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구원을 얻는가 (눅18:18-30)
본문
오늘 본문은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영생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문자 그대로 오래 산다는 단순한 의미만이 아니라 올바른 삶, 풍성한 삶, 승리의 삶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 어려운 일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무너지고 있고, 불행해지고 있습니다. 곧 죽음의 두려움, 죽음의 공포, 멸망의 공포입니다. 이러한 때에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죽음의 그림자, 멸망의 두려움 가운데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으로 인해서 이 모든 멸망과 죽음을 이기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풍성한 삶, 그리고 때가 되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삶 이 두 가지를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꼭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 어떻게 영생을 받는가!" 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에 한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에 모습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어떻게 해야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첫째로, 이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21절에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이러한 계명들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 사람의 세상적 지위는 18절에 보면 "관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원이란 말은 산헤드린 공회 회원을 관원이라고 보통 말합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고관입니다.
셋째로, 이 사람은 23절에 "큰 부자"라 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은 부모에게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넷째로, 마태복음 19장 20절을 보면 똑같은 사람인데 "그 청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젊은이, 청년이다.
그런데 벌써 젊은 나이에 관원이 되었고, 부자이고, 그러면서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다섯째는,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또 같은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올 때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 예수님께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단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올 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여쭈는 그런 모습입니다. 참으로 겸비한 모습입니다. 이런 대단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와서 무엇을 구했는고 하니 영생을 구했습니다. "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십시요. 이 사람이 무엇이 부족합니까 젊은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큰 부자입니다. 또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젊음에 건강하고, 아쉬울 것이 없는 누가 보던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탄식하면서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까" 곧,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인데 이 사람의 영혼과 그 마음속에 영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 많은 재산, 도덕적으로 양심에 거리낌없이 사는 사람이 "심령에 영생이 없다." 그것을 스스로 느끼고, 탄식하고, 갈망하는 이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젊은 관원을 보시고 마가복음 1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 하사 가라사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도 이 젊은이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그런 사람입니다. 관원의 자리에 있는 사람, 큰 부자에다 이런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그리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산 사람인데 이만한 사람이라면 교만하기 쉽고, 뽐내기 쉽고, 내가 뭐가 부족하냐!하며 그렇게 살 만한 사람인데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꿇고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까" 하고 탄식하는 이 젊은이의 영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랑스러운 젊은이에게 그가 원하는 영생에 대하여 분명히 대답하십니다. 22절에 보면 " 네가 영생을 얻고자 하거든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버리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영생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이 젊은이가 큰 부자 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젊은이는 오히려 예수님께로 나와서 시원한 대답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 앞에 와서 말씀을 듣고 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더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더 갈등이 왔어요. 예수님께로 와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심히 근심하며 갔다."그랬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근심하며 돌아가는 젊은이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도 대단히 민망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24-25절에 "재물이 있는 자(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생이란 "사람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는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 주여!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27절에 말씀을 하십니다.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영생)은 사람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있다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았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이 곤고하고 슬픔이 많고 두렵고 무서운 일이 많은 세상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생의 축복을 오늘 이 시간에 확실하게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받으므로 그 영생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이기는 자들 오늘 여러 가지 많은 슬픈 일과 공고한 일들이 있지만 그것을 이기는 영생, 하나님의 생명으로 승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놀라운 영생을 얻느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 모든 걸 버리고" 또 하나는 "나를 좇으라" 하는 두 가지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이 젊은이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그런데 이 말씀이 젊은이에게는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라"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9절에 보면 가지고 있는 재물만 버리는게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부모, 형제, 처자식까지 버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 분이 집사님 되기 전에 교사였는데 어느 날 그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이 구절을 펴서 찾아 놓더니 " 목사님! 