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말할찌라1 (렘1:4-10)
본문
예레미야서 1장은 우선 책의 표제로 볼 수 있는 1-3절과 통속적으로 예레
미야의 소명보도문이라 일컬어지는 4-19절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절과 11절 첫머리와 13절 첫머리에 한결같이 나오는 표현,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다"([와예히 데바르 아도나이 엘라이]는 보통 새 단락의 시작을 알려주므로 4-19절은 다시 4-10절, 11-12절,13-19절의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용을 보더라도 11-12절과 13-19절은 예레미야가 "보고 있는" 무엇을 두고서 야훼와 예레미야가 주고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점에서 예례미야를 예언자로 삼으실 뜻을 밝히시는 야훼와 예레미야 사이에 벌어지는 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4-10절은 따로 떼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11-12절과 13-19절은 4-10절에 적힌 사건 다음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다. 11-12절과 13-19절을 흔히 예레미야가 본 두 가지 이상(異像) 또는 환상(幻像)에 대한 보도로 본다. 이는 예언자의 소명 보도문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예레미야1장의 경우는 어느 정도 독립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리하여 4-10절은 좁은 의미의 소명보도문이라 할 수 있다.
4 야훼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나에게 임하였다.
5 "내 널 뱃속에 짓기 앞서 널 알았고 너 아기집에서 나오기 앞서 내 널 거룩하게 했노라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내 널 삼았노라!"
6 이에 내가 말씀드렸다. "아! 주 야훼시여, 오, 전 말할 줄 모릅니다. 전 어리기 때문입니다."
7 그러자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전 어립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내 널 보내는 곳마다 가서 내 네게 말한 것마다 말할찌라.
8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 너와 함께 있어 널 건질 것이기 때문이라"-야훼의 발언-.
9 또 야훼께서 그의 손을 뻗치셔서 내 입 위에 닿게 하시고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 내 말들을 네 입안에 두었노라.
10 보아라, 내 널 오늘 겨레들과 왕국들 위에 세웠노라, 뽑아 내고 부서뜨리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리도록, 짓고 심도록!"
위 사역에서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이 억양 부호로써 한 절을 여럿으로
나눈 것과 히브리어 본문에 나타난 낱말들의 순서를 될 수 있는대로 살려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다 보니 우리 말투에 맞지 않아 어색하게 되기도 하
였지만, 달리는 한잣말을 피하고 순 우리말을 써 보려고 애썼다.
5절 가운데 부분에 "내 널 거룩하게 하였다"([히크다쉬티카])는 경우에 따라 "내 널 구별하였다"로 옮길 수도 있다. 여기 쓰인 동사는 의
히필형으로써 아무개나 무엇을 하나님이 쓰시려고 따로 떼내어 놓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5절 뒷부분에 나오는 "겨레들을 위하여"([락고임])에서 [학고임]은 구약성경에서 보통은 이스라엘을 뺀 나머지 나라들을 가리키기에 흔히 "이방"(異邦)이라고 옮긴다. 그렇지만 때로는 출애굽기 19장6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을 두고서도 [고이]라고도 하기에 여기서는 그냥 포괄적인 뜻으로 "겨레들"이라고 옮겼다.
또, 헬라어 칠십인역 성경의 어떤 사본들에서는 맛소라 본문의 복수형 대신에 단수형을 쓰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가 야훼로부터 부름 받는 사건을
알려주는 첫머리에서 예레미야를 이방 여러 겨레들의 예언자로 야훼께서
삼으셨다고 하기보다는 이스라엘 한 겨레를 위한 예언자로 삼으셨다는 뜻으로 본문을 이해하고 싶어한 결과로 보인다. 그렇지만, 본문 10절에서도 [학고임]이 나오고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 관해서만 예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맛소라 본문의 복수형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6절의 "오"와 9절의 "자"는 히브리 낱말 [힌네]의 번역이다. 이 낱말을 흔히 우리말 성경에서는 "보라"로 옮기지만 이러한 번역은 이 낱말을 동사의 명령형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이 낱말은 퍽 중요한 내용의 말을 하기에
앞서 듣는 사람의 주의를 불러 일으키고자 쓰는 외마디소리이다. "보다"를 뜻하는 동사들의 명령형이 쓰인 보기는 10절 첫머리 [레에] haer.에서 볼 수 있다.
