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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시대에 (창6:1-10,마24:37-38,벧후2:5)

본문

"심판이 가까왔다"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메시지를 전해야합니다. 창세기는 바로 시작의 책이며 동시에 종말을 준비시켜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로 인한 우주적인 심판은,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말씀과 특별히 노아 시대의 대홍수 사건을 들은 우리에게 세상의 심판을 경고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물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경건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부패되고 죄로 가득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창 19장). 그 결과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들의 무서운 죄악을 의로운 자만이 볼 수 있었고, 그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여러분, 세상과 그 세상에 속해 있는 모든 인생들의 부패와 불경건 그리고 죄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것을 구별하고 그것으로부터 점이 없고 흠이 없이 보존되어야합니다(벧후 3:14).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창세기 6-8장의 메시지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경건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의인이라면 심판을 외쳐야합니다. 세상에 내릴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해야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은 물론 세상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하도록 하여야합니다.
세상은 하나님 앞에 부패되고 경건치 못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와 인간중심의 사고(思考)에서 인간 스스로 자신만만합니다. 결코 그들에게는 노아 시대의 전 우주적인 물의 심판과 같은 성경의 증언은 한낱 소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그들과는 전혀 무관한 일로 여겨질 따름입니다. 노아의 시대가 그랬습니다.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므두셀라가 태어나 그가 죽을 때까지 969년 동안 선포되었지만, 그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 세상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때 그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던 사람들을 만납시다. 그래서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나를 먼저 부르셨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육체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을 첫 번째로 어긴 아담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요, 하나님과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던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창 3:23-2
4). 그 후 아담의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 제사를 드리고, 분을 내고,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 동생을 죽여 첫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앞을 떠나게 되었습니다(창 4:16). 가인의 후손들의 면면을 지난주에 살펴 본대로 극히 인간 중심적 문명을 발전시켜 왔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아벨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셋의 후손들에 대하여 기록한 창세기 5장의 족보는 같은 문구로 기록되었는데, "-가-세에-를 낳았고-를 낳은 후-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태어나고, 낳고 죽었더라"라는 평범한 인생들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심판은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창 6:1). 사람이 땅위에 번성했음은 이미 창세기 4-5장의 족보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 백년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도 '셋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고, 930세를 살다가 죽었으니까 그가 죽기 직전까지 자녀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셋의 족보에 기록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가 자녀를 낳고 죽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 역시 그렇게 살다가 많은 자녀들을 낳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는 비록 9대 밖에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의 세상에 있던 사람들은 대단히 많았음이 분명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였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비록 가인의 계보에서는 그들의 수명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 또한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셋의 후손들처럼 장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생존에 있는 동안 자신과 셋의 후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인간에 대하여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성경은 제공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3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 영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성을 상실한 죽을 존재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절정에 이르고 그들에 대한 심판을 120년 후에 있을 것을 경고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이 절정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기간을 유보하셨습니다. 이것은 인생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그 기회조차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의 앞을 떠난 인간, 이제는 하나님의 영성(靈性)마저 상실해버린 인생들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이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딸들을 좋아하였고 이렇게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마지막 동기를 창세기 6:2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고, 6:4에서는 당시에 내피림이 있었고 그 자식들은 고대의 유명한 용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그리고 내피림에 대한 학자들의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 해석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하여 천사와 귀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라는 주장과, 지체 높은 고대의 왕이나 통치자를 지칭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설은 창세기 6장의 앞 뒤 문맥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으며, 구속사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사람의 타락사가 아닌 천사의 타락사가 되므로 받아들이기에 맞지 않는 이론입니다. 주로 복음주의적인 해석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이라는 견해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인의 후손들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손들은 이미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셋의 후손들과(창 4:26), 하나님의 앞을 떠나(창 4:16) 인간 중심의 문명만을 발전시킨 가인의 후손들과의 결합은 곧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결합이었습니다. 그들의 혼인으로 말미암아 그 시대에 내피림이 있었습니다. 