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하는 공동체 (행7:19-8:8)
본문
우리는 몇 주간 동안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하였고, 교회는 섬김과 교제의 공동체리고 했습니다. 오늘은 연장으로 교회는 또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어떠한 일을 하게 하도록 되어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선교적 공동체 그런 말을 붙일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지기들만 모여서 예배고 자기들만 모여서 잘 섬기고 지기들 뿐만 아리라 다른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같이 경배하고, 섬기고, 교제 할수 있도록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마음가운데 내가 예수님을 혼자 잘 믿으면 되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해 나가면 하나님이 나한테 축복을 해 주시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것 같으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지느냐 하면 사실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과 그 목적을 등한시 해 놓고 나를 중심으로 하여서 무엇인가 이루어 보려고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가 이런 섬기는 공동체에서 더 나가서 이제 선교하는 공동체라고 하는 의식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이 선교하는 공동체라고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 해외 선교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해외 선교도 그것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만은 선교라고 했을때 그 말은 보냄을 받는다 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영화 본 것 중 “mission" 이라고 하는 영화를 보면 스페인이나 포루투갈의 선교사들이 남미쪽에 가서 선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mission" 이라는 말이 어디서 온 말 이냐 하면 라틴어로 ’미시오‘라고 하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 “미시오” 라고 하는 말은 보낸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면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 이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라고 하는 것은 뭔가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아 가지고서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라는 의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그런 일을 이루려고 할때 우리는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무엇을 하려고 하셨는가 아주 쉽게는 우리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서로 섬기며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거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살아갈때 그 사람들이 같이 모여올 수 있도록 같이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보내셔서 이 작업을 하신단 말이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만 그런 일을 하는게 아니라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작업을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사명을 수신 것입니다. 우리를 보내어 선교적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작업을 등한이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벌어질 것인가 이제 교회가 이 땅위에 처음 세워졌을때, 신약의 교회가 이 땅위에 세워졌을때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잘 보여줍니다. 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땅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가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서 쫒아 다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기다리로 있다가성령님께서 그 안에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교회가 있다. 내가 교회의 일원이다 라는 사실이 너무너무 좋고 거기서 똘똘 뭉쳐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주안에서 커다란 은혜 가운데서 성장해 나갑니다. 물론 거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늘 이야기했듯이 언제나 교회가 제대로 되어가려고 하면 문제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그런것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큰일났다”이렇게 할 필요 없고 아 그런 것이 있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것을 잘 극복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교회가 진전해 나가는데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 있었느냐 하면 여기 같이 모여 있는게 너무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같이 모여 있는 것, 이 예루살렘에 있는 것만을 중심으로 하여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사도행전 1장에 있는 말씀을 잘 읽어보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것만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가 성령이 임하시는 권능을 입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이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죠 자 이 사람들이 여기서 모여서 우리끼리 모여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점점 넓은 지역으로 나가서 주님의 사역을 일 하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 이 사람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한 공동체로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뜻을 등한시하고 자기 자신들끼리 모여 있는 것만을 중요시 했을때 이것이 좋다고 생각 했을때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람들은 오늘날에 대부분의 교회들 보다는 더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자기들이 모이는 것에는 열심히 했던 사람들 였단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뜻이 아니실때 자가들이 알아서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거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을 던져 주셨습니다. 어느정도 어려운 일이었는가. 심각하게 어려운 일이 었는데 신약 교회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맨 앞에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을 봅니다. 7장15절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이것이 얼마나 험악한 사명 집행입니까. 이는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사람들은 돌로 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니 복음을 전하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친다는 것 때문에 돌로 사형을 당합니다. 사형을 당하는 모습을 가만 보십시요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죠.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예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때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비슷한 유사성이 있슯니다. 