7절의 "가서([텔레크]) … 말할찌라([테답베르])는 히브리어 본문으로 보면 명령형이 아니고 소원형 jussive 로 되어 있어서, 이를 "…찌라"하는 옛말투로 옮겨 보았다.
8절후반절에서 "내 너와 함께 있어 널 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널 건지
려고 내 너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로 옮길 수도 있다. 위의 번역은 히브리 본문으로 보았을 때 마지막에 나오는 [레핫칠레카]("널 건지는 것")를 그 앞에 나오는 명사 문장, "내 너와 함께 있다"([잇테카 아니])의 결과를
드러내는 식으로 본 것이다.
8절 끝의 "야훼의 발언"([네움 아도나이])는 "야훼의 말씀"으로도 옮길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데바르 아도나이]로 오인될 우려가 있어 그와는
구별되도록 하였다.
10절 뒷부분의 "뽑아 내고 부서뜨리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리도록, / 짓고
심도록"은 전치사 [레]와 합한 동사 부정사형 여섯 개의 번역인데, 네번째 것과 다섯번째 것 사이를 빼고는 모두 접속사 [웨]나 [우]로 이어진다. 곧, "뽑아 내는 것과 부서뜨리는 것과 망가뜨리는 것과 넘어뜨리는 것을 하도록, / 짓는 것과 심는 것을 하도록"이란 뜻이다.
본문의 문학형식과 짜임새와 흐름
본문은 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 직접 그에 대해 알려주는 형식의 글, 이른바 일인칭보도문이다. 그렇지만 1-3절과는 달리 줄글[散文]이 아니라 주로 시문(詩文)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비슷한 뜻의 낱말들을 나
란히 써서 같은 내용을 거듭 표현하는, 이른바 평행법과 운율이 대체적으
로 유지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첫머리 4절을 얼핏 보면 5절에 인용된 야훼의 말씀을 이끌어들이는 기능을
지니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와예히 데
바르 아도나이 엘…])가 예언서에서 쓰이는 쓰임새에 비추어 보면
5-10절까지를 통틀어 이끌어 들인다고 할 수 있다.
5-10절의 알맹이는 5, 7-8, 9-10절에서 야훼께서 세 차례에 걸쳐 "나"에게
하신 말씀과 6절에서 "내"가 야훼의 첫번째 말씀에 대꾸한 말이다.
야훼의 첫번째 말씀은 "나"를 예언자로 삼으심을 알려주는 말씀으로서 부르심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나"의 대꾸는 그러한 야훼의 통
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완곡히 밝히면서 사양하는 성격을 띤다. 야훼의
두번째 말씀은 야훼께서 이러한 사양의 말을 받아들이시지 않고 "나"를 보
내실 뜻을 분명히 하시면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이어서 야훼께서 손을 뻗치셔서 "내" 입 위에 닿도록 하시는 상징 행위와
더불어 하신 말씀은 "나"를 예언자로 삼으셨다 하신 첫번째 말씀을 다른
말로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제 "나"는 더 이상 야훼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게
되었음을 글의 흐름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의 짜임새는 아래와 같이 간추려 볼 수 있다.
4절:"야훼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
5절:야훼께서 부르시는 말씀-"내 널 일찌기 예언자 삼았노라"
6절:"나"의 사양하는 대꾸-"전 어려서 말할 줄 모릅니다"
7-8절:야훼의 두번째 말씀
7절전반절:사양 물리치심-"어리다 말하지 말라"
7절하반절:보내심-"내 시키시는대로 가서 말할찌라"
8절:권고-"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8절하반절:약속-"내 너와 함께 하리"
9절전반절:야훼의 상징행위-내 입에 손 대심
9절후반절-10절:야훼의 세번째 말씀
9절후반절:상징행위 뜻풀이-"내 말들을 너의 입 안에 두었다"
10절:예언자 삼음과 그 목적을 밝히심
여기서 드러나는 요소들, 곧, 부르심, 사양, 사양을 물리치심, 보내심, 약
속하심, 상징행위, 상징행위 뜻풀이는 본문에 뒤이어 나오는 11-19절에 들
어 있는 환상과 환상에 대해 풀이와 아울러 소명보도문이란 문학 형식의
구성 요소들이 된다. 이런 요소들이 이사야 6장, 에스겔 1-3장, 출애굽기
3-4장 같은 다른 소명 본문들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면 예레미야
1장4-19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요즈음은 적지 않은 학자들이 비록 1장4-19절이 예레미야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지만 나중에 예레미야서를 엮은 사람
들에 의해 조금은 손질된 것으로 이해한다. 신명기 전통을 따라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예언들을 모아 정리하는 일
에도 관계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로서는
일단 우리에게 전해진 본문의 마지막 모습을 중심으로 본문의 뜻을 살펴보
도록 하기로 한다.
