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창6:1-22)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말씀이다. 노아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주일학교 시절에 많이 들어온 이야기이다. 노아 할아버 지는 배를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을 했는데 노아 할아버지 가 족들은 방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노아 홍수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40일간의 밤낮 쏟아지는 비, 홍수, 방주, 노아의 여덟 식구들 홍수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하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아 시대에 있은 홍수 심판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하는 것이다. 집중 호우로 나라 전체가 물난리로 슬픔과 고통과 탄식 속에 빠져 있다. 탄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힘을 모으고, 사랑을 모아 해결 해야 한다. 해결도 중요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이 물난리가 주는 의미 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태복음 24: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 리라/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우리 성도들에게 관심이 되는 것은 주님이 친히 일러주신 재림하실 때의 징조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삶의 모습이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가면서, 즐기는 동안에 생각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 시대의 시대적 상황과 비슷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우리 성도들이 어떤 삶의 모습을 가꾸어 가야 할지를 살펴 보고져 한다.
1.왜 홍수 심판이 왔는가 본문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 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노아 시대의 시대적 상황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이(창1:26)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인간이기를 버리고 짐승 같은 삶의 모습이었다.
1.육체가 됨이라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이 없는 육체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갈라디아 5: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하는 것은, 바로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고 했다. 곧 음행, 더 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를 맺음, 분쟁, 시기, 분냄, 작당, 분 리,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이라고 했다(갈5:19-21).
2.죄악의 관영 본문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여서 죄악으로 세상에 가득 찼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생각도, 계획도 모두가 죄악 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3.땅의 패괴 창세기 6:11-12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여기서 "패괴하다"는 말은 썩어 냄새가 난다는 말로 하나님 앞에서 타락해 버린 모습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 순리대로 사는 게 아니라(롬1:26-27) 제멋대로의 삶을 말한다. 여기서 "강포하다"는 말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행하여지는 일 로 강자가 약자를 압제하고, 학대한다는 것이다. 힘있는 자는 약한 자 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강자가 약자를 자신의 편의와 유익을 위해 이용하고, 부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 시대에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부 패상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육체의 소욕대로 육신 의 정욕을 좇아 살았습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 썩어 냄새나는 세상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시대상이 자꾸만, 자꾸만 노아의 시대상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 정욕을 좇아 살아가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 하는 것보다 더하는(딤후3:4)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을 바라보며 이런 때일 수록 의인 노아의 살아가는 모습에 착념해야 합니다. 노아의 삶의 모습을 본받아 내 삶의 모습을 가꾸어야 하는 것이 바 로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입니다. 본문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여기에 노아의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명하신 일을 준행하는 삶 바로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2.하나님의 긍휼 본문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이 말씀을 인간의 수한으로 보고 인간의 생명을 120년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 후에도 120년을 넘게 산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한으로 보는데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에도 120 세가 넘는 고령자가 있을 수 있다. 이 말씀은 홍수 심판을 예고해 주시는 말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을 향해 베푸시는 "긍휼의 시간"이요, 사람에게는 회개의 기간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 라/ 주님이 친히 말세의 징조를 가르쳐 주시면서 주님 재림시의 시대상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시며.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계심을 본다.
그러므로 120년은 홍수 심판의 예고 기간이요, 유예 기간이요, 긍휼을 베푸시는 기간이요 (벧후3:9),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이다. 히브리 11:7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본 적도 없는 일이요, 들은 적도 없는 일이다. 홍수 심판은 일찍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일 이다. 노아에게 "아직 보지 못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노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준비를 하였다. 방주를 예비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입니다. 120년의 기간 아직 보지 못하는 미래에 닥쳐올 일입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킨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없는 일이다 과학적으로 따지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안 믿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벧후 3:6-7절/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 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 여 두신 것이니라/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불심판에 대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 아무리 과학으로 따져 보아도 거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노아의 삶의 모습을 통해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 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 본문 7절/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향하여 공의의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신다. 사람뿐만 아니라 육축과 공중의 새까지 쓸어버리신다는 것이다. 창세기 6:17절/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의 초점은 "육체"에 맞추어져 있다. 신령한 것을 버리고, 육체가 되어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썩고, 또 썩어 썩은 냄새로 가득한 세상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본문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죄악으로 흘린 피에 땅도 취해 있다. 그 생명을 잃고 있다. 