또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이 죄를 저들러ㅔ게 돌리지 마고서-이것도 어디에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래서 사실상 예수께서 죽으신 모습과 스데반이 죽은 모습과를 이상스럽게 이렇게 병행적으로 그려 놓고 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의 모습.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자니라” 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는 말입니다. 아! 예수맏는 사람들은 주 안에서 자는 것이다. 그런 표현이죠. 이 사람은 죽습니다. 죽는 것을 “자니라”라고 표현 했습니다. 자고 있는 상태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리고나서 끝난 것이냐, 스데반이 죽고 끝난 것이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습니까 (8장1절)-전부다 흩어져야 할 만큼 커다란 핍박이 교회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정도 심각한 핍박이냐, 한번 바라보죠.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세” 어느 정도냐 잔멸 했다고 합니다. 소탕작전을 벌인 것입니다. 초토화, 완전히 없애 버리는 거죠. “각 집에 들어 가서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이것을 우리는 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 이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좋은 것, 잘 되는 건데 여기에는 늘 어려움이 따름니다. 이런 일까지 따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끝까지 믿을 겁니까 “내가 미쳤나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가능성이 적어도 한국 사람들 한테는 있습니다. 우리들한테는 적어도 일제때, 6.25때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믿다가 실제적으로 이런 어려움을 경험한 분의 이야기를 우리가 친히 경험하신 분들도 있고 또 들어 아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민군들이 쓰던 따발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갖다 놓고 “자 예수를 믿겠는가, 안 믿겠는가” 교회에서 만일에 그런 상황이 나타난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믿는다고 하면 죽여버릴 것이고 안믿는다고 하면 살릴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내가 예수님을 끝까지 믿는다고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어집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 이 세상에 어떤 일보다도 예수님을 믿으며 산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나는 끝까지 모든 손해와 심지어 죽음가지를 몰수하고 내가 살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는 살아야죠. 그래서 “나는 끝까지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할 태도인 것입니다. 간혹하다가 사람들의 심령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상황을 거꾸로 돌려 놓는 때가 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제가 지난번에 한번 들려준 적이 있는가 로르겠는데, 김흥국씨가 쓴 “순교자” 라는 소설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그거와 똑같은 항황이 발생해서 사람들을 다 모아 가지고서 어떤일정한 장소로 갑니다. 그리고서 조건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죽이고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준다 그런 상황 이였습니다. 일은 끝나고 맨 나중에 마을에로 그 교회 장로님 혼자 걸어 내려옵십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많은 사람들은 다 믿는다고 그랬고 그 교 장로님만 안 믿겠습니다 그러고 내려온 것 같잖아요, 그러나 이 장로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생각할때는 분명히 그렇게 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겠죠, 그러나 알고 알고 알고, 캐고 캐고 캐고 하면서 그 소설의 진행을 보면 상황이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분만 예수님을 끝까지 믿겠습니다,나머지는 다 “안 믿겠습니다”했더니 야, 디도가 있어야지 하면서 거꾸로 예수 안믿는다고 한 사람들은 다 죽여버리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살려 놨다는 주제를 가지고 만든 소설,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만들어낸 소설 입니다. 실제로 있을법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해야 될 것은 아,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나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사는것은 포기하지 않겠다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진짜 예수 믿는게 아닐 것입니다. 왜 내가 예수님 믿는가 아 내가 잘 되려고, 복 받으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정말 하니님께서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갖다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예수님을 믿으며 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심령으로 살아나가야 된다는 말이죠, 초토화된다고 해도, 각 집에 들어가 다 끌어낸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예수님만을 믿으면서 살겠노라 이러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사람이 할 수 없이 핍박이 일어났을 때 피하여 갈 수 있습니다. 피하여 갑니다. 여기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철저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 이제부터 예수님만 믿고 살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죠 이
사람이 가서 각 성에게 예수님,하나님을 전하고 전할세, 사람이 흩어지면 이제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흩어지면 우리는 복음을 전도해야 됩니다. 흩어지면 전도하고, 그게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나타나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이 흩어져서 복음 전하는 것을 의도하셨습니다. 만일에 이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 그렇게 나아갔었더라면 이 사람들한테 이런 핍박이 안왔을는지도 모릅니다. 확언할 순 없지만, 그러나 나아가서 복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할려고 할때는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라도 당신님의 뜻을 이루고 마는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핍박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나아가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상황을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 집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라고 하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뭘 알 수 있는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라고 말씀했다 그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가는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때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흩어져 존재하는 자들로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장성한자답게 “아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해 나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는 것이 되지만 만일 우리가 안해 나가면 그런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신경을 단계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똘똘 뭉쳐 있는 것조차 못하는데 언제하겠습니까, 이렇게 나아가게 되면 우리는 결과가 