절별 풀이
< 4절 >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
단수형으로 표현되는 "야훼의 말씀"([데바르 아도나이],)는 예언자의 예언을 표현하는 전문용어로 쓰인다. 이 경우 "말씀"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있도록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키지만, 그냥 "말"의 높임말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말", "말씀"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 [다바르]는 또한 "사건"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할 때 이는 야훼께서 아무개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야훼의 뜻이 아무개에게 전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무개가 야훼의 계시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음을 뜻한다. "임하다"로 옮긴 히브리 낱말 [하야]도 바로 그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남을 가리킨다. 이러한 배경에서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는 표현을 더러 "말씀 사건어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의 "나"는 나중에 11절전반절에서 똑똑히 드러나는대로 예언자 예레미
야이다. 이 예레미야에게 야훼의 말씀이 임했다는 표현은 본문에 앞서 이미 1장2절에 나와 있다. 2절에 따르면 유다 임금 요시야 벤 아몬이 임금 노릇한지 열
셋째 해에 야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고 한다. 이어 3절에서는 또한 유다 임금 여호야김 벤 요시야 때에도 그러했고 유다 임금 시드기야 벤 요시야 열한번째 해까지 그러했다고 한다.
결국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 함은 아무개가 예언자가 되었다,
예언자 노릇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1-3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요
시야 임금 제13년부터 시드기야 임금 제11년 사이에 예언 활동을 한 셈이
다. 이 표제 다음 첫 절인 4절에서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고 함으로써, 이제 5절부터 소개되는 내용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는 첫 순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4절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내가 예언자로 야훼의 부르심을 받은 내력은 다음과 같다"로 이해할
수 있다.
< 5절 >
"내 널 예언자 삼았노라!"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맨 먼저 하신 말씀의 내용은 일찌기 야훼께서 그를
예언자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이를 먼저 5절전반절에서는 "내 널 뱃속에
짓기 앞서 널 알았고 / 너 아기집에서 나오기 앞서 내 널 거룩하게 했노
라"는 식으로 서로 비슷한 뜻을 낱말들로 이루어진 두 부분으로 거듭 표현
한다.
여기서 "알다"는 창세기18장19절과 아모스3장2절 같은데서 알 수 있듯이 "뽑다"라는 뜻을 지닌다. 예레미야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야훼께서
는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일을 시키시려고 그를 야훼의 일꾼으로 정해 놓으
셨다는 것이다.
"거룩하게 하다"도 마찬가지 뜻이다. 구약성경 히브리 낱말에서 어떤 사람
이나 물건을 두고서 "거룩하다" 함은 우리말에서와는 달리 그 사람이나 물
건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어떤 높고 훌륭하고 깨끗한 품성을 가리키지 않
고, 그 사람이나 물건이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다, 그 사람이나 물건을 하
나님만이 쓰신다는,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상황을 뜻한다. 그리하여 본
문에서 야훼께서 예레미야더러 "내 널 거룩하게 하였다" 하심은 "이제부터
네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도록, 내가 시키는 일만 하도록, 나와만 관계되
도록 만들었다, 뽑았다, 정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시키시려는 바가 무엇인지는 5절후반절에서 드러난
다-"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내 널 삼았노라!" 동사가 맨 앞에 나오는히브리
어 문장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여기서 맨 앞에 "예언자"([나비])란
낱말이 나타나고 뒤이어 "겨레들을 위한"([락고임])이 나오며 주어와 목적어를 한데 알려주는 동사 "내 널 삼았노라"([네탓티카])는 맨끝에 있다. 이런 식으로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예언자"를 뜻하는 구약성경 히브리말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본문에 나오는 [나비]인데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이를 보통 "
선지자(先知者)"라고 옮겼다. 그리하여 예언자 하면 마치 앞 일을 미리 알아서 알려주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나비]의 뜻을 제대로 다 드러내어 주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7절을
풀이할 때 조금 더 자세히 말하기로 하여 뒤로 미루기로 한다. 우선 하나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예언자라는 정도로만 말해 놓기로 하자.