밭 갈아도 그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저주를 받아 오히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있다(창3: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노아 홍수가 주는 또 하나의 의미입니다. "끝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살이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 일 이렇게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즐거움을 좇아 살아가지만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때에(마24:50) 끝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그 끝날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을 놓고 따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어떻게 그 끝날을 준비하느냐가 우리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4.구원의 길 본문 14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방주 아무리 큰 물이라도 삼킬 수 없는 것은 그 위에 "떠 있는 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는 구원의 길을 주 셨다. 그 방주의 제도를 친히 설계하여 주셨다. 이 방주는 죽음을 피해 생명을 보존하는 도피성이요, 멸망받을 세상에서 나와 따 로 있어라는 교회이요, 사망 권세가 삼킬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2.언약 본문 18절/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여호와 하나님은 중요한 사항을 일러주실 때마다 언약을 세우셨다. 그 언약은 항상 대표자와 세우셨다. 한 개개인, 각자 각자와 언약을 세 우신 것이 아니다. 항상 대표자와 언약을 세우셨는데 오늘 본문 노아와의 언약 외에도 아담과의 언약(창2:16-17), 아브라함 과의 언약(창12:1-3), 모세와의 언약(출19:5), 다윗과의 언약(삼하7:16), 새 언약(렘31-34), 등이 있다. 언약의 당사자는 그 언약에 충실해야 한다. 이는 자신이 그 언약 속에 있음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대표한 모든 사람이 그 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예수 믿어 내 영혼이 구원 얻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나뿐만 아니라 내 집의 구원이 내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정에서 먼저 믿는 자는 그만큼 사명이 큰 것이다.
3.초청 창세기 7: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여호와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1주일 앞두고(창7:10) 노아와 그 온 가족 을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 방주에로의 초청 바로 구원에로의 초청이다. 마태복음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계시록 22:17절/ 성령님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목마른 자, 듣는 자, 원하는 자 모두 모두를 초청하시는 부르심이다. 편히 쉬게 하리라는 초청이다. 값 없이 생명수를 주신다는 초청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한 노아의 삶을 본받아 주님 오실 그날을 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오늘 여러분은 노아 홍수 심판을 살펴 보면서 어떤 교훈을 가슴에 새 겼나요 오늘의 이 세대를 바라보니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더 가까움 을 깨닫게 됩니다. 120년동안의 하나님의 긍휼을 저버린 저들 쏟아지는 홍수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그 길고 긴 긍휼이 오히려 진노로 바뀌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는 거짓이 아닙니다. 방주에로 하나님의 초청도 거짓이 아닙니다. 사실이냐 아니냐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급선무도 아닙니다.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준 행한 노아의 삶이 중요합니다. 바로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7:5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바로 노아의 이러한 삶이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4: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 리라/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우리 성도들에게 관심이 되는 것은 주님이 친히 일러주신 재림하실 때의 징조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삶의 모습이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가면서, 즐기는 동안에 생각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 시대의 시대적 상황과 비슷한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우리 성도들이 어떤 삶의 모습을 가꾸어 가야 할지를 살펴 보고져 한다.
1.왜 홍수 심판이 왔는가 본문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 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노아 시대의 시대적 상황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이(창1:26)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인간이기를 버리고 짐승 같은 삶의 모습이었다.
1.육체가 됨이라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이 없는 육체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갈라디아 5:17절/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하는 것은, 바로 육체의 소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다고 했다. 곧 음행, 더 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를 맺음, 분쟁, 시기, 분냄, 작당, 분 리,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이라고 했다(갈5:19-21).
2.죄악의 관영 본문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여서 죄악으로 세상에 가득 찼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의 생각도, 계획도 모두가 죄악 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3.땅의 패괴 창세기 6:11-12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여기서 "패괴하다"는 말은 썩어 냄새가 난다는 말로 하나님 앞에서 타락해 버린 모습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 순리대로 사는 게 아니라(롬1:26-27) 제멋대로의 삶을 말한다. 여기서 "강포하다"는 말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행하여지는 일 로 강자가 약자를 압제하고, 학대한다는 것이다. 힘있는 자는 약한 자 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강자가 약자를 자신의 편의와 유익을 위해 이용하고, 부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 시대에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부 패상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육체의 소욕대로 육신 의 정욕을 좇아 살았습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세상 썩어 냄새나는 세상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시대상이 자꾸만, 자꾸만 노아의 시대상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채우기 위해 정욕을 좇아 살아가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 하는 것보다 더하는(딤후3:4)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을 바라보며 이런 때일 수록 의인 노아의 살아가는 모습에 착념해야 합니다. 노아의 삶의 모습을 본받아 내 삶의 모습을 가꾸어야 하는 것이 바 로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입니다. 본문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여기에 노아의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명하신 일을 준행하는 삶 바로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2.하나님의 긍휼 본문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이 말씀을 인간의 수한으로 보고 인간의 생명을 120년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 후에도 120년을 넘게 산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인간의 수한으로 보는데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에도 120 세가 넘는 고령자가 있을 수 있다. 이 말씀은 홍수 심판을 예고해 주시는 말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나님에게는 인간을 향해 베푸시는 "긍휼의 시간"이요, 사람에게는 회개의 기간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 라/ 주님이 친히 말세의 징조를 가르쳐 주시면서 주님 재림시의 시대상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시며.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계심을 본다.
