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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전야제 (사9:2-7딛2:11-14,눅2:1-14)

본문

성탄절 축제의 의미는 베들레헴에서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기면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자기 계시의 경축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세속사회에서 성탄절에 대한 상업적이고 감각적인 축제는 이러한 계시의 역사성과 신학적인 종말론에 관한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2-7
본래 대관식의 노래입니다.
여기에는 대조적인 의미에서 두 종류의 즐거움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새통치는 빈곤과 압제와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한 아기의 탄생을 처음 노래한 것은 왕의 즉위식 때였는데 이는 왕정신학에서 하나님이 왕으로서 아들을 선택한 것이라고 해석해 줍니다.(시2:7) 새로 즉위한 왕은 신성하고 경이로운 찬사를 받는데 심지어 하나님이라고까지 불리워집니다. 신성하고 대한 이런 대담한 묘사는 고대근동 아시아에서는 보통 있는 일들이지만 구약성경 안에서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데만 신중성을 동반하여 해석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상적인 다윗 왕의 기대와 희망이 실현되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모든 복들, 곧 빈곤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이 땅에서의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승천함으로써 왕으로 즉위하게 된 그 아기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포함한 모든 메시아적인 칭호가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디도서 2:11-14
본문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림의 주제는 즉시 성탄절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초림은 재림에 관하 기대이고, 이것은 밤에 경축되는데 그 까닭은 재림이란 한밤중에 도적같이 일어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마25:6). 본문에서는 한 번의 나타나심은 과거에 이미 있었고, 다른 한 번의 나타나심은 앞으로 있을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위대한 침투자로서,(딛2:12) 부정적으로는 경건치 않은 모든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고 긍정적으로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된 소망을 가지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나타나심을 기다리에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14(15-20)
마태와 누가의 기록은 많은 역사적인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제롬 성경주석에서는 본문의 구체적 내용들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제일 첫번 크리스마스 경배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려야 할 것은 구속의 신비한 고지입니다. 1세기 팔레스탄에서의 목자들은 세리나 창기와 같이 소외된 계층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삶에 여유를 갖거나 낭만스러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사의 고지는 구속사적 사건의 의미를 표현하는 성서적인 고안입니다. 한 천사의 첫 고지는 출생 그 자체의 소식을 알려주고, 두번째로 ‘일군의 천사의 무리’ 들은 그 출생이 가져오는 복된 소식들을 선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메시아적 구원으로 하나님께서는 영광, 땅 위에는 평화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이라는 말은 단순히 통속적인 의미로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이라는 어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이 된 모든 사람들’ 을 뜻하는 성경적 관용구로 해석이됨니다. 믿음을 통해서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에 대한 약속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 틀림없지만 이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여기서 언급된 ‘큰 기쁨’ 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놀라운 축복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임합니다. 본문을 통한 누가의 관심과 의도는 목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의 탄생의 전야 축제가 비롯된다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1.빛의 축제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가까이 다가오는 법입니다.
동터 오는 새벽을 누가 막겠는가 땅을 뒤덮고 있는 흑암과 곤궁의 상태가 서서히 물러가고 영광의 아침 빛이 비쳐오기 시작 합니다.
주께서 깊은 슬품에 빠져던 나라를 이제 창성케 하시며 즐거움을 더학 하십니다. 참으로 기나긴 세월 동안 땅을 뒤덮고 있던 암흑을 뜷고 위대한 빛이 나타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구원을 가져다주는 이 빛이 머리 위에 비치는 것을 보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새로이 태어나게 될 아기가 영광스러운 성업을 실현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성탄전야는 빛을 잉태한 밤이고 마침내 빛이 태어나는 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전야는 빛의 축제요 온 누리에 비치는 빛의 서곡이 장엄하게 올려오는 축제의 선포 시간입니다. 이 밤에는 어둠에 속한 생명들이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이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롬13:12) 그래서 이제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요8:12) 우리 모두에게 비치는 빛으로 나아가자, 그리하면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2.평화의 축제
오랫동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그들에게 남은 희망은 절댖벅인 힘을 가진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대, 억압과 부조리로 들끊는 시대를 진정시켜 줄 한 아기-예언되었던 그 아들이 여기서 태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입니다. 이제 그는 평화를 교란 시키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시고 백성들 사이에 평화를 보장하시는 왕으로 이 백성의 세계에 강림하심니다.
왕의 아들이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다윗의 왕국을 다스릴 때, 종전처럼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라는 영적인 무기에 의해서 그의 왕국을 영원히 증대시키며 끊임없는 평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는 ‘공평’ 과 ‘정의’ 를 사용하시어 왕국을 보존해 가시고 그의 왕국의 구성원들에게 그것을 양도하십니다.
바로 다윗의 통치의 새로운 시대는 오직 신앙과 희망이었는데 여화와의 열심이 바야흐로 그것의 실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메워지는 밤,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게 되는 밤, 그러기에 성탄전야는 진정 평화의 축제 마당입니다.
3.낮은 자들의 축제
성탄전야는 빛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열리는 축제입니다.
무관심 속에 잊어진 자, 소외된 자들, 냉대와 수모 속에 버려진 자들, 정당한 자기 권리의 몫을 가제로 박탈땅하며 빼앗기고사는 자들, 그러기에 하늘을 바라보고 울 수밖에 없는 자들, 그런 그들에게 ‘큰 기쁨’ 이 미치는 좋은 소식이 들려지도록 하며 그런 이들에게 기꺼이 초대장이 돌아가는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도울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의 기쁨은 그리 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구원의 손길은 그것이 바로 생명이요 절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후 기도
죄악의 밤이 길어가는 이 땅에 구원의 빛으로 오시는 주님, 어서 우리 가운데 오시어 어둠을 몰아내고 참 빛을 밝혀 주소서. 생명의 빛을 밝히시고 평화의 빛으로 비치시며 빛을 필요로하는 모든 이에게 임하옵소서, 이제 빈곤과 압제와 전쟁의 어둠은 물러가게 하시고 대신 공평과 정의가 온 누리에 가득 체워지게 하옵소서,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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