그런데,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삼으셨다 함이 얼
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처음으로 이 본문을 읽는 사람들은 예언자
하면 이스라엘을 위한 예언자이지 어찌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이겠는가 하
는 생각할 수 있다. "겨레들"이라고 옮긴 히브리 낱말 [고임]([고이]의 복
수)은 보통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을 통틀어 하는 말로 쓰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하다.
이스라엘을 두고서는 "야훼의 백성"([암 아도나이] hwhy m[;)라 하고 그냥 백성이라 할 때에도 [암]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더러는 이스라엘도
[고이]라고 하기에 본문에서 [고임]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다 가리킨다고 봄이 좋겠다.
이리하여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누리에 야훼의 뜻을
전할 일꾼으로 삼으셨음을 5절이 일러 준다. 과연 예레미야서에는 다른 어
떤 예언서에 못지 않게 큰 부분이 이스라엘 아닌 나라들에 관한 예언을 담
고 있다. 이른바 열방 예언이 25장 뒷부분과 46-51장에 모아져 있지만 이
밖에도 군데 군데 이방 나라들에게 대한 내용이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과
얽혀 있다. 아니 예레미야 당시 유다에 대한 야훼의 말씀은 이방 나라, 특
히 바빌로니아의 형편과 떼어놓고는 아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삼으셨다 함은 또
한 야훼께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누리의 하나님이심을 밝히
알려준다. 이러한 전통은 예레미야 이전의 예언자들의 예언 가운데서도 알
수 있었던 바이다.
5절은 야훼께서 예레미야가 알기도 전에 먼저 일찌기 그를 예언자로 정해
놓으시고 이제 그 사실을, 2절을 참고해서 말한다면, 유다 임금 요시야 13년에 예레미야 본인에게 알리셨음을 말해 준다.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삼
으신 것은 이미 오래 전이지만 예레미야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때
인 셈이다. 야훼 쪽에서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바이지만, 예레
미야 쪽에서 보면 이 순간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미야의 소명보도문이라 일컬어지는 4-19절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절과 11절 첫머리와 13절 첫머리에 한결같이 나오는 표현, "야훼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였다"([와예히 데바르 아도나이 엘라이]는 보통 새 단락의 시작을 알려주므로 4-19절은 다시 4-10절, 11-12절,13-19절의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용을 보더라도 11-12절과 13-19절은 예레미야가 "보고 있는" 무엇을 두고서 야훼와 예레미야가 주고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점에서 예례미야를 예언자로 삼으실 뜻을 밝히시는 야훼와 예레미야 사이에 벌어지는 대화를 내용으로 하는 4-10절은 따로 떼어낼 수 있다. 그러니까, 11-12절과 13-19절은 4-10절에 적힌 사건 다음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다. 11-12절과 13-19절을 흔히 예레미야가 본 두 가지 이상(異像) 또는 환상(幻像)에 대한 보도로 본다. 이는 예언자의 소명 보도문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예레미야1장의 경우는 어느 정도 독립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리하여 4-10절은 좁은 의미의 소명보도문이라 할 수 있다.
4 야훼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나에게 임하였다.
5 "내 널 뱃속에 짓기 앞서 널 알았고 너 아기집에서 나오기 앞서 내 널 거룩하게 했노라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내 널 삼았노라!"
6 이에 내가 말씀드렸다. "아! 주 야훼시여, 오, 전 말할 줄 모릅니다. 전 어리기 때문입니다."
7 그러자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전 어립니다'라고 말하지 말고
내 널 보내는 곳마다 가서 내 네게 말한 것마다 말할찌라.
8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 너와 함께 있어 널 건질 것이기 때문이라"-야훼의 발언-.
9 또 야훼께서 그의 손을 뻗치셔서 내 입 위에 닿게 하시고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 내 말들을 네 입안에 두었노라.
10 보아라, 내 널 오늘 겨레들과 왕국들 위에 세웠노라, 뽑아 내고 부서뜨리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리도록, 짓고 심도록!"
위 사역에서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이 억양 부호로써 한 절을 여럿으로
나눈 것과 히브리어 본문에 나타난 낱말들의 순서를 될 수 있는대로 살려
보고자 하였다. 그리하다 보니 우리 말투에 맞지 않아 어색하게 되기도 하
였지만, 달리는 한잣말을 피하고 순 우리말을 써 보려고 애썼다.
