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요6:49-51)
본문
오늘 거룩한 주일에 주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충만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셧다고 말씀하셨다. 잠시 잠간 세상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놀라운 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자.
1. 만나를 먹었어도 죽은 조상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1.
1. 만나를 먹었어도 죽은 조상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던 청중들은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데 급급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설교를 청중들의 수준에 맞게 하셨다.
즉 만나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에게 만나를 먹었어도 조상들이 죽었음을 상기시켜 주셨다.
이는 오늘날 육의 양식 축적에만 급급한 무리들에게 필요한 교훈이다.육체적 고갈을 해소하는 데에만 눈을 돌린다면 영적 자산을 잃고마는 것을 우리는 상기해야한다.
만나를 먹었어도 죽은 조상들의 길을 답습하지 않는 영생의 떡을 찾는 성도들이 되자.
1.
2. 생명을 주지못한 만나
유대인들은 만나를 최대의 표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 조산들이 먹었던 만나와 같은 떡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만나가 육체의 배는 부르게 해주었지만 참생명을 주지 못했음을 깨우쳐 주셨다.
만나는 그들 조상의 죽을 몸을 위한 양식에 그쳤기 때문에 그들을 죽음에서 면해주지는 못했다.
생명을 주지못한 만나만을 구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직도 영생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전 기독교인들의 기도의 제목이다.
1.
3. 땅의 음식인 만나
땅의 음식인 만나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만나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벡성의 일용할 양식이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육신은 점차 허약해져 가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떡의 효과는 그와는 현저히 다르다.영적인 능력과 발육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더 신장되어갈 수가 있다.
마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더욱 새로워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땅의 음식인 만나를 구하는 사람은 아직도 광야를 방황하는 자에 해당한다.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이상의 만나가 필요 없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만나가 필요치 않다.
하늘 가나안의 시민으로서 신령한 양식인 영생의 떡이 필요할 뿐이다.
2.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떡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2.
1. 결과의 차이
유대인들이 구하는 만나와 자신을 비교하여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신 당신을 믿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영생을 강조하였다.만나는 썩을 양식이므로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죽었다.그러나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하게 된다. 이처럼 만나와 생명의 떡은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르다.
만나와 생명의 떡이 갖는 결과의 차이는 마치 부자와 나사로의 사이에 기여있는 큰 구렁과도 같다. 이 엄청난 결과의 차이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돌이킬 수 없다.
2.
2. 효력의 차이
광야에서 내린 만나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떡은 그 효력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만나를 먹은 자들은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효력을 체험한 반면 , 생명의 떡을 먹은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효력을 체험한다.
이것은 구약의 제물과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의 효력의 차이이다.
또한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이 지닌 효력과 구약의 제사장 직분이 다른 것과 같다.
일상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바쁘게 살다 보면 영적인 성장을 소홀히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만나와 생명의 떡이 지닌 결과와 효력의 차이를 상기하여 만나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버리고 영생의 떡을 먹으면서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2.
3. 생명의 참 떡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참 떡 , 하늘로서 내려온 떡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우리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을 사모하기보다는 땅의것 땅의 떡을 추구할 때가 많다.
생명의 떡을 먹고 영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품위와 지식과 모든 영적인 은사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장을 보인다. 만약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 다면 하늘의 양식을 먹을 때 믿음이 부족하거나 그것의 소화를 방해하는 어떤 영적인 장애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에도 생명의 참 떡을 충분히 먹지 못하기 대문에 영적인 성장이 둔화되고 위축되는 사람들이 많다.
3. 영생의 떡인 예수님의 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3.
1. 산 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셨다. 산 떡은 단순한 떡 이상으로 생명을 주는 영생의 떡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이시고 또한 생명을 부여하신다.그리스도께서 자신만이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산 떡이라고 자주 되풀이하신 것은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성도의 마음에서 삶에대한 모든 허구적인 소망을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반복하여 생명의 떡이심을 주장하신 것이다. 주게서 귀한 진리를 반복하여 쉬지 않고 가르치신 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산 덕이신 그리스도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전해야 한다.
3.
2. 산 떡을 먹는 자에게 보장되는 영생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 자는 영새하리라고 하셨다.
먹으면.은 예수를 구주로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헬라어 원문에는 부정 과거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일회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다.산 떡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보장되었다.
오늘날 현세적이고 쾌락적인 삶에 젖어들어 내세의 삶을 불신하는 많은 무리들은 `영생을‘소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불신자들에게 먼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르치고 심어 주어야 한다.
3.
3.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
주게서 영생의 떡을 세상의 생명을 위한 당신의 살이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 상에서 그 육체를 버리심으로 인류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산 떡이라고 하셨는데 이 모든 진리와 교훈은 철저한 행함위에서 설파되었다.
지구상에 수많은 종교가 생성되고 소멸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갖은 수난과 핍박을 이기고 여전히 왕성하다.