내가 성경 보다가 너무 고민에 빠진 말씀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부모를 버리고 처자식을 버리라고 합니까 다른데 보면 부모님 공경하고,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이 어찌 여기서는 부모를 버리고, 그것도 처와 자식을 버리라고 그럴수가 있습니까" 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아내와 형제와 부모와 자녀들을 버린 자는 30절에 보면 "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집을 버린 사람은 여러 배를 받는다." 그것은 이해가 돼요.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논 한 마지기를 버리니까 열 마지기가 생겼다. 다 우리가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버리고 아내를 버렸는데 그로 인해서 금세에 여러 배로 받는다 " 그럼 부모가 여럿이 생깁니까 또 마가복음 10장 30절에 보면 백배나 얻는데요. 백배. 제가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제 아내를 버리면 아내가 백명 생기는 겁니까 그럼 우리 남자들은 수지 맞았네요 부인이 백명 생기니까 기분이 참 좋겠네요 회교는 그렇게 말하지요. 알라신을 믿는 회교는 알라가 주는 복은 아내를 많이 얻게 하는 거다. 그게 지상에 주는 최고의 축복이다. 그러니까 회교는 남자들이 많이 믿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을 "모든 걸 버린다부모와 처자식을 버린다" 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또 마태복음 16장 24절에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에는 자기까지 버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내가 나를 어떻게 버립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걸 버려야 된다. 심지어는 자신까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영생을 얻는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그 말입니다. 모든 걸 버릴 수 있도록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뭘 버립니까 쓸모 없는 것들, 쓰레기, 깨진 것들, 또 썩고 냄새 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모아서 다 버립니다. 사기 그릇을 쓰다가 식탁에서 떨어져 박살이 났을 때 빗자루에 쓸어서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버린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내 자신까지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내 모든 것과 내 자신까지 버릴 수 있도록 만드시는 그 하나님에 은혜란 도대체 어떤 은혜입니까 반드시 이 은혜를 받아야 영생에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축복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 나를 버린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 자신은 하나님께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받았느냐 철저하게 깨지는 것입니다. 사기 그릇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듯이 하나님께서 내 자신을 철저하게 깨뜨리실 때, 그러면 어떻게 깨뜨리시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리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은 내가 얼마나 추하고, 더럽고, 악한가 하는 것을, 곧 쓰레기만도 못한 내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속속들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신이 진정으로 고백합니다. 그렇게 악한 줄 몰랐습니다. 제자신이 상당히 선하고, 남들 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라고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부어 주실 때 바로 어떤 은혜를 부어 주셨는가하면 내 자신에 참 모습을 나로 하여금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점점 보이는데 참으로 그렇게 악한 줄, 그렇게도 거짓되고, 교만하고, 완고한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박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깨졌다고 깨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계속 깨뜨리시는데 깨지고 또 깨졌는데도 아직도 깨지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더라구요. 아직도 내 속에는 완고함이 남아 있고, 고집스러움이, 교만이 남아 있는 것을 하나님은 그것을 계속 깨시면서 또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여 주실 때마다 내 자신이 어떻게 미운지, 어떻게 가증스러운지, 그러다 깨지고 나면 하나님께서 또 두 번째 단계로 깨지면 반드시 또 세워 주십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깨지고 박살이 나서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또 세워 주십니다. 세워 주셔서 불쌍히 여겨서 되게 하시면 또 그게 내가 잘나서 된 줄로 착각하고 내 속에서 자고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이 느슨해집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로 즉시 또 깨뜨리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려운 일이 생겨요. 잘 나가던 것이 복잡해집니다. 생각지 못한 시험이 터집니다. 그때마다 "아! 하나님 또 나를 깨뜨리십니까!" 하고 나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내 속에 있는 모든 내장을 꺼내듯이 하나님 앞에 통회합니다. 얼마나 송구스럽고, 박살나고,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이렇게 세워 주십니까 하나님이 불쌍해서 세워 놓셨는데 또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자만하는 그런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손발이 닳도록 애통하고 통회합니다. 그리하면 또 깨지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분에게는 질병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많은 성도들이 나가시는데 어떤 형제가 와서 내 왼쪽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막 우세요. 그 분이 왜 그랬나요! 너무 견디다 못해서 그냥 통곡이 터진 모양이에요. 그분이 왜 그렇게 깨졌나요 나이도 상당히 드신 분인데 몸의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나왔단 말이에요. 나와서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보니 더 깨지는 거에요. 견디다 못해서 나가다가 제 가슴을 기대고 통곡을 한 겁니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있나! 어떤 이는 자녀들 때문에, 어떤 이는 부부간의 문제 때문에 왜 그렇게 갈등이 생기는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자고 만난 사람인데 왜 이렇게 자꾸 부딪히는지, 왜 이렇게 자꾸 나는 어려움만 생기는지! 무슨 일이 이렇게 안 풀어지는지! 또 어떤 이는 그래요. "목사님! 저는 깨질게 없이 깨진 사람인데 왜 이럽니까" 글쎄요. 깨질 것이 없도록 다 깨졌다고 생각합니까 정말로 그럴까요 그럼 하나님이 잘못 됐나요 참 어렵습니다. 나는 깨질 만큼 다 깨졌다고 하지마는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내 속에 완고함과, 뻔뻔함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덜 깨졌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아직도 덜 깨진 것, 아직도 남아 있는 육신, 고집스러움, 교만함 이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큰 담벽이 되고 있습니다. 내게 부어 주시고자 하시는 말 할 수 없는 영생을 부어 주셔도 받을 수 없는 담벼락이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 나로 인해서 내 가정이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 깨뜨리는 방법이 바로 이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참 슬프고, 받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 주고자 하는 넘치는 사랑과 복을 아낌없이 부어 주기 위해서 먼저 네가 깨져야 되는 거다. 그래서 네가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내가 알면서도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깨뜨리시는 것이다. " 너는 너무나 단단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 같으면 박살 났고, 벌써 손들었을 거다.
