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의 비전 (계21:9-27)
본문
9절부터 21절에서 우리는 거룩한 성의 영광스러움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이 영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 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10,11절).
마지막 천성이 영광스런 도성일 수 있는 이유는 영광의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영광입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21장 9-21절까지의 묘사가 단 순히 천성 그 자체에 대한 묘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던 백성들에게 주어질 마지막 영광에 대한 상 징적인 묘사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체험을 설명할 때 세 가지 주요 교리가 있습니다.
첫째/칭의(justification)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의롭다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아무 런 자격이 없지만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성화(sanctification)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 해서 점점 거룩해져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셋째/영화(glorification) 이것은 성화의 완성 단계로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는 바로 그때 이루어질 일입니다.
영광의 주님을 닮아 영광스럽게 완성되어 주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마 날마다 자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 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실존적인 고민 가운데 하나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나도 알 수 없는 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일 것입니다. 꼭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자기 자신을 볼 때 짜증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러던 내가 내 모든 약점을 넘어서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온전히 닮은, 인격적으로 완성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순간 우리는 병들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 하는 부활의 새 몸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그분의 은혜로 서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천국의 모습을 천국 안에 거하게 될 성도들의 영광스런 모 습으로 생각하며 본문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문을 읽다 보면 한 가지 특정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열두 문 , 열두 기초석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의 가로, 세로, 높이는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이고 성곽의 크기는 144규빗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통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숫자가 12라는 것입니다. 열두 문, 열두 돌, 12 ,000 스다디온, 144(12×12) 규빗.
이제 다음 말씀을 보십시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 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 들이라(12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 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14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바로 열두 지파 이고,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바로 열두 제자입니다. 이들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통틀어서 , 곧 모든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 입니다. 12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 입니다. 그들이 바로 천국의 주인공들입니다. 저는 일만 이천 스 다디온이라는 숫자도 문자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상징은 실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를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도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천국의 크기를 문자 그대로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가로, 세로 , 높이가 모두 똑같이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라면 전체 모양은 정 방형이 됩니다. 그것은 완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2라는 숫자 의 의미를 통해서, 거룩한 성이 완전한 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도성은 완전히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투명한 도성입니다.
성곽의 열두 기초석이 모두 보석이며(19절) 성이 맑은 유리 같 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18절)는 데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이미지 가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에서도 그 사실이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기에서 왜 금이라는 상징적인 묘사가 등장할까요? 물론 천국은 문자 그대로 금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은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거룩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지상에서 사람들 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금을 언급한 것입니다.
거룩한 성의 영광스러움은 단순히 풍성하고 넉넉하고 비싼 게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깨끗하고 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죄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신비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사실 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처리된, 하나님의 영광이 유감없이 나타 난 거룩한 도성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또한 하나님 의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될 성도들이 그 도성에서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러움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저는 성도들의 소망인 새 예 루살렘 성이야말로 로마서 8장 18절의 약속에 대한 응답의 장소 라고 생각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롬 8:18).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 사도를 포함해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신앙을 지키느라, 복음을 전하느라,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느라 그 많은 고난과 환난과 역경과 시련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 문입니다. 여기서 현재라는 단어는 장차와, 고난은 영광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성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 즉, 도성 자체의 영광스러움과 그 도성 안에 있는 성도들의 영광스러움입니다. 어쩌면 열두 문에 새겨진 열두 지파의 이름과 열두 기초석의 보석 하나하나에 새겨진 제자들의 이름 가운데에는 우리의 이름도 있을 것입니다. 장래의 그 영광을 바라본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거룩한 성의 특성
첫째/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나라 22절을 보십시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 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거룩한 성에는 성전이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성전이시기 때문이 며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어디든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사람들의 죄와 불순종과 반역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가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오늘날 이 역사 속에 숨어 계십니다(Hidden God).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때는 주님을 예배하는 순간이며, 바로 이 예배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 성전입니다. 교회에서 정말 성령 충만한 예배를 드리는 순간, 우리는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당하고 그분의 임재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자 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하시는 특별한 의미의 장소로 성전을 지상의 역사 속에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역사와 함께 성 전의 역사도 끝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충분히 경험할 수 없었 던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임재가 충분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마치 먼지 속에서 발견하는 보 석이나 공해로 찌든 하늘에서 얼핏얼핏 보여지는 무지개처럼 이따금 경험할 수 있으나, 영원한 도성에 가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영광을 흠뻑 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한 나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5절).
