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님 (막10:13-16)
본문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은 꽃주일이라고도 하며 1년중 어린이들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희망에 찬 미래를 기대하며 축복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귀중함은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말씀하셨으며 몸소 사랑으로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말씀도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시는 따뜻하고
정겨운 사랑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하나님의
멧세지를 들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평소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말씀하시려고하는 아주 중요한 교훈 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어린이에 대한 3종류의 사람들의 태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는 만져주심을 바라고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던 부보들의 태도이고
또하나는 그 부모들을 꾸짖었던 제자들의 모습이며, 또다른 하나는 그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대하여야 하며, 우리의 자녀들을
과연 어떻게 가르치며 살아야 하는지 배울수가 있습니다.
1. 제일먼저 우리는 이말씀속에서 현명했던 부모들의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에서는 특히 우리 대한민극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에대한 관심이 필요이상
이라고 할만큼 크고 대단 합니다.
물론 아직 개발도상국이요,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역사가 결코 평탄하지못한 험란한
세월이어서 배우지못한 설움에 많이 배워야 한다는 한때문에 빛어진 관심도 있습니다만
결코 그런것만은 아닌 이상할정도로 지나친 관심이 대단한 것만은 사실 입니다.
공부, 취미활동, 생활, 가정, 친구,…. 등 조그마한일 하나하나,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 하나하나 까지 관심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님들의 관심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학교 공부에만 쏠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잘하면 훌륭한 자식이고 못하면 내논자식으로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리고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에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실력경쟁시대에서 실력이 있어야만 잘살수있기 때문입니다,
아귀다툼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고등사기꾼들 속에서 승리할수 있는 길은 영민해야
하기 대문입니다.
착한것이 밥먹여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권모술수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는 서글픈
오늘의 현실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고 가정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장관이되고 뛰어난 과학자. 기업가. 법조인, 의사가
되었습니다.
부귀영화가 한몸에 주어졌습니다.
부러울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다되었나요 더 원하는 것은 없을까요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계신 어떤 분도 그것만으로 다되었다고 말씀 하실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결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로 판가름이 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위대한 지위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귀하고 위대하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귀하고 위대한 지위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나라의 대통령을 하고서도 부끄럽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가난하게 어렵게 살아도 떳떳하게 기쁨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결코 무엇을 하며살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덯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무엇이 되라고 가르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이 현명한 부모들일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만족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생을 살았더라도 그 삶으로 그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영혼의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인생의 가장 허전한 바로 그 부분이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눅 12:16-21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여 곡간을 짓고 편히쉬고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하시는 심각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밤 네영혼을 내가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모든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지는 관심중에서 공부에대하여 가지는 관심보다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에 대한 관심보다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부분은 바로 그들의 영혼인
것 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얻는 학문보다도, 어떻게 살아가아는가 하는 윤리
도덕 보다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내세를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걱정할 필요가 업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한 자녀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속에 있기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관심도 결코 하나님의 관심보다 낳을 수는 없기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상태가 잘못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되지 못한 가운데서
자라난 자녀들은 아무리 귀한 지위에 오르고, 많은 재물을 가진다해도 인생의
가장 귀한 부분이 비어 있기때문에 그들은 결코 정상작인 삶이나 , 참인생을 바로
살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들이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것은 그들의 학식이나 재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영혼,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를 선택해야 할것입니다.
예) 나중에 해도 되지않느냐 ; 어른이 되어서는 더 어렵다.
본문에 나와 있는 부모들은 현명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지식을 배우리고 학식높은 선생에게 가지않고, 많은 돈을 벌라고
돈많은 부자에게 가지않고 먼저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수 있는 예수님에게로
그 자녀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예수그리스도를 배울것을 원했고, 예수그리스도에게 만져주심르 바랬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바램은 그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즉시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이 결코 우리들의 잘못때문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에게 부탁하여 하나님과의 귀한
관계속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수 있도록 해주어야 겠습니다.