그런데 너는 말이야 깨진 것 같지만 아직도 안 깨졌고, 네 속에는 깡치가 들었어. 더 쉽게 말해 볼까 우물을 파려고 하는데 열 자를 팠어. 자! 물이 나오지.
그런데 그 물은 진짜 생수가 아니야! 더 좋은 생수가 나오려면 더 깊이 파야 되는데 더 깊이 파다 보니 반석이 나왔지! 다 깨진 줄 알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반석이 나왔어. 그 드러나지 않는 저 깊은 곳에 있는 반석, 마지막 저항, 마지막 깨지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석이 나왔으니 그만 둘까 그래도 물은 나오니까 적당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그것 가지고 안되니 목마르지! 반석만 깨면 그 속에서 진짜 생수가 터져 나올 것인데 자! 어떻게 할 것인가 " 바로 하나님이 거기까지 오시는 것입니다. "내 속에, 내 안에 아직도 안 깨진 것이 있구나!" 그걸 인정하라. "오! 하나님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바로 제가 깨져야 됩니다.깨지기만 하면 너를 향하여 아낌없이 내가 은혜와 복을 부어 주리라. 그리고 너의 가정이 살고, 너의 자녀가 살고, 너의 하는 모든 일들이 부활의 은총으로 살아나게 될 것인데 바로 네가 문제로구나! 오! 하나님 맞습니다. 오늘의 많은 고통이 바로 무엇을 위한 고난인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깨뜨리심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힘 없는 영생에 샘물이 콸콸 쏟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손길이 여기 있구나! 하나님 알았습니다.
제가 받아 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말 깨져야 될 존재입니다.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하고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게 와야 비로소 영생의 문턱을 넘어 갑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화목이 됩니다. 여러분! 내게 있는 여러 가지 고난이 원망스럽고, 분하기만 합니까 자존심이 깨지니까 견디기 어렵습니까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거에요. 또 어렵습니다. 내가 이렇게 깨지기만 해야 하나!
그런데 하나님은 '깨지라' 그러십니다. "아직도 너는 덜 깨졌다. 아직도 자존심이 살아 있고, 교만이 남아 있어! 네가 깨지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고, 낮아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어! 심지어 분하게 여기고 있어! 너는 나를 아직도 받아 드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구나!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할 때 왜 죽이겠나! 그냥 죽이기만 하겠나 내가 너를 이렇게 고통 당하게 할 때 다만 고통 당하게 하겠나! 아들아 왜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모르느냐! 네가 언제까지 그런 분한 마음을 품고 살꺼냐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가 아니다. 나하고 너 사이에 문제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반드시 높여 주고 싶다. 너에게 영생을 주고 싶다. 그러나 깨져야 된다. 이 고난을 받아 드려라. 깨짐으로 받아 드려라. 낮아짐과 수모와 멸시를 받아 드려라! 오! 하나님 맞습니다.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두 번째 단계가 부활의 단계입니다. 영생의 단계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뭔가 은혜 받은 사람한테 저는 꼭 물어 봅니다. 어떻게 그런 은혜를 받게 됐습니까 그러면 다 말합니다. 뭐라고 말하냐면, 제가 이런 이런 일로 깨졌을 때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인데 깨지고 나면 내가 보이는 겁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때에 눈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나의 추한 모습 때문에, 나의 악한 모습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나만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니구나!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요. 덜 깨진 나로 인하여 내 가족이, 내 처자식이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가정에 부어 주시는 이 큰 축복을 내가 가로막고 있었구나! 이것이 눈에 드러나니까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 앞에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받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찢으셨으나 도로 낳게 하실 것이요. 깨뜨리셨으나 도로 세우신" 부활의 은총을 물 부듯이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어디서부터 시작 되냐면 " 하나님! 옳습니다." 하고 이 깨어짐과 낮아짐을 잘 받아 드릴 때 바로 즉시로 내 가슴속부터 " 왜 내 마음이 평안합니까 왜 이렇게 마음이 잔잔해 집니까 그리고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몰라요. 하나님! 옳습니다. " 하나님과 비로소 화목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이때부터 정말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깨졌기 때문입니다. 두 손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내 안에서 영생이 옵니다. 부활의 사람, 새 사람이 됩니다. 보십시오. 똑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깨지기 전의 사람과 하나님이 큰 은혜로 철저히 깨진 다음의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생긴 것도 같고, 이름도 같고, 생활하는 형편도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손 안에서 깨지고난 다음의 그 사람은 전혀 새로운 사람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걸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이젠 주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이젠 주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내가 살고 그러면서 가족의 관계가 변화됩니다. 참 감사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가끔 미운 생각이 났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불쌍한지! 