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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주님 (요20:19-23)

본문

우리는 지난 주일을 부활 주일로 지키면서 기쁨과 감격 속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부활절은 주일 하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순절이 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부활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부활절인 것입니다. 1999년, 20세기의 마지막 부활절을 지내고 있는 우리 속초중앙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사건은 오직 우리 기독교에만 있는 사건입니다. 여타의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만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요즈음에 불교에서 기독교의 좋은 점을 모방하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찬송가를 좋게 여겨서 찬불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주일학교를 본따서 주일날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불교 주일학교를 하고, 또 여름에는 우리의 여름 성경학교와 같이 여름 불교학교도 실시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억하며 주일을 지키고 있는데, 불교에서도 주일마다 모여 법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주님의 부활만큼은 모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성탄절과 같이 그들도 석탄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활주일과 같은 날은 그들에게 없습니다.
석가는 무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부활절은 성탄절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살아 부활하심으로 인류에게 참된 소망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 성도들도 이제 죽음에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확실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사명을 주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부활하신 주님을 기뻐하면서 주님의 주시는 은혜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1. 부활절은 기쁨의 날입니다.
본문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모두 끝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고 그들에게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못 박힌 자리가 남아 있는 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창에 찔렸던 옆구리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금요일은 슬픔의 날이었습니다. 마리아를 비롯하여 예수님의 도움과 사랑을 받던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산상으로 올라가실 때에 울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는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통곡을 했습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끝이 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눈물은 정말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아들 예수님을 낳기는 했지만은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바로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그 이름도 천사가 지어준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한 아들 예수님이 공생애에 들어갔을 때, 그가 일으킨 수많은 이적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죽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이렇게 고난의 금요일은 눈물 바다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장사 지낸 지 3일 후에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려, 사람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던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3일 후에 무덤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와서 보니까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기뻤는 지 모릅니다. 너무 기뻐서 펄펄 뛰면서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때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을 것입니다. 슬퍼한 만큼 기쁨은 더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절은 기쁨과 감격의 절기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까 감격이 있습니까
혹시 부부간에 사별하신 분이 계십니까 부모님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습니까 자식을 먼저 보내고 잃어버린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슬픔 속에 잠겨 눈물만 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부활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과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21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시자마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마음속에 참된 평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실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평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그런데 '샬롬'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 '모든 면에서'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건강의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정치,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 가정의 문제나 자녀의 문제까지도, 사업이나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도 완벽하게 채우시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언하신 것은 부족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배신하여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겁쟁이 제자들의 죄를 모두 용서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삶의 영역 가운데에서 부족함이 없도록 완벽하게 채워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온전케 하시는 능력, 즉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이 연약합니까 물질이 부족합니까 가정에 평화가 깨졌습니까 사업이 번창하지 못합니까 믿음이 자라나질 못합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모두 완벽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께서 부족한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해 주시고, 물질과 건강과 지혜와 또 필요한 모든 것을 온전하게 채우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으시고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21절의 하반절을 보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님이 죽었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서 문을 닫고 벌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들, 이러고 있지 말아라. 내가 살아났으니, 내가 모든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했으니, 가서 내가 살아난 것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선교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내용입니다. 이것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가 해야 할
첫째 사명은 선교의 사명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선교는 교회의 목적도 아닙니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속초중앙교회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내시는 대로, 선교의 사명을 죽도록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무엇을 가지고 갔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메시야,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초대교회의 설교 제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선교해야 하겠습니까 똑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외의 선교지에 돈으로 보조한다고 그것으로 선교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선교는 돈이나,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디로 갑니까 그렇습니다. 세상 끝까지 가야합니다. 내가 내 발로 걸어가지 못해도, 비행기를 타고 가지는 못할지라도 우리는 무릎으로 갈 수 있습니다. 눈물을 가지고 갈 수가 있습니다. 내 옆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살아있는 종교입니다. 부활의 종교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종교, 절망중의 인간들을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는 종교입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소식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자랑스럽게 증거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22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숨을 내쉬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랬더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창조의 회복을 나타냅니다. 성령을 받으면 창조시의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며 그 능력을 힘입는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120명의 사람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는 변화되었습니다. 겁쟁이들이 용감해졌고 담대해 졌습니다. 무서워서 문을 닫고 떨던 그들이 이제는 문을 활짝 열고 나가서 부활을 전하였고 많은 능력도 나타내었습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였고 귀신들도 쫓아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계집 종 앞에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자가 성령을 받고 나니 이제는 떳떳하게 '너희들이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가 바로 메시아이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니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셰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권세있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지금 여러분은 무슨 문제로 주저앉아 있습니까 질병 때문에 사업의 실패 때문에 가정의 불화로 인해서 좌절하셨습니까 죽은 자도 살리신 능력의 하나님이 무엇을 못해 주시겠습니까 성령 충만하면 이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를 않습니다. 더 이상 솟아날 구멍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업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교회는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과 은혜도 충만하게 받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소망의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기뻐하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이 기쁨을 아직도 모르는 자들과 함께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우리 모두는 성령 충만의 능력을 받으시고 맡겨진 선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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