어떤곳 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자녀들을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안수하시고
이끌어주시는 놀라운 축복속에 살아가시는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번째로 현명했던 부모들의 모습에 비해 어리석은 제자들의 행동을 볼수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얼마전 예수께서 '소자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교훈하셨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9장 37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던 부모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왜 무엇때문에 제자들은 부모들을 나무랐을 까요
그이유는 먼저 제자들의 이기적인 욕심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오게되면 예수님께 배울수있는 시간들을 빼앗겨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은혜받기 위해서는 다른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이없다는 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어두워 제자들은 부모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편견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방해때문에 눈이 찌푸려진 제자들은 쉬쉬 하면서 예수님께서도 방해되는
어린아이들을 원치않으시리라 지레짐작해 버렸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중요시해야 할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접하시고 축복하시는 그 영혼을 우리가 무시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닙들깨서는 자칫 잘못하면 자녀들의 인격이나 영혼을 무시하고 부모들의 말을
잘듣는 기계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녀들을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의 좋은 주장도 부모의 권위로
묵살해 버리려는 태도들도 종종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기계인간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들과의 담만 더 높아지고 불신의 벽만 더 쌓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만 우리가 할일은 그 영혼을 중요시하고 끊임없이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기 까지 그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주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어떤일 보다도 자녀들을 예수님 앞에 이끄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 자녀들이
축복받기까지 인도하시는 여려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자녀들이 예수님앞에 인도되어질때 주어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응답이요 축복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4절에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자의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아이들을 안으시고 하나하나 안수해 주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부모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만져주심만 바라고 나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자의 것이니라' 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깨닫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리석은 제자들이 되지말고 현명한 부모가 되자는 것입니다.
어린영혼을 무시하고 중요시할줄 모르던 제자들의 태도를 버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원하며 그 영혼의 모든 문제를 책임져주실 예수님에게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끌어내자는 것입니다.
2000년전에 어린아이들을 축복해주신 예수님의 축복은 오늘도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통하여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약속을 믿고 바라는 신앙으로 오늘 우리는 현명한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며
일어나시는 여러분이 다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리십니다.
현명한 부모였는가
어리석은 제자들같은 부모는 아니었는가
예수님의 축복하심을 믿고나왔는가
이제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칠 것인가 생각하시면서.
새기고 희망에 찬 미래를 기대하며 축복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귀중함은 예수님께서도 언제나 말씀하셨으며 몸소 사랑으로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말씀도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시는 따뜻하고
정겨운 사랑의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하나님의
멧세지를 들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평소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말씀하시려고하는 아주 중요한 교훈 입니다.
본문 말씀에는 어린이에 대한 3종류의 사람들의 태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는 만져주심을 바라고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던 부보들의 태도이고
또하나는 그 부모들을 꾸짖었던 제자들의 모습이며, 또다른 하나는 그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대하여야 하며, 우리의 자녀들을
과연 어떻게 가르치며 살아야 하는지 배울수가 있습니다.
1. 제일먼저 우리는 이말씀속에서 현명했던 부모들의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에서는 특히 우리 대한민극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에대한 관심이 필요이상
이라고 할만큼 크고 대단 합니다.
물론 아직 개발도상국이요,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역사가 결코 평탄하지못한 험란한
세월이어서 배우지못한 설움에 많이 배워야 한다는 한때문에 빛어진 관심도 있습니다만
결코 그런것만은 아닌 이상할정도로 지나친 관심이 대단한 것만은 사실 입니다.
공부, 취미활동, 생활, 가정, 친구,…. 등 조그마한일 하나하나,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 하나하나 까지 관심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님들의 관심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학교 공부에만 쏠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를 잘하면 훌륭한 자식이고 못하면 내논자식으로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리고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에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실력경쟁시대에서 실력이 있어야만 잘살수있기 때문입니다,
아귀다툼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고등사기꾼들 속에서 승리할수 있는 길은 영민해야
하기 대문입니다.
착한것이 밥먹여주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권모술수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는 서글픈
오늘의 현실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고 가정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장관이되고 뛰어난 과학자. 기업가. 법조인, 의사가
되었습니다.
부귀영화가 한몸에 주어졌습니다.