어떻게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억지로라도 흩트셔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실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제나 그런식으로 흩트시는건 아닙니다만은 우린 여기서 명백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간혹가다가 나이 드신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꼭 여기에 적용하는게 좋을지 아닌지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 늘 성경 가운데서 명백하게 나온것에 대해서는 이게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흩어져서 복음을 선포해야 되고 선교적 사명를 감당해야 된다 하는 것을 분명한 것이지만 그냥 역사 가운데서 나타난 이야기를 가지고서 그것을 적용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허나 우리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한 번 생각해 봄직한 이야기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린 대한민국 전체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당시에 우리 대한민국에 맨 처음에 목음이 많이 들어왔을때 어디가 아주 중심부였냐하면 평양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이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것은 별로 좋은 표현은 이닙니다. 그러나 사람글으 생각이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철저하게 예수님을 믿으려 했고 거기에 신학교가 있었고 모든게 다 중심지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별로 안 믿는단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분들은 가만히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겪어온 아주 어려운 역사 소위 6.25라는 역사. 6.25 때문에 이북에 있던 예수님을 열심히 믿던 사람들이 전부다 밑으로 내려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전도하고 했단 말이죠 그런 것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려는 나이 많으신 분들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게 그럴수도 있고 흩어져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 주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으로 보신다 라고 하는 것,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만일에 우리가 그것을 분명하게 의식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핍박을 일으켜서라도 흩트셔서 주님의 일을 하셨다는 말이죠.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렇게 하실는지 모릅니다. 늘 그러허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명백히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뭐냐하면 아!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존재들로서, 공동체로서 여기서 서 있다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일단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한테 아직 안믿는 친척들한테 복음의 말씀을 선포해주고 그들에게 함께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자고 함께 사람다운 생활 방식을 나누자고 하는 초청하기를 우리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허나 거기에만 한정되어져서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땅끝까지 주의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서 우리의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땅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꼭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만 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또 아니면 우리가 그런 일로 인하여서 열심히 기도할 수 있겠고 그런 이리을 하시는 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적 공동체로서 우리가 해야할일들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보냄을 받은 그 이 사람들이 어떤 작업을 해야하는자를 생각하면서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 어려운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자는 것이죠. 적어도 복음을 선포하자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으면 이 본문의 상황가운데서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믿으니까 이 본분의 상황가운데서는 자기들 살던 지역에서 쫒겨났어요. 편안하게 사는게 아니고, 자유롭게 사는게 아니고 쫒겨났다는 것이죠. 그러면 야! 예수님을 믿다가 쫒겨났는데 왜 그 어려운 길로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느냐.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이것만이 참 삶의 길이기 때문에 이 길로 이끌어들이지 않으면 안되겠다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면서 이 작업에 동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넓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고 온 세상에도 한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나가서 이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해외선교의 사역을 여러분들이 염두해 두실때 꼭 하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나아가서 여러 작업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우리가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이일이 붐이 불고 있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실절적으로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교회는 500교회 미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 교회가 선교의 열풍이 불고 이는 것 같아도 실질적으로 선교작인 일을 많이 감당하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라는 현실, 그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잘 감당 하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선교사님들이 헝가리나 일본이나 세계 각국에 나아가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필리핀에 가서 사역을 하실때 그 분을 제일 질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가장 커다란 일의 하나는 뭐냐 하면 한국의 교회가 제데로된 교회로 국권이 서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가 아주 이상한 교회로 되어 버리면 선교사님들이 가서 일을 할게 없죠, 말을 할게 없죠. 한국의 교회가 많다고는 하는데 다 이상한 교회 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가서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습니까. 선교사님들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굉장이 중요한 일이 뭐야 하면 우리가 드러날 수 있게끔 세워 놓는 일입니다. 그것을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세상적인 안목에서 그냥 좋게끔 만들어 내는것,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교회 안에 들여화서 그대로 나타나는 그게 교회가 재대로 되는게 아니고 우리의 교회가 정말 교회다운 교회로써 드러나고 있을때 선교사님들이 가서 할 말이 있고 선포해야 할 이야기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님들의 일을 방해하느냐, 도와드리느냐 하는 일을 지금 여기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님의 교회를 거룩한 교회답게 잘 드러내고 있을때 내가 교회의 지체답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우리가 지금 거의 6개월 이상 생각하고 있는 교회의 그 참다운 모습들을 잘 드러내고 있을때 우리는 선교사님들의 일을 도와 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 하고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도 안하고 물질적으로 후원도 안하고 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이루어져야 하겠죠. 