사랑하지 못하고,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내가 저 사람한테 고통만 많이 줬구나! 생각해 보면 얼마나 내 자신이 죄스럽습니까 제대로 먹게도, 입히지도 못하고, 사랑해 주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딱딱거리는 이런 나의 모습인데 내 자신도 싫고, 미운 나이지만 정말 버릴 수밖에 없는 쓰레기 같은 나를 하나님은 그 순간에 다 품어 주시고, 끓어 안아 주시고 세워 주십니다. "너는 이제부터 새로운 사람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을 이제부터 부어 줄 것이다. 너를 향한 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렇게 안되었던 일, 그렇게도 몸부림쳐도 풀어지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생을 이 시간에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고난과 고통이 나를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손길로만 받아 드리시면 벌써 영생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받아 드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
이 세상에서 풍성한 삶, 그리고 때가 되어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삶 이 두 가지를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을 꼭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 어떻게 영생을 받는가!" 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에 한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에 모습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어떻게 해야 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첫째로, 이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입니다. 21절에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이러한 계명들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 사람의 세상적 지위는 18절에 보면 "관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관원이란 말은 산헤드린 공회 회원을 관원이라고 보통 말합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고관입니다.
셋째로, 이 사람은 23절에 "큰 부자"라 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은 부모에게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넷째로, 마태복음 19장 20절을 보면 똑같은 사람인데 "그 청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젊은이, 청년이다.
그런데 벌써 젊은 나이에 관원이 되었고, 부자이고, 그러면서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다섯째는,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또 같은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 사람이 예수님께 나올 때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 예수님께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단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올 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가운데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여쭈는 그런 모습입니다. 참으로 겸비한 모습입니다. 이런 대단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나와서 무엇을 구했는고 하니 영생을 구했습니다. "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십시요. 이 사람이 무엇이 부족합니까 젊은 나이에 높은 지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큰 부자입니다. 또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젊음에 건강하고, 아쉬울 것이 없는 누가 보던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탄식하면서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까" 곧,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인데 이 사람의 영혼과 그 마음속에 영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 많은 재산, 도덕적으로 양심에 거리낌없이 사는 사람이 "심령에 영생이 없다." 그것을 스스로 느끼고, 탄식하고, 갈망하는 이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젊은 관원을 보시고 마가복음 10장 21절에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 하사 가라사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도 이 젊은이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그런 사람입니다. 관원의 자리에 있는 사람, 큰 부자에다 이런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그리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산 사람인데 이만한 사람이라면 교만하기 쉽고, 뽐내기 쉽고, 내가 뭐가 부족하냐!하며 그렇게 살 만한 사람인데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꿇고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까" 하고 탄식하는 이 젊은이의 영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랑스러운 젊은이에게 그가 원하는 영생에 대하여 분명히 대답하십니다. 22절에 보면 " 네가 영생을 얻고자 하거든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버리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영생을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이 젊은이가 큰 부자 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젊은이는 오히려 예수님께로 나와서 시원한 대답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 앞에 와서 말씀을 듣고 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더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더 갈등이 왔어요. 예수님께로 와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심히 근심하며 갔다."