임을 가졌는데 요셉 베일리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과 로마 가톨릭 사이의 베르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불신과 증오 보다는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한 사랑과 화해의 새로운 정신이 도래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3.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기독교 국가로 변화한다.
중국은 현재 세계인구의 1/3 을 차지한다. 그러나 세계교회에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 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중국교회는 현재의 비율을 뒤 엎을 것이다. 더구나 홍콩이 중국에 귀환되는 1997 년에는 50 만의 새로운 신자들을 추가로 얻게 된다. 핍박을 받는 환경에서 활기 넘치는 교회를 이룩한 중국교회에 대하여 사회학자인 Moberg는 중국교회 특히 가정교회운동의 부흥은 차츰 비제도화 되어가고 있는 기독교권에서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중국은 무서운 기독교 국가로 변모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4. 제도적인 전통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5.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에서 사역자의 공동체로6. 남성지도자 제도에서 남녀 동반자 제도로
7. 세속화로부터 종교적인 상대주의로
8. 핵가족에서 가족의 다양화로
9. 국교 분리로 부터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행동주의로
10. 위태로운 국가들에서 위태로운 행성으로
훌륭한 견해를 가진 석학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견해가 100% 실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제창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는 동안 누구의 말을 듣게 되던지 많은 가르침을 듣고 또 인도를 받게 된다. 어려서는 부모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난다. 앞선 사람이 뒷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온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인도를 받는 사람은 지도자를 통하여 자기의 부족을 채우고 배우기 위하여 따라가게 마련이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서울 근교의 소요산에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체육을 담당하셨던 이 재호 선생님이 함께 동행을 하였다. 선생님을 따라서 반 학생들이 등반을 하게 되었다. 급우들 가운데 5-6 명의 산악반원들이 있었다. 그네들이 어찌나 걸음을 빨리 걷는지 좀 천천히 가자고 모두들 아우성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이 저만치에서 우리를 재촉하며 오기를 기다리다가 우리가 도착하면 쉴 틈도 주지 않고 또 다시 앞장서 가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가을 해가 짧아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길을 잃고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등반을 하였으니 주어진 시간이 불과 서너시간 뿐이었다. 지금처럼 전세버스도 없을 때인데 시내버스를 타려고 내려왔을 때 해는 이미 서산에 넘어가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그제서야 길을 재촉하던 선생님의 말씀이 수긍이 갔다.
인도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생명을 잃기도 하는 것은 분명한 이치이다. 인도자를 따르고 인도자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고 자기완성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인도자를 잘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부모, 좋은 선생님, 좋은 선배 나아가 좋은 친구들 모두 다 중요한 사람들이요 인도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안 인간세계에서 좋은 인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그렇게 희망대로 만 되지 않는다. 과연 우리의 좋은 인도자는 누구며 또 어디에 있는가
1. 우리의 인도자는 하나님이시다.
맨 처음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급으로 보내신 분은 누구신가 하나님이시다. 요셉을 애급에 먼저 보내시고 야곱의 가족을 잇달아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을 단련하시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분은 누구신가 하나님이시다.
출 20:2 '나는 너를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신 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
신 29:5 주께서 40년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
이 모든 성경의 기록들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분이심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말씀들이다.
다윗은 시 23:에서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묘사하였다. 요10장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였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감동적으로 소개하였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 힘든 일에 목숨을 내 걸고 싸우는 일은 피로 맺어진 혈육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희생하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 하나님의 인도는 영원하다. 오늘 본문 14절은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라고 기록되었다. 시 121:에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기록하였다.
2. 하나님은 무엇으로 또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리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표현하였다. 사망의 골짜기에 놓인 양을 끌어내는 지팡이요 사나운 짐승을 쫓아내는 막대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들을 우물가에 놓아서 다른 양들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를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들의 모든 길에서 보호하시며 인도하심을 믿으라.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광야 40년을 지내는 길은 그렇게 쉬운 길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1950 년 6 월에 전쟁을 경험하였다. 40여년 전에 치른 전쟁 속에서 자녀들을 거느리고 보따리를 이고지고 피난길을 지내 온 여러분들은 지금 그 날들을 회상해 보라.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되돌아 가리라. 3년 동안 치러진 전쟁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와 자고 깨면 좌익 우익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피곤하고 지친 세월들을 보내었던가
그래도 피난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모여서 눈물로 기도하며 피와 땀을 흘리면서 교회를 세웠다. 없는 것 가운데서 세운 교회들이 영락교회요 동신교회요 충신교회요 평안교회이다. 물론 원일교회도 그 중에 한 교회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내려 왔다.
시인은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격해 하였다. 구름이 머물면 그들도 머물렀고 구름이 움직이면 그들도 함께 움직였다. 그들이 가고 싶을 때 구름이 움직이고 불기둥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허락해 주신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 교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믿으라 !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십자가로 인도하신다. 교회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십자가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오늘의 교회가 가진 문제는 무엇인가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하는데 문제가 있다. 존귀 영광은 서로 차지하려 한다. 멸시 천대는 찬송가 가사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시인 윤 동주는 민족의 고난을 미리 바라 보면서 십자가 앞에 자기 모가지를 드리우고자 읊었다.
만일 우리가 이 시대에 고난받기를 거절한다면 로마를 떠나는 베드로에게 처럼 우리 주님께서 또한번 십자가를 지시고자 그 고난의 길을 가실 것이다. 십자가는 결코 죽음의 길이 아니다. 생명의 길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다. 그 분은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친히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3. 하나님의 인도는 우리의 생명을 위함이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 10:10)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하여 오셨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 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였다. 또 그는 묵시록 1:3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였다.
이제 우리는 21 세기를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보아야 할 줄 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교회는 살아 남을 수 없다. 지금 세계는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 무쌍한 현실 속에서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들어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령과 그 능력을 의지하며 따라 가는 이들에게는 생명의 능력이 강하게 태동하는 것을 본다.
오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란다면 아멘으로 화답하자. 오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고자 하면 아멘으로 화답하자. 이제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뜻대로 살고자 하면 아멘으로 영광을 돌리자. 이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 견고히 선 교회인 줄로 믿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더욱 풍성한 생명과 함께 넘치는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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