5절 가운데 부분에 "내 널 거룩하게 하였다"([히크다쉬티카])는 경우에 따라 "내 널 구별하였다"로 옮길 수도 있다. 여기 쓰인 동사는 의
히필형으로써 아무개나 무엇을 하나님이 쓰시려고 따로 떼내어 놓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5절 뒷부분에 나오는 "겨레들을 위하여"([락고임])에서 [학고임]은 구약성경에서 보통은 이스라엘을 뺀 나머지 나라들을 가리키기에 흔히 "이방"(異邦)이라고 옮긴다. 그렇지만 때로는 출애굽기 19장6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을 두고서도 [고이]라고도 하기에 여기서는 그냥 포괄적인 뜻으로 "겨레들"이라고 옮겼다.
또, 헬라어 칠십인역 성경의 어떤 사본들에서는 맛소라 본문의 복수형 대신에 단수형을 쓰고 있다. 이는 예레미야가 야훼로부터 부름 받는 사건을
알려주는 첫머리에서 예레미야를 이방 여러 겨레들의 예언자로 야훼께서
삼으셨다고 하기보다는 이스라엘 한 겨레를 위한 예언자로 삼으셨다는 뜻으로 본문을 이해하고 싶어한 결과로 보인다. 그렇지만, 본문 10절에서도 [학고임]이 나오고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 관해서만 예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맛소라 본문의 복수형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6절의 "오"와 9절의 "자"는 히브리 낱말 [힌네]의 번역이다. 이 낱말을 흔히 우리말 성경에서는 "보라"로 옮기지만 이러한 번역은 이 낱말을 동사의 명령형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이 낱말은 퍽 중요한 내용의 말을 하기에
앞서 듣는 사람의 주의를 불러 일으키고자 쓰는 외마디소리이다. "보다"를 뜻하는 동사들의 명령형이 쓰인 보기는 10절 첫머리 [레에] haer.에서 볼 수 있다.
7절의 "가서([텔레크]) … 말할찌라([테답베르])는 히브리어 본문으로 보면 명령형이 아니고 소원형 jussive 로 되어 있어서, 이를 "…찌라"하는 옛말투로 옮겨 보았다.
8절후반절에서 "내 너와 함께 있어 널 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널 건지
려고 내 너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로 옮길 수도 있다. 위의 번역은 히브리 본문으로 보았을 때 마지막에 나오는 [레핫칠레카]("널 건지는 것")를 그 앞에 나오는 명사 문장, "내 너와 함께 있다"([잇테카 아니])의 결과를
드러내는 식으로 본 것이다.
8절 끝의 "야훼의 발언"([네움 아도나이])는 "야훼의 말씀"으로도 옮길
수 있지만 그럴 경우 [데바르 아도나이]로 오인될 우려가 있어 그와는
구별되도록 하였다.
10절 뒷부분의 "뽑아 내고 부서뜨리고 망가뜨리고 넘어뜨리도록, / 짓고
심도록"은 전치사 [레]와 합한 동사 부정사형 여섯 개의 번역인데, 네번째 것과 다섯번째 것 사이를 빼고는 모두 접속사 [웨]나 [우]로 이어진다. 곧, "뽑아 내는 것과 부서뜨리는 것과 망가뜨리는 것과 넘어뜨리는 것을 하도록, / 짓는 것과 심는 것을 하도록"이란 뜻이다.
본문의 문학형식과 짜임새와 흐름
본문은 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 직접 그에 대해 알려주는 형식의 글, 이른바 일인칭보도문이다. 그렇지만 1-3절과는 달리 줄글[散文]이 아니라 주로 시문(詩文)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비슷한 뜻의 낱말들을 나
란히 써서 같은 내용을 거듭 표현하는, 이른바 평행법과 운율이 대체적으
로 유지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첫머리 4절을 얼핏 보면 5절에 인용된 야훼의 말씀을 이끌어들이는 기능을
지니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와예히 데
바르 아도나이 엘…])가 예언서에서 쓰이는 쓰임새에 비추어 보면
5-10절까지를 통틀어 이끌어 들인다고 할 수 있다.
5-10절의 알맹이는 5, 7-8, 9-10절에서 야훼께서 세 차례에 걸쳐 "나"에게
하신 말씀과 6절에서 "내"가 야훼의 첫번째 말씀에 대꾸한 말이다.
