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효도 (요19:25-27)
본문
오늘은 옛날 이야기 하나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하디 가난한 집에 장님 어머니와 아들과 며느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한끼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아들은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여보 내가 있을 때에도 어머니 봉양이 어려웠는데 나마저 군대에 가면 당신이 얼마나 고생하겠소 그러나 나라의 부름은 어쩔 수 없으니 고생이 되더라도 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구려.”
“염려마세요. 어떻게라도 어머님을 잘 모실테니까요.”
아들이 군대간 뒤에 며느리는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리 벌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데 어머니에게 어떻게 기름진 것을 드릴 수가 있을까’ 생각다 못하여 지렁이를 잡아서 국을 끓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지렁이국인줄도 모르고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렁이국 때문인지 살이 부예지고 병이 없어졌습니다. 며느리는 가난을 한탄하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지렁이를 잡아서 국을 끓여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맛있는가 싶어서 지렁이를 건져서 말린 후에 아들이 오면 주려고 돗자리 밑에다 감추어 두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가 아주 건강하여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가, 네 처가 이런 고기를 주어서 그 동안 내가 잘 먹고 몸이 이렇게 성하다. 이 고기가 뭔지 좀 보아라.”
“아이구 어머니, 그것은 지렁이입니다. 지렁이!”
“응 뭐라고, 지렁이라고”
그러면서 깜짝 놀란 어머니는 눈이 떠져서 환한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토룡탕'이 유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오늘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교회가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버이 날, 한 장의 신문에 난 두 기사는 우리를 혼란하게 했습니다. 그 두 기사를 제가 그대로 한번 읽겠습니다.
'어버이날인 8일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북 경주경찰서는 8일 집 상속문제로 어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한 최병하씨(2
9.무직.경북 경주시 천북면 화산2리)를 존속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2일 오후 11시30분께 자신의 집 안방에서 어머니 손복연씨(66)가 “집을 형에게 상속한다”고 말한데 앙심을 품고 안방에서 잠자고 있던 손씨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다.'
'또 경북 의성경찰서도 이날 어머니를 둔기로 때린 뒤 우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박성수씨(2
8.농업.경북 의성군 구천면 모흥리)를 존속살해 혐의로 긴급체포 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박씨는 지난달 26일 오전 1시께 집 마당에서 어머니 김영자씨(60)가 있지도 않은 동생을 잡아먹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둔기로 김씨를 마구 때려 쓰러뜨린 뒤 우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혐의다.'
'“앞을 못 보는 장모님이라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일 뿐, 사실 마을 어른들이 모두 제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상을 받게 돼 부끄럽다” 제 26회 어버이날을 맞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충북 청원군 남일면 두산리에 사는 김병학(65)씨의 말입니다.
자신도 환갑이 넘었지만 37년 동안 앞을 못 보는 장모(82)의 눈과 발이 돼 주고 있다. 혼자 외출했다 논이나 하수구에 빠진 장모를 집으로 모셔와 몸을 씻어드리기를 수십 차례. 김씨는 두산리의 '효자 사위'로 통한다.
김씨는 부인 장길자(55)씨와 결혼직후 곧바로 혼자 살던 장모를 모셔와 친어머니와 함께 봉양했다. 김씨는 농사지을 전답 한 평도 없이 남의 집 품팔이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두 분이 서로 친구가 돼, 김씨 내외가 마음놓고 일을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20여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어려움이 많았다.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 출입때 옆에서 시중 들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 김씨는
농사일로 바쁘면서도 청주로 일을 나가는 부인 대신 장모의 손발 노릇을 자청했다.