부러울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다되었나요 더 원하는 것은 없을까요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계신 어떤 분도 그것만으로 다되었다고 말씀 하실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결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로 판가름이 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위대한 지위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귀하고 위대하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귀하고 위대한 지위는 오히려 그 사람에게 욕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나라의 대통령을 하고서도 부끄럽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가난하게 어렵게 살아도 떳떳하게 기쁨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결코 무엇을 하며살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덯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무엇이 되라고 가르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것이 현명한 부모들일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만족할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생을 살았더라도 그 삶으로 그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라면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영혼의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우리인생의 가장 허전한 바로 그 부분이 남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눅 12:16-21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여 곡간을 짓고 편히쉬고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하시는 심각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밤 네영혼을 내가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모든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지는 관심중에서 공부에대하여 가지는 관심보다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에 대한 관심보다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부분은 바로 그들의 영혼인
것 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얻는 학문보다도, 어떻게 살아가아는가 하는 윤리
도덕 보다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내세를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걱정할 필요가 업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한 자녀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관심속에 있기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떠한 관심도 결코 하나님의 관심보다 낳을 수는 없기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상태가 잘못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되지 못한 가운데서
자라난 자녀들은 아무리 귀한 지위에 오르고, 많은 재물을 가진다해도 인생의
가장 귀한 부분이 비어 있기때문에 그들은 결코 정상작인 삶이나 , 참인생을 바로
살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들이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것은 그들의 학식이나 재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의 영혼,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를 선택해야 할것입니다.
예) 나중에 해도 되지않느냐 ; 어른이 되어서는 더 어렵다.
본문에 나와 있는 부모들은 현명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지식을 배우리고 학식높은 선생에게 가지않고, 많은 돈을 벌라고
돈많은 부자에게 가지않고 먼저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수 있는 예수님에게로
그 자녀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예수그리스도를 배울것을 원했고, 예수그리스도에게 만져주심르 바랬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바램은 그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즉시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될줄로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이 결코 우리들의 잘못때문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에게 부탁하여 하나님과의 귀한
관계속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수 있도록 해주어야 겠습니다.
어떤곳 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자녀들을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안수하시고
이끌어주시는 놀라운 축복속에 살아가시는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번째로 현명했던 부모들의 모습에 비해 어리석은 제자들의 행동을 볼수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얼마전 예수께서 '소자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교훈하셨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9장 37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던 부모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왜 무엇때문에 제자들은 부모들을 나무랐을 까요
그이유는 먼저 제자들의 이기적인 욕심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오게되면 예수님께 배울수있는 시간들을 빼앗겨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은혜받기 위해서는 다른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되어도 상관이없다는 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욕심에 눈이 어두워 제자들은 부모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편견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의 방해때문에 눈이 찌푸려진 제자들은 쉬쉬 하면서 예수님께서도 방해되는
어린아이들을 원치않으시리라 지레짐작해 버렸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중요시해야 할것을 배울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접하시고 축복하시는 그 영혼을 우리가 무시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닙들깨서는 자칫 잘못하면 자녀들의 인격이나 영혼을 무시하고 부모들의 말을
잘듣는 기계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그러한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녀들을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의 좋은 주장도 부모의 권위로
묵살해 버리려는 태도들도 종종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이 기계인간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들과의 담만 더 높아지고 불신의 벽만 더 쌓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만 우리가 할일은 그 영혼을 중요시하고 끊임없이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배우기 까지 그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주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어떤일 보다도 자녀들을 예수님 앞에 이끄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 자녀들이
축복받기까지 인도하시는 여려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자녀들이 예수님앞에 인도되어질때 주어지는 예수그리스도의 응답이요 축복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14절에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자의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아이들을 안으시고 하나하나 안수해 주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부모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만져주심만 바라고 나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아이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자의 것이니라' 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깨닫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어리석은 제자들이 되지말고 현명한 부모가 되자는 것입니다.
어린영혼을 무시하고 중요시할줄 모르던 제자들의 태도를 버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원하며 그 영혼의 모든 문제를 책임져주실 예수님에게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끌어내자는 것입니다.
2000년전에 어린아이들을 축복해주신 예수님의 축복은 오늘도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통하여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그약속을 믿고 바라는 신앙으로 오늘 우리는 현명한 부모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며
일어나시는 여러분이 다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리십니다.
현명한 부모였는가
어리석은 제자들같은 부모는 아니었는가
예수님의 축복하심을 믿고나왔는가
이제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칠 것인가 생각하시면서.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