야훼의 첫번째 말씀은 "나"를 예언자로 삼으심을 알려주는 말씀으로서 부르심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나"의 대꾸는 그러한 야훼의 통
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완곡히 밝히면서 사양하는 성격을 띤다. 야훼의
두번째 말씀은 야훼께서 이러한 사양의 말을 받아들이시지 않고 "나"를 보
내실 뜻을 분명히 하시면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이어서 야훼께서 손을 뻗치셔서 "내" 입 위에 닿도록 하시는 상징 행위와
더불어 하신 말씀은 "나"를 예언자로 삼으셨다 하신 첫번째 말씀을 다른
말로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이제 "나"는 더 이상 야훼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게
되었음을 글의 흐름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본문의 짜임새는 아래와 같이 간추려 볼 수 있다.
4절:"야훼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
5절:야훼께서 부르시는 말씀-"내 널 일찌기 예언자 삼았노라"
6절:"나"의 사양하는 대꾸-"전 어려서 말할 줄 모릅니다"
7-8절:야훼의 두번째 말씀
7절전반절:사양 물리치심-"어리다 말하지 말라"
7절하반절:보내심-"내 시키시는대로 가서 말할찌라"
8절:권고-"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8절하반절:약속-"내 너와 함께 하리"
9절전반절:야훼의 상징행위-내 입에 손 대심
9절후반절-10절:야훼의 세번째 말씀
9절후반절:상징행위 뜻풀이-"내 말들을 너의 입 안에 두었다"
10절:예언자 삼음과 그 목적을 밝히심
여기서 드러나는 요소들, 곧, 부르심, 사양, 사양을 물리치심, 보내심, 약
속하심, 상징행위, 상징행위 뜻풀이는 본문에 뒤이어 나오는 11-19절에 들
어 있는 환상과 환상에 대해 풀이와 아울러 소명보도문이란 문학 형식의
구성 요소들이 된다. 이런 요소들이 이사야 6장, 에스겔 1-3장, 출애굽기
3-4장 같은 다른 소명 본문들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면 예레미야
1장4-19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요즈음은 적지 않은 학자들이 비록 1장4-19절이 예레미야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지만 나중에 예레미야서를 엮은 사람
들에 의해 조금은 손질된 것으로 이해한다. 신명기 전통을 따라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예언들을 모아 정리하는 일
에도 관계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로서는
일단 우리에게 전해진 본문의 마지막 모습을 중심으로 본문의 뜻을 살펴보
도록 하기로 한다.
절별 풀이
< 4절 >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
단수형으로 표현되는 "야훼의 말씀"([데바르 아도나이],)는 예언자의 예언을 표현하는 전문용어로 쓰인다. 이 경우 "말씀"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있도록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키지만, 그냥 "말"의 높임말로만 이해되지는 않는다. "말", "말씀"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 [다바르]는 또한 "사건"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할 때 이는 야훼께서 아무개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야훼의 뜻이 아무개에게 전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무개가 야훼의 계시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음을 뜻한다. "임하다"로 옮긴 히브리 낱말 [하야]도 바로 그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남을 가리킨다. 이러한 배경에서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는 표현을 더러 "말씀 사건어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의 "나"는 나중에 11절전반절에서 똑똑히 드러나는대로 예언자 예레미
야이다. 이 예레미야에게 야훼의 말씀이 임했다는 표현은 본문에 앞서 이미 1장2절에 나와 있다. 2절에 따르면 유다 임금 요시야 벤 아몬이 임금 노릇한지 열
셋째 해에 야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고 한다. 이어 3절에서는 또한 유다 임금 여호야김 벤 요시야 때에도 그러했고 유다 임금 시드기야 벤 요시야 열한번째 해까지 그러했다고 한다.
결국 "야훼의 말씀이 아무개에게 임했다" 함은 아무개가 예언자가 되었다,
예언자 노릇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1-3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요
시야 임금 제13년부터 시드기야 임금 제11년 사이에 예언 활동을 한 셈이
다. 이 표제 다음 첫 절인 4절에서 "야훼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고 함으로써, 이제 5절부터 소개되는 내용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는 첫 순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4절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내가 예언자로 야훼의 부르심을 받은 내력은 다음과 같다"로 이해할
수 있다.