이렇게 밤이 없는 데 대한 이유가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 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도성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가 영광스러운 빛이기 때문에, 주님 자신이 영광스러운 빛이기 때문에 다른 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빛에는 물리적인 빛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빛은 자유와 진리의 빛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는 문을 닫을 필요가 없을 만큼 완전히 안전한 곳입니다. 그런 나라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셋째/세상에 있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대로 보존되는 나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정말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런 모든 것은 천국에 가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측면에서 이해합니다. 물론 다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속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26절에 그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많은 부분들이 죄로 말미암아 무너졌 고 추해졌고 변질됐고 부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 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놀라움, 비록 부패한 존재이기는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따뜻한 우정 그리고 진정 한 인간성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천국에 가서도 보전될 것입니다 . 이것이 세상과 천국 사이의 연속성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모든 소중한 가치, 이를테면 거룩함, 순결함, 사랑,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천국에 갔을 때 주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많은 것들 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그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천국에서는 국적도 보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에서도 저는 한국 사람일 것입니다. 24절에 만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말입니다. 나라간에 서로 싸우고 대적하는 것이 잘못이지 국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각 나라 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화 속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적인 아 름다움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서로에게 소개하는 모습은 참 멋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천국에는 자기 민족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제가 천국에 가서도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했 던 그 모든 나쁜 것들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이 천국에서 인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결 혼 제도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넷째/세상의 모든 죄된 것은 용납되지 않는 나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끄러운 것, 죄된 것은 천국에 절대로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 라(27절).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 이 세 가지를 가장 크 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이와 정반대인 것입니다. 천국 에는 속된 것이 없으니까 거룩한 것이 있으며, 가증한 것, 곧 변절이나 배신이 없으니까 진정한 성실성이 있으며, 거짓이 없으니 까 진실함만이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고 들어오지 못하되.
이 말씀을 보고 많은 사람이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의 심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죄를 한번도 짓지 않은 사람 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죄를 사함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칭의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죄를 한번도 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한번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처럼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곧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나라, 빛으로 충만한 나라,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모든 아름다움이 보존되고,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온갖 추함 과 부끄러움과 죄가 완전히 사라진 그 나라, 그 나라를 소망합니 까?
이 땅에서 거짓을 경험하기에 우리는 더욱 진실하신 하나님 그리고 진실하신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미움을 경험하기에 우리는 그 영원한 사랑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짓과 불의와 어둠 속에서 힘겹게 분투하면서도 어느 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꿈이 있 기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주님의 평안이 충만하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굴며 평화를 노래하는 그 나라 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 탁하신 복음을 전하며 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오늘도 살 아갈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그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절망과 낙심케 하는 것을 이기게 하시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 게, 현재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힘을 다해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런데 거룩한 성이 영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 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10,11절).
마지막 천성이 영광스런 도성일 수 있는 이유는 영광의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영광입니다. 저는 요한계시록 21장 9-21절까지의 묘사가 단 순히 천성 그 자체에 대한 묘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던 백성들에게 주어질 마지막 영광에 대한 상 징적인 묘사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체험을 설명할 때 세 가지 주요 교리가 있습니다.
첫째/칭의(justification)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의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의롭다고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아무 런 자격이 없지만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성화(sanctification)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 해서 점점 거룩해져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셋째/영화(glorification) 이것은 성화의 완성 단계로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는 바로 그때 이루어질 일입니다.
영광의 주님을 닮아 영광스럽게 완성되어 주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아마 날마다 자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 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실존적인 고민 가운데 하나는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나도 알 수 없는 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일 것입니다. 꼭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자기 자신을 볼 때 짜증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러던 내가 내 모든 약점을 넘어서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온전히 닮은, 인격적으로 완성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순간 우리는 병들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 하는 부활의 새 몸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그분의 은혜로 서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천국의 모습을 천국 안에 거하게 될 성도들의 영광스런 모 습으로 생각하며 본문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합시다. 본문을 읽다 보면 한 가지 특정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열두 문 , 열두 기초석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의 가로, 세로, 높이는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이고 성곽의 크기는 144규빗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공통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숫자가 12라는 것입니다. 열두 문, 열두 돌, 12 ,000 스다디온, 144(12×12) 규빗.
이제 다음 말씀을 보십시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 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 들이라(12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 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14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바로 열두 지파 이고,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바로 열두 제자입니다. 이들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통틀어서 , 곧 모든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 입니다. 12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숫자 입니다. 그들이 바로 천국의 주인공들입니다. 저는 일만 이천 스 다디온이라는 숫자도 문자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상징은 실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를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도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천국의 크기를 문자 그대로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가로, 세로 , 높이가 모두 똑같이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라면 전체 모양은 정 방형이 됩니다. 그것은 완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2라는 숫자 의 의미를 통해서, 거룩한 성이 완전한 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도성은 완전히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투명한 도성입니다.
성곽의 열두 기초석이 모두 보석이며(19절) 성이 맑은 유리 같 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18절)는 데에서 깨끗하고 거룩한 이미지 가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1절에서도 그 사실이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기에서 왜 금이라는 상징적인 묘사가 등장할까요? 물론 천국은 문자 그대로 금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은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거룩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지상에서 사람들 이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금을 언급한 것입니다.