허나 우리가 우리의 교회를 제대로 세워 나가지 못할때 그것은 우리 주변에도 교회로 사람들을 인도해 오는 길을 막는 길일뿐더러 선교사님들의 일도 막는 것이 되어집니다. 이시간 우리는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라고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냄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 땅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사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현장, 내 직장, 내 가정속에서 하나님의 보냄을 받는 사람들로서하는 일을 다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면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 이세상에 보냄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라고 하는 것은 뭔가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아 가지고서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라는 의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고 그런 일을 이루려고 할때 우리는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무엇을 하려고 하셨는가 아주 쉽게는 우리처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서로 섬기며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거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살아갈때 그 사람들이 같이 모여올 수 있도록 같이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보내셔서 이 작업을 하신단 말이죠. 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만 그런 일을 하는게 아니라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작업을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사명을 수신 것입니다. 우리를 보내어 선교적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작업을 등한이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어떤 상황이 우리에게 벌어질 것인가 이제 교회가 이 땅위에 처음 세워졌을때, 신약의 교회가 이 땅위에 세워졌을때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잘 보여줍니다. 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땅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가 예루살렘이라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여서 쫒아 다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기다리로 있다가성령님께서 그 안에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교회가 있다. 내가 교회의 일원이다 라는 사실이 너무너무 좋고 거기서 똘똘 뭉쳐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주안에서 커다란 은혜 가운데서 성장해 나갑니다. 물론 거기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늘 이야기했듯이 언제나 교회가 제대로 되어가려고 하면 문제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그런것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큰일났다”이렇게 할 필요 없고 아 그런 것이 있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것을 잘 극복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에서 교회가 진전해 나가는데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 있었느냐 하면 여기 같이 모여 있는게 너무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같이 모여 있는 것, 이 예루살렘에 있는 것만을 중심으로 하여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사도행전 1장에 있는 말씀을 잘 읽어보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것만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가 성령이 임하시는 권능을 입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이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죠 자 이 사람들이 여기서 모여서 우리끼리 모여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점점 넓은 지역으로 나가서 주님의 사역을 일 하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위해서 이 사람들은 부르심을 받았고 한 공동체로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뜻을 등한시하고 자기 자신들끼리 모여 있는 것만을 중요시 했을때 이것이 좋다고 생각 했을때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람들은 오늘날에 대부분의 교회들 보다는 더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자기들이 모이는 것에는 열심히 했던 사람들 였단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뜻이 아니실때 자가들이 알아서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거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을 던져 주셨습니다. 어느정도 어려운 일이었는가. 심각하게 어려운 일이 었는데 신약 교회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타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맨 앞에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을 봅니다. 7장15절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이것이 얼마나 험악한 사명 집행입니까. 이는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사람들은 돌로 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니 복음을 전하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친다는 것 때문에 돌로 사형을 당합니다. 사형을 당하는 모습을 가만 보십시요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죠.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예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때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비슷한 유사성이 있슯니다. 또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이 죄를 저들러ㅔ게 돌리지 마고서-이것도 어디에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래서 사실상 예수께서 죽으신 모습과 스데반이 죽은 모습과를 이상스럽게 이렇게 병행적으로 그려 놓고 있습니다. 최초의 순교자의 모습.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자니라” 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는 말입니다. 아! 예수맏는 사람들은 주 안에서 자는 것이다. 그런 표현이죠. 이 사람은 죽습니다. 죽는 것을 “자니라”라고 표현 했습니다. 자고 있는 상태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리고나서 끝난 것이냐, 스데반이 죽고 끝난 것이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되었습니까 (8장1절)-전부다 흩어져야 할 만큼 커다란 핍박이 교회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정도 심각한 핍박이냐, 한번 바라보죠. 3절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세” 어느 정도냐 잔멸 했다고 합니다. 소탕작전을 벌인 것입니다. 