기독교는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 진리는 완전한 사랑과 행함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셧다고 말씀하셨다. 잠시 잠간 세상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놀라운 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자.
1. 만나를 먹었어도 죽은 조상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1.
1. 만나를 먹었어도 죽은 조상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던 청중들은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데 급급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설교를 청중들의 수준에 맞게 하셨다.
즉 만나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 그들에게 만나를 먹었어도 조상들이 죽었음을 상기시켜 주셨다.
이는 오늘날 육의 양식 축적에만 급급한 무리들에게 필요한 교훈이다.육체적 고갈을 해소하는 데에만 눈을 돌린다면 영적 자산을 잃고마는 것을 우리는 상기해야한다.
만나를 먹었어도 죽은 조상들의 길을 답습하지 않는 영생의 떡을 찾는 성도들이 되자.
1.
2. 생명을 주지못한 만나
유대인들은 만나를 최대의 표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께 자기 조산들이 먹었던 만나와 같은 떡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만나가 육체의 배는 부르게 해주었지만 참생명을 주지 못했음을 깨우쳐 주셨다.
만나는 그들 조상의 죽을 몸을 위한 양식에 그쳤기 때문에 그들을 죽음에서 면해주지는 못했다.
생명을 주지못한 만나만을 구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직도 영생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전 기독교인들의 기도의 제목이다.
1.
3. 땅의 음식인 만나
땅의 음식인 만나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만나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벡성의 일용할 양식이었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육신은 점차 허약해져 가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떡의 효과는 그와는 현저히 다르다.영적인 능력과 발육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더 신장되어갈 수가 있다.
마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더욱 새로워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땅의 음식인 만나를 구하는 사람은 아직도 광야를 방황하는 자에 해당한다.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이상의 만나가 필요 없었듯이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만나가 필요치 않다.
하늘 가나안의 시민으로서 신령한 양식인 영생의 떡이 필요할 뿐이다.
2.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떡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2.
1. 결과의 차이
유대인들이 구하는 만나와 자신을 비교하여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떡이신 당신을 믿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영생을 강조하였다.만나는 썩을 양식이므로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죽었다.그러나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하게 된다. 이처럼 만나와 생명의 떡은 그 결과가 엄청나게 다르다.
만나와 생명의 떡이 갖는 결과의 차이는 마치 부자와 나사로의 사이에 기여있는 큰 구렁과도 같다. 이 엄청난 결과의 차이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돌이킬 수 없다.
2.
2. 효력의 차이
광야에서 내린 만나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떡은 그 효력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만나를 먹은 자들은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효력을 체험한 반면 , 생명의 떡을 먹은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효력을 체험한다.
이것은 구약의 제물과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와의 효력의 차이이다.
또한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이 지닌 효력과 구약의 제사장 직분이 다른 것과 같다.
일상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바쁘게 살다 보면 영적인 성장을 소홀히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만나와 생명의 떡이 지닌 결과와 효력의 차이를 상기하여 만나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를 버리고 영생의 떡을 먹으면서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2.
3. 생명의 참 떡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참 떡 , 하늘로서 내려온 떡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우리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을 사모하기보다는 땅의것 땅의 떡을 추구할 때가 많다.
생명의 떡을 먹고 영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품위와 지식과 모든 영적인 은사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장을 보인다. 만약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 다면 하늘의 양식을 먹을 때 믿음이 부족하거나 그것의 소화를 방해하는 어떤 영적인 장애가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에도 생명의 참 떡을 충분히 먹지 못하기 대문에 영적인 성장이 둔화되고 위축되는 사람들이 많다.
3. 영생의 떡인 예수님의 살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3.
1. 산 떠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셨다. 산 떡은 단순한 떡 이상으로 생명을 주는 영생의 떡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이시고 또한 생명을 부여하신다.그리스도께서 자신만이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산 떡이라고 자주 되풀이하신 것은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성도의 마음에서 삶에대한 모든 허구적인 소망을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반복하여 생명의 떡이심을 주장하신 것이다. 주게서 귀한 진리를 반복하여 쉬지 않고 가르치신 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산 덕이신 그리스도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전해야 한다.
3.
2. 산 떡을 먹는 자에게 보장되는 영생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 자는 영새하리라고 하셨다.
먹으면.은 예수를 구주로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헬라어 원문에는 부정 과거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일회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다.산 떡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보장되었다.
오늘날 현세적이고 쾌락적인 삶에 젖어들어 내세의 삶을 불신하는 많은 무리들은 `영생을‘소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불신자들에게 먼저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르치고 심어 주어야 한다.
3.
3.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
주게서 영생의 떡을 세상의 생명을 위한 당신의 살이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 상에서 그 육체를 버리심으로 인류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산 떡이라고 하셨는데 이 모든 진리와 교훈은 철저한 행함위에서 설파되었다.
지구상에 수많은 종교가 생성되고 소멸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갖은 수난과 핍박을 이기고 여전히 왕성하다.
기독교는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 진리는 완전한 사랑과 행함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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