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노예 소녀와 나아만의 개종 (왕하5:15-19)

본문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목적과 교육의 목적을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나아만의 하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그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여서 외국에서 우상을 섬기는 장관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변혁시켰던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소녀는 고국을 머나 먼 타국에 노예로 끌려가서 살았던 외롭고 불쌍한 이민자였습니다. 이 소녀는 강제 이민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봅시다.
1. 나아만와 노예 소녀 이 소녀는 이름도 자혀지지 않았고, 그저 작은 계집아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강대국인 아람국이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노예로 끌려간 소녀였으며, 그 나라 군대장관인 나아만의 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몸에서 강제로 떼어 놓고, 어린 몸으로 고향을 떠나 멀고 먼 북쪽나라 아람에 사는 그녀의 집장은 비극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그런 노예의 환경 속에서도 큰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자기의 주인인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이었고 그것 때문에 나아만은 물론 온 집안이 슬픔속에 살고 있음을 그녀는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노예 소녀는 당돌하게도 나아만의 아내에게 자신의 고향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방 사람 즉,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을 선지자에게 인도했다는 것은 그 소녀로서는 가장 슬기로운 전도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이스라엘 땅으로 엘리사를 찾아갔으며, 엘리사의 말을 좇아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고 기적적으로 병고침을 받게 됩니다. 성경은 나아만의 신체적 건강회복 이야기만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왕하 5:17에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사는, 그리고 노예 소녀의 고향인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기 집 뜰에 이 흙을 깔아 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 드릴 때 즉 개인적인 예배를 이 흙 위에 꿇어앉아서 다른 신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노예 소녀가 믿는, 그리고 엘리사를 통하여 전해 받은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노예 소녀가 자신의 고향의 흙을 나아만에게 선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 말은 창조자이신 참다운 하나님 여호와를 우상 숭배의 한복판에, 강력한 군대장관 나아만의 손을 통하여 수입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민지에서 그리고 고통과 고독 속에서 이룩한 한 신앙있는 소녀의 위대한 선교 업적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나아만의 신앙 개종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에까지 오게 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이 모든 과정이 자기의 신 림몬이 아닌 다른 신에 의한 계획임을 알리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신 림몬은 앗수르 신이었지 이스라엘의 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몰랐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매개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유명한 장군이었으나 온 몸에 퍼진 문둥병 때문에 고통하고 있는 나아만에게 노예 소녀를 통해서 엘리사에게 소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 전도입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명령같은 글”을 보냈습니다. 정치적 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지만,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을 푸대접했습니다. 엘리사의 푸대접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림몬 신앙을 가지고 교만스럽게 찾아온 나아만에게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던진 도전이었습니다. 바로 신앙의 싸움을 던진 것입니다. 엘리사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향하여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빗으라는 말에 무슨 손해 볼 일이 있습니까?” 라고 말한 종들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요단강에 가서 일 곱 번 몸을 담그자 그 살이 여전히 어린 아이 살같이 깨끗하게 되었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문둥병에서 나음을 받은 나아만, 그는 모든 종자와 함께 그가 미워했던 엘리사에게로 되돌아 왔습니다. 바로 신앙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자기가 믿어 오던 이방신의 림몬 신으로부터 이스라엘신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신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옛 신앙, 우상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유일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아만은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여지껏 믿어온 그의 신은 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참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서 이 시간까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인도하여 오신 하나님의 경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나아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귀국 후의 나아만의 신앙 나아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깨달아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극적이고 영광스러운 계시의 순간은 그 다음 고통스럽지만 피할 길 없는 삶의 현실에도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다시 이야기는 세 가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첫째는 아람으로 돌아갈 때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싣고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흙을 깔아놓고 그 위에 드리는 모든 제사는 여호와께만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2)둘째는 나아만에게는 그 보다 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결심하면서도 그에게는 아람국의 장군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의무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림몬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할 때 내가 몸을 굽히게 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는 고민이었습니다. “림몬신을 섬기는 것이 죄악인 줄을 아나 나에게는 선택이 없는 이 행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옵소서”라는 고백입니다. 나아만의 신앙적 위대함은 림몬신 앞에서 여호와 신앙을 타협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나아만은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가장 어려운 숙제를 안은 나아만 앞에서 엘리사는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잘 되었다, 잘못되었다”라고 판단하지 않고 엘리사는 한 마디만을 던졌습니다. “너는 평안히 가라”는 것입니다. 그저 나아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결단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으로 되돌려보냈습니다. 여기에 성경의 어려움이 있지만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것도 다 더하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집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림몬신이 나의 신이 되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나의 신이었으나 하나님을 만난 이 후에는 림몬신이 나의 궁극이 아니며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날이 바로 나의 생각과 사상이 바뀌며 삶까지도 변화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8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