초토화, 완전히 없애 버리는 거죠. “각 집에 들어 가서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이것을 우리는 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 이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좋은 것, 잘 되는 건데 여기에는 늘 어려움이 따름니다. 이런 일까지 따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끝까지 믿을 겁니까 “내가 미쳤나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가능성이 적어도 한국 사람들 한테는 있습니다. 우리들한테는 적어도 일제때, 6.25때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믿다가 실제적으로 이런 어려움을 경험한 분의 이야기를 우리가 친히 경험하신 분들도 있고 또 들어 아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민군들이 쓰던 따발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갖다 놓고 “자 예수를 믿겠는가, 안 믿겠는가” 교회에서 만일에 그런 상황이 나타난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믿는다고 하면 죽여버릴 것이고 안믿는다고 하면 살릴 것이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내가 예수님을 끝까지 믿는다고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어집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 이 세상에 어떤 일보다도 예수님을 믿으며 산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나는 끝까지 모든 손해와 심지어 죽음가지를 몰수하고 내가 살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는 살아야죠. 그래서 “나는 끝까지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할 태도인 것입니다. 간혹하다가 사람들의 심령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상황을 거꾸로 돌려 놓는 때가 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제가 지난번에 한번 들려준 적이 있는가 로르겠는데, 김흥국씨가 쓴 “순교자” 라는 소설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그거와 똑같은 항황이 발생해서 사람들을 다 모아 가지고서 어떤일정한 장소로 갑니다. 그리고서 조건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죽이고 안 믿는다고 하면 살려준다 그런 상황 이였습니다. 일은 끝나고 맨 나중에 마을에로 그 교회 장로님 혼자 걸어 내려옵십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많은 사람들은 다 믿는다고 그랬고 그 교 장로님만 안 믿겠습니다 그러고 내려온 것 같잖아요, 그러나 이 장로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생각할때는 분명히 그렇게 된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겠죠, 그러나 알고 알고 알고, 캐고 캐고 캐고 하면서 그 소설의 진행을 보면 상황이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분만 예수님을 끝까지 믿겠습니다,나머지는 다 “안 믿겠습니다”했더니 야, 디도가 있어야지 하면서 거꾸로 예수 안믿는다고 한 사람들은 다 죽여버리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살려 놨다는 주제를 가지고 만든 소설,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만들어낸 소설 입니다. 실제로 있을법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해야 될 것은 아,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나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사는것은 포기하지 않겠다 이런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진짜 예수 믿는게 아닐 것입니다. 왜 내가 예수님 믿는가 아 내가 잘 되려고, 복 받으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가 정말 예수 믿는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정말 하니님께서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갖다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예수님을 믿으며 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심령으로 살아나가야 된다는 말이죠, 초토화된다고 해도, 각 집에 들어가 다 끌어낸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예수님만을 믿으면서 살겠노라 이러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사람이 할 수 없이 핍박이 일어났을 때 피하여 갈 수 있습니다. 피하여 갑니다. 여기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철저하게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 이제부터 예수님만 믿고 살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죠 이
사람이 가서 각 성에게 예수님,하나님을 전하고 전할세, 사람이 흩어지면 이제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복음을 전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흩어지면 우리는 복음을 전도해야 됩니다. 흩어지면 전도하고, 그게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로 나타나야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이 사람들이 흩어져서 복음 전하는 것을 의도하셨습니다. 만일에 이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 그렇게 나아갔었더라면 이 사람들한테 이런 핍박이 안왔을는지도 모릅니다. 확언할 순 없지만, 그러나 나아가서 복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할려고 할때는 하나님께서는 억지로라도 당신님의 뜻을 이루고 마는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핍박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나아가서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상황을 우리는 여기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 집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 라고 하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뭘 알 수 있는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라고 말씀했다 그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가는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때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흩어져 존재하는 자들로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존재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장성한자답게 “아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해 나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는 것이 되지만 만일 우리가 안해 나가면 그런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신경을 단계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똘똘 뭉쳐 있는 것조차 못하는데 언제하겠습니까, 이렇게 나아가게 되면 우리는 결과가 어떻게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억지로라도 흩트셔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실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제나 그런식으로 흩트시는건 아닙니다만은 우린 여기서 명백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간혹가다가 나이 드신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꼭 여기에 적용하는게 좋을지 아닌지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 늘 성경 가운데서 명백하게 나온것에 대해서는 이게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흩어져서 복음을 선포해야 되고 선교적 사명를 감당해야 된다 하는 것을 분명한 것이지만 그냥 역사 가운데서 나타난 이야기를 가지고서 그것을 적용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허나 우리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한 번 생각해 봄직한 이야기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린 대한민국 전체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당시에 우리 대한민국에 맨 처음에 목음이 많이 들어왔을때 어디가 아주 중심부였냐하면 평양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이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것은 별로 좋은 표현은 이닙니다. 