< 5절 >
"내 널 예언자 삼았노라!"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맨 먼저 하신 말씀의 내용은 일찌기 야훼께서 그를
예언자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이를 먼저 5절전반절에서는 "내 널 뱃속에
짓기 앞서 널 알았고 / 너 아기집에서 나오기 앞서 내 널 거룩하게 했노
라"는 식으로 서로 비슷한 뜻을 낱말들로 이루어진 두 부분으로 거듭 표현
한다.
여기서 "알다"는 창세기18장19절과 아모스3장2절 같은데서 알 수 있듯이 "뽑다"라는 뜻을 지닌다. 예레미야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야훼께서
는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일을 시키시려고 그를 야훼의 일꾼으로 정해 놓으
셨다는 것이다.
"거룩하게 하다"도 마찬가지 뜻이다. 구약성경 히브리 낱말에서 어떤 사람
이나 물건을 두고서 "거룩하다" 함은 우리말에서와는 달리 그 사람이나 물
건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어떤 높고 훌륭하고 깨끗한 품성을 가리키지 않
고, 그 사람이나 물건이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다, 그 사람이나 물건을 하
나님만이 쓰신다는,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상황을 뜻한다. 그리하여 본
문에서 야훼께서 예레미야더러 "내 널 거룩하게 하였다" 하심은 "이제부터
네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도록, 내가 시키는 일만 하도록, 나와만 관계되
도록 만들었다, 뽑았다, 정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시키시려는 바가 무엇인지는 5절후반절에서 드러난
다-"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내 널 삼았노라!" 동사가 맨 앞에 나오는히브리
어 문장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여기서 맨 앞에 "예언자"([나비])란
낱말이 나타나고 뒤이어 "겨레들을 위한"([락고임])이 나오며 주어와 목적어를 한데 알려주는 동사 "내 널 삼았노라"([네탓티카])는 맨끝에 있다. 이런 식으로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예언자"를 뜻하는 구약성경 히브리말이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본문에 나오는 [나비]인데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이를 보통 "
선지자(先知者)"라고 옮겼다. 그리하여 예언자 하면 마치 앞 일을 미리 알아서 알려주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나비]의 뜻을 제대로 다 드러내어 주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7절을
풀이할 때 조금 더 자세히 말하기로 하여 뒤로 미루기로 한다. 우선 하나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예언자라는 정도로만 말해 놓기로 하자.
그런데,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삼으셨다 함이 얼
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처음으로 이 본문을 읽는 사람들은 예언자
하면 이스라엘을 위한 예언자이지 어찌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이겠는가 하
는 생각할 수 있다. "겨레들"이라고 옮긴 히브리 낱말 [고임]([고이]의 복
수)은 보통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을 통틀어 하는 말로 쓰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하다.
이스라엘을 두고서는 "야훼의 백성"([암 아도나이] hwhy m[;)라 하고 그냥 백성이라 할 때에도 [암]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더러는 이스라엘도
[고이]라고 하기에 본문에서 [고임]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을 다 가리킨다고 봄이 좋겠다.
이리하여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누리에 야훼의 뜻을
전할 일꾼으로 삼으셨음을 5절이 일러 준다. 과연 예레미야서에는 다른 어
떤 예언서에 못지 않게 큰 부분이 이스라엘 아닌 나라들에 관한 예언을 담
고 있다. 이른바 열방 예언이 25장 뒷부분과 46-51장에 모아져 있지만 이
밖에도 군데 군데 이방 나라들에게 대한 내용이 이스라엘에 관한 내용과
얽혀 있다. 아니 예레미야 당시 유다에 대한 야훼의 말씀은 이방 나라, 특
히 바빌로니아의 형편과 떼어놓고는 아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겨레들을 위한 예언자"로 삼으셨다 함은 또
한 야훼께서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누리의 하나님이심을 밝히
알려준다. 이러한 전통은 예레미야 이전의 예언자들의 예언 가운데서도 알
수 있었던 바이다.
5절은 야훼께서 예레미야가 알기도 전에 먼저 일찌기 그를 예언자로 정해
놓으시고 이제 그 사실을, 2절을 참고해서 말한다면, 유다 임금 요시야 13년에 예레미야 본인에게 알리셨음을 말해 준다.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삼
으신 것은 이미 오래 전이지만 예레미야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때
인 셈이다. 야훼 쪽에서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하신 바이지만, 예레
미야 쪽에서 보면 이 순간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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