그러므로 120년은 홍수 심판의 예고 기간이요, 유예 기간이요, 긍휼을 베푸시는 기간이요 (벧후3:9),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이다. 히브리 11:7절/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본 적도 없는 일이요, 들은 적도 없는 일이다. 홍수 심판은 일찍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일 이다. 노아에게 "아직 보지 못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노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준비를 하였다. 방주를 예비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입니다. 120년의 기간 아직 보지 못하는 미래에 닥쳐올 일입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킨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없는 일이다 과학적으로 따지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안 믿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벧후 3:6-7절/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 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 여 두신 것이니라/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불심판에 대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 아무리 과학으로 따져 보아도 거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노아의 삶의 모습을 통해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 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 본문 7절/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향하여 공의의 하나님이 심판을 선언하신다. 사람뿐만 아니라 육축과 공중의 새까지 쓸어버리신다는 것이다. 창세기 6:17절/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의 초점은 "육체"에 맞추어져 있다. 신령한 것을 버리고, 육체가 되어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썩고, 또 썩어 썩은 냄새로 가득한 세상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만 것이다. 본문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죄악으로 흘린 피에 땅도 취해 있다. 그 생명을 잃고 있다. 밭 갈아도 그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저주를 받아 오히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있다(창3: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노아 홍수가 주는 또 하나의 의미입니다. "끝날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살이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 일 이렇게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즐거움을 좇아 살아가지만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때에(마24:50) 끝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그 끝날이 있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을 놓고 따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어떻게 그 끝날을 준비하느냐가 우리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4.구원의 길 본문 14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방주 아무리 큰 물이라도 삼킬 수 없는 것은 그 위에 "떠 있는 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는 구원의 길을 주 셨다. 그 방주의 제도를 친히 설계하여 주셨다. 이 방주는 죽음을 피해 생명을 보존하는 도피성이요, 멸망받을 세상에서 나와 따 로 있어라는 교회이요, 사망 권세가 삼킬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2.언약 본문 18절/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여호와 하나님은 중요한 사항을 일러주실 때마다 언약을 세우셨다. 그 언약은 항상 대표자와 세우셨다. 한 개개인, 각자 각자와 언약을 세 우신 것이 아니다. 항상 대표자와 언약을 세우셨는데 오늘 본문 노아와의 언약 외에도 아담과의 언약(창2:16-17), 아브라함 과의 언약(창12:1-3), 모세와의 언약(출19:5), 다윗과의 언약(삼하7:16), 새 언약(렘31-34), 등이 있다. 언약의 당사자는 그 언약에 충실해야 한다. 이는 자신이 그 언약 속에 있음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대표한 모든 사람이 그 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예수 믿어 내 영혼이 구원 얻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는 나뿐만 아니라 내 집의 구원이 내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정에서 먼저 믿는 자는 그만큼 사명이 큰 것이다.
3.초청 창세기 7: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여호와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1주일 앞두고(창7:10) 노아와 그 온 가족 을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하나님의 부르심 방주에로의 초청 바로 구원에로의 초청이다. 마태복음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계시록 22:17절/ 성령님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목마른 자, 듣는 자, 원하는 자 모두 모두를 초청하시는 부르심이다. 편히 쉬게 하리라는 초청이다. 값 없이 생명수를 주신다는 초청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한 노아의 삶을 본받아 주님 오실 그날을 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주는 의미 오늘 여러분은 노아 홍수 심판을 살펴 보면서 어떤 교훈을 가슴에 새 겼나요 오늘의 이 세대를 바라보니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더 가까움 을 깨닫게 됩니다. 120년동안의 하나님의 긍휼을 저버린 저들 쏟아지는 홍수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그 길고 긴 긍휼이 오히려 진노로 바뀌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는 거짓이 아닙니다. 방주에로 하나님의 초청도 거짓이 아닙니다. 사실이냐 아니냐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급선무도 아닙니다.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준 행한 노아의 삶이 중요합니다. 바로 구원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7:5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바로 노아의 이러한 삶이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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