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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받은 사람들 (단10:10-12)

본문

본문 11절을 보면 다니엘을 가리켜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19절 역시 그를 가리켜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신임과 인정을 크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서신의 서두와 말미에 반드시 “은혜가 있을찌어다”라는 인사를 넣곤 했습니다.
출애굽기 33:12을 보면 모세도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그리고 누가복음 1:28을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주목할 것은 그는 은총을 '크게'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니는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임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하나님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10절을 보면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하고 했습니다.그 손은 하나님의 손입니다.하나님의 손은 다양한 능력과 섬세한 사랑을 행하십니다.
에스라 7:9을 보면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고 했습니다.바벨론을 떠난 이스라엘이 4개월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무사히 빠르게 도착한 이유를 하나님의 손이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37:24을 보면 “저는 엎드러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의 손은 능력이 있어서 한 번 그 손에 붙잡히면 결코 빼앗을 수도 없고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요한복음 10:29절을 보면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손을 묘사한 곳은 많습니다.
신명기 5:15을 보면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냈다”고 했고 여호수아 4:24을 보면 “능하신 손”라고 했습니다.
시편 89:13을 보면 “주의 손은 강하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6에서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라고 했습니다.구약과 신약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손을 능하고 강하신 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그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져 주신 것입니다.하나님의 손은 능하고 강한 큰 손으로 믿고 있는 다니엘이 있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떨었습니다.그러나 곧 그는 그 손이야말로 자신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자비의 손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들 풀 한포기도 어루만지면 잘 자랍니다.애완동물도 쓰다듬고 어루만지면 순해집니다.하나님의 손길로 어루만짐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순합니다.
상담학자 클라이드 네레모어(Clyde M.Narramore)는 “모든 행동에는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청소년이 지니는 문제들은 신체적 정서적 영적인 복합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 네레모어의 견해입니다.특히 청소년의 정서불안의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애정결핍이라는 것입니다.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으며 자란 사람은 진한 애정 경험때문에 자신을 함부로 방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따뜻한 보살핌이나 돌봄을 경험하지 못하며 자란 사람은 그에 대한 욕구가 누적되면서 이상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2.일으켜 주셨습니다.
10절 하반절을 보면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일으켜 주셨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면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춘향전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옥에서 끌려나온 춘향이 어사가 된 이몽룡 앞에 꿇어 앉아 얼굴을 땅에 댄 채,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때 “머리를 들라”는 소리가 들립니다.그것은 나를 똑바로 보라는 것입니다.즉 대면하라는 것입니다.
땅에 엎드려 떨고 있는 다니엘을 하나님은 일으켜 주셨습니다.그것은 나를 대면해도 좋다는 허락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1을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 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줄서기나 줄대기에 바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대통령을 대면하면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랑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 취임식에 한국 정치인 3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그러나 그 중에 정식초청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자기 돈쓰고 무엇때문에 남의 나라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가느냐고 물었더니,훗날 정치 홍보용으로 써먹기 위해서라고 누군가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그것도 모처럼만의 대면이 아니라 친구처럼 늘상 대면하고 살았습니다.
다니엘에게도 그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은총중에 가장 큰 은총은 하나님을 날마다 대면하고 사는 것입니다.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 사장인 '아이아코카'는 1946년 대학을 졸업한 후 펜실베니아주 체스터시에 있는 포드자동차회사의 외판원으로 취직했습니다.그는 거기서 포드사의 동부해안지역 담당판매부장인'찰리비첨'을 만났습니다.아이아코카의 능력을 인정한 비첨이 10년 후 포드사의 판매담당 총책임자로 승진하면서 아이아코카를 전국 트럭 판매부장으로 발탁했습니다.
1960년 아이아코카가 36세였을때 포드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서의 총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비첨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그는 포드사의 사장을 거쳐 크라이슬러사의 회장이 된 것입니다.윗사람을 잘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은 은총중에 큰 은총입니다.날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산다면 만사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재회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일으켜 세우신 주님은 다정하게 “다니엘아”라고 그를 부르셨습니다.(12)이것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허용되었음을 뜻합니다.