김씨는 불우이웃에게도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7년전 부인이 식당에 나가 일을 하며 알게 된 모자가정에 직접 농사지은 쌀과 잡곡, 채소 등을 나눠주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노인들만 살고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일을 도와주고 마을 애경사에도 앞장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도 살아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효가 땅에 떨어진 우리 시대를 일컬어 말세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인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 1:30)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 5:4)
인륜과 천륜
여러분, 효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종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자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유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효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유교의 효와 기독교의 효를 잠깐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교의 효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오형지속삼천(五刑之屬三千)인데 이비막대어불효(而鼻莫大於不孝)라.' 효경(孝經)의 5형장(五刑章)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5형이라고 일컫는 5등(五等)의 형벌이 있다. 그리고 그 5형에 속하는 갖가지 형벌이 도합 3천이라는 많은 수이나 그 중에서 불효 이상의 대죄는 없다는 뜻입니다. 즉 불효는 천지간에 용납되지 않을만큼 큰 죄라는 것입니다. 덕행의 근원은 효에 있고, 죄악의 근본은 불효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내 몸의 근본이며 혈족의 본원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본을 돌보지 않고 그 은의를 버리는 자는 어버이를 무시하는 것으로 인간이 아니며, 도덕의 파괴자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된다면 국가는 암흑천지가 되어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오 불효의 죄야말로 3천이나 있는 죄과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효에 대한 유교의 사상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인륜이고 도덕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가 가르치는 효는 인본주의이고, 윤리적 측면에서 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효에 대하여 기독교는 유교보다 훨씬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으로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이것은 지독한 오해입니다. 기독교가 불효를 조장하는 것으로 낙인이 찍힌 것은 죽은 부모에 대한 문제, 즉 제사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유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죽은 조상 제사 지내는 것 반만큼만 살아 있을 때, 효도하면 효자 소리 듣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교는 부모님이 죽은 뒤에 어떻게 부모를 모시는가를 가지고 효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기독교는 효를 종교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효를 신본주의적인 측면에서 취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효는 단순히 인간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효는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이 말씀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부모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부모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육신의 부모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세워두신 하나님 아버지의 대리자입니다. 이것이 효에 대한 기독교의 독특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모님을 섬길 때, 주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효(孝)
그러면 성경이 이야기하는 효도란 무엇입니까 “네 무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하다”라는 말은 몸의 내장기관인간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의 몸에 간이 없으면 죽듯이 공경을 몸의 중심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로마 베드로 성당 오른쪽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인'삐에타'(Pieta)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셔서 상처받은 예수님을 무덤에 가기 전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을 한 동상입니다. 이'삐에타'라는 말은 2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효도이며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 효도는 믿음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결국 육신적으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이지만, 마리아도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효입니다. 십자가의 효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효의 독특성입니다.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효도
우리는 본문에서 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효도를 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5,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음의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던 예수님은 그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보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어머니를 보았다는 것은 단순히 보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도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 내려 눈물마저도 말라 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셨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는 것,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노모를 둔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살림살이가 넉넉했으나 동생은 가난했습니다. 형은 어머니를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작은 아들 집에 가기만 하면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않습니다.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큰 아들이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옷과 음식이야 너희네만 할까마는 거기에 가면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등을 긁어주는데 어찌나 시원한지….”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무슨 말입니까 진정 노모를 즐겁게 해 준 것은 큰아들의 옷과 음식보다 작은 아들의 사랑과 정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옷과 음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자신의 몸에 와 닿는 자식의 살결, 그리고 그로부터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인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예수님의 책임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세 번째 말씀입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의 양자결연 의식을 맺을 때 사용하던 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갈릴리에 있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마리아를 섬길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처참한 죽음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의 형편을 돌아보십니다. 그리고 아들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자 끝까지 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죽음의 자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다 놓임을 받는 자리입니다. 어머니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아들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십니다. 자녀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으로 보여주신 효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습니가마는,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실직과 사업실패, 빚보증 등 각종 경제위기 경제난 여파로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어버이날인 8일 전국 곳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어버이날인 8일 오전 5시30분께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동화4리 만도기계 사원아파트 왼쪽비상계단 난간에 만도기계 사원 최돈균씨가 전깃줄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또 8일 오전 6시50분께 광주 남구 송하동 B예식장 뒤편 숲속에서 40대 초반의 남자가 2m 높이 참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입니까 너무나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생목숨을 끊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그 부모님은 어떻게 살라고….
어떤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입사시험을 치러왔습니다. 그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합격하지 않으면 내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각오는 좋지만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청년이 입사시험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라도 한 번 하고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발길 닿은 대로 어느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전후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종이를 주면서 “자살”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그는 종이에 자살이라고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습니다. 목사님이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자살” 그 다음에 목사님은 거꾸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어떻게 되죠 “살자” 계속 읽으라고 했습니다. “살자 살자 살자…”
“똑같은 글자이지만, 보는 관점에 다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지 않는가 그것이 우리 인생이네. 죽을 생각말고, 그 마음으로 살게. 그러면 자넨 틀림없이 성공할 걸세.”
여러분,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죽은 목숨이 부끄러움은 어디 있으며,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대는 사는 것만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이 시대 가운데서 우리 자녀들이 잘 살아주는 것만도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서로가 그렇게 생각할 때 이해와 사랑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여보 내가 있을 때에도 어머니 봉양이 어려웠는데 나마저 군대에 가면 당신이 얼마나 고생하겠소 그러나 나라의 부름은 어쩔 수 없으니 고생이 되더라도 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구려.”