그랬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근심하며 돌아가는 젊은이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도 대단히 민망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24-25절에 "재물이 있는 자(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생이란 "사람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옆에서 듣고 있는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 주여!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27절에 말씀을 하십니다.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영생)은 사람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있다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았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이 곤고하고 슬픔이 많고 두렵고 무서운 일이 많은 세상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영생의 축복을 오늘 이 시간에 확실하게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받으므로 그 영생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이기는 자들 오늘 여러 가지 많은 슬픈 일과 공고한 일들이 있지만 그것을 이기는 영생, 하나님의 생명으로 승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놀라운 영생을 얻느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 모든 걸 버리고" 또 하나는 "나를 좇으라" 하는 두 가지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이 젊은이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그런데 이 말씀이 젊은이에게는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라"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9절에 보면 가지고 있는 재물만 버리는게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부모, 형제, 처자식까지 버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 분이 집사님 되기 전에 교사였는데 어느 날 그 가정에 심방을 갔더니 이 구절을 펴서 찾아 놓더니 " 목사님! 내가 성경 보다가 너무 고민에 빠진 말씀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부모를 버리고 처자식을 버리라고 합니까 다른데 보면 부모님 공경하고,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이 어찌 여기서는 부모를 버리고, 그것도 처와 자식을 버리라고 그럴수가 있습니까" 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아내와 형제와 부모와 자녀들을 버린 자는 30절에 보면 "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집을 버린 사람은 여러 배를 받는다." 그것은 이해가 돼요.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논 한 마지기를 버리니까 열 마지기가 생겼다. 다 우리가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버리고 아내를 버렸는데 그로 인해서 금세에 여러 배로 받는다 " 그럼 부모가 여럿이 생깁니까 또 마가복음 10장 30절에 보면 백배나 얻는데요. 백배. 제가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제 아내를 버리면 아내가 백명 생기는 겁니까 그럼 우리 남자들은 수지 맞았네요 부인이 백명 생기니까 기분이 참 좋겠네요 회교는 그렇게 말하지요. 알라신을 믿는 회교는 알라가 주는 복은 아내를 많이 얻게 하는 거다. 그게 지상에 주는 최고의 축복이다. 그러니까 회교는 남자들이 많이 믿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을 "모든 걸 버린다부모와 처자식을 버린다" 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또 마태복음 16장 24절에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에는 자기까지 버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내가 나를 어떻게 버립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걸 버려야 된다. 심지어는 자신까지 버려야 한다. 그래야 영생을 얻는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그 말입니다. 모든 걸 버릴 수 있도록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런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릴 수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뭘 버립니까 쓸모 없는 것들, 쓰레기, 깨진 것들, 또 썩고 냄새 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모아서 다 버립니다. 사기 그릇을 쓰다가 식탁에서 떨어져 박살이 났을 때 빗자루에 쓸어서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버린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내 자신까지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내 모든 것과 내 자신까지 버릴 수 있도록 만드시는 그 하나님에 은혜란 도대체 어떤 은혜입니까 반드시 이 은혜를 받아야 영생에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축복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 나를 버린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 자신은 하나님께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받았느냐 철저하게 깨지는 것입니다. 사기 그릇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듯이 하나님께서 내 자신을 철저하게 깨뜨리실 때, 그러면 어떻게 깨뜨리시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깨뜨리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은 내가 얼마나 추하고, 더럽고, 악한가 하는 것을, 곧 쓰레기만도 못한 내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속속들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제자신이 진정으로 고백합니다. 그렇게 악한 줄 몰랐습니다. 