모세의 경우도 하나님과 대면만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했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대화가 오고갔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이사야 41:8을 보면 아브라함을 가리켜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로 여겨주셨습니다.그러기에 대면도 대화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의사소통이나 표현방법으로 편지나 전화를 사용합니다.편지는 고전적 방법이긴 하지만 낭만과 여유를 줍니다.전화는 편리하긴 합니다만,다분히 사무적이고 의례적인 냄새가 짙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만남입니다.열번 전화보다는 한번 만남이 더 효율적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대화할 수 있습니까.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기도는 대화입니다.기도하는 사람은 은총을 받아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을 자주 만나십시다.그리고 시간마다 순간마다 대화를 나눕시다.
3.일어서라고 하였습니다.
11절 하반절을 보면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말씀 이후에 떨며 일어섰습니다.
일어서는 것은 성장과 행동을 의미합니다.갓난아이가 일어서는 것은 그만큼 자랐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그기스도인은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늘 걸음마만을 되풀이 해선 안됩니다.
사도행전 3:6을 보면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명령했습니다.“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가령 한두번 정도 애정표현으로 아내가 남편의 입에 밥숟갈을 넣어주는 것은 멋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365일 끼니마다 입에다 밥숟갈을 넣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자기 손으로 쑥쑥 입에다음식물을 넣는 것입니다.소화도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끼니마다 소화제 신세를 지는 것은 불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다니엘에게 “일어서라”고 했습니다.일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라는 찬송처럼 주의 일을 위해 일어섭시다.
4.용기를 주셨습니다.
12절을 보면 “그가 내게 이르시되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양대 적이 있습니다.그것은 의심과 두려움입니다.
의심하면 신앙이 성립되지 못합니다.두려워하면 신앙이 깨어져 버립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과 기적과 창조의 능력을 의심하게 합니다.“네 지식과 지성과 경험으로 미루어 보라,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기적이 어디 있느냐”라고 유혹하면서 의심하게 합니다.믿음이 적을수록 의심은 커집니다.뿐만 아니라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겁나게 하여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이나 방법을 찾게 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내쫒지만 의심과 두려움은 믿음을 깨뜨립니다.
선다 싱이 네팔에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자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독방에 가두고 옷을 벗긴후 손발을 묶었습니다.거머리가 달려들어 선다 싱의 피를 빨기 시작했습니다.선다 싱을 고소하여 옥에 넣은 사람이 교도관에게 물었습니다.
“선다 싱을 어떻게 생각합니까”“그는 감옥에서도 퍽 행복한 표정이오 그는 미친것이 틀림없소” 그 후 교도관은 관리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실패했소.우리는 선다 싱에게 행복감만 더안겨 주었을 뿐입니다”라고 이 말을 들은 관리는 “그 미친놈을 당장 석방시키라”고 했습니다.
참다운 용기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임합니다.“두려워 말라”는 그 음성은 용기와 힘을 북돋는 말씀입니다.
풍랑만나 벌벌떨고 있는 제자들에게로 오고 계시던 주님은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겁내지마라.내가 곁에 있다.두려워 말라 내가 함께한다”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을 찾겠습니다.그토록 큰 은총을 받는 비결은 무엇입니까,12절 하반절을 보면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고 했습니다.여기 은총의 중요한 관건이 있습니다.다니엘은 한평생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주님의 뜻이 무엇인가,어떻게 사는 것이 주의 뜻인가를 찾고 그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는 늘 겸비의 사람이었습니다.가장 신임받는 수석 총리가 된 뒤에도 그는 겸손했습니다.
그 점이 그가 큰 은총을 힘입게 된 동기였고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기로 결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잠언 22:4을 보면 “겸손한 사람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페르시아 왕국의 국무총리였던 하만은 교만하다가 장대에 달렸습니다만,다니엘은 겸손함으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지금도 이슬처럼 임하고 있습니다.
주의 뜻을 깨닫고 자기를 낮추면 누구나 큰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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