거룩한 성의 영광스러움은 단순히 풍성하고 넉넉하고 비싼 게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깨끗하고 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죄와 더불어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신비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사실 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죄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고 처리된, 하나님의 영광이 유감없이 나타 난 거룩한 도성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또한 하나님 의 영광으로 영광스럽게 될 성도들이 그 도성에서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러움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저는 성도들의 소망인 새 예 루살렘 성이야말로 로마서 8장 18절의 약속에 대한 응답의 장소 라고 생각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도다(롬 8:18).
이 말씀을 기록한 바울 사도를 포함해서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신앙을 지키느라, 복음을 전하느라,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느라 그 많은 고난과 환난과 역경과 시련을 경험하면서도 그것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 문입니다. 여기서 현재라는 단어는 장차와, 고난은 영광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성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 즉, 도성 자체의 영광스러움과 그 도성 안에 있는 성도들의 영광스러움입니다. 어쩌면 열두 문에 새겨진 열두 지파의 이름과 열두 기초석의 보석 하나하나에 새겨진 제자들의 이름 가운데에는 우리의 이름도 있을 것입니다. 장래의 그 영광을 바라본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고난은 없습니다.
거룩한 성의 특성
첫째/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나라 22절을 보십시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 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거룩한 성에는 성전이 없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성전이시기 때문이 며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어디든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사람들의 죄와 불순종과 반역 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가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오늘날 이 역사 속에 숨어 계십니다(Hidden God).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때는 주님을 예배하는 순간이며, 바로 이 예배를 위해서 세워진 것이 성전입니다. 교회에서 정말 성령 충만한 예배를 드리는 순간, 우리는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당하고 그분의 임재 앞에서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자 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하시는 특별한 의미의 장소로 성전을 지상의 역사 속에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역사와 함께 성 전의 역사도 끝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충분히 경험할 수 없었 던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임재가 충분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마치 먼지 속에서 발견하는 보 석이나 공해로 찌든 하늘에서 얼핏얼핏 보여지는 무지개처럼 이따금 경험할 수 있으나, 영원한 도성에 가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영광을 흠뻑 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한 나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25절).
이렇게 밤이 없는 데 대한 이유가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 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도성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가 영광스러운 빛이기 때문에, 주님 자신이 영광스러운 빛이기 때문에 다른 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 빛에는 물리적인 빛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빛은 자유와 진리의 빛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는 문을 닫을 필요가 없을 만큼 완전히 안전한 곳입니다. 그런 나라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셋째/세상에 있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대로 보존되는 나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정말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런 모든 것은 천국에 가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측면에서 이해합니다. 물론 다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속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26절에 그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많은 부분들이 죄로 말미암아 무너졌 고 추해졌고 변질됐고 부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것이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 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기쁨이나 놀라움, 비록 부패한 존재이기는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따뜻한 우정 그리고 진정 한 인간성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천국에 가서도 보전될 것입니다 . 이것이 세상과 천국 사이의 연속성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모든 소중한 가치, 이를테면 거룩함, 순결함, 사랑,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천국에 갔을 때 주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많은 것들 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그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천국에서는 국적도 보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에서도 저는 한국 사람일 것입니다. 24절에 만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말입니다. 나라간에 서로 싸우고 대적하는 것이 잘못이지 국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각 나라 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화 속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창조적인 아 름다움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서로에게 소개하는 모습은 참 멋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천국에는 자기 민족이 더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제가 천국에 가서도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했 던 그 모든 나쁜 것들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이 천국에서 인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결 혼 제도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넷째/세상의 모든 죄된 것은 용납되지 않는 나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끄러운 것, 죄된 것은 천국에 절대로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 라(27절).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거짓말하는 자, 이 세 가지를 가장 크 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이와 정반대인 것입니다. 천국 에는 속된 것이 없으니까 거룩한 것이 있으며, 가증한 것, 곧 변절이나 배신이 없으니까 진정한 성실성이 있으며, 거짓이 없으니 까 진실함만이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고 들어오지 못하되.
이 말씀을 보고 많은 사람이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의 심스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죄를 한번도 짓지 않은 사람 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죄를 사함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칭의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죄를 한번도 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한번도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처럼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곧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나라, 빛으로 충만한 나라,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모든 아름다움이 보존되고,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온갖 추함 과 부끄러움과 죄가 완전히 사라진 그 나라, 그 나라를 소망합니 까?
이 땅에서 거짓을 경험하기에 우리는 더욱 진실하신 하나님 그리고 진실하신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미움을 경험하기에 우리는 그 영원한 사랑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짓과 불의와 어둠 속에서 힘겹게 분투하면서도 어느 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꿈이 있 기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주님의 평안이 충만하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굴며 평화를 노래하는 그 나라 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 탁하신 복음을 전하며 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오늘도 살 아갈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 그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절망과 낙심케 하는 것을 이기게 하시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 게, 현재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힘을 다해 살아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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