제자신이 상당히 선하고, 남들 보다 더 깨끗한 사람이라고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저에게 은혜를 부어 주실 때 바로 어떤 은혜를 부어 주셨는가하면 내 자신에 참 모습을 나로 하여금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점점 보이는데 참으로 그렇게 악한 줄, 그렇게도 거짓되고, 교만하고, 완고한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박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깨졌다고 깨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계속 깨뜨리시는데 깨지고 또 깨졌는데도 아직도 깨지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더라구요. 아직도 내 속에는 완고함이 남아 있고, 고집스러움이, 교만이 남아 있는 것을 하나님은 그것을 계속 깨시면서 또 보여주시고 또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여 주실 때마다 내 자신이 어떻게 미운지, 어떻게 가증스러운지, 그러다 깨지고 나면 하나님께서 또 두 번째 단계로 깨지면 반드시 또 세워 주십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깨지고 박살이 나서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 자리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또 세워 주십니다. 세워 주셔서 불쌍히 여겨서 되게 하시면 또 그게 내가 잘나서 된 줄로 착각하고 내 속에서 자고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이 느슨해집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바로 즉시 또 깨뜨리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어려운 일이 생겨요. 잘 나가던 것이 복잡해집니다. 생각지 못한 시험이 터집니다. 그때마다 "아! 하나님 또 나를 깨뜨리십니까!" 하고 나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내 속에 있는 모든 내장을 꺼내듯이 하나님 앞에 통회합니다. 얼마나 송구스럽고, 박살나고,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이렇게 세워 주십니까 하나님이 불쌍해서 세워 놓셨는데 또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자만하는 그런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손발이 닳도록 애통하고 통회합니다. 그리하면 또 깨지는 거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시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분에게는 질병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많은 성도들이 나가시는데 어떤 형제가 와서 내 왼쪽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막 우세요. 그 분이 왜 그랬나요! 너무 견디다 못해서 그냥 통곡이 터진 모양이에요. 그분이 왜 그렇게 깨졌나요 나이도 상당히 드신 분인데 몸의 질병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나왔단 말이에요. 나와서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보니 더 깨지는 거에요. 견디다 못해서 나가다가 제 가슴을 기대고 통곡을 한 겁니다.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있나! 어떤 이는 자녀들 때문에, 어떤 이는 부부간의 문제 때문에 왜 그렇게 갈등이 생기는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자고 만난 사람인데 왜 이렇게 자꾸 부딪히는지, 왜 이렇게 자꾸 나는 어려움만 생기는지! 무슨 일이 이렇게 안 풀어지는지! 또 어떤 이는 그래요. "목사님! 저는 깨질게 없이 깨진 사람인데 왜 이럽니까" 글쎄요. 깨질 것이 없도록 다 깨졌다고 생각합니까 정말로 그럴까요 그럼 하나님이 잘못 됐나요 참 어렵습니다. 나는 깨질 만큼 다 깨졌다고 하지마는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내 속에 완고함과, 뻔뻔함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덜 깨졌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아직도 덜 깨진 것, 아직도 남아 있는 육신, 고집스러움, 교만함 이것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큰 담벽이 되고 있습니다. 내게 부어 주시고자 하시는 말 할 수 없는 영생을 부어 주셔도 받을 수 없는 담벼락이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주시고, 나로 인해서 내 가정이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 깨뜨리는 방법이 바로 이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참 슬프고, 받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너에게 주고자 하는 넘치는 사랑과 복을 아낌없이 부어 주기 위해서 먼저 네가 깨져야 되는 거다. 그래서 네가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내가 알면서도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깨뜨리시는 것이다. " 너는 너무나 단단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 같으면 박살 났고, 벌써 손들었을 거다.
그런데 너는 말이야 깨진 것 같지만 아직도 안 깨졌고, 네 속에는 깡치가 들었어. 더 쉽게 말해 볼까 우물을 파려고 하는데 열 자를 팠어. 자! 물이 나오지.
그런데 그 물은 진짜 생수가 아니야! 더 좋은 생수가 나오려면 더 깊이 파야 되는데 더 깊이 파다 보니 반석이 나왔지! 다 깨진 줄 알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반석이 나왔어. 그 드러나지 않는 저 깊은 곳에 있는 반석, 마지막 저항, 마지막 깨지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석이 나왔으니 그만 둘까 그래도 물은 나오니까 적당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그것 가지고 안되니 목마르지! 반석만 깨면 그 속에서 진짜 생수가 터져 나올 것인데 자! 어떻게 할 것인가 " 바로 하나님이 거기까지 오시는 것입니다. "내 속에, 내 안에 아직도 안 깨진 것이 있구나!" 그걸 인정하라. "오! 하나님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바로 제가 깨져야 됩니다.깨지기만 하면 너를 향하여 아낌없이 내가 은혜와 복을 부어 주리라. 그리고 너의 가정이 살고, 너의 자녀가 살고, 너의 하는 모든 일들이 부활의 은총으로 살아나게 될 것인데 바로 네가 문제로구나! 오! 하나님 맞습니다. 오늘의 많은 고통이 바로 무엇을 위한 고난인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깨뜨리심으로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힘 없는 영생에 샘물이 콸콸 쏟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손길이 여기 있구나! 하나님 알았습니다.