그러나 사람글으 생각이 그만큼 모든 사람들이 철저하게 예수님을 믿으려 했고 거기에 신학교가 있었고 모든게 다 중심지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별로 안 믿는단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분들은 가만히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겪어온 아주 어려운 역사 소위 6.25라는 역사. 6.25 때문에 이북에 있던 예수님을 열심히 믿던 사람들이 전부다 밑으로 내려와서 신앙생활을 하고 전도하고 했단 말이죠 그런 것에도 이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려는 나이 많으신 분들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게 그럴수도 있고 흩어져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 주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으로 보신다 라고 하는 것,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만일에 우리가 그것을 분명하게 의식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핍박을 일으켜서라도 흩트셔서 주님의 일을 하셨다는 말이죠.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렇게 하실는지 모릅니다. 늘 그러허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명백히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뭐냐하면 아!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은 존재들로서, 공동체로서 여기서 서 있다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일단 두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내 주변에 있는 이웃들한테 아직 안믿는 친척들한테 복음의 말씀을 선포해주고 그들에게 함께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자고 함께 사람다운 생활 방식을 나누자고 하는 초청하기를 우리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허나 거기에만 한정되어져서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땅끝까지 주의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서 우리의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땅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었고, 꼭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만 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또 아니면 우리가 그런 일로 인하여서 열심히 기도할 수 있겠고 그런 이리을 하시는 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선교적 공동체로서 우리가 해야할일들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보냄을 받은 그 이 사람들이 어떤 작업을 해야하는자를 생각하면서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 어려운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자는 것이죠. 적어도 복음을 선포하자는 것이죠. 예수님을 믿으면 이 본문의 상황가운데서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믿으니까 이 본분의 상황가운데서는 자기들 살던 지역에서 쫒겨났어요. 편안하게 사는게 아니고, 자유롭게 사는게 아니고 쫒겨났다는 것이죠. 그러면 야! 예수님을 믿다가 쫒겨났는데 왜 그 어려운 길로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느냐.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이것만이 참 삶의 길이기 때문에 이 길로 이끌어들이지 않으면 안되겠다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면서 이 작업에 동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넓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고 온 세상에도 한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나가서 이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해외선교의 사역을 여러분들이 염두해 두실때 꼭 하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나아가서 여러 작업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우리가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이일이 붐이 불고 있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실절적으로 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교회는 500교회 미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 교회가 선교의 열풍이 불고 이는 것 같아도 실질적으로 선교작인 일을 많이 감당하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라는 현실, 그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잘 감당 하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 선교사님들이 헝가리나 일본이나 세계 각국에 나아가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필리핀에 가서 사역을 하실때 그 분을 제일 질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가장 커다란 일의 하나는 뭐냐 하면 한국의 교회가 제데로된 교회로 국권이 서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가 아주 이상한 교회로 되어 버리면 선교사님들이 가서 일을 할게 없죠, 말을 할게 없죠. 한국의 교회가 많다고는 하는데 다 이상한 교회 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가서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습니까. 선교사님들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해 주는 굉장이 중요한 일이 뭐야 하면 우리가 드러날 수 있게끔 세워 놓는 일입니다. 그것을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세상적인 안목에서 그냥 좋게끔 만들어 내는것, 이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교회 안에 들여화서 그대로 나타나는 그게 교회가 재대로 되는게 아니고 우리의 교회가 정말 교회다운 교회로써 드러나고 있을때 선교사님들이 가서 할 말이 있고 선포해야 할 이야기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님들의 일을 방해하느냐, 도와드리느냐 하는 일을 지금 여기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님의 교회를 거룩한 교회답게 잘 드러내고 있을때 내가 교회의 지체답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우리가 지금 거의 6개월 이상 생각하고 있는 교회의 그 참다운 모습들을 잘 드러내고 있을때 우리는 선교사님들의 일을 도와 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만 하고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도 안하고 물질적으로 후원도 안하고 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이루어져야 하겠죠. 허나 우리가 우리의 교회를 제대로 세워 나가지 못할때 그것은 우리 주변에도 교회로 사람들을 인도해 오는 길을 막는 길일뿐더러 선교사님들의 일도 막는 것이 되어집니다. 이시간 우리는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라고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냄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 땅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선교사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현장, 내 직장, 내 가정속에서 하나님의 보냄을 받는 사람들로서하는 일을 다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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