“염려마세요. 어떻게라도 어머님을 잘 모실테니까요.”
아들이 군대간 뒤에 며느리는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리 벌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운데 어머니에게 어떻게 기름진 것을 드릴 수가 있을까’ 생각다 못하여 지렁이를 잡아서 국을 끓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지렁이국인줄도 모르고 맛있게 잡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렁이국 때문인지 살이 부예지고 병이 없어졌습니다. 며느리는 가난을 한탄하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지렁이를 잡아서 국을 끓여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고기가 이렇게 맛있는가 싶어서 지렁이를 건져서 말린 후에 아들이 오면 주려고 돗자리 밑에다 감추어 두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가 아주 건강하여 매우 기뻐했습니다.
“아가, 네 처가 이런 고기를 주어서 그 동안 내가 잘 먹고 몸이 이렇게 성하다. 이 고기가 뭔지 좀 보아라.”
“아이구 어머니, 그것은 지렁이입니다. 지렁이!”
“응 뭐라고, 지렁이라고”
그러면서 깜짝 놀란 어머니는 눈이 떠져서 환한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토룡탕'이 유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오늘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답니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교회가 어버이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버이 날, 한 장의 신문에 난 두 기사는 우리를 혼란하게 했습니다. 그 두 기사를 제가 그대로 한번 읽겠습니다.
'어버이날인 8일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북 경주경찰서는 8일 집 상속문제로 어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한 최병하씨(2
9.무직.경북 경주시 천북면 화산2리)를 존속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 2일 오후 11시30분께 자신의 집 안방에서 어머니 손복연씨(66)가 “집을 형에게 상속한다”고 말한데 앙심을 품고 안방에서 잠자고 있던 손씨를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다.'
'또 경북 의성경찰서도 이날 어머니를 둔기로 때린 뒤 우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박성수씨(2
8.농업.경북 의성군 구천면 모흥리)를 존속살해 혐의로 긴급체포 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박씨는 지난달 26일 오전 1시께 집 마당에서 어머니 김영자씨(60)가 있지도 않은 동생을 잡아먹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둔기로 김씨를 마구 때려 쓰러뜨린 뒤 우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혐의다.'
'“앞을 못 보는 장모님이라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일 뿐, 사실 마을 어른들이 모두 제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상을 받게 돼 부끄럽다” 제 26회 어버이날을 맞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충북 청원군 남일면 두산리에 사는 김병학(65)씨의 말입니다.
자신도 환갑이 넘었지만 37년 동안 앞을 못 보는 장모(82)의 눈과 발이 돼 주고 있다. 혼자 외출했다 논이나 하수구에 빠진 장모를 집으로 모셔와 몸을 씻어드리기를 수십 차례. 김씨는 두산리의 '효자 사위'로 통한다.
김씨는 부인 장길자(55)씨와 결혼직후 곧바로 혼자 살던 장모를 모셔와 친어머니와 함께 봉양했다. 김씨는 농사지을 전답 한 평도 없이 남의 집 품팔이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두 분이 서로 친구가 돼, 김씨 내외가 마음놓고 일을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20여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어려움이 많았다.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 출입때 옆에서 시중 들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 김씨는
농사일로 바쁘면서도 청주로 일을 나가는 부인 대신 장모의 손발 노릇을 자청했다.