제가 받아 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말 깨져야 될 존재입니다.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하고 받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게 와야 비로소 영생의 문턱을 넘어 갑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화목이 됩니다. 여러분! 내게 있는 여러 가지 고난이 원망스럽고, 분하기만 합니까 자존심이 깨지니까 견디기 어렵습니까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거에요. 또 어렵습니다. 내가 이렇게 깨지기만 해야 하나!
그런데 하나님은 '깨지라' 그러십니다. "아직도 너는 덜 깨졌다. 아직도 자존심이 살아 있고, 교만이 남아 있어! 네가 깨지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고, 낮아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어! 심지어 분하게 여기고 있어! 너는 나를 아직도 받아 드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구나!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할 때 왜 죽이겠나! 그냥 죽이기만 하겠나 내가 너를 이렇게 고통 당하게 할 때 다만 고통 당하게 하겠나! 아들아 왜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모르느냐! 네가 언제까지 그런 분한 마음을 품고 살꺼냐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가 아니다. 나하고 너 사이에 문제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반드시 높여 주고 싶다. 너에게 영생을 주고 싶다. 그러나 깨져야 된다. 이 고난을 받아 드려라. 깨짐으로 받아 드려라. 낮아짐과 수모와 멸시를 받아 드려라! 오! 하나님 맞습니다. 저를 깨뜨려 주시옵소서" 두 번째 단계가 부활의 단계입니다. 영생의 단계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뭔가 은혜 받은 사람한테 저는 꼭 물어 봅니다. 어떻게 그런 은혜를 받게 됐습니까 그러면 다 말합니다. 뭐라고 말하냐면, 제가 이런 이런 일로 깨졌을 때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인데 깨지고 나면 내가 보이는 겁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때에 눈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나의 추한 모습 때문에, 나의 악한 모습 때문에, 바로 나 때문에, 나만 고통 당하는 것이 아니구나!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요. 덜 깨진 나로 인하여 내 가족이, 내 처자식이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가정에 부어 주시는 이 큰 축복을 내가 가로막고 있었구나! 이것이 눈에 드러나니까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 앞에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임을 받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찢으셨으나 도로 낳게 하실 것이요. 깨뜨리셨으나 도로 세우신" 부활의 은총을 물 부듯이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어디서부터 시작 되냐면 " 하나님! 옳습니다." 하고 이 깨어짐과 낮아짐을 잘 받아 드릴 때 바로 즉시로 내 가슴속부터 " 왜 내 마음이 평안합니까 왜 이렇게 마음이 잔잔해 집니까 그리고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몰라요. 하나님! 옳습니다. " 하나님과 비로소 화목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이때부터 정말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깨졌기 때문입니다. 두 손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순간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내 안에서 영생이 옵니다. 부활의 사람, 새 사람이 됩니다. 보십시오. 똑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깨지기 전의 사람과 하나님이 큰 은혜로 철저히 깨진 다음의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생긴 것도 같고, 이름도 같고, 생활하는 형편도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손 안에서 깨지고난 다음의 그 사람은 전혀 새로운 사람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걸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이젠 주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이젠 주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내가 살고 그러면서 가족의 관계가 변화됩니다. 참 감사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가끔 미운 생각이 났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불쌍한지! 사랑하지 못하고, 불쌍히 여기지 못하고, 내가 저 사람한테 고통만 많이 줬구나! 생각해 보면 얼마나 내 자신이 죄스럽습니까 제대로 먹게도, 입히지도 못하고, 사랑해 주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딱딱거리는 이런 나의 모습인데 내 자신도 싫고, 미운 나이지만 정말 버릴 수밖에 없는 쓰레기 같은 나를 하나님은 그 순간에 다 품어 주시고, 끓어 안아 주시고 세워 주십니다. "너는 이제부터 새로운 사람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을 이제부터 부어 줄 것이다. 너를 향한 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렇게 안되었던 일, 그렇게도 몸부림쳐도 풀어지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생을 이 시간에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고난과 고통이 나를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손길로만 받아 드리시면 벌써 영생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받아 드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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