내피림이란 고대 근동의 이교도의 종교관에서 나온 것으로 신들이 인간들과 합하여 자식을 낳으면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어, 괴물이나 신동(神童)이라 고 말하기도 하지만, 70인역(LXX)은 네피림을 '장부'(丈夫)란 뜻으로 번역했고, 성경의 많은 번역서들이 '용사', '거인'이란 뜻의 'giant'로 번역하여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혈족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그 신체적 특성상 장부가 거인으로 불릴 수 있는 일단의 사람 혹은 족속을 가리키는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네피림'이란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꾼들' 이나 '침략자들'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 13:33에서도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에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그 땅 족속들의 모습이 마치 홍수 전 노아 시대의 네피림같이 장대하고난폭하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외견상의 미모만을 보고 그들과 결혼했습니다. 여기에서 '보고(라아)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주목하거나 인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만을 보고 그들을 취했습니다.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심판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용사가 태어났고 그들은 고대의 유명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창 6:4). 용사와 유명한 사람은 무엇을 말합니까 용사란 문자적 뜻으로는 '강한 자'요 '힘센 자'로, 당시에 세상을 지배하던 힘세고 강한 영웅이나 아니면 많은 하수인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를 말하지만, 여기에서의 용사란 홍수 이전 시대의 전쟁과 약탈 방종과 사치가 난무하던 시대의 주역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악명(惡名)을 날렸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의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좋은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씨 등과 같은 응당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면적 아름다움은 외면한 채 인간의 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한다면 결국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간에 당시의 모든 사람이 그릇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온 사회가 타락하고 부패되어갈 때 결국 필연적으로 패망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창 6:7). 하나님은 한탄하셨다 인생들은 자기 마음에 맞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온 세상에는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고 모든 인생들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항상 악했습니다(6:6).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이유는 첫째,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인간의 악한 행위였습니다. 그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관영하다(라바)는 '크다', '충분하다' 또는 '너무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이 관영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죄악이 일시적이기보다는 깊이 뿌리를 내린 지속적인 것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악했습니다. 마음은 인간의 갖가지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좌소(座所)입니다. 그리고 생각이란 어떤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이고, 계획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기간 인간의 행동과 그들의 생각과 계획을 주목하셨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6:5의 '보시고'라는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인 동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적이고 자세하게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과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모두 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큰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만든 인간을 심판해야만 하는 극한 아픔을 지으셨음을 (아사, 지으셨다, 창조의-바라 를 사용하지 않음)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은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한탄하셨음은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측면에서 묘사하였습니다. 또한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새겼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를 보신 하나님께선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극심한 아픔으로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죄에 대하여 마음에 근심하십니다.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우리의 죄와 그에 대한 징계를 하나님 자신의 마음 깊숙이 새기시며, 아파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절대로 변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이 되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좇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인하여 기뻐하십니다. 신약의 저자들도 노아 시대의 심판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노아 시대의 심판이 경건치 않음에 있었으므로, 경건치 못한 삶을 사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지체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벧후 2:5).
그러므로 베드로를 통해 주는 노아 시대의 홍수에 대한 교훈은, 탐심이 가득하여 열매가 없는 삶을 사는 거짓 선생과 육체의 정욕으로 살며, 호색하고 교만하며, 허탄한 말을 하는 거짓 선생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결코 늦춰지지 않을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여러분, 거짓 선생을 좇지 마십시오. 그들은 경건치 못한 삶으로 열매가 없고 정욕을 따라 살다가, 미혹 받은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37-38, 누가복음 17:26-27에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일상에만 빠져 있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그분의 뜻에 대하여 무관심한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모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부패되고 타락하였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결국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심판이 구체화됨에도 노아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의 구원입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있을 전 우주적인 심판에서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미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그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었고, 당세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은혜를 베푸신 뜻은 세상의 부패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노아처럼 이 시대의 완전한 자가 되고, 물질적 풍요와, 인간 중심의 사고와 판단으로 발달해 가는 물질적 세계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본주의적 문명을 뒤로하고 먼저 하나님의 뜻과, 그의 말씀에 귀기울일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을 경솔히 여기지 마십시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에녹이 자신의 아들 므두셀라(그가 죽을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리라)를 통해 경고한 말과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 노아의 말을 믿지 못하였고,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때에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다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심판에 대한 경고의 책임이 맡겨졌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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