김씨는 불우이웃에게도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7년전 부인이 식당에 나가 일을 하며 알게 된 모자가정에 직접 농사지은 쌀과 잡곡, 채소 등을 나눠주고 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노인들만 살고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일을 도와주고 마을 애경사에도 앞장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도 살아가는 그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효가 땅에 떨어진 우리 시대를 일컬어 말세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인인 우리 인간의 삶의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 1:30)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 5:4)
인륜과 천륜
여러분, 효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종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자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유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효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유교의 효와 기독교의 효를 잠깐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교의 효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오형지속삼천(五刑之屬三千)인데 이비막대어불효(而鼻莫大於不孝)라.' 효경(孝經)의 5형장(五刑章)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5형이라고 일컫는 5등(五等)의 형벌이 있다. 그리고 그 5형에 속하는 갖가지 형벌이 도합 3천이라는 많은 수이나 그 중에서 불효 이상의 대죄는 없다는 뜻입니다. 즉 불효는 천지간에 용납되지 않을만큼 큰 죄라는 것입니다. 덕행의 근원은 효에 있고, 죄악의 근본은 불효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내 몸의 근본이며 혈족의 본원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본을 돌보지 않고 그 은의를 버리는 자는 어버이를 무시하는 것으로 인간이 아니며, 도덕의 파괴자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된다면 국가는 암흑천지가 되어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오 불효의 죄야말로 3천이나 있는 죄과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효에 대한 유교의 사상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인륜이고 도덕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가 가르치는 효는 인본주의이고, 윤리적 측면에서 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효에 대하여 기독교는 유교보다 훨씬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으로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이것은 지독한 오해입니다. 기독교가 불효를 조장하는 것으로 낙인이 찍힌 것은 죽은 부모에 대한 문제, 즉 제사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유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죽은 조상 제사 지내는 것 반만큼만 살아 있을 때, 효도하면 효자 소리 듣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교는 부모님이 죽은 뒤에 어떻게 부모를 모시는가를 가지고 효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차이는, 기독교는 효를 종교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효를 신본주의적인 측면에서 취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효는 단순히 인간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효는 하나님과의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이 말씀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부모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부모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육신의 부모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세워두신 하나님 아버지의 대리자입니다. 이것이 효에 대한 기독교의 독특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모님을 섬길 때, 주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효(孝)
그러면 성경이 이야기하는 효도란 무엇입니까 “네 무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하다”라는 말은 몸의 내장기관인간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의 몸에 간이 없으면 죽듯이 공경을 몸의 중심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로마 베드로 성당 오른쪽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인'삐에타'(Pieta)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셔서 상처받은 예수님을 무덤에 가기 전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을 한 동상입니다. 이'삐에타'라는 말은 2가지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효도이며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 효도는 믿음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결국 육신적으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이지만, 마리아도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효입니다. 십자가의 효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효의 독특성입니다.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효도
우리는 본문에서 어머니에게 마지막까지 효도를 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5,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음의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던 예수님은 그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보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어머니를 보았다는 것은 단순히 보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도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 내려 눈물마저도 말라 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셨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이해하는 것,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노모를 둔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살림살이가 넉넉했으나 동생은 가난했습니다. 형은 어머니를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가 작은 아들 집에 가기만 하면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않습니다.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큰 아들이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옷과 음식이야 너희네만 할까마는 거기에 가면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등을 긁어주는데 어찌나 시원한지….”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무슨 말입니까 진정 노모를 즐겁게 해 준 것은 큰아들의 옷과 음식보다 작은 아들의 사랑과 정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옷과 음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자신의 몸에 와 닿는 자식의 살결, 그리고 그로부터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인 것입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예수님의 책임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신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세 번째 말씀입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의 양자결연 의식을 맺을 때 사용하던 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갈릴리에 있어서 예루살렘에 있는 마리아를 섬길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처참한 죽음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의 형편을 돌아보십니다. 그리고 아들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자 끝까지 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죽음의 자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다 놓임을 받는 자리입니다. 어머니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아들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십니다. 자녀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으로 보여주신 효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습니가마는, 그래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실직과 사업실패, 빚보증 등 각종 경제위기 경제난 여파로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어버이날인 8일 전국 곳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어버이날인 8일 오전 5시30분께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동화4리 만도기계 사원아파트 왼쪽비상계단 난간에 만도기계 사원 최돈균씨가 전깃줄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부모님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또 8일 오전 6시50분께 광주 남구 송하동 B예식장 뒤편 숲속에서 40대 초반의 남자가 2m 높이 참나무에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입니까 너무나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생목숨을 끊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그 부모님은 어떻게 살라고….
어떤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입사시험을 치러왔습니다. 그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합격하지 않으면 내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각오는 좋지만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청년이 입사시험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야기라도 한 번 하고 죽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발길 닿은 대로 어느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서 전후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종이를 주면서 “자살”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그는 종이에 자살이라고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습니다. 목사님이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자살” 그 다음에 목사님은 거꾸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어떻게 되죠 “살자” 계속 읽으라고 했습니다. “살자 살자 살자…”
“똑같은 글자이지만, 보는 관점에 다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지 않는가 그것이 우리 인생이네. 죽을 생각말고, 그 마음으로 살게. 그러면 자넨 틀림없이 성공할 걸세.”
여러분, 자살을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죽은 목숨이 부끄러움은 어디 있으며,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대는 사는 것만도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여러분! 이 시대 가운데서 우리 자녀들이 잘 살아주는 것만도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서로가 그렇게 생각할 때 이해와 사랑과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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